3,직업소개소

결국 장인장모의 취업교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하철을 ‘소철’이라하고 간단한 서울말도 흉내 내지 못할 때부터 취업교육은 이미 물 건너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그래도 고령 동포들에게 취업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하면 나는 서슴없이 ‘동포노인을 학대하지 말라!’는 표어를 들고 담당부서 앞에서 일인시위를 할 용의가 있다.

아무튼 장인장모의 한국행은 당사자들에게는 물론 나한테도 엄청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또 한국의 노동시장과 이들을 고용하는 고용주들에게도 결코 기꺼운 합작이 될 수 없음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른 방법은 없었다. 결국 나는 장인장모를 도와 일자리를 찾아주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시장은 진작 변화되어 있었다. 아직 90년대만 해도 조선족의 한국취업은 별반 장애가 없었다. 오히려 일 욕심 많고 격식 없고 부담 없는 조선족을 당지인보다 선호하는 업주들이 많았다. 그러나 차츰 조선족의 수가 많아지고 불법체류가 합법화되면서 선택이 자유로워진 조선족들은 부단한 선택으로 최적의 보수와 최적의 노동환경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것이 부단한 이동으로 노출되어 한국인들의 경계와 반감을 사게 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결국 고용허가제와 방문취업제의 실시로 분야별 업종별 취업범위는 확대되었지만 조선족을 쓰려는 업주들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또 외국인노동자의 대량입국으로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업주들은 인건비가 싸지 않은 동포대신 자국민취직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간 것이다.

나는 여기저기 일자리를 부탁했지만 종무소식이다. 하는 수없이 길거리에서 ‘벼룩시장’ ‘가로수’ ‘교차로’를 뽑아다가 종일 전화를 해 보았지만 모두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조선족이여서 안 쓰겠다고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한 나는 원인부터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업주한테 정중히 물었다.

“조선족을 안 쓰겠다는 이유나 들어봅시다.”

그 쪽에서는 대답하기가 저어되었는지 뜸을 들이고 있었다. 내가 괜찮다고 독촉해서야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기도 조선족을 여럿 명 써 보았는데 오래 있질 않더라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떠나고 싶으면 마누라가 죽었다는 거짓말을 써가면서라도 기어이 떠나고 말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말 모르는 동남아애들을 쓰는 게 났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동폰데 어쩝니까. 짧은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챙겨가야 하는 입장이고 보니 그럽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편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요즘 중국에서도 조선족들은 이런 나쁜 평을 들으며 산다. 그러나 고국에서마저 외면당하면 앞으로 어디 가서 3D라도 하겠는가. 당장 한국에 오지 않아도 될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이는 부분적 조선족의 문제가 아닌 전반 조선족사회에 대두한 문제이다. 또 뒤에 오게 될 조선족들과 방문취업제가 조선족사회에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와도 귀결된다. 바라건대 한국에서 노무활동을 하는 조선족들은 냄비근성을 버리고 인내력과 지구력을 키워 한국노동시장의 특수도 누려야 하지만 한국사회와의 동반자관계도 잘 구축해 나가야 한다.

광고지에서 극구 외면하는 것이 있었다. 대부분광고는 조선족을 안 쓰겠다 혹은 상기 말을 “사람을 구했다”로 대체해 버리는 반면 ‘중국동포대환영’이라고 쓴 줄 광고다. 너나없이 안 쓰겠다고 하는 판에 ‘대환영’이라고 하여 신나게 전화를 넣어보면 월급의 10%를 소개비로 바라고 진을 치고 있는 직업소개소들이다. 이들은 항공사 버금으로 중국동포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업종이다. 결국 조선족들은 저절로 업주들에게 인심을 잃어놓고는 월급의 10%를 소개비로 선불로 갖다 바치면서 직업소개소에 의뢰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인터넷을 활용하여 전국범위에서 구인구직광고와 지방용역사무소에 전화를 넣어 장인장모를 추천했다. 그러나 선택할 만큼 일자리도 많지 않았거니와 만족할만한 자리도 없었다.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장인이 싱글벙글 웃으며 전화를 걸어왔다. 직업소개소에서 일자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농장인데 숙식을 제공받고 두 분이 월 160만원을 받기로 했단다. 그런데 소개비를 물어보니 20만원이란다. 전화번호를 물어 소개소 측에 요즘 월급의 10%이상을 소개비로 받는 곳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니 자기들은 회원제를 하기에 더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자리가 만족되지 않으면 스무 번도 소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봐요. 누가 할 일없어 한국으로 장난치러 온 줄 아세요? 두 번도 필요 없으니 한번에 OK할 곳으로 보내주세요.”

그쪽에서 말이 빗나갔음을 눈치 채고 꼬리를 내렸다. 그러면서 와서 상의하잖다. 그러나 좀 있다 직업소개소에 가 보니 소개소 측에서 노인들의 일자리가 흔치 않다며 바람을 넣는 바람에 장인장모는 고스란히 20만원을 주고 농장에 가기로 매듭을 지었던 것이다. (계속)

2007년7월26일 영등포에서/조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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