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심사평 - 리상각, 조성일, 김병민, 김호웅

   2006년 제27회《연변문학》윤동주문학상 시부분 본상에는 강효삼 시인의 시 《초불엔 재가 없다》,  신인상에는 채국범의 시 《한줄기 향기갬가 선정되고 수필부분 본상에 김점순의《발》을, 신인상에 오경희의 《흔들리는 미학》이 선정되었으며 소설부분 본상에는 최홍일의 단편소설 《닉명신》, 신인상에는 장형섭의 중편소설《기러기문신》이 선정되었고 평론부분은 본상 수상작을 내지 못하고 2편의 신인상 수상작만을 선정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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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로부터 시인들이 《초불》을 쓴 시가 적지 않은데 거개가 이별의 슬픔, 그리움의 눈물을 쓴 것으로서 아픈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강효삼은 남달리 시상을 익히고 있다. 초불의 고귀한 헌신정신에 초점을 맞추고 깊이 있게 썼다. 통채로 자기 몸을 바치는 모진 아픔, 그 모진 아픔에 눈물을 막지 못하는 고통, 그 고통을 이겨가며 끝까지 자기 몸을 태우고 또 태우는 불굴의 정신, 나중에는 자신의 눈물까지도 다 태우고 재도 남기지 않는다. 이처럼 한 구절, 한 구절 점진적으로 시정신의 깊이를 발굴해냈다. 자신의 육신을 태우는데 어찌 아픔이 없으며 눈물이 없겠는가. 그래도 끝까지 자기를 태우며 그 눈물마저 태워버리며 재도 남기지 않는 초불이다. 눈물마저 태우며 재를 남기지 않는다는데 강렬한 빛을 발사하는 이 시의 초점이 있는 것이다. 

   초불은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자기를 바치는 초불은 그 어떤 재물도, 칭찬도, 명예도 바라지 않는다. 헌신정신은 그처럼 치열한 것이다. 이 시는 우리에게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반성해보게 한다. 시는 6행에 59자로 된 아주 짧은 작품이지만 초불의 빛나는 정신은 우리를 깊이 감동시킨다. 

   신인상에는 채국범의 시《한줄기 향기갬에서 한줄기 향기는 인간미를 말한 것이며 꿈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세월이 가고 꽃은 져도 향기는 남는다. 꽃이 진다고 새가 애처롭게 울어도 우리 영혼의 터전에는 향기가 남는다.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갈 것이다. 기러기가 떼를 지어 저 멀리 날아가듯 한줄기 향기가 비껴가리라. 인간미에 대한, 아름다운 꿈에 대한 염원은 이처럼 줄기차고 확고하다. 시는 자유분방한 사유로 거침없이 서정을 토로했으므로 독자들에게 상쾌한 기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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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점순은 중학교 교사로 지내면서 짬짬이 많은 글들을 써왔고 최근 몇 년간 여러 가지 문학상들을 석권해 오면서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번에 수필부분 본상으로 뽑힌《발》은 그 동안 일편단심 문학을 사랑하면서 부지런히 글 농사를 지어온 작자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 본다. 

   수상작《발》은 전형적인 서사수필이다. 작자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갉…” 라는 정지용의 시에서 수필적 계기를 얻고 자연히 아버지의 발을 연상한다. 아버지를 그리되 아버지의 전모를 그리지 않고 아버지의 발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다. 말하자면 산전수전 다 겪은 아버지의 발을 몇 개의 장면을 통해 간결하지만 다각도로, 세부적으로 묘사한다. 계기적인 사건, 장면만을 다루고 그것을 의미화 하는 수필 본연의 특징에 익숙하다. 

   이를테면 모내기철 논둑길을 휘청거리며 뛰어다녀서 누런 흙물이 줄줄 흐르는 발, 노란 개흙과 새초를 뒤섞어 맨발로 이긴 나머지 황토로 반죽된 발, 그리고 겨울철 새하얀 눈길에 땔나무를 해온 아버지가 땀내 물씬 배인 솜신을 거꾸로 들고 흔들면 하얀 눈가루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면서 싱그러운 산기운을 풍긴다고 했다.

   이처럼 천진한 동심으로 아버지의 발을 그리는가 하면 오래 만에 시가지에 살고 있는 딸네 집에 온 아버지에게 “주디안마(足底按摩)”를 시키려 했던 일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고 나서 의론을 전개하는데, 계기가 적절하고 거기서 탄력을 받았으니 의론 역시 감칠맛이 나고 설득력을 가진다.  

   김점순의《발》을 서사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면 오경희의《흔들리는 미학》은 전형적인 서정수필이다. 이 작품은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남성중심주의의 통념을 부수어버린다. 남성중심주의적인 봉건적 예교와 관습에 의한다면 여성은 흔들려서는 아니 되는 존재다. 열녀 춘향이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사이부라고 했듯이 흔들림이 없는 충성과 사랑은 자고로부터 절찬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만고의 열녀 춘향에게 부족한 것은 피와 살이다. 하지만 오경희는 종(鍾)은 흔들려야 종노릇할 수 있고 갈대는 흔들리면서 세상과 맞선다고 본다. 그리고 흔들려서 강물에 허리를 적시고 청초함을 자랑하는 싸리꽃은 아름답다고 했다. 이게 바로 거꾸로 보기의 시학(詩學)이요, 남성중심주의 고루한 사고 패턴을 전복시킨 페미니즘의 시각이다. 뿐만 아니라 “똑바로 산다는 것이 흔들리는 것이고 부드럽게 휘어져서도 꺾이지 않는 것이 스러지지 않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똑바름이 아닐까. ……단단하지 말고 억세지 말고 잘 흔들리는 치마처럼, 활짝 피어서 잘 감탄하는 꽃처럼 살았으면 좋겠네요.” 라고 했듯이 변증법적인 철리와 작자의 소망까지 깜찍하게 풀어내고 있어 더욱 더 감칠맛이 나는 수필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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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홍일의 단편소설 《닉명신》은 취중에 두 동료와 함께 부패한 권력자를 고발한 닉명신을 썼다가 술이 깬 후 보복이 무서워 후회막급, 전전긍긍하는 한 퇴직교사의 나약한 모습과 모순된 심리를 다룬 소설인데,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장면과 주인공의 기형적인 인간상에 대한 생동한 묘사를 통해《좌》적인 정치운동과 권력의 횡포에 의해 인간들의 심령이 얼마나 병들고 기형화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묘파한 수작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정치운동은 인간에게 명철보신의 처세철학을 갖게 했다. 사람들은 권력의 비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증오하나 앞장에 서서 저항을 하지 않는다. 그 누군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기만을 바랄뿐 선뜻이 나서지 못하는 게 오늘을 사는 인간들의 생리다.

   이 소설은 이러한 사회적 병폐와 인간의 몰락상을 야유, 풍자하면서 새로운 시민정신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작품은 3인칭을 택했으되 작자가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특이한 고백체 담론방식을 구사함으로써 한결 더 진실성과 친근감을 기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에 대한 심미적 거리를 적절하게 조절해 그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 매도보다는 그러한 정신적 기형을 만들어낸 ‘좌’적인 사조와 비틀린 사회풍조를 고발하는데 포인트를 둠으로써 휴머니즘의 세계를 지켜내고 있다.

   장형섭의 중편소설《기러기문신》은 신판《심청전》을 만들 만한 귀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절세의 효녀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량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림당수에 풍덩 빠졌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 윤순은 불구자인 아버지를 봉양하고 두 오빠를 장가들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친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는 총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 시집을 가서 아버지를 봉양하고 두 오빠를 한국에 데려간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변태성욕자로서 멀쩡한 윤순에게 자꾸만 성형수술을 할 것을 요구한다. 그녀는 눈과 코를 수술하고 나중에는 젖무덤까지 수술한다. 하지만 이외의 의료사고로 염증이 생겨 윤순은 두 젖무덤을 척출(剔出)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젖무덤은 여성의 신비요, 상징이라고 할 때 그것까지 바쳐서 아버지를 봉양하고 두 오빠의 뒷바라지를 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희생이 극에 달했음을 의미하며 또한 그녀는 가정을 살리기 위해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작금의 수많은 조선족여성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오랜만에 윤순을 찾은 옛 연인의 철없는 시선을 통해 윤순의 젖무덤에 난 수술자리를 탐미주의 시각으로 묘사, 감상함으로써 작가의식의 한계를 보여주었으며 따라서 인물성격의 논리를 위반하고 주제의 분열을 가져왔다. 다 쓴 죽에 코를 풀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현명한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조선족사회의 실태를 알 수 있으며 윤순의 비극적 운명에 커다란 동정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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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부분은 본상 수상작을 내놓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으나 2편의 신인상 수상작을 내놓게 되어 다행이었다.

    신인상 수상작으로는 최미성의 시평 《23자(字)의 매력-김철의 시 <고향>을 두고》, 강걸의 소설평 《윤림호 소설의 기본모티브에 대하여》가 당선되었다.

    최미성의 시평은 김철의 단시 《고향》의 매력을 감명깊게 다루었는데 그의 평론가로 될수 있는 남다른 소질을 구김없이 보여준 작품이다.

    최미성은 “전편 시는 23자로 이루어졌지만 자자주옥(字字珠玉)이다. 고향을 노래한 23글자 뒤에는 시인의 한과 사랑이 깔려있고 그의 이러한 정서는 조선민족의 삶의 정서 및 더 나아가서 세계 여러 민족들의 삶의 정서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피력하면서 자기의 시평을 “서정의 육화-‘살젼”, “상징적기호로서의 ‘가시’”, “감정의 절실한 표현-‘다치면 아프다’”라는 세 부분으로 나눠 시 《고향》의 예술적 매력을 재치 있게 설파하였다.

     최미성은 은유적기법으로 창출한 김철의 시 《고향》을 분석함에 있어서 시 텍스트를 거머쥐고 “살졈, “가시”, “다치면 아프다” 등 이미지, 상징어, 은유적 표현 및 그것들의 상호 연관성에 착안하면서 자기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동원하여 끈질기게 분석하였다. 이런 분석의 방법은 사회력사적, 형식주의적, 구조주의적 방법론의 장점을 수용하면서 시 《고향》의 저변에 은폐되어 있는, 타향에 사는 시적화자의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그리움 그리고 아픔과 한을 설득력 있게 읽어냈다.

    실로 이 평론은 시 텍스트의 내적구조와 시어사용에 모를 박고 자기의 감수성과 상상력에 기대여 치밀한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시의 심층적의미를 밝혀냈는바 시의 리면을 읽어내는 감수성, 상상력, 사유와 자기 나름의 비평적 논리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강걸의 소설평 《윤림호 소설의 기본모티프에 대하여》는 소설가 윤림호가 생전에 창출한 소설들의 텍스트를 주요한 연구대상으로 하여 조선족소설사에 있어서의 윤림호의 소설이 가지는 의미와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강걸은 윤림호소설의 기본모티브 연구에서 주요하게 사회력사적비평방법론에 기대어 “유일성분론 콤플렉스와  ‘영웅’에 대한 분석”, “농촌 콤플렉스와 농촌 탈출의 양상”,  “불구자 콤플렉스와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찬미”에 대해 체계적이고도 개괄적으로 다룸으로써 격동의 년대에 사회의 저변에서의 고통스럽고 처절한 삶을 살아온 윤림호소설들의 소재, 인물형상, 정감구조, 예술풍격 등을 체계적으로 구명함으로써 평자의 감수와 논리의 힘을 보여주었다.

    강걸은 자기의 평론에서 윤림호는 청소년기의 불우한 체험을 자기 소설의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으며 그의 소설의 기본 모티브는 불우한 출신성분, 소외된 불구자, 농촌청년의 콤플렉스로서 윤림호씨는 “‘좌’적사조와 편견으로 말미암은 사회의 허황함과 잔혹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원시적인 생명력에 의한 민중의 재생을 예언한 조선족문단의 대표적인 소설가의 한 사람이다.”라고 정당한 결론을 내렸다.

   상술한 두 수상자는 텍스트를 꼼꼼히 읽고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작품의 심층적의미를 밝혀내려는 자세를 가지고 자기 나름의 감수성과 논리를 다양한 방법론을 사용하여 가시화하려고 노력한 좋은 비평적성과를 일궈냈다. 그들은 선배 평론가들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괄목할만한 평론을 창출하고 있다. 참으로 경이롭고 감사하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성구가 있다시피 젊은 세대가 자기의 지속적인 학습과 심각한 자기성찰을 토대로 하여 기성평론가의 평론방법과 논리를 계승발전 혹은 초월하면서 우리 조선족평단의 토양에 푸르싱싱한 새로운 평론의 나무를 심어주길 바란다.

    모두어 수상을 축하하며 정진을 기대한다.

                                                                    2007.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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