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원을 하다

그날 저녁부터 나와 설이는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토론결과 우리는  절로 가게를 하기로 결정지었다. 나와 설이는 쉼터에 정체원을 양도한다는 광고를 뒤지기 시작했고 이곳저곳 전화도 해대기 시작했다.그러다가 마침내 눈에 드는 한 광고를 보았다. 가보니 동경에서 한시간 남짓한 거리인데 역앞이라 류동손님도 많을듯햇다. 그보다 맘에 드는건 시골쪽이여서 불법체류자를 잡으려 혈안이 되여 날뛰는 경찰들을 피할수 있을것 같았다.

내가 가게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사장님은 앙상한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구슬픈 눈길로 날 쳐다보보면서 경찰이 절대 안쳐들어오니 자길 믿으라고 했다.

(쳇, 믿기는 개뿔! 잡히는 날이면 내가 끝장인데.)

사장이 제 아무리 좋은 소리를 다 줴쳐도 이미 땅땅 굳어진 나의 계획을 돌릴수 없었다.

그렇게 작년 2월에 우리는 70만엔 주고 정체원을 양도받았다. 양도금때문에 설이의 저금통장을 거북의 등 긁듯이 빡빡 긁었지만 모자라서 설이친구한테까지 손 내밀수밖에 없었다. 드디여 우리는 개업을 하였다. 중국같으면 폭죽도 요란하게 터치웠으련만.

첫날에 손님 세분이 왔다. 그중에 한분은 구라다라고 하는 50대 일본여성인데 나한테 마사지 받고 아주 만족해하면서 제일 첫 손님으로 4만 8000엔 주고 회수권 열장을 샀다. 그후에도 구라다는 자기 친구들 여러명을 우리 가게에 보내주었다. 내가 두달 남짓이 정체원을 하는동안 이런저런 인상깊은 손님들 참 많았다. 교원사업하는 기무라상, 동경에서 부동산한다는 가네꼬상, 늙은 량주 두분이 늘 함께 다니던 오오무라상, 이름은 생각 안나지만 늘 저녁늦게 나타나는 머리 하얀 대학교수님 등등…지금도 늘 그들한테 감사한 마음이다. 전화번호라도 알았더라면 문안전화라도 하고싶다.

개업한 첫날에 우리는 5만 9000엔을 벌었다. 원래 내가 일하던 곳에선 한시간에 삼천엔씩 하던것이 지금 가게는 5,500엔이다. 값이 높아서인지 손님도 년세 많은 로인들이 많았다. 운신도 겨우 하는 로인들은 정말 조심해서 마사지 해줘야 한다. 잘못하면 긁어 부스럼 만들수도 있으니. 일본말에 서툰 나 때문에 설이는 아르바이트도 며칠 포기하고 가게에 있었다.

참 좋았다. 자기 가게여서 눈치 볼 일도 없었고 편했다. 또 아무 일이나 해도 자기것이라 성수났었고, 어떤 날 예약 없을 때는 늦잠도 맘대로 잘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향불 피우면 손님이 잘 온다고 하여 눈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향을 태우는 일이였다.

찌라시를 하다

우리는 시간 날 때마다 원래 가게주인이 남겨놓은 찌라시 2만여장을 가게 주변 집집마다에 다니면서 뿌렸다. 비오는 날에도 때론 우산도 없이 비에 흠벅 젖으면서 가지고 나간 찌라시를 집집의 우체통에다 밀어넣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큰 만숀에는 맘대로 찌라시를 못한다는 글도 가끔 볼수 있었다. 우체통도 안에 있었고 대문옆에 관리원사무실도 있어서 비자 없는 나는 먼 발치에서 구경하고 설이가 짜라시가 든 가방을 들고 들어가 관리원 눈치 피해가면서 잽싸게 우체통마다에 집어넣었다.

전단지 뿌리느라고 우리 둘은 많이 걷기도 하였다. 가게를 시작해서 보름동안 시간만 되면 설이와 둘이서 찌라시를 했다. 그래도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서 참 행복하기만 했었다. 가게 주변 주민집마다 다 뿌려도 찌라시가 남아서 우리는 전차 타고 가까운 아래 우 역을 다니면서 근 보름만에 끝내 2만장도 넘는 전단지를 전부 다 뿌렸다.

회수권은 열장 사면 5,500엔 하던것을 4,800원에 해주었다. 어떤 손님들은 회수권 사고싶은데 값때문에 부담스러워하면 다섯장씩도 팔았다. 찌라시한지 얼마 지나서 효과를 보기 시작햇다. 손님들이 점점 많아져 아침이면 예약오는 전화벨소리에?졓燒?설칠 때가 많았다. 몸은 피로했지만 돈봉투가 두툼해지니 기쁨도 커졌다. 가게 시작한지 딱 한달만에 장부계산해보니 들어온 돈 액수가 총 39만엔이 되였다. 거기서 집세, 주차장비 등을 제하고도 30만엔은 순수입으로 남았다.

삼월말이 되자 TV에서 사쿠라꽃이 폈다는 소식이 자주 나왓다. 나와 설이도 5만엔 정도를 팔고 카메라를 하나 사서 우에노 공원으로 사쿠라 구경을 갔다.

사쿠라, 이런 저런 꽃을 많이 봤지만 사쿠라는 내가 처음 보는 꽃이였다. 아름답지만, 열매 못 맺고 그냥 떨어지는 꽃, 웬지 서글프기도 했다. 

    

서리맞은 꿈나무

시간이 흘러 사쿠라꽃잎이 부실부실 눈처럼 휘날리던 4월이 되였다. 분명 따스한 봄이 오고있건만 나한텐 설한풍이 몰아치는 겨울이 오고있음을 나도 설이도 몰랐다. 하늘의 조화를 누군들 알가만은 사람 앞길은 더구나 모른다.

가게를 시작한지도 두달이 넘었다. 쭈쿠리고 앉아서 장부계산해보니 참 리상적이였다. 두달만에 본전을 다 뽑은것이다. 날씨가 따스해지니 손님이 점점 많아졌다. 날마다 늘어나는 손님들을 혼자 하기가 벅차서 정체사를 모집할 생각도 하며 닭알가리를 쌓기도 했다.

본전을 뽑자 시름이 활 놓여 신세 진 설이친구들을 불러 우에노 천리향에 양고기뀀 먹으러 갔다.가는 길에 전차를 두번이나 갈아타면서 전차안에서도 역을 나오면서도 조선말로 재잘거리는 설이를 말 못하게 눈을 부라렸더니 동행하는 두 녀자들한테서 겁쟁이란 핀잔도 들었다. 천리향도 그날이 마지막날인줄 그때는 몰랐다.

2006년 4월 25일 화요일,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같은 날이 드디여 왔다. 그날도 예전대로 향을 태우고 샤워하고 밥먹고 침대정리까지 싹 마무리하였다. 오전에는 손님이 없어 나와 설이는 슈퍼에 가서 쌀 10키로 메오고 먹을 남새도 사오고 오후에는 컴퓨터에 마주앉아서 쉼터에다 정체사 모집광고를 내느라 낑낑 거렸다.

개코보다 영민한 일본사람들이 김치냄새가 난다 할가봐 껍을 쩝쩝 씹으면서 손님오기를 기다리는데 문득 문 두드리는 소리가 똑똑 들렸다. 설이가 《이랏쌰이마세-》하고 나갔다. 우리 가게는 문에 들어서면 화장실이 먼저여서 집안을 인차 볼수가 없다. 집안을 보려면 신을 벗고 올라와야 한다.

들어온 사람들이 반가운 손님인줄 알았는데 아뿔사 불청객들일줄이야. 그들은 자기들은 경찰인데 신고를 받고 조사하러 왔다고 날벼락 같은 말씀을 하셨다.

화들짝 놀란 나는 인차 마사지 침대있는 곳에 들어갔다. 마사지하는 곳은 천으로 가리워놓아서 안을 들여다 볼수가 없다.

경찰들은 설이하고 누가 주인이냐 언제부터 했냐 등록증 보자 하면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것이였다.찰칵찰칵 시간은 20십 여분이 흘렀다. 인차 갈줄 알았던 그들이 자꾸 뭘 캐묻는다. 이전가게 주인 이름이 뭐냐 안마사는 어디 갔냐 등등... 난 더는 불안해서 앉아있을수 없었다. 속은 바질바질 땀은 부질부질 이층에서 도망갈 길이 있냐 하고  뒤창문 카텐을 살며시 들고 밖을 내다보니 거기에도 사복한 남자가 안경 걸고 내쪽을 주시하고있는것이였다.

(어이쿠!~포위 됐네.)

독안에 든 쥐새끼신세가 된 나는 그래도 요행을 바라면서 제발 여기 안을 수색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껌 씹는 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손에 쥐고 쪼물락거렸다. 진뜩진뜩한 껌을 보면서 나도 저껌처럼 벽에라도 찰싹 붙을수만 있다면 하고 제좋은 궁리를 하고있는데 문뜩 안에 있는 사람도 나오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 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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