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놓이를 하는 녀자가 있다.
      
    가을바람이 나무가지를 설레설레 흔들어 남자의 손바닥 같이 너부죽한 오동잎이 휘적휘적 흩날리는 밤이면 은은한 불빛이 새여나오는  유리창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바싹 마른 얼굴, 가늘게 휘여진 눈섭, 얄팍한 입술을 꼭 다물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여 수놓이하는 녀자. 저녁마다 녀자는 그렇게 수놓이를 한다. 표정마저 하얗게 비여있는 얼굴.
    
     그 이튿날 아침이면 손바닥만큼 작은 그녀의 가게안에는 어김없이 전날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그림들이 하나둘 걸려지게 된다.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거개가 2, 3십대의 젊은이, 간혹 년세가 지긋한 멋쟁이 신사들도 유리창너머로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슬며시 문을 떼고 들어서기도 한다. 그녀의 그림들은 구도가 단순하고 색조도 단순하고 절대 복잡하거나 화려하지가 않다. 그러나 일부러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물론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가 무심결에 그곳을 발견한 사람들까지도 누구나 다 이상한 주문에 걸리기라도 한듯 멍하니 넋을 놓고 서있거나 허겁지겁 돈을 빼들고 그 무슨 명가(名家)의 진품(珍品)이라도 되는것처럼 사각형의 액자속에 반듯하게 넣어둔 작은 그림을 소중히 가슴에 받아안는다.

    가게안에서 수놓이품 하나씩 사들고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단히 만족스럽고 희열에 차넘친다. 구경 무엇이 그렇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것일가?
그녀의 가게를 가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안다. 녀자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답지 않게 태도가 안좋다. 한쪽 구석에 비스듬히 기대여앉아 다른 사람이야 들어오건말건 그 자신은 언제까지나 시끌벅적하고 어지러운 인간세상을 적당히 벗어나 저기 저 밤하늘에 걸려있는 별이라도 되는듯 아무 표정없이 새까만 눈동자만 깜박깜박하며 앉아있을뿐이다.

    《이거 얼마예요?》하고 누가 물어라도 오면 석고상처럼 앉아있던 녀자는 그제야 자기가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알리기라도 하듯 늘쩡늘쩡 몸을 일으키며 빼빼 마른 손가락으로 벽쪽을 한번 슬쩍 가리킨다. 거기 가격표가 붙어있으니 혼자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좀 싸게 하면 안되요?》이런 하찮은 물음 같은것에 녀자는 아예 못들은척 대꾸도 안한다.

    녀자는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고 부모도 형제도 없는것 같다. 그녀의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을 제외하면 녀자는 늘 그렇게 혼자인셈이다. 하얀 벽에 기대여 가만히 앉아있는 그녀를 보면 꼭마치 깨끗한 흰 실크우에다 수놓은  얼굴륜곽이 선명하고 몸집이 파리하게 여위여있는 그림속의 녀자와 같다.

    한번은 오래동안 마땅한 기사거리가 없어 굶주린 늑대와도 같이 슬렁슬렁 거리를 누비던 어느 석간지의 기자가 우연히 그곳을 스치다가 가게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게 되였다.
  
     《바다와 섬, 아니 사막이지, 사막. 와… 예술이네.》

    한평방메터도 안되는 작은 네모꼴안에 그녀는 바다와 사막을 우불구불 희한한 곡선으로 붙여서 수놓았다. 그녀의 모든 그림은 두개나 세개 혹은 그이상의 전혀 어울리지 않는것들을 한군데 붙여놓는것으로 유명했다. 구태여 어떤 심오한 도리나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한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수놓는게 편해서 감각대로 만들었을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필이면 그런것을 좋아한다. 그거야말로 예술이고 이 시대에 걸맞는 개성이고 우주의 신비함이 깃든 진품이라고 다들 한결같이 흥분된 표정을 짓는다.

    지금 이 남자 역시 녀자의 그림을 《예술》이라고 한다. 녀자 스스로도 모르는 그림을 기척도 없이 불쑥 뛰여든 이 남자가 제아무리 좋은 단어를 골라가며 치하를 해온다고 쳐도 녀자는 남자의 시선이 자기의 눈길에 맞혀오는 순간 바로 알았다. 남자의 키꼴이 장대하고 몸집 또한 그렇게 웅장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자기 의식의 유리병속에 채워도 채워도 비여질수밖에 없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낯선 남자를 향한 녀자의 그러한 인식자체가 싱겁고 무의미한것이지만 인간은 늘쌍 아무 준비도 없던 어느 한 순간에 신기하리만치 날카로운 예감, 근원을 모르는 이상한 깨달음을 받게 되는것이 아닌가. 녀자는 무작정 자기가 이 남자의 모든것을 쉽사리 뒤흔들고 삼켜버릴수 있으리라는 야릇한 자신감이 생기고있었다. 문득 뛰여든 그 남자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어릴때 지지리도 그녀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한 남자애를 닮아있다.

    《진짜 예술이다. 예술!》

    남자가 두번째로 감탄을 할 때 녀자는 호수우에 뜬 물오리처럼 가만히 앉아있다. 사유는 그렇게 소리없이 흘러가고 잔잔한 물결밑에서 별의별 괴상한 생각들이 오리의 발과 같이 빨갛게 요동치고있다.
  
     정지된 시간.
  
     그러다 오리가 제김에 푸드득 하고 놀라서 날개를 쳤다. 고요한 수면을 스치며 커다란 새 한마리가 저 멀리 날아간것이다. 금방까지 거기 못박힌듯 서있던 남자가 어느새 문을 가볍게 탕 닫고 저쪽으로 힝힝 걸어가고있다. 어디에서 온 바람인가? 비여진 공간을 의식하며 녀자는 갑자기 허전해진다.
  
     어쩌다 녀자는 낮에 일감을 손에 쥐였다. 창밖에서 해살이 쏟아져들어와 눈앞에서 누군가의 하얀 웃음이 피여오른다. 녀자는 날개를 수놓고있다. 새의 날개와 오리의 날개, 한몸뚱이에 각기 다른 두 날개를 가진 신통히도 사람의 얼굴을 닮은 새 한마리. 그 새는 부리를 웃쪽으로 곧추 세우고 두 날개를 반듯이 뻗은채 아래로 추락을 하고있다.
  
     잠간새에 수놓이 한점이 완성이 되고 자기가 한뜸한뜸 수놓은 그림을 보며 녀자는 서서히 수놓이하던 바늘을 눈앞으로 가져간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놓이 바늘은 공중에 표류하는 환각의 빛줄기와 흡사하다. 그 가느다란 금속의 내면에서 녀자는 분명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추락하는 새의 부리처럼 빛나는 금속 하나가 허공에 완미한 포물선을 그으며 곧추 그녀의 하얀 팔우에 내리꽂힌다. 피. 피기라곤 없이 지나치게 하얀 그녀의 팔우로 빨간 피방울 하나가 꽃처럼 피여난다. 한번 또 한번, 여기저기 솟구치는 피방울을 바라보며 녀자의 창백하던 얼굴에 알릴듯말듯 홍조가 피여오른다.
  
     문여는 소리가 났다.
  
     해빛이 쟁쟁한 대낮. 그 누구든 수시로 자기의 공간에 뛰여들수 있다는 가능성을 잠시 망각하고있던 녀자는 뜻하지 않는 기척소리에 갑자기 당황해진다. 사람들에게 늘 보여주던것처럼 적당히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데 경직된 얼굴표정과는 달리 아직 입가에는 이상야릇한 웃음의 파장이 남아있다.
  
     《아이구, 바늘에 찔렸네요. 조심하지 그래요.》

    아까 들어왔던 그 남자. 그제야 녀자는 자기를 찌르던 바늘이 아직 손우에 들려있고 찔린 자리에서 지금까지 피가 솟아나고있음을 알았다. 미처 가리지 못한 그 은밀한 현장때문에 녀자는 괜히 가슴이 뛰여오르며 얼굴이 화끈해난다.
    
    《이렇게 매일 수놓이를 하다보면 찔리는 경우도 많겠네요. 조심해요. 그렇게 바짝 마른 사람이 피까지 흘리면 어떡해요.》
    
     그러면서 남자는 창턱에 놓여진 꽃병속에서 비들비들 시들기 시작한 장미 몇송이를 뽑아내고 대신 자기가 사들고 온 국화꽃을 꽂는다. 화려하지 않는 작은 꽃송이, 청초하게 피여있는 꽃잎들마다 가을기분이 력연하다. 남자는 시든 꽃을 바깥에 놓여있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금방 바꿔놓은 국화꽃 가지들을 이리저리 옮겨놓으며 그것이 될수록 소복하고 아담하게, 색조 또한 잘 어울리게 보여지게 한다.
    
     그러한 남자의 동작은 금방 이 공간에 들어선 사람답지 않게 퍼그나 숙련되고 익숙해보였다. 녀자는 갑자기 방어능력을 잃은 동물과 같이 멍하니 그대로 앉아있다. 그런 녀자를 뒤돌아보며 남자가 싱긋하니 웃어보인다. 그리고 다시 출입문을 열더니 커다란 뒤모습을 보이며 사라진다.
    
     녀자의 마음은 가을하늘만큼 파랗게 비여있다. 이슬이 어른거리는 눈동자에 가을국화가 피여난다. 그리고 녀자는 국화꽃이 놓여있는 창밖으로 신깁는 늙은 남자를 본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녀자아이 하나가 쪽걸상에 쭈크리고 앉아 슬리퍼를 신은 한쪽 발을 한들거리며 자그마한 손안에 쏙 들어가는 앙증스러운 핸드폰에다 열심히 메시지를 찍고 있다.

    그 녀자아이의 맞은켠에는 공주의 시중을 드는 늙은 신하와도 같이 폴싹 늙은 령감 하나가 챠플린의 구두와도 같이 뾰족한 신 한컬레를 두손에 받쳐들고 이리저리 눈으로 견주어본다. 그러다 손에 든 구두를 앞으로 쭉 내뻗치더니 거슴츠레한 눈을 잔뜩 찌프린다. 이어 뾰족한 구두가 령감의 기계에 가까이 닿고 두루룩 두루룩 하는 소리와 함께 앞뒤로 두세번 왔다갔다하는 동작이 이어진다. 마지막에 령감은 옆에 놓인 공구가방을 뒤적여 꺼먼 가위를 둘쳐내고 신깁는 기계와 녀자아이의 새빨간 구두사이에 이어진 실을 그 무슨 미련을 끊어버리기라도 하듯 썩뚝 잘라버린다.

    녀자아이는 령감이 내민 챠플린의 구두를 신고 땅우에다 살짝살짝 두세번 내디디더니 퍼그나 만족한듯 주머니에서 동전 몇개를 꺼내여 령감에게 내민다. 쪼글쪼글한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한 령감이 얼싸 좋다 손을 내밀고 혹시라도 그 시커먼 손이 자기의 몸에 닿기라도 할가봐 덴겁을 한 녀자아이는 아무렇게나 동전을 내던지고 부랴부랴 자리를 뜬다.

    녀자아이가 사라진지 한참이 되여도 령감의 웃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동전 몇잎으로 바꿔온 령감의 웃음은 다른 사람이 찾아와서 신을 깁을 때까지 줄곧 허연 명주실같이 지지리 질기게도 이어지고있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도 기쁠가? 녀자는 령감의 웃음이 괜히 못마땅해진다.

    그러다 녀자는 자기의 손을 본다. 그때까지 손에 꼭 쥐여져있는 바늘때문에 녀자의 엄지와 검지에는 가느다란 자국 하나가 움푹 파여져있다. 그녀의 팔, 찔려진 피부사이로 빨갛게 솟아오른 피망울은 어느새 까맣게 말라들고있다.

    내가 금방 무슨 일을 했고 내가 금방 무슨 생각을 했지? 녀자는 물끄러미 그림속의 이상한 날개를 바라본다.

    수놓이도 유전일가? 그녀의 외할머니도 수놓이를 했고 그녀의 어머니도 수놓이를 했다. 외할머니는 이불에다 모란을 그리고 베개에다 원앙새를 수놓았다. 실실이 아름다운 색갈들로 아롱다롱 수놓으며 그렇게도 간절히 기다렸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떠나셨고 할머니보다 훨씬 더 젊은 녀자와 덩실하게 살림을 차리고 아이까지 봤다고 한다. 엄마 역시 수놓이를 했다. 텔레비죤과 라지오에 씌우는 흰 보며 창턱까지 드리우는 카텐이며 아버지의 손수건이며 그녀의 옷섶에까지 집안에 있는 목천이든 비단이든 일일이 돌아가며 정성껏 수놓이를 해놓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감탄해마지 않는 그런 뛰여난 손재주를 가진 엄마도 결국에는 그렇게 아버지의 버림을 받지 않았는가. 아버지와 리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떨리는 손으로 수놓이하던 엄마의 슬픈 얼굴을 녀자는 잊을수가 없다. 한평생 기다리던 아버지를 끝내는 자기 신변으로 불러오지 못하고 베개우에 커다란 피자국을 남기며 엄마가 돌아가실 때 녀자는 울지 않았다. 엄마가 수놓이를 한 그 하얀 베개우로 붉은 모란처럼 피여오르는 엄마의 피자국을 보며 녀자는 자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놓이만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었다. 처마밑의 거미처럼 아무리 짜고 엮고 붙잡으려 발버둥질칠수록 비바람이 불면 스스로 엮은 한가닥 미련을 붙들고 울수밖에 없는 운명, 녀자는 그렇게 살고싶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언젠가부터 갑자기 수놓이를 손에 들게 된것이다.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것과 마찬가지로 거의 본능적인 욕구에 가까운 그 충동때문에 녀자는 엄마가 남겨둔 수놓이 바늘을 손에 잡게 되였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잘 배워두기라도 한듯 무엇이든 척척 잘만 수놓아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녀는 알게 되였다. 어떤 녀자들에게는 수놓이 역시 운명이요, 뼈속 깊이 슴배인 체질이라는것을.

    바늘이 천을 찌르고 바늘이 다시 천우로 솟아나는것을 보며 녀자는 이제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나날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찌르고 찔러서 만들어지는 그림, 그녀는 수놓이를 하기전에 종래로 자기가 무엇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찌르면서 마음이 가고싶은대로 마구 바늘을 옮기는것이고 그러한 흔적들을 운명만큼이나 지지리 질긴 가는 실들이 어김없이 그대로 재현을 해주는것이다. 때로는 바늘이 동그랗거나 네모꼴 나는 궤도를 벗어나서 허공에서 마구 헤매는 때가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할머니나 엄마가 가지 않던 길이였다. 공중에서 서서히 표류하는 바늘, 궤적이 없는 비상과 흔적도 없는 광무(狂舞), 녀자는 그런 감각이 너무도 좋았던것이다.

    그러나 바늘에는 언제나 실이 꿰여져있기 마련이고 그 실은 천우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찌르고 찔러도 아무리 광무를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그마한 공간에 갇혀진 한 녀자의 숙명, 막무가내한 현실 그 자체일뿐이다. 마음이 갑갑했다. 그래서 어느날 허공중에 표류하던 바늘은 마침내 그녀의 몸우로 내리꼰졌다. 차거운 금속이 피부를 찌를 때의 따끔한 통증과 그에 동반되는 짜릿한 쾌감, 녀자는 자기우에 뚫은 그 자그마한 구멍에서 이름할수 없는 위안과 해탈감을 느꼈다. 점점 녀자는 거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바늘은 어느덧 삶에 병든 그녀를 치료해주는 은밀한 기기, 혹은 집착 같은것이 되어버렸다.

    그녀에게는 다섯개의 바늘이 있다. 그것이 그녀 생활의 밑천이고 생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다섯개의 바늘을 엇갈아쓰며 녀자는 저녁마다 수놓이를 했고 그 그림들을 팔아 생존을 했고 그리고 그녀는 매 한점의 수놓이가 완성될 때마다 그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것처럼 어김없이 바늘로 자기의 몸을 사정없이 내리찔렀다.

    낮에는 그림 사는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저녁마다 밤잠을 설치는 그녀로서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의욕도 기력도 없다. 그런 녀자에 비하면 저기 창밖의 신 깁는 령감은 너무나도 기운이 넘치는것 같다. 밤 늦게까지 쪽걸상에 쭈크리고 앉아 신을 깁고 닦고 어둠이 채 걷혀지지 않은 새벽이면 다시 기계며 공구가방들을 올망졸망 이고 지고 다시 그녀의 창문앞에 유령처럼 나타난다.

    석간지의 기자가 국화꽃 한묶음을 놓고간 그날 저녁무렵 갑자기 태풍이 불어치고 장대같은 비줄기가 억수로 쏟아졌다. 신 깁는 령감은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가죽쪼각들을 잡으려고 허둥대다가 결국에는 그것이 무모한 행동임을 알았던지 쏟아지는 비줄기를 피해 녀자의 가게안에 불쑥 뛰여들었다.

    뚝, 뚝, 뚝…후줄근한 바지가랭이를 타고 물방울이 마루바닥에 굴러떨어진다. 녀자는 차거운 눈길로 문가에 서있는 령감을 쏘아보고있다. 그 날카로운 눈길에 찔린 령감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채 비굴한 자세로 거기 얼어있다.

    차마 나가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들어와서 앉으라는 말도 선뜻 나가지가 않는다. 밖에서는 노한 바람과 세찬 비줄기가 국화꽃이 놓인 그녀의 창에 와서 마구 몸부림을 치고있다.

    녀자는 가스불을 켜고 라면을 끓였다. 당근을 넣고 양파를 썰고 계란을 넣고 우에다 소고기를 얹었다. 더운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그것을 호호 불어대면서 저가락으로 면발을 보란듯이 추켜들고 후루룩 맛있게 입속으로 빨아들인다. 그러는 녀자는 전에없이 즐겁고 흥분된 표정이 된다. 라면을 다 건져먹고 마지막 남은 뜨거운 국물까지 녀자는 쭈루룩 한모금에 들이킨다. 공중에서 구수한 음식냄새가 요동친다.

    입을 반쯤 벌리고 녀자가 라면 먹는것을 이윽토록 바라보고있던 령감의 목젖이 요란스레 꿀꺽, 한다. 주름살이 얼기설기 뻗은 검은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땅땅하게 굳은 찐빵 하나를 꺼내서 령감은 그것을 우물우물 씹기 시작한다.

    그러다 떨꺽, 하는 소리가 나면서 이제 금방 만투 몇입을 떼여먹던 령감이 딸국질을 하기 시작한다. 떨꺽, 떨꺽, 우욱떨꺽, 딸국질을 하며 괴로워하는 령감을 보고 녀자는 웃음이 터져나오는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제혼자 호르륵호르륵 맛있게 들이킨다.

    령감은 다시 입을 하, 벌리고 물 마시는 녀자를 본다. 그러다 딸국질이 도저히 멈추질 않으니 먹던 만투를 종이에다 싸서 아예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그리고 그 무슨 고장난 기계와도 같이 떨꺽, 떨꺽 계속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비내리는 창밖을 멍하니 내다본다.

    한참후 바람이 자고 비줄기가 가늘어졌다. 령감은 조용히 출입문을 열고 나간다.

    뿌잇한 대기속으로 사라지는 령감의 등뒤에서 국화꽃이 웃고있다.

    녀자는 멀어지는 령감의 뒤모습을 보며 쓰거운 웃음을 내뱉는다. 그러다 그 웃음은 점점 쓰거워지고 녀자의 얼굴에는 슬픔이 고인다.

    그날 저녁도 녀자는 수놓이를 했다. 담배를 피우는 로인의 얼굴, 담배연기는 몽개몽개 국화꽃을 피우고있다. 수놓이를 마치고 길죽한 가위로 실을 자르고 자기의  바늘을 나란히 침대머리 탁자우에 놓아둔채 녀자는 깊은 잠이 들었다.

    자기의 바늘이 한개 없어진것을 발견한것은 바로 그 이튿날이였다. 아무리 샅샅이 뒤지고 살펴보아도 바늘은 나타나질 않았다. 엊저녁도 바늘이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그러면서 녀자는 전날밤 바늘이 몇개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 전날 저녁까지 바늘이 다섯개인줄로 알고만 있었지 정말로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렇게 세여본적은 없었다. 바늘은 대체 어디로 갔을가?

    녀자는 자기가 라면을 끓이는 동안 어쩌면 엊저녁 왔던 령감이 훔쳐간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매일이다싶이 시계처럼 꼭꼭 때를 맞추어 나타나군 하던 령감이 갑자기 며칠동안 자취를 감출줄이야.

    《렴치없는 두상! 도적놈 같으니라구!》

    령감이 앉아있던 자리를 내다보며 욕설을 퍼붓는데 문이 삐걱 열리며 며칠전 찾아왔던 젊은 남자가 가게로 들어서고있다.

    《무슨 일로 화가 났어요?》

    은근히 잘 보이려는듯한 남자의 말에 녀자는 더구나 화가 치밀어올라 바깥을 쏘아보던 눈길을 곧바로 남자의 얼굴로 이동을 시킨다.

    《가시 돋힌 장…미!》

    남자는 노래를 하는것도 아닌, 시를 읊는것도 아닌, 그렇다고 그냥 말을 하는것도 아닌, 그렇다고 칭찬도 조소도 아닌 그런 괴상한 말투로 녀자를 바라보며 벙긋 웃는다.

    《취재 좀 할가요?》                                                

    남자가 지껄여온다.

    《나 그런거 안해요.》

    녀자는 단호하게 한마디로 거절을 해버린다. 남자는 멋적은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문가로 걸어간다. 하나. 둘. 셋…남자는 문가에서 갑자기 셈을 센다.

    하나. 둘. 셋… 녀자도 나즈막히 남자를 따라 셈을 센다. 그녀의 팔우에는 엊저녁 그녀가 새로 뚫어놓은 세개의 바늘자국이 나있다. 하필이면 셋일가? 남자는 어쩌면 녀자의 비밀을 아는 것 같다. 갑자기 불안스럽다.

    사라지는 남자의 뒤모습을 보며 녀자는 다시 령감이 앉아있던 그곳을 힐끗 내다본다. 그런데 신깁는 령감은 아직도 나타날줄 모른다. 바늘은 어디로 갔을가?    

    녀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허둥지둥 집안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엄마가 남겨준 바늘, 아니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바늘이다. 비싼 바늘이기보다는 소중한 바늘, 그녀의 운명의 끈이 매달린 바늘이 아닌가.

    베개를 손가락으로 꼭꼭 눌러보았다.

    이불을 손바닥으로 싹싹 쓸어보았다.

    주머니를 훑어보았다.

    구두도 털어보았다.

    바닥도 쓸어보았다.

    그래도 바늘은 없다.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녀자는 집안에 떨군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누가 훔쳐간것이 옳다고 이제 다시 령감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바늘 같은 시시껄렁한 물건을 훔쳐갈 사람은 없다. 그러나 허구한 세월 구두나 닦고 신이나 깁는 령감이라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 순간 녀자는 그날 자기가 괜히 못되게 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라면을 나누어주고 뜨거운 물이라도 한컵 건넸더라면 바늘을 가져가는 일이 없었을텐데 하고 후회를 한다. 자기의 못된 행위로 령감이 괜히 심술통이 터져 바늘을 가져간것임에 틀림없다. 나쁜 령감. 진짜 몹쓸 늙은이야.

    딸깍, 딸깍 갑자기 난데없이 딸국질이 난다.

    물 마실념도 안하고 녀자는 창턱의 국화꽃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사흗날, 영원히 자취를 감출것 같던 령감이 끝내는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났다. 녀자는 령감앞으로 다가갔다.

    《신 깁자 그러우?》

    조글조글한 웃음이 눈앞에 안겨온다. 시도때도 없이 웃음을 달고있는 령감이 아무래도 어디가 모자라는 사람 같다.

    《바늘…》

    생각보다 말이 쉽게 떨어지질 않아 대충 얼버무린다.

    《아… 바늘 빌리자구? 여기 있소.》

    공구상자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바늘 하나를 찾아 령감이 그걸 녀자에게 내민다.  바늘을 받고 녀자는 말없이 돌아선다.

    가게로 돌아온 녀자는 다시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여앉아 창밖으로 웬 젊은 남자의 구두를 닦고있는 령감을 본다. 꼬질꼬질한 천으로 한벌 싹 닦아낸다. 거품을 내여 다시 한번 닦는다. 치약을 짜서  한번 더 문지른다. 구두약을 바른다. 두손에 검은 천을 당겨쥐고 열심히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멀리서도 녀자는 얼룩덜룩 때묻은 구두가 반짝반짝 빛나는걸 느낄수가 있다.

    젊은이가 일어선다. 령감이 손을 내민다. 허공중에 머물러있는 오동잎 같이 누런 손바닥에 젊은이가 탁 하고 침을 내뱉는다. 신 닦던 걸레에 손바닥을 대충 문지르고 키들키들 웃는 젊은이에게 령감이 다시 손을 내민다. 동전 몇잎 그우에 뿌려진다. 그 동전우에 다시 침이 내뱉어진다. 자존심마저 늙어버린 령감 하나가 비굴하게 실실 웃으며 그것을 모아쥔다.

    신 깁는 늙은이와 수놓이하는 녀자 사이에는 자그마한 오솔길 하나가 놓여져있고 밝은 유리 한장 놓여져있고 국화꽃 한묶음 피여있다. 녀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걸레에 손닦는 령감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다. 그런 녀자를 보며 령감은 저쪽에서 썩어가는 과일처럼 물렁물렁한 웃음을 만든다.

    저 령감은 누구일가? 정신병자가 아니면 어디 모자라는 령감이 아니면 일찌감치 이 세상의 고해를 뛰여넘고 저쪽 먼 세상에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웃는 유령이라도 되는것일가? 귀신처럼 자꾸 웃는 그 얼굴때문에 녀자는 갑자기 소름이 끼친다.

    그날 저녁 다시 일감을 주어들고 한뜸한뜸 수놓아가던 그녀는 갑자기 몸 어디가 간지러운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을 뻗어 거기를 긁자고 하니 금방까지 간지럽던 그 느낌은 꼭마치 아픈 느낌으로 바뀌는것 같기도 하고 또 정작 거기다 손을 가져다대면 움직이는 벌레와 같이 슬슬 손가락을 피해서 다니는것 같기도 하다.  

    녀자는 옷섶을 헤쳐 이상한 감각이 안겨오는 그 부위를 살펴보았다. 거기에 자그마한 빨간 여드름 같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바늘! 바늘! 여기 들어간거 아니야?》

    순간 녀자는 끄악, 하고 소리를 내지른다.

    녀자는 두눈을 감고 그 자세대로 꼼짝않고 앉아있다. 무엇이 그녀의 가슴으로부터 혈관을 타고 어깨죽지로 팔꿈치로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흐르고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저기 따끔따끔하게 찔리고 쏙쏙 쑤셔나는 느낌. 등불의 조명아래 나머지 네개의 바늘마저 저주의 눈길처럼 희번득이며 안겨오고 녀자는 갑자기 이름할수 없는 공포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심장이 구멍나고 위가 구멍나고 혈관에 구멍이 뚫리는것 같았다. 찔리고 터진 그 구멍사이로 끊임없이 피가 솟구치고 녀자는 오늘 저녁 자기가 당장 이대로 죽어버릴것만 같았다. 공포의 벌레들이 슬슬 온몸으로 퍼져가고 녀자는 온몸을 오돌오돌 떤다.

    얼마나 앉아있었는지 모른다. 떨리는 손으로 녀자는 핸드폰을 주어들었다.

    《120, 120 맞지요? 나 지금 죽어버릴것 같아요. 빨리 오세요. 나를 좀 구해주세요.》


    그쯤 석간지의 젊은 기자는 자기네 집 서재에서 오래된 신문기사 하나를 펼쳐들고있다.

    《30대의 녀인 3층 베란다에서 추락. 사건이 발생하던 즉시 지나가던 행인에게 발견되여 인차 병원으로 호송되였다. 병원에서 확인한 결과 녀인은 지금까지 혼미상태에 처해있으며 그 이웃들의 말에 의하면 남편과의 감정불화로 인한 자살행위로 짐작된다. 이상한것은 추락하는 당시 녀인이 우산을 들고 뛰여내렸다는것이다. 땅바닥에 닿을 때까지 그것을 손에 꼭 쥐고있는것을 보아 녀자의 우산은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것으로 짐작된다.》

    그 기사는 몇년전 남자가 쓴것이다. 사건 당시 남자는 곧바로 그곳을 지나고있었고 병원으로 그녀를 호송한 행인이 바로 남자 자신이였다.


    한편 병원에 이른 녀자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에서는 경련이 일고있다. 그런데 의사들이 아무리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로 찍어도 문제의 바늘은 보이지가 않는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서 그때까지 끊임없이 신음을 토하고있는 녀자를 불가사의한 눈길로 쳐다본다.

    의사의 비난의 눈길을 받으며 병원문을 나서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녀인은 그 며칠간 감히 바늘을 쥘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바늘이 무섭기는 처음이였다. 바늘이 나타나지 않는한 녀자는 그것이 분명히 자기 몸속에 깊숙이 파고들어가 이리저리 혈관을 찌르며 피줄기와 함께 흐르고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것은 얼마나 끔찍스러운 일인가?

    공포에 휩싸인 그 며칠간 국화꽃이 놓인 창문밖으로 녀인은 신 깁는 로인을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다. 녀자는 얼굴이 쪼글쪼글한 령감이 창가로 다가와 자기가 잃어버린 바늘을 내밀어주기를 바랬다. 그 바늘을 이제 다시 손에 쥘수만 있다면 녀자는 더이상 로인을 조소하며 바라보지 않을것이요, 자기 살을 마구 찌르는 어리석은 행동도 하지 않을것 같다.

    국화꽃을 든 남자가 나타났다.

    창턱의 시든 꽃을 들어내고 남자는 다시 싱싱한 꽃을 거기 꽂아넣는다. 다시 이리저리 옮기며 소복하고 아담하게 가꾸어본다.

    하나, 둘, 셋… 문가로 다가선 남자가 다시 셈을 세기 시작한다. 넷, 다섯, 여섯, 일곱…

    《그만해요. 그만.》

    녀자는 히스테리적으로 마구 울부짖는다. 녀자의 팔에는 여기저기 찔린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 흔적들은 이미 지울수 없는 락인이 되여있었고 그것은 어느덧 자그마한 우산의 모양을 이루어가고있었다.

    《궁금한것이 있는데… 왜 우산을 쥐고 뛰여내렸나요?》

    남자가 물었다.

    녀자는 입을 꼭 다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동안 숨겨둔 얘기, 자기만의 슬픈 얘기를 알고있는 남자가 여기 있었다.

    《그날 비가 왔잖아요. 억수로 많은 비가 내렸어요.》

    이제 막 문을 나서는 남자의 등뒤에 대고 녀자가 끝내 입을 열었다. 남자는 잠간 거기 서있는듯하더니 뒤도 안돌아보고 앞으로 걸어나간다. 녀자의 눈동자가 따라온다.

    《남편인가요? 애인인가요? 싸인하세요. 1층으로 내려가서 우선 예치금을 지불하세요.》

    그날 어리벙벙해 서있는 자기에게 끊임없이 몰려오던 그 지꿎은 물음들이 다시 또 구질구질 따라오기 시작한다. 스러지는 생명을 구할수는 있다. 그러나 남자는 어디까지나 행인일 따름이다. 병원까지의 호송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더이상 남자가 할일은 없다. 병원 앞 꽃가게에서 국화 한묶음 사다가 그녀의 베게맡에 놓아두고 남자는 몰래 그 자리를 떴다. 그날 비가 왔던가?

    다시 비여진 공간.

    그녀의 앞에는 국화꽃이 있고 투명한 유리가 있고 날개 있는 새처럼 금방 흔적없이 스쳐지난 남자가 있다. 3층에서 뛰여내려 혼미한 자기를 병원으로 실어다준 남자가 있다고 한다. 눈을 떠서 제일 처음으로 볼수 있었던건 그 남자가 머리맡에 두고간 국화꽃 한묶음이였다. 국화꽃향기를 들이키면서 많은 기억들이 하얗게 바래져갔다. 그러나 활짝 펼쳐든 우산우로 축복같이 떨어지던 수많은 비방울을 그녀는 아직 기억하고있다. 그곳을 스칠 때 그 남자는 우산을 들고있었을가?
저기 신깁는 령감이 보인다. 녀자는 차바퀴를 굴려 령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신 깁게요?》

    령감이 호두처럼 조글조글 웃는다.

    《아니요. 그냥 닦아주면 되요.》

    령감이 걸레를 꺼내여 먼지를 닦는다.

    《저기 바늘…》

    《바늘 빌려요?》

    선선히 대답하며 로인이 녀자의 신에 거품을 낸다.

    《아니요. 바늘 몇개 갖고 계신지 궁금해서요.》

    《여라문개 될텐데…》

    거품을 닦고 치약을 고루 바른다. 걸레로 골고루 문지른다. 거무칙칙하게 흐려있던 구두가 반질반질 윤기가 나기 시작한다.

    《바늘이 하나 적어지지 않았나요?》

    《전번에 하나 빌려줬잖소.》

    검은 천을 량손에 당겨쥐고 구두우에 으쓱으쓱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숨어있던 짐승의 털처럼 기름기 흐르는 구두.

    《설매 잘 지내구 있는가요? 그 남자랑 아직 잘 살구있죠?》

    녀자의 물음에 령감이 흠칫 한다.

    《우리 딸이랑 아는 사이요? 잘 있소. 잘 있구말구. 》

    《손자가 지금 막 벌거지처럼 기여다니는데… 내 이렇게 신 깁고 구두 닦아서 손자 우유값 톡톡히 번다오.》

    늙은 얼굴에 웃음집이 흔들거린다. 령감의 두손에 갑자기 힘이 들어가고 구두 닦는 그 행동은 신세대의 춤자세만큼이나 흥이 나있다.

    신 깁는 기계에서 바늘이 반짝, 한다. 좋은 날씨다. 이렇게 좋은 날 우산을 펴고있는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자의 하얀 손이 슬며시 팔을 가리운다.

    지금 그녀의 앞에는 신 깁는 기계가 있고 구두 닦는 령감이 있고 그리고 스러지는 꽃잎처럼 살풋이 내리깔고있는 그녀의 시야로 저기 해빛이 부서지는 녀자의 창이 보인다. 그리고 국화꽃, 녀자는 갑자기 짜증이 나며 입술을 꼭 깨물고 두눈을 감았다.

    바늘이 그립다. 지금 녀자는 수놓이를 하고싶다. ☨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