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4-1-12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대단히 안이하다. 정부 관계자가 "동북 공정은 중국 정부와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작업이어서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정부의 대책도 "국내 민간단체의 학술적 대응을 지원하겠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중국의 정치적 의도를 정면으로 반박하지는 못할망정, "학술적 문제"라고 강조하는 모습은 마치 중국 정부를 대변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박흥신 외교부 문화외교국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주중 한국 대사가 중국 쪽에 이 문제가 양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며 "중국 정부의 입장은 학자들이 진행하는 작업으로 중국 정부와는 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사회과학원이 추진하는 동북공정이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볼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 소장 역사학자들이 변방사를 정리하려는 프로젝트를 냈고 중국 정부가 이를 승인한 것"이라며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중국 정부차원에서 역사왜곡 의도를 갖고 시작했던 것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학술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문제를 삼기 어렵다"며 "학술적 차원에서 우리의 입장을 잘 정리해서 중국 학자들의 입장에 대해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하면 감정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창동 문화부 장관도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대응은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정치적으로 강하게 나오는 중국의 태도에 우리마저 정치쟁점화 한다면 그 태도만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차원의 고구려사 문제 대응을 포기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 장관은 "단지 순수 민간 차원에서 학계 토론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라며 "물론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이니라 단지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설명했다.

이날 발언에 대해 비판이 나오자 문화관광부는 9일 해명자료를 내고 "이 장관의 발언은 정부와 언론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정부의 대응이 정치쟁점화 되어서 오히려 중국의 역사왜곡 움직임을 강화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중국 답사팀을 한국 경찰이 미행한다면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은 한국 정부의 공식적 대응이 가져올 파장을 고려한다고 해도 미온적이고 안이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아니 외교적 파장은 중국 정부가 먼저 일으켰다.

지난달 말 고구려연구회 답사팀 24명이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집안(集安)과 환인(桓仁)에 갔을 때 중국 정부는 답사를 사실상 원천봉쇄했다. 더구나 지난달 29일 아침에는 호텔을 막 나서는 한국 답사팀을 중국 공안원들이 범죄 채증 작업을 하는 것처럼 몰래 비디오 촬영을 했다.

순수 학술차원의 문제라는데 유적 답사를 원천봉쇄하고 중국 공안원들이 한국 답사팀을 몰래 미행한 것을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중국 공안원들이 정부의 지시가 아니라 중국 학자들의 부탁을 받고 그 자리에 나타났단 말인가? 만약 중국 학자들이 한국의 고대사 관련 유적을 답사하러 왔는데 유적 관람을 봉쇄당하고 한국 경찰들이 미행한다면 중국 정부는 이를 "학술적 차원"의 문제라고 이해할 것인가?

동북공정을 맡고있는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www.chinabordrland.com) 홈페이지에는 한반도 유사시 북한 난민의 동북지역 유입에 대비한 연구과제도 소개되어 있다.

1998년 9월 작성한 "조선반도 형세 변화의 동북지역 안정에 대한 충격"이라는 문건은 "조선반도의 형세 변화는 특히 연변조선족 자치주와 랴오닝성 단둥 지역에 큰 충격파를 줄 수 있다"며 "연구의 주안점은 첫째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조선반도의 동란과 난민들의 동향, 둘째 현재 지린성 중·조 국경의 현황"이라고 명시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중국의 지역간 경제차 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내란이 발생하고 여러 지역으로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내란이 일어나면 수많은 중국 난민들이 인근 나라로 피난을 갔던 것은 중국 역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 196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굶주린 수십만의 중국인들이 북한 땅으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월경했었다. 내란이 발생할 경우 12억 중국 인구 가운데 최소한 수억명의 난민이 생길 것이다.

만약 한국의 국책 학술기관인 정신문화연구원이 "중국의 내란과 분열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중국 난민 수천만명이 한반도로 밀려올 가능성과 이에 대비한 대책"을 수립한다면 과연 외교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인가? 중국 정부는 이런 연구도 "순수한 학술 차원의 문제"라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을까?

상식적으로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 일당 지배 체제에서 대외 관계와 관련된 민감한 주제를 정부의 승인과 지원없이 학자들이 마음대로 연구할 수는 없다. 변강사지연구중심 자체가 중국의 국책 연구기관인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의 하부 조직이다.

북한 땅에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해도?

이미 일부 전문가들은 동북공정이 혹시 한반도 유사시 북한 땅에 대한 연고권까지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언뜻보면 코미디 같은 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다.

지난 1982년 중국 사회과학원이 주도해 편찬한 <중국 역사지도집>에는 조조의 위나라의 영토가 황해도, 평안남도와 함경남도까지, 당나라 때 영토는 대동강 이북 전부로 표기되어 있다. 진시황의 만리장성이나 연나라의 장성은 평안북도까지 이르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즉 중국인들이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작업을 본격화하기 20년 전에 나온 역사 지도책이 이렇게 되어 있다. 중국인들은 "칭기즈칸도 중화민족"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고구려·고조선·발해 역사가 중국사로 편입된다면 대동강 이북 지역이 중국 영토가 된 역사는 최소한 1000~1500년에 이른다.

이것을 근거로 중국이 북한 땅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중국은 지난 1959년 티벳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토였다"는 것을 근거로 티벳을 공격해 점령했다. 이 때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의 다름살라로 망명해 지금까지 티벳 문제가 국제문제가 됐다.

사례는 좀 다르지만 지난 1979년 중국이 베트남을 공격해 발생한 중·월 국경분쟁도 민족적인 문제였다. 월남전에 승리한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의 자산계급을 몰아냈는데 이 과정에서 100만명의 화교들이 숙청당했다. 화교는 남베트남의 상층부였다. 이에 대해 중국은 "중화민족을 숙청한다"는 이유로 남베트남을 공격했던 것이다.
동북공정에 임하는 최고의식은 "정치의식"

동북공정은 리테잉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캉회이청 재정부장(장관급)이 고문으로 있는 것을 비롯해, "영도소조"에 중국사회과학원 원장, 헤이룽장성 공산당 부서기, 랴오닝·지린성 부성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동북공정의 민감한 연구 주제를 볼 때 이것이 "명목상" 정보 관리들이 이름만 걸어둔 것으로 볼 수 없다.

만약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중국의 동북공정과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는데 재경부장관이 고문으로 위촉되고, 각 도의 부지사들이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다면 이것이 단지 "명목상" 이름만 걸어둔 것이라고 중국 정부가 양해할까?

중국은 동북공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동북지구는 우리 중국의 중요한 변경지역으로 자원이 풍부하고 인구가 조밀하며 특히 동북아시아의 중심적 위치로 중차대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일부 국가의 연구자들과 기관들이 딴 마음을 먹고 역사 사실을 왜곡하고, 소수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잘못된 이론을 공개적으로 선전하고 혼란을 야기했다. 이 때문에 동북 변경과 현상 연구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으며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일부 국가들의 연구자와 기관"이 남북한을 지칭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 입장에서 봤을 때 남·북한 학자들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 학자들의 주장이 틀렸다면 말 그대로 중국 학자들의 연구성과로 반박하면 된다. 정부가 나서서 "소수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라고 몰아붙이는 태도 자체가 정치적이다.

동북공정 설명글은 "동북공정에 임하는 5가지 의식"을 열거하고 있는데 첫째가 정치의식이다. "이 동북공정은 직접적으로 국가의 장기적인 안정, 즉 국가통일 민족단결 변경안정의 대 목표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동북공정은 철저히 정치적이다.
장기적인 대책 수립해야

국내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단순히 "고구려사 빼앗기" 정도가 아닌 중국의 "동북아 전략기획서""라고 경고한다.

이는 동북공정의 주요 작업내용이 고대중국 영토 연구, 동북 지방사 연구, 동북민족사연구,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연구, 중·조(中·朝) 관계사연구, 중국 동북변경 및 러시아 원동지구의 정치·경제 관계사 연구, 동북변경의 사회안전 전략연구, 조선반도 형세 변화 및 이의 동북지역 안정에 미치는 영향 연구 등 광범위하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는 것은 동북공정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중국은 동북아시아의 정세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장기적인 국가전략 관점에서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고구려사 연구센터" 정도다. 그러나 동북공정의 목적인 단지 고구려사 뺏기 정도가 아닌 이상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연구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듣고 있자면 과연 이같은 계획이 수립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당장 한국의 이른바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론"과도 상충될 가능성이 많다. 한국의 "동북아경제중심 국가론"은 한·중·일 동북아 3국의 평화 협력을 전제로하고 있다. 그러나 동북공정의 내용에서 보듯이 중국의 태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핵 문제 등으로 한국은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론"의 구체적인 실현방도를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의 그것은 대단히 구체적인 기초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결코 동북공정을 단순한 역사적 문제로 봐서는 안된다. "외교적 파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미온적인 대응을 해서는 안된다.

/김태경 기자 (gauzari@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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