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2일 해외교포문제연구소가 주최한 ‘교포 정책 개발을 위한 포럼’을 참관했다. 이날 논의된 해외 동포들의 당면 문제들을 비교해 보고 나름대로 느낀 소감 몇 마디.

먼저 재일동포 문제를 발표한 황영만씨(민단 중앙본부 부단장)는 당면하고 있는 재일동포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세대교체에 따른 민족적 특성의 단절을 꼽았다. 둘째로 구성원의 급격한 감소를 들었는데 무려 90%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일본인과 혼인하고 있는 세태를 안타까워 하면서 그 다음 세대는 거의 모두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향후 10여년 후면 동포사회가 소멸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포들의 가치관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즉 집단적가치(민족, 국가 등)보다는 개별적 가치(인권, 자유 등)를 더 중요시하고, 개인적이고 다양한 자기실현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재일동포’라고 하는 집단에 대한 구심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염려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첫째, ‘국적’보다는 ‘민족’에 뿌리를 둔 동포사회의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을 역설했다. 바꿔 말하면 민단(남)과 총련(북)으로 갈라져 있는 두 단체를 통합하고, 최근에 ‘뉴커머’(new comer)라 불려지는 영주권을 가진 이주자를 함께 포용하는 동포사회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 밖에 민족자본으로 공공재단이나 대형 금융기관을 설립한다든지, 독자적인 정보 네트워크의 구축, ‘재일동포 역사 자료관’의 설립 등을 제안했다.

일본이나 중국동포사회와는 그 출발부터 전혀 다른 미국 동포사회 문제를 발표한 장태한 교수(UC 리버사이드)는 재미 한인들이 소수민족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면서 살아가는 것, 즉 이중 문화권을 형성하면서 다민족사회인 미국의 발전에 기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재미동포사회가 될 것 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영어가 자유로운 2세들이 ‘재미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 내에서 정치력을 신장해야 할 것을 역설 하면서, 한편으론 미국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차별 때문에 겪는 아시안의 한계를 털어 놓았다.
‘중국과 한반도 관계 속에서의 조선족’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조성일씨(연변 조선족문화발전촉진회 회장)는 조선족의 역사성과 그 이중성(한민족이면서 중국의 공민)을 강조하면서, 조선족은 어디까지나 중국을 조국으로 간주하고 중국의 법을 잘 지키고 중국의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한국인들이 이런 조선족의 입장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해 줄 것을 당부했다.
따라서 조선족은 한(韓)민족이라는 민족의식과 동시에 중국인이라는 국가의식을 가지고 양국 관계의 발전과 교류 협력에 적극적 가교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인을 향하여 조선족을 무조건 우리 민족 또는 국민으로 생각하여 이른바 민족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인다거나 (북)조선이나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 비판을 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임을 충고하고 있다.
그는 향후 중국 동포사회의 바람직한 미래를 전망하면서, 첫째로 중국 대도시마다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조선족 타운을 들고 있다. 비록 동북3성의 농촌 공동체는 붕괴되고 있지만 예를 들면 심양의 서탑, 북경의 왕징신청(望親新城)이나 칭타오의 리창취, 상해의 홍쵸(虹橋)등과 동북3성의 대도시 근교에 형성되는 ‘조선족 집거구’를 산업사회의 발전에 걸맞는 동포사회의 변동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갈수록 사라져 가는 조선족 문화를 고수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공간과 언론매체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과 위기에 빠진 민족교육기관을 위한 투자, 특히 민간 주도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처럼 그들이 어디 살고 있느냐에 따라 동포사회의 현황과 각각 안고 있는 문제가 서로 달라 보였지만, 나는 이날 해외 동포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키 워드’ 몇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로 ‘차별’이란 단어였다. 동포들이 살고 있는 주재국 정부나 국민으로부터 받고 있는,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간에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해외동포가 안고 있는 숙명적 명제라는 사실이다. 특히 중국동포들에게는 고국의 법적, 인격적 차별대우가 더 가슴 아픈 문제로 대두돼 있지 않은가.

둘째로는 ‘관심’인데, 한국 정부나 국민들이 해외 동포에 대해 어떤 관심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 그 이해의 폭에 따라 동포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관심은 사랑의 증거이기에 더욱 그렇다.
셋째로 ‘신뢰’ 또는 ‘화합’이란 말이 떠 올랐다. 이는 교포사회에서 동포들 상호간에 팽배한 불신과 반목이 쉽사리 넘기 어려운 산처럼 존재한다는 현실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 교포사회에서 흔히 유태인들(Jewish Community)의 단결된 모습을 본 받아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로 갈 때가 더 많다.
나는 이 날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떠 오른 중국동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정부 당국이나 국민들 그리고 동포들 자신이 위에 제시한 세 단어로부터 파생된 여러 문제를 깊이 천착하면서 어떤 해법-‘민족 공영의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張泳國(전 미주 KBS라디오 사장, ‘조선족의 친구들’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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