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원 수필>

  네덜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 3. 30 네덜란드 쥔데르트~1890. 7. 29 프랑스 파리 근처 오베르쉬르우아즈)는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폭넓게 인정받았으며 현대미술사의 표현주의사조에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형태를 통하여 그를 자살까지 몰고 간 정신병의 고통을 인상 깊게 전달하고 있다.


고흐는 신경과민으로 발작을 자주 일으켰다. 그는 미술품 거래를 싫어한데다가 1874년 런던 태생의 한 아가씨에게 실련을 당하면서 인생관이 암울해졌다. 인간적 애정을 얻고 싶은 욕망이 좌절되자 짙은 고독이 평생 지속되었다.


  1888년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 즉 성탄절의 전날 저녁인 12월 24일 저녁에 반 고흐는 신경과민으로 발작을 일으켜 왼쪽 귀의 일부를 잘랐다. 그는 정신병원에 12개월 동안 갇혀 있으면서 되풀이되는 발작에 시달리고 평온한 기분과 절망적인 기분의 양극을 배회하면서도 이따금 화필을 놓지 않았다. 1889년부터 1890년 사이 그의 작품을 지배한 주된 특징은 현실과 격리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과 일종의 비애이다. 오래 동안 정신병원의 독방이나 정원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주제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데다 자신의 영감이 직접적인 관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을 되살려 그림을 그려야 하는 현실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강렬한 색채를 부드럽게 만들고 좀 더 차분한 그림을 그리려고 각고했다.


그러나 흥분을 억제할수록 상상력이 더욱 넘쳐서 구성요소들의 극적인 효과에 몰두하게 될 줄이야!···그는 역동적인 형태와 힘찬 선에 바탕을 둔 표현양식을 개발했다. 후에 그는 고독을 이겨내거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채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을 시도했다가 결국 이틀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자살했을 때 반 고흐라는 이름은 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천재적인 화가 고흐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신경과민증, 정신분렬증, 다중인격장애 등 각종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놀라운 예술성을 가진 작품을 그려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로 천하기적이다.


  정신질환의 화가들이 상상을 초월한 미술작품은 또 다른 일화에서 더 체크할 수 있다. 


  요세프 하인리이 그레빙의 작품 ‘로마’는 상당히 걸출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을 작게 그리고 대신 건축물을 그려 넣어 로마를 표현했다. 이 환자는 종이쪼각과 화장지를 모아 도화지를 만든 뒤 그 우에 바로 그림을 그렸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들의 놀라운 예술성에 대해 “이들은 아성적 사고가 일정 정도 마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인간 내면의 욕구를 그대로 분출한다”며 “이 같은 욕구 분출이 그림에 반영되면서 작품에 예술적 깊이를 더하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다면 정신질환의 영향력과 창작사유의 민감성은 모순성을 보이기보다 부동한 측면의 공감대가 존재하지 않나 하는 의혹의 대목이기도 하다.


    과연 정신이상의 상태에서 미술작품을 완성한다는 사례의 반증은 무엇인가? 인간의 정신영역에는 아직도 미개발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정신질환자의 미술작품을 예술의 한 장르로 발전시켰다는 평가의 목소리가 거세지는 와중에 우리는 미술작품의 형태에 숨어진 과학의 함량을 다소 의심할 수밖에 없다. 긍정과 통하는 비결은 향후 타진할 몫이다.

    잠재된 인간관능의 작용은 리비도(libido)를 포함한 인간내적의 발로를 무시로 수시로 발산하지 않나 하는 현념을 던져온다. 예술분야만 아닌 생활이나 사회활동에서 인간은 신령적인 영험을 연출하는 우연의 일치가 있나보다. 미신이나 봉건유독과는 별개의 이질적인 앙케트(enquête)를 가지고 싶다. 정신병환자의 자화상 같은 작품세계가 보여주는 힌트는 무엇일가? 우리는 영검이나 신험(神驗), 신통의 하모니를 신봉하지 않는다. 요술이나 마술은 눈속임이라고 여긴다. 무형의 독존세계는 어느 면에도 치우치지 않고 자체의 궤도를 운행한다. 식물에 소리가 있고 무기물에 언어가 교류되고 공기 속에 화면이 흐른다면 누가 믿을까? 그렇다고 또 그것의 부정면도 입증이 미미하다.  


  반상 적이라는 정신질환 환자들의 작품들에서 숨은 예술성을 발견해낸 것도 역시 인간이다. 그렇다면 분렬증 환자의 그림에서 예술성을 읽어내는 감상자 역시 예술적 심성을 지닌 심미관인 것은 또 무엇으로 해석하면 원만한지? 우주탐측, 인간비밀은 첨단만 아닌 기초교육에서도 진일보 한결 중시할 바이다. 신비의 유혹은 인간을 촉발하고 자연의 철학은 이지를 숙성시키고 신기루동네는 그래서 오늘도 우리를 부른다.


  카리스마(charisma)란 예언이나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초능력이나 절대적인 권위이다. 신의 은총을 뜻하는 그리스어 ‘Khárisma’서 유래하였다. 다른 뜻으로는 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을 말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베버가 지배의 세 가지 유형으로 합리적 지배, 전통적 지배와 함께 카리스마적 지배를 든 이후로 일반화하였다. 현대는 ‘권위’로 순화되면서 통칭된다. 하다면 구경 누가 카리스마인가? 우리는 자연을 창조하고 우주를 다스리고 이제 나노기술도 개발하였다.


나노(nano)는 1/1,000,000,000(10-9)을 의미하는 접두어이다. 나노라는 말은 난쟁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는데 지금은 아주 미세한 물리학적 계량 단위로 사용된다. 나노세컨드(ns)는 1/1,000,000,000초, 나노미터(nm)는 1/1,000,000,000m를 가리킨다. 1nm는 머리카락 굵기의 1/100,000 정도의 크기로 보통 원자 3~4개가 들어간다. 나노는 전자현미경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아주 미세한 세계인데 이러한 나노 과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 주사원자현미경이 개발되면서부터이다. 나노기술은 처음에는 반도체 미세 기술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전자 및 정보통신은 물론 기계, 에너지, 화학 등 대부분의 산업에 응용할 수 있다. 나노기술이 의미를 갖는 것은 물질의 최소 단위까지 인간이 통제할 수 있게 되였다는 엄청난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인류문화지식보다 이제 더 개발할 미지의 탐구시장이 더 무한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했다. 지금은 구상유취(口尙乳臭)가 아니래도 어디까지나 발전단계에 머무른 우리 자신들이다. 미숙한들 그래도 궁극적으로 소신해야 할 적임자는 인간이다. 억겁이 흘러도 최후의 카리스마(charisma)는 물론 인간이다. 명약관화한 결과임을 재삼 단정한다. 작금은 다만 시기상조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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