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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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펠라가 바람을 잡으며 악을 쓰기 시작하자 40인승 경형려객기가 활주로를 미끌기 시작했다. 발동기의 폭음에 귀가 멍멍해지고 오장육부가 얼떨떨해지도록 기체가 떨렸다. 활주로를 질주하던 비행기는 갑자기 기체를 건뜩 들리더니 하늘공중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서서히 고도를 높혀가자 수천리 화북평원의 대지가 끝도 없이 안겨왔다. 파르스름한 엷은 안개속에 잠겨있는 평원, 저 땅우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태여났고 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어갔는지 모른다. 그네들은 살아가면서 또 얼마나 많은 비환리별(悲歡離別)들을 만들었던가! 살아있는 생명 모두가 그토록 귀중했었겠지만 죽어간 그네들을, 력사라는 이름이 기억해준것은 또 몇사람이 되는것일가? 전쟁과 살륙과 증오로 가득했던 우리네 선조들의 삶, 민족과 국가와 집단과 종족의 이름으로 벌려왔던 인간들의 참살, 저 일망무제한 땅의 깊이에 얼마마한 과거의 진실이 파묻겨있는것일가?


    기류때문인지 비행는 요동을 치고있었다. 창호는 기창에 머리를 대고 땅을 내려다보고있었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한줄기의 강물이 보였다. 창호는 그것이 회하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문명을 일으키고 또다시 그 무서운 홍수로 그 문명을 휩쓸어가던 회하, 그 상공의 수천메터 하늘에서 창호는 모든 력사의 진실과 아픔의 과거와는 무관하게 약속이 되여있지 않은 곳으로 날아가고있는것이였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자위와 눈동자가 선명한, 커다란 눈을 가진 슈트어디스가 창호에게 묻고있었다. 창호는 눈길을 슈트어디스에게 돌렸다.
    카이란!...


    창호의 첫사랑이였던 카이란, 그녀는 창호와 헤여지면서 네가 없으면 죽을거라고 하면서 떠나갔었다. 그렇게 헤여져 이십여년이 지났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지도 못한채. 창호는 슈트어디스의 얼굴에서 그 카이란을 읽고있었다. 경희와의 사랑때문에 수천리 화북평원을 달려왔고 그 사랑의 아픔으로 하여 이 하늘을 날고있는 순간에 오히려 창호는 현실과 멀리 떨어진 과거를 뒤적이고있는것이였다. 왜? 무엇때문에?...
    어제저녁에 황주에 취했대서인지 목이 칼칼했다.
    <<피쥬(맥주)!>>


    슈트어디스는 잠간만 기다려주세요 하면서 맥주캔을 따서 창호에게 내밀었다. 머리속에 날아다니던 상념들을 쫓으려는듯 창호는 벌컥벌컥 맥주를 마셨다. 비였던 속이 화끈하게 덥혀져왔다. 울고싶은 마음이 되여가고있었다. 창호는 기창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느새 비행기는 구름속을 날고있었고 악을 쓰며 돌고있는 프로펠라만이 보일뿐이였다. 길다란 비행기의 날개가 휘청휘청 흔들었다. 창호는 저 날개가 끈어진다면 비행기는 곧추 추락할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면 존재의 모든 아픔은 종지부를 찍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추락하는것, 그 순간의 아픔과 아름다움은 무엇일가? 그러나 발동기의 동음은 고르러웠고 그 커다란 눈의 슈트어디스는 그에게 빵이며 쨤같은 먹거리를 가져왔다.


    창호는 빵을 물어뜯었다. 목이 메였다. 창호는 손을 들어 슈트어디스를 불렀다.
    <<피쥬!>>
    슈트어디스가 놀라는 눈으로 창호를 바라보며 맥주를 가져다주었다. 맥주를 입에 쏟어넣으면서 창호는 취하고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하늘에서 취해 어디로든 끝없이 끝없이 가고싶다고 생각했다. 속이 비였기때문이였는지 취기가 조금씩 치밀었다. 그러면서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워지기 시작했다. 구역과 함께 졸음이 왔다. 하얗게 벗은 경희가 할딱거리고있는것 같았다. 그속으로 빠져들어가면서 창호는 눈을 감았다.

    경희와의 만남은 우연이라고 할수밖에 없는 만남이였다. 그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팩스 한장때문이 아니더라도, 친구 동현이의 저녁식사 하자는 전화가 없었더라도, 못된 택시기사와의 말썽이 없었더라도, 평일처럼 공중뻐스를 타지 않고 택시를 탓더라도... 경희와의 만남은 있을수가 없었다. 아니, 호텔로비에서 호텔의 보이들과 실랭이를 하던 이딸리아 관광객들이 없었더라도 창호는 경희라는 녀자를 영원히 모르고지낼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만일은 그토록 정확하게 있었고 거의 초마다를 계산하리만치 준확하게 이어져있었다.
    그날도 북경에서 하릴없이 빈들거리는 평범한 하루였다. 련락처를 위탁해놓은 려행사의 친구한테서 한국에서 팩스가 왔으니 왔다가라는 전갈이 왔다. 내용이라야 우황청심환과 웅담가격을 알아달라는 한국의 정준태사장의 팩스였다. 마침 할일이 없었던터라 전화를 받고 갈가말가 망설이는데 동현이의 전화가 왔다. 저녁에 별일 없으면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자는것이였다.
    <<마침 그쪽에 일이 있어 가려던 참이였는데 팩스 받아가지고 갈게.>>


    창호는 크게 바쁜 일이 아니고 저녁시간대까지는 넉넉한 여유가 있었기 바쁜 친구들 시간 빼먹지 않는다고 공중뻐스를 탓다. 마침 친구의 려행사에 가니 금방 바쁜 일이 있어 친구가 나갔다면서 려행사직원이 창호에게 팩스를 주었다. 팩스를 받고난 창호는 친구가 없는 려행사에 눌러있기가 무엇해져서 커피 한잔을 얻어먹고 려행사를 나왔다. 려행사를 나오자 다시 공중뻐스를 타기가 싱거워져 손님을 기다리고있던 택시를 잡았다. 그러나 창호의 말투에서 북경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알아차린 고약한 택시기사가 엉뚱한데로 차를 끌어가고있었다. 결국 못된 택시기사와 실랭이를 벌렸고 다른 차를 잡고 동현이가 사무실을 임대하고있는 장성호텔에 도착했다. 호텔로비에 들어서니 이딸리아 관광객 몇이 서투른  영어로 호텔보이와 무어라고 다투고있었다. 금방 택시기사와 다투고난 후이라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창호는 그 기분을 그대로 가지고 동현이의 사무실에 들어가고싶지 않아 잠간 구경을 했다. 이딸리아사람과 호텔보이의 싸움은 호텔의 책임자인듯한 사람이 와서 결속이 되였고 창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동현이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창호가 동현이의 사무실문을 열려는데 문이 열리면서 깜찍하게 생긴 녀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녀자는 문앞에 사람이 있는것을 보고 놀랐는지 어머 했다. 녀자의 뒤에 동현이가 서있다가 창호를 보고 반색을 했다.
    <<이크, 우리 시인동지가 저녁사준다니까 일찍이도 서두셨구먼...>>


    동현이는 허풍이 썪인 제스츄어를 해가며 이미 문밖에 한걸음 나서있는 깜찍한 녀자를 붙들었다.
    <<잠간만요. 경희씨, 우리 멋진 시인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이분은 저의 중학동창이고 시나부랭이나 긁적거리는 렴창호씨입니다... 어때요? 속은 어떤지 몰라도 간판 하나 싹 죽이지요?...>>
    동현이는 경희라는 이 녀자와 아주 익숙한 모양이였다. 그래도 아무리 친구라도 낯선 녀자앞에서 마구잡이로 소개하는것이 껄끄러웠다.
    <<동현이의 말 백프로 믿었다가 사기당했다고 후회하게 됩니다... 렴창호입니다.>>
    말하면서 창호는 손을 내밀었다. 순간 먼저 손을 내미는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희가 갸웃 하면서 이쁘게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의 시를 읽은 기억이 있어요. 천공(穿孔)이라는 시가 생각나는데요, 맞아요? 전경희입니다.>>


    경희의 말은 아나운서처럼 정확하면서도 마디마디가 명확하게 튀여나왔다.
    창호는 시를 쓴적이 있기는 했지만 문학인이라고는 할수 없었다. 다만 한 나이 젊었을 때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젊은 마음의 들볶음에 몇수를 끍적여봤을 뿐이였다.
    <<반갑습니다. 같잖은 시 기억해주셔서 고맙구요.>>
    동현이가 끼여들었다.
    <<나 이놈 동현이는 조금 바쁜 사람인데 어쩌지? 경희씨, 우리 창호씨 모시고 커피숍에 가 동무해주실래요? 마침 저녁식사하자고 불렀는데 바쁘지 않으면 식사도 같이 하고...>>
    경희는 잠간 망설이는듯 하더니 창호를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현씨 친구라니까 얼굴 한번 봐주지요...>>
    경희가 돌아서자 동현이가 창호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동방려행사 직원이야. 동무가 될거야. 문학소녀였댔으니까...>>
    <<됐어. 선보기라도 하라는거니?>>
    <<왜? 내가 뭐 이빠진 뚜쟁이인줄 알았니?>>
    <<알았어. 일 끝내고 인차 내려와.>>
    창호와 경희는 호텔의 커피숍에 마주하고 앉았다. 피아니스트가 쇼팽의 곡을 두드리고있었다. 커피숍복무원이 오른손을 뒤로 가져간채로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무엇을 드실래요?>>
    경희가 할끗 창호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은요?>>
    창호는 이런 생활에 아직은 서툴었다.
    <<경희씨가 하는대로 하세요. 커피도 되구요.>>
    경희가 복무원에게 얼굴을 돌렸다.
    <<커피 한잔, 그리구 레몬쥬스.>>


    창호는 이때에야 경희를 눈여겨볼수 있었다. 화려한 녀자는 아니였다. 깜찍하다는 느낌이 들었던것은 자그마한 체구와 동그런 얼굴때문이였다. 눈가에 주름은 없었지만 성숙한 녀자의 완숙함이 얼굴에 담겨있었다. 조선족녀자들 치고는 눈이 큰편이였고 높은 코마루가 고집스럽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높은 코마루와 고집이 어떤 련결이 되는지 창호는 이상했다. 그런 감각이였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만날수 있게 되여...>>
    <<저두요, 선생님 지금도 시 쓰세요?>>
    창호는 오래전에 쓴 시가 누구인가에게 기억이 되였다는 점이 흐믓했지만 오늘 이 시각에, 낯설은 녀자의 입에서 자기의 시가 거론이 되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심취한적은 있었지요. 젊었댔으니까. 지금은 그만둔지 오래 되였어요.>>
    서빙이 그들이 주문한 레몬쥬스와 커피를 가져왔다. 레몬쥬스잔에 박은 깔때를 바로잡으며 경희는 머리를 갸웃 했다. 소녀처럼 깜찍한 표정이였다.


    <<하늘을 뚫고 비상하는 어둠이 적막을 입맞출 때면 별들은 미소로 태여남과 죽음에 련민으로 서러운 선잠을 깨우는 키스를 한다... 맞아요? 선생님 <천공>이라는 시의 구절이?>>
    경희는 바르게 기억하고있었다. <<천공>>이라는 시는 창호가 오래전에 쓴 시였다. 아마 삽십대 초반이였던가 본다. 시라는것을 쓴답시고 십여수 발표를 한적이 있었고 그중 유일하게 어떤 시평인이 이 시를 평하면서 모더니즘이니 우주의식이니 하고 한껏 긁어올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시단은 창호를 잊었다. 그리고 창호도 더는 시를 쓰지 않았다. 어떤 원인이 있어서도 아니였다. 다만 쓰고싶지 않아서였을뿐이였다.
    <<그건 지나간 일이 되였군요. 이제는 열정이 없어요.>>
    <<그래도 저는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많이 쓰고계시리라고 생각하고있는데요?>>
    <<지금은 9십년대지 않습니까? 아무리 귀중했던거라도 서슴없이 쓰레기통에 버릴수 있는 시대잖아요?>>
    경희가 과장되게 입을 벌렸다.
    <<그래도 선생님 그 시재는 버리면 아까워요.>>
    창호는 경희의 과장된 표정에서 진실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과장이 진실인지 아니면 그 과장의 반대쪽에 다른 진실이 있는지 알수는 없었다.
    <<경희씨도 문학소녀였었다고 하던데요?>>
    경희가 과장된 표정을 일시에 지워버렸다. 소녀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동현씨가 허풍을 떤것이예요. 글공부나 했다는 소녀들 치고 문학소녀라고 자칭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동현씨가 그러려니 앞질러버린것뿐이예요. 공부하던 소녀적에는 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읽지 않아요. 그만큼...>>


    경희는 그만큼 하다가 말을 끊었다. 창호는 경희가 나이를 의식하고있다고 생각했다. 창호의 판단이라면 경희는 2십대 후반 아니면 삼십대 초반이였다. 그런 성숙함이 몸매에서부터 얼굴의 피부빛갈에 이르기까지 속속히 슴배여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창호는 한결 마음이 푸근했다.
    <<그만큼 미완의 성숙기에 들어섰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요?>>
    경희는 잠간 생각하는듯 했다.
    <<뭐 그런건 아니구요, 다만 지금은 문학에서 감동을 받을수가 없어졌다는 말씀이거든요. 대학교에 다닐 땐 저도 무언가를 써보고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러나 결혼하고 어린애 키우고 일해야 하다보니까 그만 감수성이라고는 영 무뎌져버린 아줌마가 되여버렸어요.>>
    그러면서 경희는 소리를 내여 웃었다. 솔직함보다 자신에 대한 당당함이 엿보였고 개성파겠다는 느낌이 깊게 들어왔다. 창호는 경희에 대한 인상이 좋은 곳으로 나가고있었다.
    <<대학에서 전공은요?>>
    <<중문전업이였습니다.>>
    <<그래요? 저는 경영학이 전공이였는데...>>
    <<신문사 기자로 알고있는데요?>>
    창호는 자조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저는 상업인의 기질이 없었어요. 그래 결국은 신문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경희가 까불거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중국은 10억인구가 7억이 장사를 한다지 않아요? 경영학공부를 하시고 쓰지 않음 아까운것 아니예요? 동현씨를 보세요. 물리학부를 나오고도 장사에서는 호설암을 우습게 안다구요.>>


    창호는 동현이 말이 나오자 장난기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놈은 원래 피속에 장사를 할 기질이 섞여있어요. 어렸을적에 구리고 동이고 페철이고를 페품수구소에 가져가면 그놈만큼 값을 정확히 아는 애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수판>이라는 별명을 달고다녔어요. 머리가 잘 돈다고...>>
    <<아하, 친구라고 밥먹여준다니까 숙녀앞에서 허물만 하고 다니는구나?...>>
    어느새 동현이가 왔는지 창호를 악의 없이 흘기며 말했다.
    창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너 머리가 좋다는 얘기를 했다. 숙녀앞에서 칭찬이 된셈이지 왜 흉이니? 밥사준다고 했으니 오늘 지갑간수 잘해라. 잘 버는 친구 한번 우려내야겠다.>>
    동현이가 걸상에 앉으며 유머스런 제스츄어를 해가며 대답했다.
    <<창호 넌 오늘 밀려나게 되였어. 경희씨가 왔으니 녀사가 더 중요해졌어.>>
    경희가 동현이를 보며 입을 삐쭉 했다.
    <<식은죽이 귀밑으로 흐르고있어요. 그렇게 선심 쓰시는 분으로 알고있지 않은데요?>>
    여럿은 소리내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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