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4

 저녁은 사천료리로 하자고 결정이 되여 그들은 북경에서 소문이 나있다는 사천료리집으로 갔다. 상호가 랄매자(辣妹子)라는, 우리말로는 우습게만 들리는 음식점이였다. 사천료리 특유의 알싸한 냄새가 가득한, 붉은색 위주로의 인터리어를 한 음식점은 고객들로 만원이였다. 사전 예약이 되여있었기에 그들은 쉽게 좌석을 차지할수 있었다. 식당서빙이 왔다.
    <<주문하실래요?>>
    사천지방의 억양에 애교가 섞인 표준말로 서빙이 물었다. 이쁘장한 서빙의 얼굴을 염치없이 직시하면서 동현이가 대답했다.
    <<물론 사천신선로, 그리고...>>
    동현이는 손님을 앉혀놓고 자기가 주동이 되였다는것을 느끼고 얼굴을 창호와 경희에게로 돌렸다.
    <<다른건 식성에 맞는대로 하나씩 주문하지...>>


    마랄탕(麻辣湯)이라는 사천식 신선로가 올랐다. 맵고 얼얼하고, 입안의 감각을 빼앗아 가는 알싸한 맛의 국물에 양고기며 언두부며 오리피를 넣고 저어 먹기 시작했다. 동현이가 얼얼해진 혀를 훌렁훌렁 내밀어보이고 술잔을 들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너를 위해, 그리고 우리 친구 창호와 경희씨와의 만남을 위해 한잔, 건배!>>
    창호는 동현이가 경희와의 만남을 위해 한잔을 한다는 말에 어떤 다른 뉴앙스가 있다고 느껴졌다.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면 있던 의미도 무의미해지는거야. 자, 각자의 소원을 위해 건배!>>


    경희는 아무말 없이 창호를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은채 술잔을 눈높이로 들어 인사를 하고 독한 배갈 한잔을 쪽 들이마셨다. 살작 술잔을  내려놓는 모습이 우아했다. 창호와 경희와 눈길이 섞였다. 경희의 눈길에 자리잡고있던 도고함에 스치듯 수주움이 지나갔다. 민감하게 그것을 붙잡아내며 창호는 순간적으로 얼굴 근육이 경직되는것을 느꼈다.
    <<경희씨는 참 미인시군요.>>
    불쑥 튀여나간 말에 창호는 저으기 당혹했다. 그러나 경희의 얼굴에서는 숨길수 없는 흥분이 피여나고있었다. 안도의 숨이 나갔다.
    <<어머, 너무 숙련된게 아니세요?>>
    창호는 경희의 말속에 숨어있는 예리함에 베이면서 급급히 대답했다.
    <<그런건 아니구요, 정말 그렇다는 말입니다.>>
    말하고나자 창호는 변명이 너무나 수준 이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동현이가 하하 소리내 웃었다.
    <<창호, 너 너무 촌스러운거 아니니? 세련된 남자는 말이야 이럴 때는 녀자의 지적인 매력에 대해 슬슬 발라맞춰야 하는거야...>>
    창호는 얼굴을 붉혔다.
    <<임마, 나야 시골도시놈이 아니냐? 너같이 속에 바람만 들어차있지 않아.>>
    <<네가 뭐 순수파냐? 찌들어가지고...>>
    <<너 정말 못말리겠다. 술이나 부어라.>>
    창호는 더 이 화제를 이끌어나가기 싫었다. 경희가 웃으며 말했다.
    <<동현씨는 고슴도치나 밤송이같은 사람이예요. 건드리지 마세요. 언제나 찔리거든요. 술병 주세요. 제가 한잔 부을게요...>>


    창호가 술잔을 내밀자 경희가 술병을 들어 술을 부었다. 그리고는 동현이를 무시한채 술병을 창호에게 건네며 술잔을 들었다.
    <<고슴도치는 식은 밥 먹이고 우리 둘이 한잔 해요.>>
    창호는 동현이쪽에 대고 찡긋해보이고는 술병을 받아 경희의 잔에 술을 부었다. 경희가 술잔을 내밀어 창호의 잔에 소리나게 잔을 부딫쳤다.
    <<렴창호선생님 만나뵐수 있어 행운이예요. 건강하시고 그리고...  옥체가 유쾌하세요.>>
    창호는 경희의 말속에 담긴 유모아를 가려들으며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건배! 경희씨와 만난것이 즐겁습니다.>>
    창호와 경희가 술잔을 부딪치고 막 술잔을 입가에 가져가는 순간이였다.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창호는 입가에 가져갔던 술잔을 든채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얼굴을 돌렸다. 낯선 얼굴이였다.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끼끗한 체격에 단아한 모습이였다. 조금은 사기성이 있겠다는 인상이 들었다. 삼십대초반은 된것 같았다.
    <<동현형이 여기서 식사하는줄 몰랐습니다. 오래간만이군요...>>
    사내는 조금 수다스러웠고 불안해보였다. 동현이와 악수를 나누고 나서야 사내는 경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경희도 왔구만. 그동안 잘 지냈소?>>
    경희는 앉은 그대로 사내의 손을 잡는 시늉을 했다. 얼굴의 근육 하나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건 말건 사내는 창호에게로 얼굴을 돌렸다가 동현이에게 물었다.
    <<손님이 계셨군요...>>
    <<나 중학교때 친구, 렴창호선생이요... 그리구 이분은 지금 북경에서 사업을 하고있는 박수일선생이고...>>
    창호는 좌석에서 일어나 박수일의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박수일입니다.>>
    창호의 손을 잡는 박수일의 손에 힘이 잡혀있었다.
    <<렴창호입니다. 만나뵙게 되여 반갑습니다.>>


    박수일은 누구의 권고도 없이 술병을 잡았다.
    <<렴선생도 처음이고 저 동현형도 오래간만인데 술 한잔 붓고 갈게요. 사업파트너하고 같이 왔거든요.>>
    박수일은 술병을 들고 창호의 잔에 부으려고 했다. 그러자 창호는 술잔을 비우고 빈잔을 내밀었다. 박수일은 창호의 잔에 술을 붓고 동현이의 잔에도 부었다. 경희의 차례가 되였으나 경희는 앉은 그대로 머리를 들어 박수일을 할끗 쳐다보았다. 무시와 같은 랭기가 흐르고있었다.
    <<저의 잔은 이미 차 있어요.>>
    박수일은 잠간 불쾌한 기색을 보였으나 순간적으로 그 기색을 지우고 서빙을 불러 빈 술잔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서빙이 술잔을 가져오자 박수일은 술병을 창호에게 내밀었다.
    <<꼭 렴선생의 잔을 받고싶군요?>>
    창호는 박수일의 억양속에 담긴 다른 의미를 읽었다. 그러나 그것의 정체를 감지할수는 없었다. 불쾌감이 스쳤다.
    <<초면이니까 의례 부어야지요.>>
    <<이제 인차 구면이 될겁니다.>>
    례절에 안되였는지 경희가 일어섰다. 여럿은 술잔을 부딪치고 잔을 비웠다.
    <<감사합니다. 전 가보겠습니다. 맛있게들 드십시오!...>>
    박수일은 남자답게 머리를 숙여 창호와 동현이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고 돌아서면서 경희에게 한마디 지나가듯 물었다.
    <<미화는 잘 있어?>>
    <<근심 말아요!>>
    창호는 두사람 사이에 어떤 끈이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묻는듯한 창호의 눈길을 의식하며 경희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저의 남편이예요. 지금은 아니지만.>>


    창호는 초풍하리만치 놀라고있었지만 경희의 얼굴은 담담했다. 차라리 얼음조각이라는것이 좋을것이였다.


    이것이 경희와 창호와의 첫 만남이였다. 이날, 그 뒤날의 달콤한 련정과 섹스가 약속이 되여진것은 아니였지만 그 모든 후날 사건들의 악장은 서곡을 연주하고있었다.

 기내방송이 울렸다.
     <<이제 십분후이면 비행기는 북경공항에 착륙하게 됩니다. 려객여러분들은 안전띠를 착용하시고...>>


     창호는 기내방송에 따라 안전띠를 매고 기창밖을 내다보았다. 연산산맥의 우중충한 산들이 안겨왔다. 이제 곧 북경에 도착할것이였다. 그러나 이제 북경은 다만 붐벼대는 도시의 하나일뿐이였다. 경희를 찾아 이 도시로 들이닥칠 때 창호는 초련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처럼 들떠있었다. 그러나 모든것은 지나갔다.


     그리하여 창호에게 있어서 북경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도시가 되였다.
     비행기가 기수를 드리우고 북경의 상공을 향해 돌진할 때 북경의 하늘은 창호의 마음과 관계없이 맑게 개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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