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의 조선족집거지인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길림성동부의 두만강변에 위치, 중국, 로씨야, 조선 3국접경지대에 자리잡고있다. 연길은 자치주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 하나의 명주처럼 동북아지역에서 빛을 뿌리고있다. 6월말(지난해) 중국국제방송국 특파주외기자 길림취재팀은 사계절이 분명하고 순박한 민속풍습을 띠고 민족적이면서도 변강지역 풍정을 띤 도시의 매력을 느끼게 되였다.


농후한 민족특색과 화목한 대가정

연길은 도시구역이 작지만 기능은 구전히 갖추어져있었고 네 주변은 록화대에 포위되여있었다. 다른 도시처럼 널직한 포장도로, 고층건물, 광장, 병원, 학교, 상점 등이 있었지만 역시 특별한 도시였다. 거의 모든 표시가 조선어와 한어로 표기되고있는것이다.

연길의 조선족인구는 전 시 총인구의 58%를 차지하고있다. 몇십년간 이들은 한족들과 함께 항일전쟁, 경제건설, 개혁개방을 경과하면서 두터운 우의를 쌓아왔고 사업, 학습, 생활 등 면에서 기본적으로 융합되여왔다. 복장, 건축, 성씨, 습관 등 면에서 조선족은 농후한 민족특색을 갖고있는외 사무와 공공장소에서 언어의 교류에 거의 장애가 존재하지 않고있었다. 단지 식당이나 스탠드바나 혹은 노래방 같은 장소를 찾을 때 조선말로 된 인사말, 조선말노래, 지어 조선족복장이나 조선족춤은 무의식적으로 우리들의 귀에 들려오고 우리들의 눈에 보여지면서 별유천지와도 같은 이색적인 풍정을 보여주는것이다.
  
 
 연길시남부 모아산국가삼림공원내에 위치해있는 조선족민속원, 이곳은 조선족문화의 지혜화 분위기를 수집하고 보존하고 보여주는 장소로 더욱더 민족적인 고장이라 할수 있다. 이곳에는 널뛰기, 그네, 씨름 등이 있고 조선족 처녀총각들의 경쾌한 무용을 감상할수 있으며 조선족옷차림을 하고 조선족 신랑 혹은 신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볼수 있다. 또는 조선족 소녀가 되여 그네타고 하늘로 날아오를수 있고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찰떡을 치는 힘장사로 되여볼수도 있다.


"연길의 여름은 피하지 말고 향수하라"

민족적인 풍치에 매료된 동시에 6월의 연길의 기후도 우리를 기쁘게 했다. 연길은 장백산북켄에 위치해있고 세 면이 산으로 둘러싸여있는, 말발굽형분지에 속하며 평균해발이 100메터, 동해(일본해)와 80킬로메터 떨어져있다.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받아 이곳은 사계절이 분명하고 기후가 사람들에게 적합하며 여름철 최고기온이 30도를 조금 초과한다. 아침과 저녁에는 서늘하기에 일반적으로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된다.
  
 
 연길에 체류하는 이틀동안 우리는 연길의 이같은 기후를 마음껏 향수했다. 연길에 도착한 날에는 흐리고 비까지 내리면서 싸늘한 날씨였는데 이튿날에는 맑고 개인 날로 변했다.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차창으로 새여드는 해빛때문에 어떤 사람은 머리에서 더운 김까지 몰몰 새여올랐지만 차에서 내리고난 뒤면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한 기분이였다.

정오때 주위를 둘러봐도 해빛때문에 그늘을 찾는 사람도 없었고 선글라스를 끼고 빛을 가리는 사람도 없었으며 양산을 들고 거리에서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기후가 서늘했다면 연길의 조선족김치나 발효한 뒤 특제한 밑반찬 또한 시원했고 맵기도 했지만 입맞을 돋구어주었다. 특히 랭면은 한그릇이 배속에 들어가면 온몸의 더운 기분을 삽시간에 몰아내기도 했다. 당연히 생식과 랭식은 조선족료리의 전부가 아니였다. 이름난 장국은 식객들로 말하면 말그대로 따스함이였다. 심지어 한여름일지라도 장국의 매력은 여전했다. 이외 불고기, 돌솥밥, 해물, 개고기, 삼계탕 역시 한입으로 말할수 없는 유혹이였고 미력이였다.

하기에 연길을 찾은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연길은 정말로 천연적인 피서지라고 찬탄하게 될것이다. 기실 연길에서 오래 있노라보면 연길의 여름은 피하기보다 마음껏 향수하는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감각이 들게 될것이다.
  
 
아름다운 고장에서 생활을 향수하는 시민들

연길에 도착한후 도시를 가로지르는 부르하통하강가에 가보지 않을수 없게 된다. 여름날 저녁 부르하통하강변의 미식거리 등에서 연길시민들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비록 연길은 변강지역에 위치해 있었지만 이곳의 경제는 아주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 전 시는 이미 담배, 방직, 의료 및 화학공업, 맥주, 일용유리제조 등 산업을 형성하였으며 련속 여러번 전국 백강현 행렬에 들어섰다.

비록 이곳 사람들의 생활이 절대적으로 부유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시민들은 아주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다. 여름날 저녁이면 시민들은 저녁식사후 집문을 나서 산보하거나 바람을 쏘이거나 낮의 긴장을 풀기도 했고 광장에 가 노래, 춤판에 끼여들기도 한다. 밤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은 강변의 포장마차거나 혹은 여러 스탠드바, 노래방을 찾기도 한다.  연길의 스탠드바나 노래방은 이곳 사람들이 친구간 모임을 갖거나 가족간 모임을 갖는 리상적인 장소였다.

외지사람을 만나면 연길사람들은 언제나 어데서 왔느냐며 열정적으로 묻는다. 그리고 연길을 소개한다. 

연길시 관계자를 취재하는 과정에 우리는 연길시정부가 도시건설에 일관적으로 중시를 돌려오고 시민들의 거주환경개선에 중시를 돌려온 사실을 알게 되였다. 연길시는 거금을 들여 70여갈래 크고작은 거리와 골목을 개조했고 도시 중앙난방시스템을 수축하여 대기질을 개선시키고 음료수 질을 개선하는 등 많은 친시민 사업을 벌려왔다고 한다.

오늘날 연길의 종합적인 경제실력은 부단히 증강되고있고 연길의 교육시스템도 더욱더 완벽화되고있었다. 연길사람들은 지금 더욱더 아름다운 고향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있었다.

연변일보/중국국제방송국 경해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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