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취업제도, 다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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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취업제도, 다시 생각해 보자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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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7일, 나는 중국에 갔다. 고향에서 40일간 체류하는 동안 나는 방문취업제도 관련, 이러저러한 여론을 듣게 되었다. 선후로 무연고동포와 연고동포, 관계부문의 인사들을 만나 보았고 좌담회를 열어 의견을 들어보기도 하였으며 극복해야 할 경향적인 문제점을 찾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란 제목으로 기사를 써서 성급신문에 발표하였고 흑용강성 방송국의 대화방송, 문자방송을 통하여 홍보도 하였다. 어렵게 애써 만들어낸 정책을 잘 지켜나가야 되겠다는 소박한 생각에서였다.

첫째, 재중동포들의 현황

인구분포: 중국조선족은 대체적으로 원인구의 40%가 연해지구, 20%가 한국, 25%가 소성시에 집거하고 있으며 15%가 원지를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흑용강성 오상시 민락조선족향 인구 상황을 보면 1998년 10년 전 조선족 호수는 1,411호, 인구수는 5,669명이었다. 현재 321호에 594명밖에 안 된다. 그나마 노인이 200명이고 농사짓는 호수는 67호이다.

문화교육: 10년 전 오상시는 36개 조선족촌으로 4만 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는 풍요한 조선족 집거지로 32개의 초등학교, 3개의중학교, 1개의 고등학교가 있고, 전성의 유일한 조선족사범학교도 있어 10,000여 명의 학생을 소유한, 흑용강성에서 소문난 교육요람지로 되었다. 현하 오상시 학생 수는 모두 750여 명인데 그중 3개 소학교 학생 수가 300명, 1개 중학교의 학생수가 254명, 1개 고등학교의 학생수가 198명인데, 이것마저 언제까지 유지될지 걱정이다.

심리상태: 타국에서 사는 동포(소수민족)들의 안착심리는 동민족의 집거가 중요한 동력이라 해야겠다. 민족촌, 민족학교의 축소, 해체는 조선족들에게 극심한 불안감을 가져왔다. 집거지로 떠나자는 마음은 조선족들의 주된 심리이다. 한국에 가 돈을 벌어 잘살아보자는 욕망은 어제도 오늘도 변화가 없다. 자유왕래가 실현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은 절대다수 동포들의 소망이다.

현하 조선족들의 불안한 심리는 중국조선족지구의 발전을 크게 저애하고 있으며 민족의 자부심과 우리민족의 좋은 이미지에 손상을 끼치고 있다. 과분한 조급증, 특히 한국정부의 정권교체와 더불어 산생된 방문취업제의 정책이 변할까, 겁내는 심리로 일어난 경쟁적인 출국현상은 방문취업제의 시행에도 불안한 요소를 초래하고 있다.

둘째, 동포정책을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

그간 한국정부에서는 동포를 위하여 많은 정책을 펼쳐왔다. 방문취업제의 시행 1주년을 맞는 현재, 이 정책을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자못 중요한 일이다. 그러자면 정부와 동포들이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방문취업제도를 둘러 싼 여론

“동포를 위한 훌륭한 정책이다!”하고 한국정부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 주류적인 반응이다.

오상시조선족사업촉진회의 이 회장은 ‘방문취업제도 정책의 탄생은 동포들에게 새 힘을 주었으며 자유왕래를 위해 기반을 닦아주었습니다. 우리는 실제행동으로 방문취업정책의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하고 역설하였다.

반면, 정책실행중의 부실한 점에 대하여 불만을 토하며 부정하는 현상도 있다. 응시자격을 받지 못한 무연고동포들이 그러하다. 오매불망 이날을 기다렸는데, 손도 쓸 새 없이 시험자격마저 얻을 수 없다니? 너무 불공평하다고 원망을 쏟아놓았다.   

시정되어야 할 문제점

⑴한국어실무능력시험응시자 등록에서 혼선을 빚어 정책 이미지에도 손상을 준 듯하다. 무연고 신청자에게 주어진 시험제도는 방문취업을 희망하는 무연고동포신청자에게 모두 허용되고 있다. 만약 이런 원칙이라면 미리 시험에 참가할 인수와 장소를 정해놓고 인터넷을 통하여 등록을 실행하기보다 통일된 관리하에 선착순이란 제도를 도입하고 각지의 실제에 맞는 합리한 인수배당이 있으면 정신․물질적 손실을 줄 일 수 있다고 본다.

⑵시험장소, 시험참가 인수배당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동북3성의 시험 장소는 2곳 추가 되었지만 시험생수는 1천 3백 명이나 줄어든 셈이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연고가 희박한 길림성 연변지구의 무연고동포들이 중시를 받지 못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 추가된 연길시 1,000명, 흑용강성 할빈시 1,500명, 광주시 3,000명, 산동위방시 3,000명이란 숫자는 극히 불합리한 배당이라고 생각한다. 오상시 조선족촉진회에서 모집한 신청자 중에서 82명이 등록 되였으나 그중 23명이 본지 시험구에 등록되었고 광주, 락양, 천진, 상해 등 수 천리 떨어진 곳에 등록되었는데 신청자 중에서 9명은 경제상 어려움으로 등록된 당 날에 등록을 취소하였다. 실제상 광주, 상해 등 대도시로 진입하여 취직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사업이 안정되었고 생활환경이 좋은 편이라 무연고정책의 혜택을 줄여도 무방할 것이다.

⑶인터넷등록은 산재지방의 상황을 보면 실제를 떠난 방법으로 신청자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중국의 인터넷의 보급율은 아직 보편화되지 못했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등록해도 될 일을 스스로 하지 못하니 소수자의 돈벌이 기회로 되었다. 2월 20일에는 실제를 떠난 ‘인터넷전쟁’이 벌어졌었다. 여행사, 개인 소개업자, 강습반에서는 PC방을 통째로 임대하였고 대학의 알바생들이 고용되었다. pc방을 많이 임대하였거나 알바생들을 많이 고용한 곳은 등록율도 높았다. 등록선착순으로 한다면 이런 전쟁은 피면할 수 있다고 본다.

⑷정책시행상의 문제점은 사기꾼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혼란스러운 등록이 끝나기도 전에 “3만원만 내면 시험에 합격되어 한국에까지 갈 수 있도록 해줄 터이니 우리 회사에 신청하세요. 돈은 한국에 도착한 후 내면 됩니다.”하고 유혹한다. 좋은 정책이라도 시행 부실로 브로커들에게 틈 탈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등록에서 대상자가 아닌 타민족에게도 위조신청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⑸방문취업제의 시행관리가 정부가 아닌 여행사, 개체업체 등 단순이윤을 추구하는 단체들이 주체가 된 것은 신청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조직적 기초가 되었다고 본다. 반드시 각급 정부의지도 밑에 통일된 관리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정대책에 대한 건의

⑴정책시행에서 원칙성과 일관성을 견지해야 한다. 정권이 교체된 후 지난 정권 때의 일련의 정책이 견지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대다수 재중동포들의 관심사이다. 새 정부는 반드시 지난날의 동포정책을 잘 점검해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

⑵정책시행에서 관리를 가강해야 한다.

첫째, 반드시 통일된 관리가 있어야 백성들이 편안히 정책을 향수할 수 있다. 방문취업제도 정책을 중국 측에서 누가 관리하는 가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층에서 누가 일을 맡아하는가 하는 것은 정책을 발전시키고 수호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중국정부 소속에는 민족사무위원회(민족종교관리국)란 부처가 있다. 동북삼성의 민족사무위원회는 기본상 조선족사무를 처리하기 때문에 “조선족 정부”라고도 한다. 8~90년대 외국 노무수출을 맡아 처리한 경험이 있다. 조선족 실제를 잘 알고 있는 “조선족 정부”가 맡아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위에서 얘기 했듯이 관계 부문에서 책임지고 신청을 받아 배당된 인수에 따라 선착순으로 절차 있게 등록시켜 준다면 신청자의 불안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시험장소, 참가인수는 등록 명단이 확정된 후 기초정황에 근거하여 선착순으로 확정되어야 불합리한 폐단을 극복할 수 있다.

⑶동포들의 책임감을 높여야 한다. 정책에 대한 이해부족, 자신의 작은 이익을 앞세운 급진적인 조급성, 맹동성과 자유성은 정책자신의 순활한 실행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동포들의 안정되지 못한 모습은 한국정부의 불안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좋은 정책을 바라는 동포들은 마땅히 정책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동포 자신들의 금후진로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⑷ 하루속히 자유왕래를 실시하여 동포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다수의 재중동포들은 한국에 마음을 두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방문취업제도를 더 개방하거나, 혹은 자유왕래를 실행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고국내왕을 할 수 있다면 동포사회도 안정될 것이고 동포들도 자기 실제에 맞게 진로를 결정할 것이다.

오상시민락조선족향 동광촌의 여성촌장 최씨는 동포들이 맡겨놓은 180헥타르의 땅을 지키고 있다. “자유왕래가 시작되면 많은 동포들이 제 땅을 찾아와 농사를 지을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나도 한국으로 시집갈래요.” 하고 웃으며 소망을 얘기하였다.

2008년 3월 15일

귀한동포연합총회장 김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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