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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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호의 전화를 받으며 동현이는 화를 내고있었다.
    <<임마. 너 정신이 있는거니? 어데 가면 간다고 소식이나 주고 가는거지 실종이 뭐니? 다 죽었는가 했다... 한국에 정준태사장이 너를 만나보고 간다고 기다린지 며칠 됐다. 진소리 말고 당장 내 사무실로 들이닥쳐라!...>>
    <<나 너하고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어...>>
    창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현이의 목소리가 멍멍하게 울려왔다.
    <<조용하던 소리지르던 만나야 할게 아니야? 어서와라!...>>

    창호가 택시를 잡아타고 동현이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에는 사무실에는 동현이 혼자 있었다. 창호가 이상해 물었다.
    <<직원들은 어디 갔니?>>
    동현이가 씨익 웃었다.
    <<너 조용히 할 말이 있다면서? 그래서 저녁이나 잘 먹으라고 돈주어서 보냈다.>>
    창호는 피로한 몸을 쏘파에 던졌다. 동현이를 정작 만나고보니 하고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였던지 어리벙벙했다. 동현이가 물고뿌를 가져다 창호에게 내밀었다. 전화에서 야단을 하던 동현이 같지 않게 측은한 기색이 흐르고있었다. 한동안 창호를 물끄럼히 쳐다보던 동현이가 참지 못하겠는지 물어왔다.
    <<너 련애를 한거구나? 그렇지?>>
    창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한숨을 쉬였다.
    <<아마 그런것 같아.>>
    동현이가 턱을 쳐들며 음 했다.
    <<그렇게 심각하냐? 실종이 될 지경으로?>>
    <<네가 어떻게 내가 경희를 찾아간걸 알아?>>
    동현이가 피씩 했다.
    <<박수일이 있잖아? 전화가 왔더라. 경희가 갑자기 실종이 되였다고. 그런데 너까지 없어졌으니 그럴거라 생각한거야. 처음에는 두사람 사통하다 어디가서 살림이나 차리러갔는가 생각했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너 성격으로는 그럴거는 같지 않았어. 어떻게 된거야? 그렇게 심각했니?>>
    창호는 박수일이 전화가 왔더라는 말에 저으기 놀랐다.
    <<박수일이도 경희가 어디로 간걸 몰랐대?>>
    <<알고있는것 같지 않더라. 널 묻길래 모르겠다고 했다. 아마 집으로 돌아갔을거라고 했지.>>

    창호는 경희가 왜 갑작스런 사직을 하고싶었는지 점점 더 오리무중이였다.
    동현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만나고 왔니?>>
    <<응.>>
    <<어디로 간거니?>>
    창호는 상세하게 말하고싶지 않았다.
    <<그건 묻지 마.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으니까... 술 있니? 술 마시고싶다.>>
    동현이가 두손을 벌려보였다.
    <<여긴 사무실이야. 마시고싶다면 바아라도 가자. 여기 호텔 바아도 괜찮으니까>>
    <<고맙다. 너 애먹이는것 같아 미안하다.>>
    <<무슨 소리니? 너 지금 상통이 뭔지 알아? 지옥에서 온 사람같아... 가자.>>
    둘은 호텔의 바아로 내려갔다. 서구풍의 인테리어가 위압감 있게 엄엄했다. 동현이가 바의 카운터로 다가갔다.
    <<전번에 마시던 발렌타인 가져와요.>>
    조금 지나자 보이가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 술을 부으며 동현이가 물었다.
    <<너 경희 정말 좋아한거니?>>
    창호는 동안이 지나서 대답했다.
    <<그런것 같아.>>
    동현이는 권하지도 않고 술을 마셨다.
    <<너도...>>
    동현이는 갑자기 말을 끊었다. 창호는 동현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려나 기다렸으나 하회가 없었다.
    <<왜?>>

    동현이는 다시 술 한모금을 마셨다.
    <<난 너 리해가 안된다. 경희가 정말로 좋은 녀자라고 치자. 그렇지만 그러면 너 안해는 어쩌고 자식은 어쩔 생각이니? 경희하고 결혼이라도 할 생각을 했니?>>
    창호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랬는지도 몰라.>>
    동현이는 조소하는듯한 눈길로 창호를 바라보았다.
    <<너 아직도 구식사유를 하고있는가 봐. 무슨 피해의식이라도 있니? 무얼 얻고싶은거니? 사랑이니?>>
    <<사랑이라고 할수도 있었어.>>
    <<너 나이 얼만지 생각해보았니? 경희한테도 어린애가 있어.>>
    창호는 경희에게 박수일과 사이에 난 딸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알고있어. 첫날 만나는 날 박수일이 경희하고 물을 때 아마 딸을 묻는거 아닐가 하는 감이 있었어. 후에 경희가 이야기도 했고.>>
    동현이는 입귀를 들며 미소를 지었다.
    <<알고있었음 더 망태기야. 사랑이 뭔데? 책임도 있다는걸 생각해 보았니?>>
    창호는 이 모든것을 생각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그렇게 심각하고 랭정하게 사고한적은 없었다.
    <<모르겠어. 지내다보니까 그렇게 빠지게 된거야. 걷잡을수가 없었어.>>
    <<어이쿠! 우리 시인이 정말 시적인 랑만에 빠진거로군!>>
    동현이의 어투에 빈정거림이 섞여있었다. 창호는 동현이의 빈정거림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한숨을 지었다.
    <<다 끝났어. 사랑이고 랑만이고 지랄이고...>>
    동현이가 몸을 당겨오며 물었다.
    <<끝나다니?>>
    <<그래 이젠 모든것이 다 끝났어. 그것이 사랑이였대도 좋고 어리석은 랑만이래도 좋고 지랄이라도 좋아. 다 끝났어.>>

    동현이는 리해가 안된다는듯 다잡아 물었다.
    <<이번에 가서 만났다면서?>>
    <<만나기야 했지. 그것으로 끝난거야.>>
    동현이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목을 탈았다.
    <<네가 끝내자고 한건 아니겠고, 경희가 그렇게 결정한거니?>>
    창호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나도 무어가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어. 찾아가니 만난것에 리유가 없듯이 헤여짐에도 리유가 없다는거야. 말이 먹혀들어가지 않았어. 무조건이야. 무작정 밀어던지는거야. 남자 자존심에 욱 하고 화도 치밀었지만 도저히 만나주지 않는거 있잖아...>>
    창호는 바다가에 하던 고민과 찡관스님을 만난 과정을 생략했다. 친구앞이라도 약했던 자기의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친구앞이여서 그런지 서러움같은것이 치밀어올랐다.
    동현이는 더 묻지 않고 위스키를 홀짝거렸다. 그도 무엇이 어떻게 된것일가고 생각하고있는 모양이였다. 동안이 지나 동현이가 입을 열었다.
    <<너 진실했구나?>>
    창호는 머리를 숙였다.
    <<사랑인데 진실하지 않으면 되니?>>
    <<정말 사랑이라고 믿고있은거니?>>
    동현이는 더 묻지 않았다. 창호는 경희에 대한 쏠림이 과연 사랑이였을가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옳았을가? 창호는 부정할수 없었다. 경희를 사랑한다고 확신하고있었고 만일 경희가 결혼을 요구해 온다면 그것을 받아주겠다고 생각한적도 있었다. 이 순간에도 창호는 자기가 어디가 잘못되였는지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다만 끝없는 배신감이 그를 괴롭히고있을 뿐이였다.
    <<나 절에 가서 스님이라도 되였으면 좋겠어.>>
    창호는 찡관스님을 생각하고있었다. 지금의 이 마음같아서는 그런 결정을 내릴수도 있을것 같았다. 동현이가 창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너 지금 잘못되여도 한참은 잘못된거야. 중이 된다고 해탈이 될것 같니? 너 너무 진실한게 문제인거야. 구세대의 사유방식에서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어. 우리 햐향했던 세대는 다 그런 본새야. 사랑이고 진실이고 사회적책임이고... 신물나지 않니?>>
    <<그렇다고 진실을 버릴수는 없지 않니?>>

    동현이가 픽 했다.
    <<진실? 뭐가 진실이였니? 너 문화혁명때 상대방에게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두르고 총을 쏘면서 그것이 가짜라고 생각한적이 있었니? 무고한 사람들이 피흘리고 매맞아죽을 때 그것이 가짜라고 생각했었니? 농촌에 가 재교육을 받는다고 농사를 지으며 땀을 흘릴 때 이것은 모두 가짜다 라고 해본적이 있니? 모두가 진실이야. 네가 지금 경희를 사랑하고있다고 믿는것처럼...>>
    창호는 동현이와 쟁론하고싶지 않았다. 그랬다. 그 모든 옛날이 진실했던것만은 사실이였다. 모두를 거짓으로 몰아붙이기에는 지나온 인생이 쌓아온 모든 것이 너무나도 아름찼다.
    <<너의 말이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랬기에 한번이라도 진실하게 사랑하고 진실하게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희생을 하고싶었어.>>
    동현이는 측은한 눈길로 창호를 바라보았다.
    <<나도 널 바보취급하자는건 아니다. 어떻게 지내온 세대들인데... 어렵게 오늘을 이룩해놓은 우리도 실은 우리 세대로 보면 행운인거야. 그만 두자. 경희고 사랑이고 다 나발이라고 해라. 지금부터 열심히 살아보는거지뭐. 그렇지 않니?>>
     창호는 동현의 말속에 들어있는 련민을 감촉했다. 감사한 마음이 솟구쳤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정리가 되겠지.>>
     <<우리 세대의 우점이 뭔지 아니?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거야. 이 점에서는 우리가 다른 세대보다 상위인거지? 그렇지?>>
     <<그렇기도 해. 만일 과거의 실패와 실의와 좌절이 없었다면...>>
     창호는 바다가에서 하던 생각을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때 카운터의 아가씨가 사뿐사뿐 그들에게로 걸어와 동현이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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