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한라문예]

시력없는 어머니의 망막에 뭔가 맺혔을까

"눈이 온다 잔" 걸음않던 고향엘 가야겠다니

이상기후는 없으리라던 내 삶도 빗나갔다


나는 안동에서 사북까지 이어진 국도를 두고, 봉화를 거쳐 사북으로 가는 지방도를 택했다. 이 길을 지나오던 때 스무 살이었던 어머니. 스무 살, 꽃받침이 대궁을 힘겹게 밀어 올려 꽃잎이 막 피어나는 나이가 아닌가. 윤기 없는 반백의 어머니에게서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걸음마를 떼는 나를 상상하는 것보다 생경하다. 오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뭐하나 그대로일까만, 이참에 어머니가 길이라도 거슬러보게 해드리고 싶다.

어제 아침, 어머니는 난데없이 꽃끼끼재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저 지나는 말로 언젠가는 갔으면 하는 게 아니었다. 내일 당장 나하고 함께 가자는 말이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반신불수인 아버지를 두고 한갓질 때도 않던 나들이 타령이라니. 하기야 큰어머니가 계시니 어머니가 한나절 집을 비운들 문제될 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공연히 심사가 뒤틀리고 말았다. 어제로 나흘째인 남편의 외박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탓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델 뭣 하러 가시게요?"

나는 단박에 거절의 뜻을 담아 거지반 소리를 지르듯 했다.

"정히 안 되겐?"

내 통박에도 아랑곳없이 어머니의 목소리는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칠순을 이태 앞둔 노인네의 뜻 모를 간곡함에 순간 내 속에 불안감이 괴어들었다. 스스로를 홀대하는 양 평생 당신을 위해선 뭘 구하거나 가지려 드는 법이 없던 양반이 어쩐 일로. 불안은 곤두선 신경을 슬그머니 누그러뜨렸다.

"그러지 말고 날 풀리면 오빠네랑 다 같이 가요."

나는 절충안을 내놓으며 마치 아이를 을러대듯 말했다.

"정히 안 되겐?"

어머니는 서운한 기색도 없이 아까 같이 되풀이 했다. 낮은 어조에서 결연함이 느껴졌다.

"그게 아니라 아직 날도 찬데 거길 왜 가시려구요? 그렇잖아도 허리도 덜 좋다면서 좀 기다렸다가 꽃 필 때 가면 낫잖아요."

"느 번거로운 줄 내 모르겐? 엊저녁 꿈에 아부제가 거게 눈이 온다 잔. 눈이 온다 잔."

거기에 눈이 온다잖니 눈이 온다잖니, 어느새 나는 속으로 어머니의 말을 되뇌고 있었다. 숫눈 위에 하염없이 눈발이 더해지는 봉우리가 그려졌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는 숨죽이며 저 쪽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날숨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는 눈가루를 쓸어 산중으로 몰고 다니는 바람소리를 연상시켰다. 그제야 나는 어머니가 정말로 예사롭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먼저 연락 하는 일이 드문 분이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온 데다, 여지껏 한번도 걸음을 않던 고향엘 가야겠다니. 그것도 눈 때문에.

오싹한 느낌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어머니의 생활반경이라곤 집안과 거름더미가 있는 집 앞 채마밭이 전부인데. 급조된 내 상상력은 어머니 심중의 어떤 변화와 건강상의 문제로 점쳐졌다. 어머니는 지난 겨울 오지항아리 속 식혜가 잘 삭았는지 살피려다가, 응달이 진 얼음이 덜 녹은 자리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허리를 삐끗했다. 그뿐, 외소한 몸에 비해 이렇다 할 잔병하나 없던 분이다. 자연스레 내 추측은 심경의 변화 쪽으로 기울었다. 만약 그렇다 해도 어머니의 살아온 내력으로 보자면 놀랄 일이 못된다고, 나는 억지스레 나를 안심시켰다.

어머니는 그곳 사람들이 꽃끼끼재라고 부르는 사북의 화절령 마을에서 안동으로 시집을 왔다. 광부 홀아비의 무남독녀인 스무 살짜리 눈 먼 처녀. 어머니가 사지 멀쩡한 아버지에게 시집을 온 건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행운은 달포를 넘기지 못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본실이 있는 집에 첩실로 온 것임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 그 순간부터 어머니는 면벽하며 사흘 동안 곡기를 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당신의 또 다른 기구함을 누군가를 향해 시위조차 하지 않을 순 없었을 것이다. 나흘째 되던 아침, 어머니는 며칠 몸살을 앓고 난 사람처럼 시부저기 일어나 보리쌀을 씻었다고 했다. 어머니로선 불가항력의 운명을 무저항으로 맞선 셈이다.

▲삽화=오승익(서양화가)
시력이 없는 어머니의 망막에 무엇이 맺히는 걸까? 룸미러에 비친 어머니는 차창에 코끝이 닳을 정도로 바짝 기대어 있다. 고개를 외로 틀고 바깥의 뭘 자세히 보려는 것처럼 손바닥으로 유리를 문지르고 있다.

내려오길 주저하는 듯 눈발이 천천히 흩날리고 있다. 운전석의 디지털 시계를 보니 오전 9시47분이다. 오후 늦게부터 강원산간지방에 눈이 내리겠다던 어제 저녁뉴스의 일기예보는 빗나간 셈이다. 이상기후는 없으리라 자신했던 내 삶도 빗나가고 있다. 빗나갈지언정 예보조차 없었다.

남편의 전처와 그녀가 키우고 있는 남편의 아이 둘. 결혼 전에 이미 나는 그들의 존재를 알았다. 남편이 매달 양육비로 적지 않은 돈을 전처에게 보내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도 불쾌하지도 않았다. 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결혼의 전제이자 요구를 남편이 어렵잖게 받아들인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버지로서 남편에게 남겨진 책무가 그것으로 전부라면, 내가 괘념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전자제품 대리점 운영이 괜찮아 양육비를 주고도 남편은 웬만한 월급쟁이 월급을 웃도는 생활비를 가지고 왔다.

그는 무난한 남편이다. 특별히 자상하진 않아도 무뚝뚝한 정도는 아니었다. 내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챙기고, 휴일이면 마트에서 내가 고른 물건을 받아 카트에 실으며 불평 없이 따라왔다. 건강검진결과 혈압이 높게 나와, 담배를 끊으라고 하자 그날부로 두말없이 끊을 만치 부인 말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알았다.

아이가 없는 탓이겠지만 점점 둘 사이에 대화가 줄어들기는 했다. 대신 갈등의 소지도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니 나는 그것도 나쁘게만 여기진 않았다. 거기다 육아에 매이지 않는 만큼 나를 위한 여가를 누렸다.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 수영장에서 매일 수영을 하고, 수요일에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생활영어를 배웠다. 오늘 날씨는 어떤가요? 당신은 정말 좋은 분이군요, 정도의 문장을 복습하는 수준이었다. 그 시간은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확인 작업으로서 필요했다. 무난한 일상. 내 나이쯤의 여자에게 무난함은 행복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행복은 그 정점에서 무참히 깨지는 이면적 속성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어째서 불행의 전령은 물색없이 평소보다 행복한 시간에 찾아드는 걸까.

그날은 서른아홉 번째 맞는 내 생일이었다. 남편은 고급레스토랑에 예약을 해두었다며 아침부터 특별한 저녁을 예고했다. 안심스테이크는 혀에서 아주 잠깐 머물다 미끄러지듯 넘어가고, 레드와인은 유혹하듯 짜릿하게 혀끝을 감돌다 우아하게 목을 적셨다.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고, 등받이가 긴 앤틱 의자는 안락했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남편에 귀에 대고 내가 장난스럽게 속삭이자, 그는 아주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식탁 아래로 내린 손으론 딱딱 소리가 나도록 손마디를 꺾고 있었다. 긴장할 때 나오는 남편의 습관이었다. 어느새 그의 시선은 반쯤 남은 와인 잔으로 옮겨가 고정되었다. 내게 청혼하던 순간 같았다. 절로 나는 약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애들 엄마가 췌장암이래. 병원에선 달리 손 쓸 방도가 없는 지경이라는군. 길어야 서너달 남았다는데…."

반복해서 외운 문장을 읽듯 감정을 섞지 않으려는 짐짓 건조한 말투였다. 청혼을 받은 순간처럼 내 말문이 막혔다.

"애들 외할머니가 병구완을 하는 모양인데. 알다시피 그게 점점 사람 꼴이 험해진다니. 그 사람이 아픈 모습을 애들한테 보이고 싶지 않다고…. 조만간 애들을 내가 데리고 와야겠어."

상의의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닌 결정된 통보임을 꽉 다문 입술과 힘이 들어간 눈빛이 충분히 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선요?"

"아버지니 내가, 아니 우리가 키워야지."

"당신은 아버지라서 그렇다지만, 그럼 나는요? 나는 그 애들 엄마가 아닌걸요."

결국 뒤얽히고야 마는 건가. 나는 머릿속으론 그런 생각을 하며 빈정거렸다.

"말이 어째 그래? 내 자식이니까 당신 자식도 되는 거 아닌가? 애들 엄마가 얼마 못 산다잖아.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그런 걸 따져야하나? 순리대로 풀자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몇 달 후에 죽을 여자가 그 애들 엄마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 거죠? 내가 왜요? 나는 그 노릇 못해요."

나는 옆 테이블의 남녀가 힐끗거리건 말건 악악댔다. 남편은 감정을 애써 누른 그러나 분명한 경멸이 담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도 지지 않고 그와 같은 눈으로 맞받았다. 좀 전의 평화로움 대신 팽팽한 냉소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순리라니… 대체…. 차라리 딴 여자가 있다는 고백을 듣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눈치 없는 친척처럼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산뜻하게 퇴장하는 일이 내겐 더 기꺼울 테니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을 뿐, 남편은 내게 미안한 기색이 아니었다. 당당하기까지 했다. 아버지도 그랬다. 두 어머니와 한 집에 살면서도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주눅 드는 법이 없었다. 결혼이란, 아니 남자란 상황에 따라 두 여자를 거느려야지 않느냐는 얼굴이었다. 남들과 다른 가계 때문에 오빠가 원하던 여자와 결혼하지 못했어도, 내가 맞선에서 번번이 퇴짜를 당해도 면목 없어 한 적이 없었다. 집집마다 사는 법이 따로 있능기다, 느들이 어데서 뚝 떨어진 게 아닌 것만 맹심혀라. 외려 아버지는 어깃장을 놓듯 쇄기를 박았다.

"밖에 눈이나?"

사람들은 없는 시력 대신 어머니의 청력이 보통사람보다 발달 됐으리라 여긴다.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는 지금 보풀보다 가벼운 눈이 땅 위에 안착하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뭘 망설이는 양 눈발이 느릿느릿 내려오고 있다. 그나마도 땅에 닿은 순간 형체도 없이 스러져버린다.

"이제 막 내리기 시작했어요. 속은 좀 어떠세요? 어디서 잠깐 쉬었다가요?"

"나두어. 여게 창문이나 좀 열구. 찬바람 좀 쐬게."

엄마를 '친척아줌마'로 부르던 오빠의 거짓말

항상 다른 존재를 의식해야 했던 두 어머니

오늘은 왜 이렇게 지난 일들이 떠오르는 걸까



대구에서 오빠와 올케언니가 집에 내려오면 두 어머니를 모시고 미용실이나 공중목욕탕에 다녔다. 시내라야 자동차로 20분이면 닿으니 평소에는 전혀 차를 타지 않는 어머니도 별다른 탈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래도 속이 불편한가보다. 나는 어머니 쪽의 창을 조금 내렸다. 목도리를 풀면 거북한 속이 좀 덜하련만 어머니는 도무지 그럴 눈치가 아니다. 차에 오르기 전에 큰어머니가 둘러 준 연보라색 케시미어 목도리다. 전에 오빠가 영국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큰어머니께 사다 드린 것이다. 오빠는 기왕에 어머니 것도 사오지. 어차피 외출도 잘 안 하시는데 뭘. 내 면박에 오빠가 너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서 내가 어처구니없어했던 기억이 있다.

오빠는 어머니에게만 유독 인색하게 군다. 그게 어디 오빠 탓이기만 할까. 어쩌면 우리집 특유의 생활방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앞을 보지 못해도 어찌 그리 능숙한지 집안 살림을 도맡아했다. 대신 아버지와 함께 밭일을 하거나 우리를 챙기는 건 큰어머니의 역할이었다. 게다가 큰어머니는 오빠가 대구로 나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따라가서 뒷바라지를 했다. 그래선지 오빠는 어머니보다 큰어머니에게 강한 모정을 느끼는 듯 했다. 간혹 표 나게 큰어머니에 대한 각별함을 보일 땐, 일부러 어머니를 서운하게 하려고 그러나 싶을 정도였다. 오빠는 정말로 어머니를 가까운 친척쯤으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오빠가 중학생일 때였다. 어쩐 일로 오빠가 읍내에 사는 친구 둘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침 아버지와 큰어머니는 밭에 가고, 어머니와 나만 집에 있었다. 어머니는 계란프라이에 간고등어까지 구워 올린 밥상을 차렸다. 오빠는 마루 끝에서 호마이카 밥상을 뺏듯이 어머니에게서 받아들었다. 나는 볕이 잘 들어오는 마루 끝에서 종이인형의 옷을 갈아입히고 있었다. 오빠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어 오빠 목소리가 들렸다. 알 거 없다, 친척아줌마야. 오빠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나는 단박에 알아챘다. 종이인형을 손에 쥐고 나도 모르게 방문을 열었다. 우리 엄만데, 오빠는 왜 거짓말을 하노? 큰소리로 따지는 내 말에 오빠는 목까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숟가락질을 할 뿐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한건 지 깨닫지 못했다. 밥만 먹고 오빠 친구들이 돌아가자 오빠는 나를 방으로 질질 끌더니 다짜고짜 마구 주먹질을 했다. 내가 얼마나 큰소리로 울었는데도 어머니는 알은척도 하지 않았다. 밖에선 방망이로 빨랫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때론 거짓말을 지적하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더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걸, 어린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런데 어쩌자고 아픈 기억은 옅어지지도 다른 기억과 섞이지도 않는지.

어느새 놀랍도록 덩이가 커진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차창에 내려와 앉는 눈이 시야를 가리고 있다.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수문이 열리자 갇혀있던 물이 쏟아지듯, 빠른 속도로 눈이 내려온다. 추월하는 하는 차도 앞서 가는 차도 없다. 다들 자리를 피해주고 풍경만 우리를 기다려 온 기분이다. 거북하지 않은 침묵이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대체 부모자식이란, 또 부부란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이혼을 했어도 자식을 둔 사이는 아주 남이 될 순 없는가보다. 평생 각별한 친척쯤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건가. 남편은 지금, 그 여자의 병상을 지켜주고 있을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여자. 그녀 인생의 복병인 암세포가 종국엔 내 복병으로 옮아오려 하고 있다. 남편에 대한 반감보다 잔명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에게 나는 터무니없는 굴욕감을 느낀다. 내 몸에 손 하나 대지 않고 나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어리석은 소모전인지도 모른다. 운전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온통 내가 빠져있는 남편의 가족 풍경으로 꽉 차 있다.

정오가 가까울 뿐인데 사위가 해질녘처럼 흐리고 어스름하다. 눈송이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가벼운 것도 결속하면 무거워지는 법이리라. 룸미러에 내 얼굴을 비춰보니 눈 밑에 푸르스름한 그늘이 수심(愁心)처럼 앉아 있다.

"사방이 꾸물 하제? 안즉 시간이 마이는 안 됐제?"

어머니 목소리가 으늑하다. 멀미기운이 좀 잦아든 모양이다. 빛이 제 꼬리를 다 거두지 못하고, 어둠이 막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있는. 낮과 밤의 근위병이 교대식을 위해 함께 서 있는 것 같다. 나는 바깥의 명도를 응시하며 그때를 떠올렸다.

"전에 말이에요. 겨울이면 어머니가 정아 가서 무꾸 하나 꺼내 온, 정아 가서 무꾸 하나 꺼내 온 했었어요. 오빠가 소죽솥이 걸린 아궁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마른 깻단을 뒤적이고 있는데도,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나를 꼭 몇 번이나 불렀잖아요."

"그걸 여태 기억하고 인?"

"지금 막 생각이 났어요. 그때는 겨울이 어찌 그리 추웠던지 뒤란까지 가는데도 볼이 다 얼얼했어요. 구덩이 입구를 덮었던 짚 가마니를 옆에 밀쳐놓고, 엎드려서 무를 꺼낼 때마다 볼에 닿던 가마니의 까칠한 느낌이 지금도 생생해요. 겨울이 깊어갈수록 구덩이는 자꾸만 깊어지고, 구덩이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언제부턴가 손끝에 무가 닿지 않았어요. 도리 없이 그때부턴 구덩이 속으로 고개까지 쑥 집어넣어야 했어요. 눈은 질끈 감은 채 팔만 이리저리 내저었어요. 무 말고도 뭔가 다른 게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아 섬뜩하고 무서웠어요. 그걸로 겨우내 양미리찌개, 청국장, 무국을 끓여주셨잖아요."

"별걸 다 기억하고 인. 느는 어린기 싫은 내색 한번 없었지. 내 속으로 낳았어도 창이 에비는 어릴 때부텀 어렵기만 하던기. 만문해서 느를 시켰지 아핸? 이름을 부르고 싶기도 했구. 내사 밥하고 집이나 치우고 했지 어디 느들 이름을 심껏 불러 보기를 핸."

옅게 웃음을 짓는 어머니 눈가에 잔주름이 잡혔다. 어머니답지 않게 속내를 드러내는 모습이 낯설다. 웃음조차도 낯설고 아프게 다가온다. 생각 없이 내가 어머니의 아픈 내력을 캐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어머니는 내 이름을 편하게 큰소리로 부르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저 제자리에서 맡은 일만 하는 묵묵한 하녀처럼 부엌이나 수돗가, 장독대를 오가며 늘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다. 내 손을 잡고 운동화를 사러 시장에 가거나, 학교 소풍에 따라 오는 이는 언제나 큰어머니였다. 당연하면서도 이상하고, 이상한데도 당연했다. 하긴 이상하면서도 당연한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드라마나 책에서처럼 서로를 비방하거나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본실과 첩실의 행태는커녕, 어머니와 큰어머니는 소소한 부딪힘도 없었다. 흡사 의좋은 자매로 보일 지경이었다. 한 집에 사는 식구가 아니고선 짐작조차 어렵겠지만, 표면이 잔잔한 그 고요는 무수한 소란을 속 깊이 눌러서 쟁인 것이었다. 두 어머니 사이에는 꼭 집어 들어 보일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것은 단연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자의 심리전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그 기류는 늘 오빠와 나를 두고 팽팽한 긴장이 유지됐다. 그 팽팽함은 가끔 사소한 곳에서 맥없이 헐거워지고 풀어져버렸다. 방과 후, 내가 엄마 하고 부르며 대문을 들어서면 자주 어색한 상황이 펼쳐졌다. 두 어머니가 동시에 대답을 하거나 두 분 모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항상 다른 존재를 의식해야 하는 고단한 신경. 그것이야말로 두 여자, 아니 두 어머니의 숙명적인 존재 방식이었다.

▲삽화=오승익(서양화가)


그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하늘과 땅의 경계도 희뿌옇다. 아까보다 시정거리가 짧다. 나는 속도를 좀 더 줄이고 헤드라이트를 켰다. 길 양변에 눈을 맞은 키 작은 침엽수들이 서 있다. 인적 없는 눈길은 고즈넉하다. 처음 지나는 길과 풍경이 그다지 낯설지가 않다.

저만치에 하얀 지붕들이 보인다. 마을 어귀에 차를 세워야겠다.

"결명자차 담아온 거라도 마시고 쉬었다가요."

"약은 때 맞춰 드셧능갉."

내 말에는 대답도 않고 어머니는 아버지 걱정을 한다. 약은 두더지 고운 물을 말하는가보다. 어머니는 무슨 정으로 아버지를 위해 이다지 곡진할까. 어제 일이 떠올라 나는 속이 다시 아리다.

방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 아버지가 상체를 일으키는 시늉을 하다 다시 누웠다.

"개설 때 왔다갔는데 우예 또 왔노? 니 혼자 왔나?"

나는 대답 대신 담요 속으로 손을 밀어 넣어 아버지 다리를 가만히 주물렀다. 내복 위에서도 가늘어진 다리가 손끝에 확연히 느껴졌다. 담요 밖으로 아버지의 발이 나와 있다. 살집이 없어 더 두드러진 정맥, 쪼글하게 살갗이 눌린 복숭아 뼈. 저 발로 땅을 딛고 서른 마지기 고추농사도 거뜬히 짓던 분이 이젠 혼자선 거동도 못한다. 나는 새삼 가슴이 저려 코끝이 시큰거렸다. 아버지가 뒤척일 때마다 꽃무늬 담요의 털이 울었다. 꽃잎이 바람결에 슬며시 누웠다 일어나는 듯 했다.

"저번에 사온 하얀가루 묻은 빵 맛나드만 안 사왔는갑따."

지난 가을에 쓰러진 이후 아버지는 전에 없이 단것을 찾았다. 전에는 밥 한 공기도 꼭 몇 숟가락씩 남길 정도로 소식하고 군입거리도 즐기지 않던 분이었다. 그제야 나는 빈손으로 왔다는 걸 알고 겸연쩍어졌다. 아버지는 벽을 향해 상체를 틀고 누우며, 부러 서운함을 과장했다. 그것도 전에 없던 아버지식의 엄부럭이었다.

못 보던 액자들이 보였다. 굳은 표정의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무표정에 가까운 큰어머니와 눈을 감은 어머니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흑과 백이 빛의 속도로 만난 찰라가 낳은 얼굴들은 단지 종이 위의 음영처럼 보였다. 자신들의 영정용 사진 앞에서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잠을 잔다니. 나는 안쓰러운 세 노인에게서 형용하기 어려운 섬뜩함을 느꼈다.

"설아래 사진 배운다카는 대학생들이 와서, 마을회관에다 사진관맨키 차리 놓고 공짜로 찍어준다 캐서…."

내 눈치를 살피며 변명하는 큰어머니의 입가에 깊은 주름이 선명했다.

"무슨 냄새예요?"

나는 괜히 딴청을 부리느라 아까부터 나던 씁쓸한 냄새에 대해 물었다.

"두더지탕 맹긴다꼬 엄나무 쌈능기따. 아부지 병에 좋다꼬 저 사람이 저래 정서이따. 대추, 밤, 마널, 생강에 인삼까지 구했떠라. 저 물에다 같이 넣고 따린다꼬."

하필 두더지라니. 어머니는 평생 그런 소릴 듣고서도 아버지를 위해 두더지를 고우고 싶은 걸까.

두더지 거턴 년! 아버지는 술이 많이 들어가거나 밖에서 언짢은 일이 있으면 어머니에게 이유도 없는 손찌검을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를 향해 퍼붓는 욕은 늘 똑같았다. 어머니는 땅속에 매복하고 있는 두더지처럼 웅크린 채 신음도 없이 매질을 고스란히 당했다. 오빠는 왜 아버지를 말리지 않는 걸까, 큰어머니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어린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꽉 틀어막은 채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는 억지 잠을 청했다. 눈가와 광대뼈에 시퍼렇게 멍이 든 어머니를 봐야하는 아침이 오는 게 죽기보다 두려웠다. 다음날 아침마다 나는 어머니가 보지 못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내 원망의 대상들은 이미 가련한 모습이었다. 나는 사각 액자 안의 어머니를 오래 응시했다. 땅 속의 습기를 다 머금은 것처럼 어머니의 눈동자가 눈꺼풀 속에서 젖어있을 것만 같았다.

"큰어머니가 어련히 잘 챙기실라구요!"

나는 무거워지는 마음을 어쩔 줄 몰라 어머니를 향해 건짜증을 냈다. 어머니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내 마음에는 이미 후회가 밀려들고 있다.

"죽는 날까지 눈 뜨고 싶잖다. 눈 뜬 봉사가 될 순 없잔"

어머니의 눈물이 잘 고운 뽀얀 두더지탕 국물 같다



부딪힐 때의 통증은 이미 다 잊었는데 뒤늦게 옅은 멍이 남은 무릎을 발견할 때가 있다. 십년 너머의 다 잊힌 아득한 일인데, 오늘은 왜 이렇게 지난 일들이 잇따라 떠오르는 걸까. 억지로 여민 감정이 파편에 찔리자 분출구를 찾은 양 솟구쳐 오른다. 진정하려해도 아귀가 풀어진 가슴의 떨림은 좀체 잦아들지 않는다.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스멀스멀 물이 고인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앙 다물자 어금니 주변의 근육이 얼얼하다.

"설사 아가씨가 우리 아들 애를 뱄다고 해도 나는 절대 못 받아들여. 내가 끼고 살다가 총각귀신을 만드는 한이 있어도 그런 집하고는 사돈 안하고 말지. 이놈은 어디 여자가 없어서 근본도 없이 칡넝쿨처럼 얽히고 설킨 집구석이야!"

회사 앞 찻집으로 나를 불러낸 눈매가 날카로운 오십대 후반의 여자는 가뭄 뒤 소나기처럼 단숨에 쏟아 부었다. 나를 쏘아보는 경멸을 숨기지 않는 서슬 퍼런 눈을 보며 나는 결심했다.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면 결혼 따윈 하지 않겠다고. 우리집이 평범했다면 시어머니가 될 뻔했던 그녀 덕분에 '어머니' 라는 단어와 직무에 대한 내 버성김을 깨달았다. 두더지도 제 시야만큼만 깜깜함을 보기 때문에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내 시야를 벗어나는 삶을 쳐다보지 않으리라, 그렇게 살아가리라 마음먹었다.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나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던 남편의 말은 진심이었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건가. 내 속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마을 어귀 공터에 차를 세우고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나는 뒷자리에 앉은 어머니를 향해 몸을 틀고 앉았다. 종이컵에 결명자를 따라 손에 쥐어주자 어머니는 한 모금을 마시더니 두 손으로 종이컵을 감싼 채 그대로 있다. 움푹 꺼진 눈자위가 콧날을 한층 가늘어 보이게 한다. 하관이 빠르고 나이에 비해 피부가 깨끗하다. 그래서인지 얼굴에 몇 군데 핀 검버섯이 두드러져 보인다. 세월위에 피는 꽃. 어머니 손등의 검버섯이 눈에 들어왔다. 잔명해질수록 진하고 넓게 피는. 어머니가 종이컵을 쥐며 손을 움직이자 꽃잎이 흔들린다.

"그때… 그러니까 큰어머니가 계신걸 알았을 때… 어땠어요?"

어머니는 한참동안이나 아무 말이 없더니, 예의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뜨건 숯이 담긴 무쇠다리미가 가슴을 지지는 것 같았제…."

무슨 말이든 해보려 하지만 내 입술은 달싹여 질 뿐 소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눈동자가 느리게 움직이고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어떻게 견뎠어요… 누굴… 원망했어요?"

말하고 나니 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고 말았다. 곧바로 메아리가 되어 울리며 가슴에 와 박힌다.

"견딜기 뭐 인? 원망이사… 아부제 원망을 가슴에 꼭꼭 쟁이기도 했잔. 아부제는 왜 날 이런 집에 보냈나. 탄가루를 먹으며 살아도 거게 두질 않구… 창이 애비하고 니 낳고야 그게 아닌 줄 알았지 않겐? 내 외롭게 살지 말라구… 그래 보낸 거랄수록. 다 느들 아니면 한 지붕 밑에 살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느들 보구… 느들이 있어서 살았구."

"자식이 뭐라구요?"

나도 모르게 발끈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가 부딪히며 내 입술이 떨린다. 종이컵을 감싼 어머니의 손도 잘게 떨리고 있다.

"자슥이 없으면 비단 버선을 신어도 발이 시러븐 거르."

어머니는 이미 내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명치께가 움찔해지며 통증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마음은 알 수 없는 안도감에 젖는다. 어머니는 남들이 보는 것을 못 보는 대신, 남들이 못 보는 걸 보는 다른 눈을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

▲삽화=오승익(서양화가)



내가 아홉 살 때였다. 무슨 일로 나는 아버지한테 손찌검을 당하다가 집에서 도망쳐 나와 버렸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자, 식구들이 나를 찾아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나는 우리집과 슬레이트 담을 사이에 두고 있는 옆집의 장독대에 숨어있었다. 큰 옹기와 옹기 사이에서 깜북 잠이 든 나를 아무도 찾지 못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잠이 깼지만 더 두려워진 나머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장독대 옆 감나무잎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며 오소소 어깨를 떨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자박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죽이며 몸을 한껏 더 웅크렸다. 내 앞에서 멈춘 발소리. 누가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정아, 우리 아가 엄마하고 집에 가자.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싸고 한참을 말없이 어루만졌다. 꺼칠꺼칠한 손바닥이 슬프고 한없이 따듯했다. 어머니는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연신 쓸어내리며 집까지 걸어왔다.

그날, 어머니는 내가 거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거기까지 혼자 왔을까.

눈이 제법 깊게 쌓였다. 포장도로의 끝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터는 차량진입이 어려워 보인다. 이대로 계속 눈이 내린다면 걸어서 화절령까지 가는 것도 무리일지 모른다. 저만치에 노랗게 불이 밝혀진 강원랜드호텔 네온사인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저 위에는 어렴풋이 스키용 리프트도 보인다. 어차피 어머니가 걸어서 내려왔을 길. 어머니와 함께 걸어서 봉우리까지 가봐야겠다. 강원랜드호텔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궁벽 진 산중에 저렇게 큰 건물을 지어놓다니. 사람이란 참 못할 게 없는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없던 기네. 저게 있는 기 뭐나?"

어머니 입에서 희뿌연 입김이 세어 나온다.

"전엡 재호네 사랑방 같은 곳이에요."

달리 설명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 나는 뜻하지 않게 어머니의 아픈 기억을 또 건드리고 말았다.

"니 뭐라 핸? 저기 노름방이라? 여게 누 집이 있나?"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말하자면 그런 것하고 비슷해요."

"사람들이 못하고 안할 짓이 없는기…"

그날의 일이 되새겨지는지 훼손된 고향 때문인지 어머니는 회한에 잠긴 목소리다.

아버지는 그해 겨울을 화투짝을 잡고 보냈다. 매일 재호네 사랑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가끔 집에 들어왔다 다시 급히 나가는 아버지의 눈은 벌겋게 핏발이 서 있었다. 그 눈을 보면 아무도 아버지를 말릴 수 없었다. 급기야 아버지는 어느 날 땅문서까지 가지고 나갔다. 뒤늦게야 큰어머니에게 그 일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아랫방에서 자고 있던 오빠를 깨웠다. 종규야, 어여 일 나라 아부제한테 가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얼마나 단호하고 무서웠던지 오빠가 잔 불평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는 오빠를 앞세워 옆 동네에 있는 재호네 집을 그 밤에 찾아갔다. 오늘처럼 눈이 펑펑 내리고 매서운 바람이 눈가루를 몰고 다니던 밤이었다. 오줌을 누러 요강을 찾아갈 때 보니, 윗목에 있는 물그릇의 물이 얼어붙어 있었다. 새벽녘에야 돌아온 어머니와 오빠는 머리에 눈을 얹고 낯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이 사람아, 그 발로 그랩 그 길을…"

봉당에 오르는 어머니에게 큰어머니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잠이 다 깨버린 나는 마루 끝에 서서 빨갛게 언 어머니의 맨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머니의 손은 그때까지 갱지처럼 누런 종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갉 그때 참 대단하셨어요."

"그기 내 정신으루 핸? 내 굼는기야 무서울 게 뭐 인? 느들 학교는 시켜야 된단 맘으루다… 느 아부제도 창이 애비 얼굴보고선 땅문서를 내놓은기구."

두더지를 잡을 때처럼 아버지는 어머니 등에 평생 대나무꼬챙이를 꽂았어도 어머니에게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을 찾을 수가 없다.



산 능선이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지치지도 않고 내려와 쌓이는 눈이 나를 타이르는 것 같다. 괜찮다 괜찮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눈은 내 뒤에서 내 발 앞에서 겹겹으로 쌓이며 내 마음을 다독인다. 보이지 않는 눈길의 저 밑에서 마음의 길을 발견하라는 웅얼거림. 나는 어머니 손을 잡은 손에 가만히 힘을 주며 눈을 감아본다. 어릴 적에 논둑에서 보았던 두더지 무덤이 떠오른다. 둥글게 쌓아 올린 성토 밑은 두더지들의 보금자리였다. 마을 사람들이 무덤이라고 부르는 게 두더지에게는 먹이를 찾아다니며 파 올린 흙더미였음을 나는 왜 애써 잊으려 했을까. 두더지에게는 그 무덤이 오롯이 살아온 길이었음을.

산길로 접어들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눈으로 덮인 탄더미가 지난 세월의 잔재처럼 서 있다. 거대하고 하얀 능 같다. 그 옆에는 탄광입구나 운탄작업장이었을 콘크리트 구조물이 이마를 내밀고 있다. 광부였다던 외조부가 채탄을 다니던 길이었을 것이다.

"연신 낭구를 꺾으며 걸었다. 아부제는 암 말도 않더라. 갈 길 멀다고 재촉도 않구. 손에 전해지던 마르고 거친 아부제 손… 눈 묻은 낭구가지. 오늘같이 삼월에 눈이 내렸잔… 창이애비… 종규가 전에 의사한테 가보자했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눈 뜨고 싶잖다. 눈 뜨면 꽃끼끼재… 여를 잃어버리잔. 눈 뜬 봉사가 될 순 업잔."

어머니의 감은 눈 속에서 흘러나온 물이 얼굴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잘 고운 뽀얀 두더지탕 국물 같다. 아름답고 아픈 얼굴이다, 아프고 아름답다. 나는 사람 속에서 발견한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녹여야할지 모르겠다.

"창이애비가 나중에 느 아부제 옆에 내 자리를 고집할 기. 그거는 느 큰어머이한테 도리가 아닌거르. 정아, 니가 나중에 내 말을… 맘을 꼭 전해. 나는 여게 묻히잔다구. 진달래 꺾으며 놀던 꽃끼끼재에 묻히잔다구."

고개를 든 어머니는 먼 능선을 응시하고 있다. 잘게 떨리는 속눈썹. 어쩐지 어머니가 어느 시절로 돌아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것만 같다.

봉우리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하나. 아버지는 약을 드셨을까. 강원산간지방에 오후 늦게부터 눈이 내리겠다던 어제저녁 뉴스의 일기예보는…. 한꺼번에 생각들이 몰려든다.

내일이라도 해가 뜨면 겹겹이 깊은 이 눈들도 자취 없이 사라지겠지. 녹으면서 제 무게를 이겨내고 절로 가벼워지겠지. 갑자기 요의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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