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98>

고속버스를 이용하다 보면 번연히 좌석이 정해져 있는데도 먼저 타려고 서둘거나 앞으로 비집고 드는 사람들을 본다. 좌석제인 기차를 탈 때에도 출찰구를 벗어나자마자 무작정 뛰어가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사실 먼저 타나 늦게 타나 자기 자리는 정해져 있는 것이고, 차는 시간이 되어야 떠나는 것이니 서둘 것은 하나도 없는 일이다.

또, 차가 종착지에 도착할 무렵이면 뒤쪽에 앉았던 사람들이 맨 앞으로 나와서 줄을 서는 것을 본다. 앞에 앉았던 사람들은 이들 때문에 의자에서 일어나 엉거주춤하게 서 있기도 하고 때로는 맨 뒤에 나오기도 한다. 맨 먼저 내리는 경우와 맨 뒤에 내리는 경우의 시간차는 1분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서둘러 보았자 별것이 아니다.

지하철을 탈 때에도 이런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승차지점에서 줄을 서고 있는데 차가 도착하면 어느 사이에 줄도 서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던 이들이 옆으로 먼저 올라타기도 한다. 또, 내리지도 않았는데 앞을 가로막고들 서 있거나 밀치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내리고 오르는 이들이 서로 부딪쳐서 시간도 더 걸리게 된다.

그리고, 바꿔 타는 역에서는 너나없이 내리자마자 뛰어가는 것을 본다. 3, 4분마다 운행되는 지하철이니 차를 놓쳐 보았자 몇 분의 차이이고, 더구나 뛰어가야만 차를 놓치지 않고 타게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들은 뛰는 것이다. 내동 달려오고는 한참을 기다리는 우스꽝스러운 사람들도 보게 된다.

극장이나 영화관에서 표를 사거나 주말에 차표를 살 때에도, 서 있는 줄의 맨 앞으로 나와 옆에서 재빨리 돈을 창구로 집어넣어 표를 사는 이들을 본다. 어쩌다 나무라는 소리는 무시하여 버리고, 표를 기다리지 않고 일찍 샀다는 자기만족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인다. 줄을 서서 사거나 그렇게 사거나 불과 몇 분의 차이일 뿐이요, 더구나 그 공연이나 발차 시간은 정해져 있는 것이니 이런 어리석은 약삭빠름은 보일 필요가 없는 일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을 보면 이런 경우를 더욱 자주 보게 된다. 조금만 틈이 보이면 옆으로 끼어들고, 앞차가 좀 느리다 생각되면 속력을 내어 기어이 앞질러 버린다. 가능하다고 판단만 되면 차선 같은 것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얼마 동안에 차 몇 대를 앞질렀고, 어디서 어디까지를 얼마의 시간에 달려냈노라고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초록빛 신호등이 깜빡거리면 더욱 속력을 내어 건너 버리려 하고, 예비 신호인 노랑불이 켜져도 그 시간을 못 참고 앞으로 달려 나간다. 초록빛이 켜져도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짜증을 내고, 앞차가 즉각 출발하지 않으면 무얼 꾸물대느냐고 금새 빵빵거리곤 한다. 하나같이 빨리 달리려고만 하지 조금도 기다리거나 여유를 가지려 들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등산의 경우에서도 본다. 아름다운 자연을 구경하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즐기려 하는 등산인데도 출발부터 남에게 뒤질세라 정신없이 오르기만 하고, 내려올 때에도 남보다 먼저 하산하려고 서둘기만 한다. 그리고는 몇 시간에 답파하였느니 자랑하고, 그렇게 느려서야 무슨 등산을 하겠느냐고 오히려 남을 나무라기도 한다. 무엇 하러 산에 가는지, 왜 산행을 하는지는 염두에도 없고 오직 오르내리는 데에만 마음을 쓸 뿐이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우리들 생활의 주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저 모두들 정신없이 달려가고 서두는 모습들 천지이다. 자동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서도 또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야만 직성이 풀어지게 되는 것이 아마 현대인의 생리인가 보다.

그러나, 일에는 절차가 있고, 사회생활에는 질서가 있다. 어떠한 일이 이루어지기까지에는 그만한 과정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서둘어서 될 일도 있지만, 서둘어서는 안 되는 일도 있고 서둘 필요가 없는 것도 있다. 서둘 필요가 없는 일을 서두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니 쓸데없이 조급해 할 것은 없는 일이다. 앞선 사람을 따라가고 남보다 앞서려면 달려가고 서둘어야 되겠지만 이러한 쓸데없는 조급성은 버려야 할 일이다.

우리 선조들은 된장찌개 하나를 끓이더라도 은은한 불로 서서히 끓이고 오래 동안 달구어냈다. 그래야만 제 맛이 나는 이치를 깨닫고 그분들은 그렇게 생활한 것이다. 걸음걸이도 옛 어른들은 갈짓자[之] 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었다. 그래서 어디를 갔다 오시면, 그분들은 어디를 이리로 저리로 해서 이렇게 저렇게 다니셨고, 어디에는 무엇이, 어떤 것은 요 모양 조 모양으로 생기었고, 어디서는 또 무엇에서는 이런 느낌과 저런 생각이 들었노라고 자세하게 설명을 하여 줄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매사를 너무 서둘기만 하는 것 같다. 서둘어서는 안 될 일도, 서둘 필요가 없는 일까지도 공연히 서둘며 바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러한 선조들의 지혜로운 삶과 태도를 빨리 본받아 살아가는 슬기가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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