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황해문화’수사학적 분석논문 실려::)

노무현처럼 말 많은 대통령도 현대사에서 처음이다. 일부 보수언 론에 의해 지겹도록 ‘설화(舌禍)’처럼 취급돼 ‘난도질’을 당 하면서도 그는 줄기차게 ‘할 말은 해왔다’.

곧 출간될 계간사상지 ‘황해문화’봄호는 노대통령의 ‘말’을 처음으로 수사학(修辭學·rhetoric)의 학술적 대상으로 삼은 비 평을 실었다. 이재현 (전주대 영상예술학부)교수는 ‘수사적 대 통령, 노무현-정치언어의 모더니즘’이란 논문에서 “노 대통령 은 정치언어적 ‘모더니즘’을 성취한 첫 대통령”이라 평가했다 .



즉, 노대통령은 이전까지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제도적으로 고착 된 ‘비근대적’ ‘권위주의적’수사를 걷어내고 수평적 의사소 통의 모더니즘적 수사학을, ‘천부적’자질을 통해 반영해 냄으 로써 “아직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정치수사적 ‘몸짱’”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수사학에 대한 연구는 특히 미국에서 발달했다. 대통령 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수사나 대통령직을 아우르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의 성격이 대통령 직을 가장 잘 정의한다”고 말한다. 곧 “대통령의 수사를 검토함으로 써 대중과 대통령의 관계를 알고, 대통령이 국민을 통치하는 방 법등을 가장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경우 특히 극심한 ‘여소야대’의 의회구도와 거대언 론의 ‘적대적’ 환경 속에서 “기질로 보나 자수성가의 내력으 로 보나 말 잘하는 그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말발’뿐” 이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란 말이 아주 단적인 예라는 것.

이 교수는 “나는 노무현의 이 발언이 안중근 이래의 장거이며, 김재규 이래의 쾌거라고 생각한다”고 과장스레 얘기한다. 그것 은 일찍이 국왕을 단두대로 보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통과의 례를 거친 적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마침내 처형하는 체험을 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교수는 “노무현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그는 아무렇게나 말 하는 사람이 아니며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발언한다”고 분석한 다.‘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발언도 결코 어떤 입장 천명을 한 게 아니라 교묘하게 자신의 생각을 묘사함으로써, 텍스트 전문가 의 입장에서 봐도 노무현은 “아주 얄미울 정도로 노회하게 담론 과 발화의 테크닉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의미를 전환해 그때그때 활용하고 구사 하는 것도 노무현의 장기이다. 교정기관장들을 모아놓고는 ‘청 와대야말로 감옥살이’라고 했고, 송두율 사태 이후 국회에서 자 신을 ‘영남과 호남의 경계인’이라고 표현했다.

조선족 출신 중국인들의 농성장을 방문해 서명을 하면서 ‘희미 하게 써지네요. 마음은 진한데…’라는 말로 ‘마음의 서명’과 ‘마음의 농담(濃淡)’이라는 비유를 겹쳐 썼다. 대선 당시 부산 의 시장유세에서 고등어 장수의 마이크 소리를 따서 즉각 ‘싱싱 한 노무현이 왔습니다’라고 한 것은 은유, 환유, 패러디, 역설 법, 반복 등을 한꺼번에 소화해 낸 순발력이 뛰어난 수사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정국을 돌파해온 이같은 노무현의 수사학도 빛이 바래고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즉 “노무현조차 불법 정치 자금을 받아가며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는 관료 제도 속으로 후퇴해 이른바 통치를 하려고 시도한다”며 “자신 의 정치 수사를 통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거나 설득할 수가 없 는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와 타협하면서 노무현의 모더니즘은 가다가 멈추었다”며 결국 “수사학에도 윤리가 있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얘기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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