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는 추위를 몰아내고 봄을 재촉하는 첫 봄비가 내렸다. 아침에 외투를 걸치고 문밖을 나서니 새벽녘 비가 거친 뒤라서 그런지 바람은 차지만 그래도 봄기운을 피부에 느꼈다. 아마도 세월은 환절기에 들어서나 보다.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입춘대길의 문턱에 들어선 우리 재한 동포들의 생각도 한번 바꾸어 봄이 어떨까? 필자는 30여일 동안 귀국신청 접수를 중심으로 다각도의 상담을 진행하면서 각계 각층의 동포들을 대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제는 좀 변해보자는 생각을 절실히 느꼈다. 그것은 사람마다 생각을 바꾸
어야 변화가 오고 또 변화가 있어야 새 출발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국적회복 신청과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을 한단락 종결짓고 이제는 불법에서 탈출해 6개월 후 합법적인 신분으로 마음 놓고 재입국 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한지도 오래인데 아직도 무엇에 미련이 남아 방향 초점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면서 헤매는 사람이 너무도 많기에 하는 말이다. 이중에서 비중이 제일 많이 차지하는 사람이 귀국은 꼭 하고 싶은데 국적회복 신청과 ‘고향에 돌아와 살권리찾기 운동’ 단식농성까지 했다는 이유로 돌아가면 강압적인 피해가 초래될까봐 겁이 나서 못 가겠다는 사람들이다. 200만 재중동포의 일원으로 우리 민족에게 사명감을 내걸고 과거 잘못된 우리 민족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을 해 놓고도 겁이 난다니 이런 사람의 두뇌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인생 선배라고 불리우는 동포1세 마저도 중국에 있을 땐 몰랐었는데 지
난 번 국적회복 운동과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을 통해서야 200만 재중 동포들에게는 마땅히 이런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단다. 그렇다면 인생 후배인 젊은 층들이야 구태여 자상한 설명이 필요없이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우리가 이런 운동을 진행했다고 해서 중국을 배척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민족적 파벌운동을 운운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모국이 있는 민족으로서 한동안 폐쇄된 공간에서 모국을 잊고 살다가 드디어 모국을 찾았기에 어머님의 나라를 향해 우리 가슴 속 오랫동안 깊이 묻어 두었던 한을 되풀이 했을 따름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불만 불평도 터뜨릴 수 있고 화풀이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럴진데, 그것이 뭐가 잘못된 일이며 어째서 겁이 난단 말인가? 만약에 중국정부가 이것을 문제삼아 200만 재중동포에게 조금이라도 그 어떤 피해를 입힌다면 그것은 대국의 위풍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기에 중국정부는 절대로 그렇게 행하지 않을 것이며 현재까지도 아무런 내색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지금 현재까지 매차의 운동마다 한번도 빠짐없이 대두 지휘했던 많은 교회 관계자, 그리고 기타 참가자들이 모두 무사히 귀국했으며 지금 이 시각까지도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걱정없이 잘 지낸다는 장거
리 전화가 빗발치듯 걸려 온다. 이럼에도 그 어떤 피해가 있을까 두려워서 귀국하지 못 하겠다는 이가 있다면, 단지 이런 잡념 때문이라면 모든 것을 시원히 떨쳐버리고 불원한 장래에 찾아 오고야 말 새 출발을 위해 가뿐한 마음가짐으로 귀국을 권장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 비중이 많은 사람들로는 며칠 전에 국회에서 통과된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아주 큰 희망을 안겨다 줄 뿐만아니라 우리 동포사회에 상상외의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믿고 있는 층의 부류이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이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거짓없이 그대로 인용한다면 새로 만들어진 재외동포법으로 인하여 모든 불법체류 중인 재한 중국동포들에게 100% 사면의 날이 곧 박두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환상이 현실로 된다면 200만 재중동포에게는 더 말할 것 없는 금상첨화이다. 그러나 우리 조선족은 한국민과 동일한 피를 나우어 가진 동포형제임에는 틀림없으나 엄연히 200만 재중동포는 중국 국적을 부여 받은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이라고 부인할 수 없는 이 사실 또한 오래 전부터 국제법에 너무나도 명백히 기재되어 있다. 물론 이렇게 된데는 여러 모의 불합리한 역사 근원이 있겠지마는 그러나 어디까지나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해야 총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일개국의 공민이 국경을 넘어선 날부터 여권에 주어진 체류기한을 초래했다면 이것이 불법이 아닌가? 이뿐이면 모르나 여기에는 아무런 비자 수속도 없이 밀항으로 입국한 사람, 이름을 바꾸어 위조여권으로 입국한 사람, 이렇게 가지각색의 불법체류자에게 과연 대한민국 법이 100 프로의 사면을 해줄까? 물론 많은 시련을 겪고 어렵게 태어난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많은 혜택을 낳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가 바라는데로 시원한 대답을 얻어내지 못했다. 또 <재외동포법> 개정안 그 어느 조례에도 <모든 불법체류자 모두 사면>이란 구절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눈으로 볼 수가 없다. 필자는 동등한 입장에서 동포들을 바라볼 때 우리 동포들에게는 갖추어야 할 법 의식이 너무나도 결핍함에 가슴이 아프다. 많은 동포들이 무작정 눌러 앉아 불법체류해 있으면서 합법화의 길이 되는 요행을 바라고 있다. 세계 어느 국가이든 간에 법 앞에는 요행이란 있을 수도 없으며 생각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불법에서 탈출해야 합법화가 될 것이고 또 이렇게 해야 우리가 원하는 자유왕래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합법화의 길, 자유왕래의 길은 제 3자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오직 이 길은 우리 자신이 개척해야 하며 우리 모두가 솔선수범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첫 단추를 잘 못끼우면 입은 옷이 비뚤어 꼬이듯이 합법의 길, 자유왕래의 길도 첫 걸음을 잘 못 시작하면 후회막급일 것이다. 추위가 물러가면 따뜻한 봄이 오는 환절기처럼 우리 동포들도 고유의 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 생각을 바꾸어서 이제 곧 돋아날 봄싹처럼 새로운 행로를 시도해 보자. 그래서 대륙도 모국도 모두 예뻐하는 이 시대의 행운아가 한번 되어보자!


/ 이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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