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를 만나 하는 사랑, 창호는 자기로서도 이 격정이 언제인가 자기를 불태워 훼멸을 초래할것이라는 위구심이 있었다. 그러나 걷잡을수 없었다. 끌리고 끌려가는 마음을 다잡을 힘이 없었다. 경희는 하나의 마력의 존재였다.

경희와 헤여져 오랜 시간이 지났다. 편지로 하는 사랑에는 한계가 있었다. 경희에 대한 그리움으로 미칠것만 같았다. 꿈속에서조차 경희와 정사를 나누고있었다. 얼룩진 팬티를 빨면서 아내는 매서운 눈초리를 창호에게 보냈다. 그때 창호는 도덕적인 죄책감을 순간이나마 느꼈다. 미안해, 내가 너무 강한가보지? 아내는 차갑게 창호를 바라보았다. 그랬던가요?

기회가 왔다. 신문사에서 북경으로 가는 출장이 있다는것을 알고 창호는 죽을힘을 다해 그 기회를 잡았다. 동료들이 힘든 출장을 고집하는 창호에게 저 사람 제정신이 맞기나 한가 하는 눈길을 보냈고 사장은 적합한 인선이 아니라고 머리를 저었다. 그러나 창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북경행 렬차를 잡아탔을 때 창호는 소리라도 지르고싶은 마음이 되여있었다.

북경에서 경희와의 재회, 창호는 그 열광에 가까운 순간순간들의 련속을 이어서 기억할수가 없었다. 어둠의 베일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탐닉했고 불이 켜지는 순간, 그들은 마지막 하나의 기력마저 상대에게 바치고 없었다. 창호의 젖은 얼굴을 딲아주며 경희는 눈물을 글썽였다. 미안해요. 제가 너무한거 아니예요? 창호는 알몸의 경희를 끌어 자기의 품에 꼭 껴안았다. 경희와 결혼하고싶어. 아니면 이대로 죽어버리든지...

며칠동안 경희는 창호를 데리고 북경구역내의 관광명소를 구경시켰다. 어떤 곳은 다녀본곳이였지만 경희와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창호는 다른 기분을 맛보고있었다. 가이드인 경희는 훌륭한 안내자였다. 팔달령의 명나라 장성에 올라 경희는 봄향기 그윽한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고있었다. 전쟁 그 자체는 평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아름다와지는것이예요. 이 장성이 추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선조들이 만든 전쟁의 상처를 평화로운 후대는 아름다움으로 지켜보는것이예요. 기막히죠?... 이제 우리의 후대는 우리의 모습과 우리가 만들어놓은 온갖 잡동사니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가요? 창호씨는 그런 생각 해보셨어요? 창호는 이 지적으로 가득한 경희와 무언가를 쟁론하고싶지 않았다. 신록이 무르익어가는 봄날의 장성우에서 창호는 다만 경희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있다는 그것에 만족하고있었다. 인간은 인간 자체에 대해 경외지심이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이 엄청난 공정량에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기적에 질린것이지요. 그래서 이 모든 공정이 전쟁과 살륙과 피와 엉키여있다는 점을 망각하게 되는거 아니겠어요?

장성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13릉에 들렸다. 기나긴 신도(神道)를 나란히 걸으면서 그들은 황제의 장례와 그 행렬에 대해 이야기했다. 늦은 오후의 태양의 게으른 빛이 비낀 신도에서 창호는 문관들이며 무관들이며 기린이며 코끼리며들이 줄지어선 돌조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김치 하세요! 그러나 창호는 웃지 않았다. 누구인가의 죽음을 바래는 이 길에서 웃어야 할 리유가 없었다.

정릉의 지하궁전까지 구경을 하고 나오자 석양은 황제의 무덤주위의 측백나무숲을 물들이고있었다. 거대한 무자비(無字碑)가 석양속에 서있었다. 경희는 무자비를 받치고있는 커다란 돌거북의 머리를 만졌다. 그리고 창호에게 얼굴을 돌렸다. 이 비석에 왜 글자가 없는지 아세요? 이 무덤의 주인공인 신종황제 주익균(朱翊鈞)은 10살에 제위해서 48년간 중국을 통치한 인물이예요. 어리석은데다 주정뱅이여서 때마다 술을 마셨고 술만 마시면 취했대요. 아마 지금의 주정중독쯤은 됐겠지요. 그리고 술에 취해서 자주 사람을 죽였대요. 그래서 이 비석에는 그의 공로를 기리는 비문이 없어진거래요... 저 무덤을 만드는데 8백만냥의 은전이 들었대요. 한 인간의 죽음을 위해서 민중은 그만큼한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거지요. 그 어리석은 주정뱅이를 위해서말이예요! 국가라는 명분을 위해서 민중이라는 인간들의 무리는 황제의 부귀와 영화를 만들어주어야 할 의무라는걸 지킨거예요. 그것이 우리의 력사예요. 우리들 인간의 력사라는것이예요. 허무하지 않아요? 저는 이 무덤에 수십번은 왔을거예요. 그때마다 저는 허무를 느꼈어요. 우리들 생존이 얼마나 허무한것인지말이예요. 살아있는 자에게는 순간순간의 련속만이 있을뿐이예요. 행복한 순간, 슬픈 순간, 아픈 순간, 무의미한 순간, 저 황제에게도 이러루한 순간만이 있었을뿐일거예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창호씨? 부귀영화도 언제인가는 썪어가고 살았을 때 존귀해서 백성이 그 이름만 불러도 무엄하다고 목을 쳐야 했던 저 생명에게도 이제는 더러운 침을 뱉을수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는 무엇이예요? 우리같은 작은 인물들의 존재는? 이 돌거북을 만지면 장수한다는 말을 믿고 그것을 만지고싶어지는 우리들의 존재는?...

석양이 진해가면서 무자비를 붉으레 물들이고있었다. 경희의 얼굴은 흥분으로 한 홍조인지 석양이 비쳐서인지 상기되여보였다. 무엇을 말하고싶은것일가? 창호는 이렇게 생각하고있었다.

어둠이 서서히 깔리고있었다. 택시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고있었다. 경희는 어둠속에 희부엿해지는 전원을 내다보고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를 돌리고 창호의 손을 잡으며 방긋 웃었다. 제가 우습지요? 창호는 머리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우습다니?

경희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저 이야기할가요? 듣고싶어요?... 저는 도시와 농촌의 접경지대라는, 말하자면 도시의 교외는 아닌, 그러나 도시와는 가깝다고 할만한 농촌에서 살았어요. 그러나 시골이였어요. 수전농사는 한뙈기도 없는, 한전만 다루는 그런 농촌이였어요. 언제나 조밥만 먹는 그런 곳말이예요. 그래서 저는 도시 교외의 학교를 다닐수 있었어요. 월급쟁이 도시애들과 농촌애들이 썪여서 다니는 그런 학교였어요. 저의 집은 가난했어요. 저의 부모들은 딸만 다섯을 낳았어요. 그래서 남자 로동력이라고는 아버지 하나뿐이였던 우리집은 언제나 빛을 지고있었어요. 아버지는 딸만 낳은 어머니를 구박했고 술만 마시면 우리 딸들에게 화풀이를 했어요. 그래서 큰언니는 열여덟살에 시집을 갔고 이듬해에는 아이까지 낳았어요. 네째인 저는 언제나 언니들의 옷을 물려입었어요. 학교에 가면 도시애들은 그것도 옷이라고 입느냐는 눈치를 보였어요. 점심도시락을 싸도 저의 도시락은 언제나 된장이나 고추장 한숟가락에 김치가 고작이였어요. 그것도 불면 날아나는 조밥에 말이예요. 도시애들은 언제나 김치물에 흘러나오는 저의 구멍난 알리미늄밥곽을 천대했어요. 겨울이 되면 난로에 밥을 데워야 했어요. 그러나 도시애들은 언제나 저의 밥곽을 맨우에 놓아 덥혀지지 않았어요. 김치물이 난로에 새면 타는 냄새가 더럽다고 말이예요. 그래서 저는 찬밥을 그대로 먹을지언정 난로에 덥히여 먹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중학교로부터 고중을 다니기까지 저는 쭉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죽을둥 살둥 공부만 하였어요. 철저히 구겨진 자존심을 공부만으로라도 보상을 받고싶었어요. 일을 돕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닥달을 당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저는 공부 하나에만 모든 도박을 걸었어요. 대학에 붙었다는 통지서를 받고도 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꼈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동네가 떠나갈듯 우시는거였어요. 그때 저는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는 농촌학교의 교원으로 배치를 받았어요. 농촌에서 자라 빽이 없는 저에게는 당연한것이였어요. 그후 다른 사람의 소개로 도시에서 자란 애 아버지하고 결혼을 하고 4년만에 리혼을 하고, 작년에는 친구의 소개로 이 북경이라는 곳에서 돈벌이 수렁에 빠져든거예요...

택시가 북경의 도시구역에 들어섰을 때 경희의 얼굴은 까맣게 어둠이 깔려있었다.

그날 이후로 세번째 날이 되던날 창호는 려행사로 경희를 찾아갔다. 그러나 경희를 찾는 창호를 직원들이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그때에야 창호는 경희의 잠적을 알았다. 어제에도 전화통화가 있었는데...

창호는 미칠것 같았다. 아무도 경희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있었다. 마치 뜨거운 사막에 물을 부은듯 종적을 감춘것이였다. 무엇때문에? 어디로? 왜? 그러나 해답을 주는 사람도 해답을 찾을 근거도 없었다. 끝내는 려행사의 사장에게서 가능하게 해변도시인 해동시로 갔을거라는것, 한국의 무역업체에 채용이 되였을거라는 희미한 정보를 얻어냈다. 이것을 근거로 창호는 부랴부랴 해동시 방향으로 가는 렬차에 몸을 실었고 해동시에 한국업체가 많지 않았던 탓으로 쉽게 경희를 찾아낼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경희는 이미 창호에게는 낯설은 경희가 되여있었다. 그래서 창호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홀로 해변가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찡관스님을 만나고...

인연이 다하다... 렬차가 이름 모를 자그마한 역에 도착하여 멈춰섰다. 정류장이 아닌지 내리는 승객이나 오르는 승객이 없었다. 작은 역이여서 먹거리나 마실거리를 파느라고 법석을 대는 행상도 없었다. 리유는 없어요! 창호가 헤여지는 리유를 물었을 때 경희는 이런 대답을 던졌었다. 그렇다면 꼭 리유가 있어야 하는것일가?

뭐 나쁘지는 않은 사람이였지만 박수일은 싱겁게 죽었다. 죽어야 할 리유가 없었지만 죽었다. 죽음 그자체가 리유일뿐이였다. 그러면 경희와의 만남에는 리유가 있었던가? 창호는 리유를 찾을수 없었다. 그럼에도 헤여지면서 헤여짐의 리유를 찾고있었다.

흘러가는것이 이와 같으니라. 공자님 말씀이던가?

하루밤을 달린 렬차가 속력을 죽이고있었다. 서서히 역이 가까워오고 창호는 역사의 건물우에 <<청구역>>이라고 쓴 간판을 보았다. 청구역, 창호는 그 간판을 보는 순간에 들려오는 가슴의 소리를 들었다. 17살 소년이였던 그때 이 역에서 첫발걸음을 내려놓던 순간, 그때의 소년은 래일이 없었다. 강물에 외롭게 떨어진 나무잎이였다.

청구역에서 뻐스를 타고 백키로쯤 가면 창호가 하향했던, 따구쟈라고 부르는, 고모네집이라는 뜻의 시골마을이 있었다. 그곳에서 창호는 소년시기를 완성했고 사랑이라는것에 지쳤고 리별이라는것에 아팠고 생활이라는것에 찌들려보았다. 그 시골마을에서 창호는 레이카이란을 만나고 그와의 만남으로 해서 창호는 완전한 남자로 성숙이 되였다.

지금도 그곳에는 창호가 알고있는 사람들과 모르고있는 사람들이 살고있을것이였다. 그러나 그곳에 카이란만은 없을것이였다.

창호에게 사랑과 리별은 숙명이였을가?

창호가 고향 도시인 하이란시에 내렸을 때 도시는 심한 매연과 먼지속에서 우울히 그를 맞고있었다. 역에는 그를 마중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중을 해야 한다고 리유를 찾는 사람이 없었고 그가 오늘 도착한다는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구쏘련의 라따표택시에 오르면서 창호는 간단히 한마디 했다.

<<철남.>>

그곳에는 창호의 집이 있었다.

<다음에 계속>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