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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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로로를 따라 승용차는 미끌어져가고있었다. 한국, 이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였다. 중국 조선족으로 이름이 지어져있는 창호에게는 이 땅이 다정하면서도 낯설은, 이중의 마음을 지니지 않으면 안되도록 하는 땅이였다. 정준태사장은 차를 운전하면서 우리 대한민국, 우리 대한민국하면서 쉴새없이 말을 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닦으면서 있었던 일화와 박정희대통령을, 그리고 전두환, 로태우에 대하여 거의 부정에 가까운 평가를 하면서도 지금의 문민정부인 김영삼정부에 대하여는 긍정적인 반응과 기대를 보이고있었다. 고향이 경북인 정준태로서는 당연한것인지도 몰랐다.

북경에서 정준태사장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창호에게 고향이 어딘가 물었다. 물론 창호는 하이란에서 태여나 하이란에서 자랐었다. 정준태사장이 묻고있는것은 창호 아버지의 고향을 말하는것이였다. 창호가 아버지의 고향이 경북 의성이라고 말했을 때 정사장은 그만 벌컥 뛰여일어날듯 했다.

<<그래요? 저도 의성이 고향인데요? 의성 어디지요?>>

창호는 아버지가 알려준 그대로, 한번도 꿈에 나타난적이 없는 고향의 이름을 말했다. 리에서 동까지 준확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정준태사장의 손이 불쑥 튀여나와 창호의 손을 잡았다.

<<어이쿠, 이거 고향사람 만났구만요! 저의 고향은요, 선생의 고향과 30리도 떨어져있지 않아요. 중국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다니! 가부의 교양이 엄하셨나보지요? 이민 2세이면서 이렇게 잘 알고계시니...>>

<<가부께서는 10세때 저의 할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오셨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광복이 나자 일본놈이 망했으니 죽어도 고향에 가서 죽는다고 한국 고향으로 돌아가시고 저의 부친은 중국에 남았습니다...>>

정사장은 과장되였다고 보이리만치 격동하여있었다. 중국에서 고향사람 2세를 만날수 있다는것이 그로서는 놀라운 일이였는 모양이였다. 그만큼 그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무지하여있었다. 당연한 일이였지만.

그후로부터 정사장은 일이 있든 없든 창호를 불러내 술을 마시고 함께 사업을 하자고 조르고, 그리고 필요한 일들도 부탁했다. 정준태사장이 그날 북경역에서 빠른 시일내에 초청장을 해서 보내주겠다고 했을 때 창호는 큰 기대를 품지 않았었다. 인사로 하는 말이려니 넘기려고 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그만큼 크다는, 그런 생각으로 한국으로 가고싶다는 유혹을 물리치고있었다. 그러나 정준태사장의 초청장은 약속보다는 한주일이 늦은, 창호가 하이란에 도착하여 두주일만에 도착이 되였고 창호는 수많은 수속의 애로를 겪고 약속보다 두달이 늦어진, 가을을 머금는 이 계절에 한국에 도착이 된것이였다.

서울에서 친척들을 만나고 면목이 있던 사람들의 초청에 끌리여다니고, 그러다보니 십여일이 눈깜짝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정준태사장은 창호를 고향에 데려다 준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매일 전화를 걸어왔고 결국 오늘로 약속이 되여 이렇게 떠난것이였다.

정준태는 창호보다 한살우였다. 중국이라면 같은 경력을 가져야 할 상산하향(上山下鄕)의 세대였을것이였다. 그러나 국가가 다름에 따라 그들의 인생행적은 달랐고 서로 다른 가치의 리념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정준태는 대학에 다닐 때 운동권에 관여가 있었댔으나 학교를 졸업하자 섬유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윽박지름으로 사업에 진출을 했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중소기업의 회사원으로 취직을 한적이 있기도 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아버지의 섬유회사를 이어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독립적인 무역회사를 꾸려나가고있었다.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우리 세대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 자기 정권의 잘잘못을 자률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정권이야 말로 가장 민주적이고 바람직한 국가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운동권에서는 중국의 문화혁명을 본받아 군사독재정권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창호는 고향으로 가는 흥분이 깨여지는것을 느꼈다. 이렇게 좋는 날에 문화혁명이라니? 아마 정준태사장은 창호가 중국사람이라는것을 의식하고 화두를 찾느라고 말했을수도 있을것이였다. 그러나 창호에게 문화혁명은 생리적인 아픔을 가져다주는 추억이였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맞아서 퉁퉁 부은 얼굴을 들고 길다란 족쇄의 쇠사슬을 절그럭거리며 걸어오던 아버지, 마른 수수밥 한밥곽을 다 드시고서야 아들에게 너도 먹었니 하고 묻던 당신...

력사의 아픔이란 겪은 자에게만 아픔으로 남아있는법이였다. 창호는 정준태에게 아무런 해석도 하고싶지 않았다.

<<문화혁명은 겪어온 사람에게만 해석의 권리가 있어요. 마치 정사장께서 광주사태를 해석할수 있듯이.>>

정준태사장은 힐끔 창호쪽을 바라보았다.

<<그럴가요? 하긴 인간의 력사란 국가적인 개념이 아니니까요...>>

동문서답처럼 들렸다.정준태는 입을 다물었다. 멋적어진 기색이였다.

경부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한시간쯤 달리자 휘여청 넓은 벌이 나타났다.

<<여기는 경북에서는 유명한 곡창의 하나입니다. 벌이 얼마나 넓습니까? 길이만 해도 60리가 넘습니다...>>

정준태사장은 잘 다듬어진 논들을 바라보며 자랑스레 말하고있었다. 그러나 창호로서는 이 벌판이 정준태가 말하듯 대단하게 보이지 않았다. 신문사의 기자라는 신분때문에 전국을 많이 다닐수 있었던 창호로서는 이 벌판은 표현 그대로 손바닥만큼이였다. 화북평원을 보셨습니까? 눈강평원을 보셨습니까? 삼강평원을 보셨습니까? 창호는 이렇게 묻고싶어졌다. 갑자기 우리 말에 벌이라는 말은 있어도 평원이라는 뜻의 고유어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승용차는 국도를 벗어나 세멘트로 포장된 넓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 길옆의 논에서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있었다. 그 밭우로 창호로서는 처음 보는, 목이 길다란 새들이 날고있을뿐 수확을 기다리는 들은 한적하고 적막하였다. 곧게 뻗은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나트막한 언덕같은 산이 보이고 산우에 옹기종기 집들이 들어앉아있었다. 고향이였다! 아버지가 태여나고 할아버지가 태여나고 증조할아버지가 태여나고, 그리고 그 이상의 웃대들이 태여나 자란 곳, 그리고 죽어간 곳, 창호의 몸속에서 흘러야 하는 피를 길러 이어준, 고향이라는 이름으로만 불러야 하는 곳이였다.

창호는 가슴이 멋는것 같았다. 고향이라는것이 현실적인 감각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다만 어렸을 때 빠질수 있었던, 그런 환상같은 환각으로만 느껴질뿐이였다.

이미 련락이 되여있었기에 고향집을 지키며 살고있던 큰어머니와 고향마을에서 살고있는 큰고모가 고향집문앞에서 기다리고있었다. 창호가 차에서 내렸을 때 고모는 첫눈에 창호를 알아보고 덥석 창호를 품에 안았다.

<<창호야!...>>

고모는 창호를 안고 덜덜 떨면서 울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처음 보는 조카를 안고 고모는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다. 한줄기의 따스함이, 그리고 억울해지는 마음이 것잡을수 없이 스며오며 창호의 가슴을 잡아뜯었다.

<<고모님!>>

<<네가 중공(중국)에서 이렇게 오다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가...>>

그러면서 고모는 다시 한번 눈물을 훔쳤다.

정준태사장의 귀뜸으로 큰어머니는 창호를 집안으로 이끌었다. 담장문을 열고 울안에 들어서니 푸른 양철기와를 얹은 집이 나타났다. 퇴마루가 넓은 옛식의 농가였다. 양철기와는 한국에서 <<새마을>>운동을 할 때 얹은것이라고 했다. 집마당은 꽤 넓은 편이였다. 채소밭에서 고추가 익고있었고 자그마한 화단에서는 여러가지 꽃들이 주인의 손길을 자랑하고있었다. 서쪽 담장을 의지하고 만들어진 장독대우에는 크고 작은 오지 단지들과 독들이 줄을 서있고 장독대주위에는 봉선화가 무성하게 피여있었다. 창호의 눈에 노랗게 익어가는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있는 늙은 감나무가 안겨왔다.

<<고향집마당에는 너 증조할아버지가 심은 감나무가 있었어. 너 할머니는 감이 익으면 껍질을 깎아 대나무에 꿰여 말려 꽃감을 만들었지. 처음 따서 말린것은 제상에 쓴다고 독에 담아 창고에 넣어두었지. 그것이 왜 그렇게 먹고싶던지. 그래 한번 훔쳐먹었다가 너 할아버지한테 피가 나도록 종아리를 얻어맞은적이 있었댔어...>>

이것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창호는 그 목소리를 듣고있었다. 아버지는 그 조용한 어조로, 언제나 그랬듯이 담담하게 고향을 이야기하고있었다.

창호는 감나무밑으로 다가갔다. 바로 이 감나무였다. 아침이면 소년이였던 아버지가 오줌을 싸주었다던, 나무우에 올라가 감을 도적질해 먹다가 할아버지의 불호령에 떨어져 며칠동안이나 절면서 다녔다던, 바로 그 감나무라고 창호는 믿어버렸다.

<<이 감나무는 너 증조할아버지가 심은거야...>>

큰어머니가 창호의 옆으로 다가왔다.

<<알고있어요. 아버지가 말씀했어요. 고향집마당에 증조할아버지가 심은 감나무 한구루가 있었다구요. 이 감나무를 아버지는 기억하고 계셨어요. 까치밥으로 익은 감을 다 따지 않고 남겨둔다는 이야기도 했구요...>>

언제인가에는 이 감나무밑에서 소년인 아버지가 별들을 세며 어린시절의 꿈을 키웠었을것이였다. 그러나 그 소년은, 지금은 이국의 땅에서 한줌의 재로 남아있었다. 창호는 감나무의 거치른 껍질을 만졌다. 아버지가 호소하고있었다.

<<고향에 갈란다. 고향에 가서 너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를 할란다...>>

강제로동을 하는 개조농장에서 반년마다 주는 이틀의 휴가를 맡고 돌아오면서 10전어치의 개눈깔 사탕 20알을 사가지고 와 창호에게 주던 아버지, 말라빠진 배추뿌리를 주어다가 삶아먹으며 좋아하는 창호를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아버지, 그 아버지는 죽어가면서 고향으로 가고싶다고 말했었다. 그때 창호는 고향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태여난 곳과 자신이 태여난 그곳 사이에서 창호는 배구장의 배구공처럼 오가고있었다.

큰어머니와 고모에게 절을 올려 인사를 끝내자 큰어머니는 서둘러 창호를 재촉했다.

<<점심은 돌아와 먹기로 하고 먼저 산소에 가 인사를 해. 중국에 사는 식구들중 네가 처음이니 중국식구들 대표해서 먼저 어른들께 인사를 하는게 도리가 아니냐?>>

문중묘소로 가는 길은 포장이 되여있지 않았다. 좁은 흙길을 따라 정준태사장의 승용차는 스프링우를 걷듯이 휘청거리며 달렸다. 하늘이 가을하늘답게 청순하게 개여있었다. 해빛이 와그르르 쏟아지는 산등성이우에서 승용차는 멈춰섰다.

<<여기야. 먼저 4대조 할아버지부터 인사해...>>

큰어머니는 가지고 간 술과 과일, 고기포 꾸러미들을 내리며 말했다.

나트막한 관목과 크지 않은 소나무숲속에 옹기종기 무덤들이 들어앉아있었다. 구석구석마다에 손길이 가고 파란 떼를 입힌 무덤들이 마치 푸른 비단에 쌓여있는듯 했다. 먼저 4대조할아버지 할머니 무덤앞에서 큰어머니와 큰고모가 제상을 차렸다.

<<술 붇고 인사해. 4대조 할아버지 할머니시다.>>

창호는 중국에서 가지고 온 배갈을 붇고 절을 했다. 필경 여기에 누운 사람의 피를 이어받았으리련만 슬픔이나 비통같은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마치 어느 친구부모의 장례에 간것같은, 그런 묵직한 마음이 안개처럼 서려올뿐이였다.

그리고는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차례였다. 술을 붓고 절을 하고, 과연 내가 여기에 묻힌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 할 자격이 있는것일가? 그러면서 그런 자격이 있다는 그것에 창호는 망연했다. 이름 모를 새가 머리우를 날아가고있었다. 멀리에 햐얀 구름 몇송이가 떠있었고 멀리 바라보이는 산의 릉선이 푸른 기운속에 잠겨 얄포름한 안개속에 잠긴듯싶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벌판에 답답할 정도로 인간의 그림자가 없었다. 이곳이 아버지의 고향이라는, 그런 실감이 오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설 때에는 그래도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 창호에게는 맑게 개인 가을의 하늘처럼 마음은 바래워져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이며 당신들은 누구를 위해 이땅에 묻혀있는것입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소에 인사를 할 차례가 되였다. 동그스럼한 무덤, 중국사람은 무덤우를 뽀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덤우에 누른 종이 한장을 놓고 그우에 돌 하나를 얹어놓는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덤은 커다란 중국식 가마를 엎어놓은듯 둥그렇고 모가 나지 않았다. 무덤주위의 잔디가 나무잎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여있었다. 중국에서 살면서 창호는 이렇게 깨끗하고 정성을 들여 정리된 무덤을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다 지금은 화장이 이루어져 죽으면 살은 한줌의 연기로 사라지고 뼈는 한줌의 재로 남아 납골당에 옴겨졌다. 수십층이 되는 납골당의 골회함보관상자를 사람들은 <<천당의 아빠트>>라고 불렀다. 지금 창호의 아버지는 그 <<천당의 아빠트>>에서 한줌의 재로 되여 해마다 두번씩 찾아오는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을 기다리고있었다.

<<인생무상이라 함은 인생이 무상하기때문일뿐입니다...>>

찡관스님이 그렇게 말했었다.

큰어머니와 고모가 제상을 차렸다. 과일을 놓고 포를 올리고, 다른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것 같았다.

<<어서 술을 부어!...>>

큰고모가 말하고있었다. 그러는 고모의 얼굴에 가득히 슬픔이 떠오르고있었다.

창호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앞에서 술을 부었다. 가볍게 손이 떨렸다. 아버지와 형제들과 식구들을 대표하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두번, 그리고 마직막으로 허리를 굽혔을 때 마음의 구석에 도사리고있던 서러움같은것이 북받쳐올랐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며 목이 메였다. 이때였다. 큰고모가 와-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 어머니! 중공에서 조카가 와서 인사드려요. 둘째오빠의 둘째 아들이라요. 그렇게 오빠를 기다리시더니 끝내는 못보시고 가셨잖아요! 지금 손자가 인사를 드려요. 절 받으세요! 아버지, 어머니...>>

창호는 술잔을 들어 무덤앞에 쏟았다. 잔디우에 쏟아지는 술은 순식간에 흔적을 잃고 스며들었다. 중국을 떠나면서 가장 좋은 술로 모태주를 샀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산소에 가면 부어야 한다고 소중하게 들고 온 술이였다.

석잔술을 다 붓고 창호는 다시 한잔을 부어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도 한잔 마실게요...>>

독한 술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가슴에 통증같은것이 느껴졌다. 분명히 그것은 육체적인 통증이였다. 창호는 무릎을 꺾으며 무덤앞에 꿇어앉았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당신들은 누구이십니까? 당신들은 저를 알고계십니까? 당신들은 손자인 저를 알수가 없습니다. 본적이 없습니다. 이런 손자가 태여났으리라는 생각도 못하셨습니다. 50여년간, 당신들은 다른 땅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었던 그 땅에서, 아니, 이 고장을 인간의 지옥이라고 여겨지도록 교육을 하는 그런 땅에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그런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애들이 부러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조상이라는 말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누워계시는군요. 언제인가 하얀 수염을 날리시면서 꿈속에 찾아오셨던 할아버지, 그 모습이 당신의 모습이 맞는것입니까? 그러시다면 왜 저에게 한마디 말씀도 없으셨습니까? 왜 이 손자를 보시고도 그렇듯 매정하게 돌아선것입니까?... 할아버지, 당신은 왜 중국이라는 곳을 선택한것입니까? 아버지와, 그리고 우리 형제들의 생을 선택하시려고 쪽박을 차고 나선것이였습니까? 그때 고향에는 남으신 분들이 더 많으셨을건데 할아버지는 왜 기어이 락동강나루를 건느려고 작심을 하신것입니까? 고향을 등지는 일이 어려웠을것이라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끝끝내 락동강을 건느시고 압록강을 건느셨습니다. 가고가도 끝없는 만주의 황량한 벌판이, 만주의 칼날같은 눈보라가 당신에게 남긴것은 무엇이였습니까?... 광복이 나 난민렬차를 타시면서 당신은 왜 저의 아버지를 그 땅에 남기신것입니까?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산다고 아버지를 끌었다면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따라 난민렬차를 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선택이 우리를, 그리고 당신의 아들과의 50년 리별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본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해살 따스한 땅에 누워계시는군요. 할머니와 함께...

<<너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둘째는 살아있어. 둘째는 살아있어 라고 하시다 가셨어. 그렇게 기다리시더니...>>

큰어머니가 말했다.

큰어머니는 창호를 끌고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 아래쪽으로 갔다. 산기슭이 막 끝나는 평퍼짐한 등성이에 20년생은 되였을 소나무숲이 있었고 그 사이에 잔디가 파랗게 깔린 넓지 않은 공지가 있었다. 큰어머니는 그 공지에 발걸음을 멈추고 창호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너 아버지를 모셔라. 중국에서는 화장을 한다고 했지? 그럼 골회라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묻히게 해야지... 문중에서 이미 상의가 되였으니까 너희들이 모셔만 오면 되는거야...>>

창호는 어느때며는 아버지의 무덤이 일어설 땅의 파아란 잔디를 만졌다. 땅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한줌의 흙을 주먹속에 꼭 넣으면서 창호는 머리를 들었다. 하늘이 물들인듯 파랬다. 아버지, 아버지는 고향이 있습니다! 태줄을 묻은 땅이 기다리고있습니다!...

소나무숲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눈물과 땀으로 얼룩이 된 창호의 얼굴을 시원하게 적셔주었다. 창호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고 머리를 돌렸다.

정준태사장이 감동이 어린, 그리고 착잡한 눈길로 창호를 바라보다가 창호와 눈길이 마주치자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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