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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남북녀라고 했던가? 정준태사장은 참으로 잘생긴 남자라고 할만큼 멋진 남자였다. 얼굴도 풋풋하게 넓었고 체격도 보기 좋게 우람졌다. 실한편이였지만 비대하지 않았고 자주 골프를 하는 사람답게 피부도 적당히 타있었다. 성숙한 녀자라면 한번쯤은 안겨보고싶다는 생각을 가질만한, 자상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남자다운 거칠음을 잃지 않는 그런 타입의 남자였다.

    <<렴선생을 보는 순간 이사람과 사업을 한다면 틀림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중국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말투도 그렇고 몸가짐도 그렇고, 아무튼 훌륭한 교양을 받은 분이겠다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억양에 중국식 발음이 섞여있었지만 정확하게 표준어를 쓰는걸 보고 고등교육을 받은 인테리라는걸 알았구요...>>


    그랬던가? 창호는 의도적으로 그랬었다는 기억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적이 분위기가 그랬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수십년 함경도방언을 쓰는 지방에서 살았지만 어렸을 때 익혀온 경북지방의 고향말씨를 고치지 못하고있었다. 그랬기에 창호는 집에서는 부모들의 말씨를 그대로 배웠고 나와서는 함경도말씨를 썼다. 이중의 억양을 써야 하는 부담스러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정확히 표준어를 쓰는 길이였다. 특히 어렸을 때 이상한 말씨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이방인의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쩔수 없이 함경도식 억양을 써야 했으나 부모들은 함경도방언에 대하여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있었다. 그래서 집에서 함경도식으로 이랬쓰꾸마, 그렇지 애임다와 같은 이상한 말이 나오면 아버지나 어머니는 동시에 이마를 찡그렸다. 그리하여 창호는 차츰 이중적인 억양을 쓰는데 습관이 되여갔고 더구나 학교에 들어가 중국말 공부를 시작하자 이런 습관은 언어적인 차이를 느끼게 되면서 더더욱 굳어져갔다.


    정준태는 중국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의 이런 언어구조의 차이성을 모르고 창호가 훌륭한 교양을 받았기때문이라고 믿어버린것이였다.
    <<렴선생께서 이제는 결심을 내려야지 않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렴선생의 월급은 백원정도라고 있는데 한국돈으로 만원이 조금 넘지 않아요? 그것에 매달려봤자 뭐 볼일이 있겠어요? 절대로 렴선생 섭섭하게 하지 않을게요. 돈이란 목적이 아니지만 그것이 없으면 안되는것 아니겠어요? 이제 결심을 내리십시오. 그러지요?...>>
    정준태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창호였으나 아직까지 사업을 함께 하자는 그의 건의에 확답을 주지 않고있는 창호였다. 중국에 있을 때 몇번 전화가 왔으나 창호는 한국에 가서 답복을 주마고 공을 던졌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체류하는 기간 창호는 서서히 자신이 설복이 되고있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결심을 내리기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사직을 한다면 하루아침에 무직자로 나서게 되는 셈이였고 의료보험, 주택혜택, 정년퇴직... 수많은 래일을 포기해야 했다. 이 점을 정준태는 리해하지 못하고있었다. 다만 한국에 비하면 쥐꼬리도 안되는 월급에 연연하는 창호가 웃긴다고만 생각하고있을뿐이였다. 더구나 대학을 나온 창호로서는 직함의 문제도 있었다. 창호는 정준태에게 이부분에 대한 설명을 오래도록 했으나 결국 정준태는 왜 그렇게 되여야 하는지를 리해하지 못하고있었다.


    창호는 정준태를 따라 서구식풍으로 인테리어가 된 이 호프집에 들어설 때 오늘은 확실한 대답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러나 정준태사장이 확답을 요구했을 때 창호는 또다시 우유부단의 수렁에 빠졌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한국으로 말하면 공무원대우를 받고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제가 사직을 한다면 다시는 그런 직에 복직이 안됩니다. 대학을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직업을 찾지 못하고있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그리고 돈이라는건 벌릴수도 있고 벌리지 않을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그런 불확실한 래일에 인생을 맡긴다는것이 어쩐지 불안하군요. 정사장이라도 그럴거라고 믿습니다...>>


    <<제가 무리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쩐지 렴선생과 합작을 한다면 성공할거라는 믿음이 가요. 그리고 불확실이라는건 우리 인간이 마주한 해탈할수 없는 문제가 아니겠어요? 저요, 중국 이제는 여섯번 다녀왔어요. 중국 변하고있는게 놀라워요. 이제 중국이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결론을 내리지 못해요. 역시 불확실한거지요. 지금은 렴선생이 말하듯이 공무원직대우가 우월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 않아요? 자본주의는 치렬한 경쟁의 사회입니다. 인재는 필요한 곳으로 흐르게 되여있는 구조이지요. 중국도 자본주의적인 요소에 서서히 물들고있는것 같아요. 이는 이 세계의 추세예요. 그렇다면 중국도 이 세계적인 추세에 따르지 않을수 없을겁니다. 그때 선택을 강요당할 때 선택을 하려면 힘들어질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좀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모험도 필요하고 경쟁에 뛰여드는 힘이 있어야 해요... 자신의 삶에 자신이 주인이 된다는건 힘들겠지만 바람직한 일 아니겠습니까?...>>


    창호는 정준태의 말에 수긍을 하고있었다. 도리로서 그의 말을 반박하기에는 리유가 궁핍했다. 그러나 창호는 이 사람과 합작을 하면 인생을 남에게 맡기는, 한나무를 보고 목을 매달아야 한다는 강박관같은것이 있었다.
    <<미안하지만요, 왜서인지 정리가 잘 안되는군요. 중국은 필경 중국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고 중국식의 제도적장치가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만일 중국이 아니라면 훌훌 털고 선택을 하겠지만 사람이란 언제나 자기에게 차례진 사회적인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든것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시간적이 여유를 주시면 합니다. 미안하지만...>>
    정준태는 빙그레 웃었다. 한국사람이 급하다는것이 공동인식으로 되여있었지만 정준태는 여유와 느긋함을 보이고있었다. 창호는 이점이 고마웠고 고마운 마음과 함께 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너무 폼잡는것이로 보이지 않을가 하는 로파심도 있었다.
    정준태는 맥주컵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 턱을 고이며 창호를 바라보았다. 미소를 띤 얼굴에 무언가를 읽고싶다는 표정이 배여있었다.
    <<저도 뭐 지금 대답을 드리라는건 아닙니다. 다만 설복을 하는 과정인거지요. 과정이 멋지지 않아요? 결과보다는?...>>
   창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참 끈질긴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가 없는 과정이라면 너무 무의미하지 않아요?...>>
   정준태와 창호는 마주보며 웃었다.
   <<그래도 과정은 필요한게 아니겠어요?>>
   정준태는 맥주컵을 들었다.
   <<자, 인젠 무거운 화제 그만하고 술 마셔요. 술맛 날아나요...>>
   두사람은 맥주컵을 들어 부딪치고 남은 맥주를 한모금에 다 마셔버렸다. 가슴을 어이는듯한 팝송이 흐르고있었다. 정준태는 상우의 초불을 들어 보이를 불렀다.
   <<여기 매주 더 가져와!>>
   보이가 맥주 두컵을 가져왔다. 정준태가 은밀한 미소를 지었다.
   <<렴선생은 아직 자본주는걸 잘 모르지요?>>
   창호는 갑자기 물어오는 정준태의 물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되물었다.
   <<자본주의요? 글쎄요, 안다고 하면 무리일가요?>>
   정준태는 그 은밀한 미소를 입가에 드리운채 말했다.
   <<자본주의도 두가지 얼굴을 가지고있어요. 자본주의나라 사람인 저와 일을 할려면 자본주의공부를 하라는 이야기예요...>>
    창호는 정준태가 하는 말의 내적인 의미를 끄집어낼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정준태는 모든 문제를 리론화하고 수자화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창호는 그 반대여서 정서화하고 감성화하려는 경향을 가지고있었다. 아마 시적인 인간의 공성인지도 몰랐고 그래서 시라는것에 심취한적이 있는지도 몰랐다.
    <<자본주도 인간이 살고 사회주의도 인간이 사는 동네겠지요. 뭐 딱히 어느것을 공부해야 한다는 필요가 있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정준태는 빙긋 웃었다. 아마 창호가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했는 모양이였다.
    <<그게 아니구요, 자본주의라는 괴물의 두가지 얼굴을 다 보고 가시라는 뜻입니다. 자본주의라는 나라는 한국 처음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자본주의나라의 구석까지 알고 가시라 그 뜻이예요...>>
    창호는 마음을 펴면서 웃었다.
    <<글쎄요. 저야 여기서는 언제든 물방게잖아요? 물우에서 조급하게 기여다니는, 물속 깊이는 모르고 우에서만 설쳐대는 물방게 맞지요?>>
    <<그럼 됐군요. 이제 물속으로 들어가 고기가 되든 미꾸라지가 되든 되여보세요. 3차로 갑시다.>>
    <<삼차? 인삼차가 아니구요?>>
    창호는 어렴풋이 정준태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자기의 심경을 드러내기는 싫어 롱담으로 넘기려 했다. 그러나 정준태는 그런것에는 아랑곳 없이 일어섰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어요. 이제 저의 뜻에 따라요.>>
    <<절에 가면 중이 시키는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창호는 따라 일어서며 좀은 불안해지는 마음을 눅잦치며 응수를 했다.
    정준태가 차를 빼가지고 오자 창호는 승용차에 올랐다. 안전띠를 착용하고있는 창호를 바라보던 정준태는 익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끔뻑 했다.
    <<술처먹고 단속에 걸리면 야단인데?... 암튼 우리 렴선생 운수가 좋으면 나도 신세보는거지요. 자 갑시다.>>


    승용차는 네온과 등불로 휘황한 서울의 거리를 달렸다. 거리를 꽉 메우고있는 자동차들의 흐름속에서 창호는 이곳에서 인간들이 살고있다는것이 기적같이 느껴졌다. 자동차도, 거리를 걷고있는 행인도 무엇에인가 쫓기는 모습들이였다. 한국에 와서 창호가 가장 깊이 느낀것이 바로 여기 한국사람들은 누구나가 똑 같이 뛰고 또 뛰고있다는 느낌이였다. 느긋하고 언제나 만만디인 중국에서 살다가 이 번화한 도시에 들어섰을 때 창호는 자연스럽게 온몸의 근육이 팽팽해지는것을 느꼈다.
    반시간즈음 달렸으리라고 생각이 되자 승용차는 서울을 벗어나 달리고있었다. 창호는 정신을 가다듬고 운전을 하고있는 정준태에게 얼굴을 돌렸다.
    <<서울을 벗어나고있잖아요? 어데로 가는겁니까?>>
    정준태는 운전대를 잡은채로 어깨를 으쓱 했다.
    <<렴선생 사모님과 리별한지 오래 되였지 않아요? 장가를 가셔야지요?>>
    그리고 정준태는 소리내여 웃었다. 창호는 공연히 쑥스러워지는 기분이 되면서 말했다.
    <<중국에도 그런 여자들이 있어요.>>
    창호는 아직까지 몸파는 륜락녀들과 관계를 한 경험이 없었다. 언제인가 동현이가 그런 곳에도 가봐야 한다고 설쳤지만 창호는 한마디로 거절을 했었다. 창호가 사는 하이란시에도 그런 녀자들이 있었고 친구들과 다닌적이 있기는 했지만 술을 마시는것을 한계로 더 넘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딱히 원인은 없었다. 다만 거부반응이 있었을 뿐이였다.
    <<그래요? 그럼 왜 제가 중국 갔을 때 그런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어요? 중국 녀자들 하나하나가 다 미인이던데?...>>
    <<그건 다 정사장을 위해서지요. 단속에 걸리면 벌금이 얼만지 알아요? 자그만치 5천원이예요. 외국인이라면 만원이고... 그리고 려권에다 이 사람은 음란한 사람이라는 검은 도장을 박아줘요. 그럼 입국할 때 망신살이 뻗혀도 단단히 뻗게 되지요. 중국말에 황하에 가서 씻어도 씻을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사장 말 그대로 황하에 가서 씻어도 씻을수 없는 망신을 당하게 되는거래요...>>
    창호의 말은 과장이 되여있었고 거품이 많았다.
    정준태는 창호쪽에 얼굴을 돌리고 웃었다.
    <<이크, 그렇게 무서워요? 그럼 중국 사람들 물건은 나라의것이라는 말씀이군요?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국가라구요. 단속을 하면 사생활침해라고 고소를 해요... 렴선생 오늘 멋지게 한번 자유를 누려보세요...>>
    그러고는 못참겠는지 푸하하 소리를 내서 웃었다.


    한참을 달리던 승용차가 우회전을 하더니 이차선 포장도로에 들어서 얼마쯤 달렸다. 그러자 넓지 않은 골짜기가 나타나고 네온 상호가 번쩍이는 낮으막한 건물들의 군락(群落)이 시야로 다가왔다.


    정준태는 전통식 한국농가로 지은 아담한 건물앞에 차를 주차시켰다. 눅눅한 저녁의 공기가 숨이 가쁘도록 청신했고 어렴풋이 안겨오는 산들의 릉선을 타고 별들이 솟고있었다. 자동차의 소음도, 거리를 메우는 혼잡한 소란스럼도 없었다. 명멸하는 상호들의 네온들만 없다면 이 산골짜기는 하나의 무릉도원이였다.
    <<어때요? 좋아요?>>
    <<마치 시골 친척집에 온 기분이군요.>>
    창호의 대답은 진실이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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