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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국제공항의 로비에서 정준태는 창호를 기다리고있었다. 창호가 들어서는것을 보고 웃으면서 손을 들었다. 한손에 짐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짐을 끌고있었기에 창호는 허리를 굽혀보이는것으로 인사를 받았다. 정준태가 창호쪽으로 걸어왔다. 그의 옆에 서있던 녀자도 정준태를 따르고있었다. 사모님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젊어보였고 다른 사람으로 보자니 사이가 너무 가까워보였다. 손에 려행용가방이 들려있는것을 보아 려객같기도 하고.

<<바쁘신데 무슨 전송입니까? 고맙습니다.>>

정준태는 흥분하고있었다.

<<그래도 처음 한국에 다녀왔다 가는데 전송이야 해야지요. 한국놈들 건방지게 바쁘다는 핑계만 대고 사람 대접 우습게 하더라고 욕하게요? 늦을줄 알았는데 일찍 오셨군요.>>

<<사촌동생이 자가용으로 실어주어 일찍 왔지요. 차가 막힐줄 알았는데 잘 뚫려서 생각보다 빨리 도착이 된겁니다.>>

<<그래요. 빨리 서두는게 좋아요. 차가 밀리면 울래도 울음이 안될거지요>>

정준태는 들뜬듯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옆에 서있는 녀자에 얼굴을 돌렸다.

<<이분은 렴창호선생이야. 기자님이시거든. 나와 사업을 할 분이야... 가만, 그리고 시인이시야. 미스 김, 몰라?...>>

녀자는 창호를 똑바로 쳐다보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래요? 반가와요. 김인순이라고 해요. 정사장님이 자주 이야기를 하셔서 어떤 분인가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만났군요.>>

인순이의 서울식 말투에 함경도억양이 섞여있었다. 창호는 대뜸 이 녀자도 중국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청순하고 이쁜 얼굴이였다. 통통했으나 갸름한 얼굴에 코날이 서있었고 도톰한 입술이 성적인 욕망을 자극하기에 만점이였다. 정장 투피스를 입은 몸매가 조금은 풍만해보였고 색상에 대한 감각만 잘 보완해준다면 멋지고 세련된 서울녀자임에 틀림이 없을것 같았다. 단거플눈이였지만 작지 않았고 조금은 처진 눈귀때문인지 사늘한 기운이 내비치고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렴창호입니다.>>

인순이가 손을 내밀었기에 창호도 그녀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미스 김은 중국 어디 계시지요? 저는 하이란시 사람입니다.>>

인순이는 반색을 했다.

<<그래요? 그럼 고향사람이군요...>>

정준태가 옆에서 끼여들었다.

<<여기서 고향사람 만나니 기분이 다르지요? 렴선생, 우리 미스김도 오늘 떠나요. 동행이 있어 좋지요? 죽는데를 가도 친구가 있으면 가기 쉽다는데 그 먼길 서로 도움이 되고... 그래서 미스김도 오늘 떠나려고한것입니다. 길에서 렴선생 우리 미스김 잘 돌봐주세요...>>

창호는 우리 미스김, 우리 미스김 하는 정준태의 말을 들으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말에 완벽귀조(完璧歸趙)라는 말이 있어요. 정사장의 화씨벽 무사히 조나라에 보낼게요.>>

정준태는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웃으며 말했다.

<<그야 보석을 가지고있는 사람의 나름이지요. 보석은 흠이 잘 나지 않으니까요.>>

창호는 정준태의 말속에 숨어있는 음탕한 냄새를 맡고 미소를 지었다.

<<흠도 없게 하지요.>>

인순이가 그들 대화속에 절어있는 내용을 가려듣고 정준태를 할끗 흘겼다. 순간이였지만 심상치 않은 관계가 섬광처럼 반짝 했다.

<<정사장님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해요?>>

그러면서 인순이는 낯을 붉혔다. 그 모습이 인순이라는 이름처럼 부드럽고 순진하게 비쳐왔다.

정준태는 무엇해졌는지 이 화제에서 탈출하려고 했다.

<<입방아만 찧치말고 탑승수속을 해요. 탑승수속은 빨리 하는게 좋아요. 그런 다음 이야기 해도 늦지 않으니까.>>

셋은 수속구로 가서 탑승수속을 했다. 짐을 부치고 탑승티켓을 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탑승권을 쥐고 돌아서자 정준태가 창호를 잡아끌었다.

<<탑승시간까지 한시간 푼히 남았으니 커피라도 한잔 해요.>>

창호와 인순이는 정준태를 따라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들이 공항 삼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려고 에스케일러에 오르려는 순간이였다. 뒤에서 창호의 귀에 익은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창호는 등허리에 어떤 충격같은것을 느끼며 돌아섰다. 나래가 서있었다. 창호를 찾느라고 급히 뛰여다녔는지 얼굴이 상기되여있었다.

<<!...>>

<<전 오빠 못찾는줄 알았어요...>>

나래는 할딱거리며 말하다가 정준태를 보고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

<<어머, 정사장님? 안녕하세요?>>

창호는 힐끗 정준태쪽에 눈길을 날리고는 나래에게 돌아섰다.

<<어떻게 왔어? 오지 말랬잖아. 전송이 뭐니?>>

나래는 수줍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정준태가 마음에 쏠리는지 정준태를 할끗 쳐다보고 빽에서 자그마한 선물함을 꺼냈다.

<<고마웠어요. 어머니 병이 기적처럼 나았어요. 꼭 선물이라도 드리고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떠날줄 몰랐어요...>>

창호는 나래의 어투가 변해있다는것을 감촉했다. 좀은 당혹했다.

<<그랬어? 그럼 다행이구나. 필요하다면 이후 더 보내줄게...>>

그날이 있은 후에 창호와 나래는 몇번을 더 만났다. 그러던 중 어느날 나래는 고향에 살고있는 어머니가 몇년전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다친 자리가 도지며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창호는 그런 타박상 후유증에는 웅담이 좋다면서 차비라도 빼려고 가지고 간 웅담을 주었다. 나래가 웅담값을 준다고 돈을 가져왔지만 창호는 한사코 받지 않았다. 첫째는 녀자와 장사를 한다는데 거부감이 있었고 둘째는 성적으로 관계를 가지고있는 녀자에 대한 남성의 책임같은것이나 호기같은것이 있었다. 그런데다 언제나 창호를 찾은것은 나래였고 만나서도 나래는 창호와 금전적인 요구가 없었다. 아마 이런 부담이 작용을 했는지도 몰랐다.

창호를 바라보는 촉촉한 눈이 쓸쓸하고 슬퍼보였다.

<<하나는 시계고 하나는... 집에 사모님께 선물하는 목걸이예요. 고맙게 받아주세요...>>

그자리에서 뜯어볼수는 없었지만 창호는 나래의 선물의 무게를 가늠하고있었다. 그녀의 눈길이 그것을 말해주고있었다.

<<고마워.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중국 한번 와. 꼭 잘해줄게...>>

<<예, 중국 꼭 갈게요. 어쩌면 오빠옆에서 살지도 모르죠...>>

창호는 나래의 말을 롱담으로 흘리며 웃어보였다.

<<그래도 좋겠지. 근데 중국 살자면 맞지 않고 불편한데가 많을걸?...>>

그러는 그들을 흥미있게 바라보고있던 정준태가 끼여들었다.

<<여기서 입방아 찢치 말고 올라가 커피나 하면서 해요. 나래, 그러지? 오빠 보낸다니까 마음이 많이 여려진것 같아?...>>

나래는 륜락가의 녀자답지 않게 수줍음을 타면서 정준태를 쳐다보았다.

<<정사장님은 그렇지 않으세요? 저만이 리별이 아니지 않아요?>>

정준태는 인순이쪽에 눈길을 주고는 미소를 띠운 얼굴을 창호에게로 돌렸다.

<<그런가?...>>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자 탑승수속을 하는 시간이 되였다. 해관검문에 들어서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창호는 검문밖에 서있는 정준태와 나래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정준태가 잘가라는 표시로 손을 저었고 그 옆에 서있는 나래도 손을 젖고있었다. 창호도 회답으로 손을 저었다. 문득 창호는 손을 젖고있는 나래의 눈이 물기로 가득하다는것을 감촉했다. 거리상으로 보일리는 만무했지만 창호는 그것을 느낌으로 받고있었다. 가슴이 뭉클 했다. 하루밤에 만리성을 쌓는다고 했다. 그것일가?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었다. 하루밤 부부정이 백날을 간다고.

창호는 검문을 나서면서 다시 한번 손을 저었다. 그러면서 무겁게 쏠려오는 한숨의 무게를 느꼈다.

드디여 탑승을 하고 비행기는 폭음을 울리며 리륙을 했다. 일망무제한 바다가 보이면서 비행기는 평온한 비행을 시작하였다. 옆에 앉은 인순이가 자주로 창호를 할끔거렸다.

<<마음이 무거우신가보지요?>>

참지 못하겠는지 인순이가 입을 열었다. 창호는 인순이쪽에 얼굴을 돌리며 되물었다.

<<네? 뭐라구요?>>

인순이가 해쭉거렸다.

<<어마나, 정드셨는가봅니다?>>

그제야 창호는 인순이가 나래를 말하고있다는것을 알아챘다. 그동안 나래생각으로 인순이는 찬밥으로 되여있었다. 동행이였음에도.

<<아-니! 가볍게 만난 사이입니다.>>

나래의 눈귀가 살짝 쳐들었다.

<<그 녀자의 얼굴이 심상치 않던데요? 한국에 오신지 얼마 되였어요?>>

<<두달입니다.>>

<<두달? 중국서 사는 녀자예요?>>

창호는 나래에 대해서 깊게 말하기가 싫었다.

<<아니요. 강원도에서 서울 온 녀자입니다.>>

그러나 인순이는 집요했다. 창호의 대답을 듣고 그녀는 둥그렇게 눈을 떴다.

<<그래요? 렴선생님 아주 도에 트신분이시군요. 두달 한국체류에 한국녀자까지 애인 두시고...>>

창호는 인순이의 이런 투의 말에 거부감이 생겼다. 사실 인순이의 말에 비아냥은 없었다. 오히려 감탄과 질투같은것이 섞여있었다. 창호는 어떻게 든 인순이의 입을 틀어막고싶었다.

<<인순씨도 뭐 숭늉이 아니던데요?>>

이제는 인순이가 수세가 되여 올롱 했다.

<<네?>>

<<정사장과 심상치 않던데요? 바라보는 눈길이?...>>

인순이가 방어를 하고있었다.

<<우리도 가볍게 만난 관계예요. 언니의 친구가 소개해서 만난거예요...>>

변명이 많이 창백했다. 깨고소해 하며 창호는 반격을 계속했다.

<<정사장은 치마바람에 약한 사람이거든요...>>

인순이가 방어를 했다.

<<사업을 같이 하실 분이라면서 험담을 해요?>>

<<그랬나?...>>

창호는 웃고말았다.

어느새 비행기는 가을이 누렇게 덮힌 대지우를 날고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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