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옥 여행기

5월 3일:

맑고 청신한 아침이다.
이른아침식사를 마친 손님들을 싣고 뻐스는 20분가량을 달려서 청진시가지를 벗어났다. 조선의 시가지들을 보면 우리 이곳과는 달리 큰길을 끼고 길게 늘어앉았기에 얼핏 볼바엔 아주 큰 도회지로 보이지만 실상은 길기만 하고 폭이 좁은 모양의 도시들이 많았다. 청진시가지도 그런 모양이여서 시가지를 벗어나는데만도 40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청진시가지를 벗어난 뻐스는 경성을 지나서부터는 줄곧 해안선을 끼고 달렸다. 굽이굽이 이어진 해안도로는 한순간은 내리막을 질주하다가도 또 한참은 숨가쁘게 올리막을 톱는다. 바다는 마치 우리와 숨박꼭질을 하는듯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자신의 모습을 좀처럼 다 보여주려 하지를 않는다. 차안에서 본 바다는 모두 푸르스럼한것이 어느것이 하늘이고 어느것이 바다인지 좀처럼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득히 저멀리 수평선너머로 보이는 몇점의 검은점들로부터 그것이 바다임을 알수 있었다. (그것은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선들이였다.) 바다물은 일부는 푸른색 또 일부는 검은색을 띠였으며 저멀리는 연한 하늘색을 띤것이 마치 룡궁의 룡왕이 조화를 부리는듯 하였다. 하늘과 맞닿은 바다, 《야, 저바다를 봐라 정말 멋지네! 》라고 남편이 감탄사를 연발할때에도 나는 어느것이 바다인지 미처 분간을 하지 못해 한참이나 찾아헤매는 바람에 차안에 앉은 여행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웃기는 해도 그들도 아마 나처럼 하늘과 조화를 이룬 바다의 모습을 인츰 알아보지는 못했으리라!


근 네시간의 긴 로정을 달려 뻐스는 마침내 명천군에 위치한 칠보산에 다달았다. 칠보산어귀에는 녀신바위가 달수를 헤아릴수 없는 무거운 몸을 이기기 어려워서인지 길게 누운채로 여행객들에게 반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 인간이 조각해놓기라도 한것처럼 임신한 여인의 옆모습을 방불케하는 여신바위에서는 당금이라도 멋진 선남선녀들이 태여나기라도 할듯 인자한 어머니의 그 모습이였다. 나는 달리는 차안에서 나마 여신바위의 순산을 기원하며 보촌리 민박집으로 향했다.


보촌리, 이름과는 달리 옛날 지주들이나 살았음직한 똑같은 모양새를 갖춘 새롭게 지어진 20여세대의 아담한 민박집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중도에서 반시간가량 휴식한외 내처 쉬지 않고 달렸음에도 130키로의 길을 달리는데 오전해를 다 보냈다. 그만큼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였지만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면서도 인간이 어울려 즐길수 있는 여행지를 개발하려는 어쩌면 보수적인지도 모르는 그들의 생각이 돋보여 해안선의 880여개의 굽이도 즐겁게 달려왔던것 같다. 또한 오는 도중 줄곧 느낀것이였지만 해안도로 량옆에는 몇백년은 되였음직한 울창한 소나무림이 형성되여 사람들에게 가끔 지금은 봄이라는것을 잊게 하였다. 몇백년을 두고 자랐을 소나무들 사이로 드문히 피여난 돌배나무꽃들과 갓 자란 연두색의 나무잎들만이 지금 한창 봄임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점심식사가 끝난후 우리는 충분히 휴식한후 외칠보를 구경하려 나섰다. 가는 내내 달리는 차안에서 목을 길게 늘이고 내다보니 산세가 어찌나 기이하고 험준한지 감탄사가 저절로 련발 쏟아져 나왔다. 더욱 손님들의 감탄을 자아내는것은 거의 40도각으로 된 험한 산길을 요리조리 곧잘 달려가는 운전사의 솜씨였다. 참으로 로련한 기사아저씨였다. 거기에 안내원의 걸쭉한 육담까지 더해져 눈, 입, 귀가 모두 즐거운 관광이였던것 갔다. 쌍지봉, 가재바위, 닭바위, 봉지샘 등 다양한 이름들에 재미나는 전설까지 곁들여져 외칠보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주어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기이한 모양을 가진 산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그 이름들을 전부 다 기억하기에는 역부족인것 같다.


산이 있으면 물이 없고 물이 아름다우면 산이 보이질 않는다고 하더니 칠보산은 산이 있어 동해가 더 맑고 푸르러 보이였으며 동해의 잔잔한 물결이 산의 웅위함을 돋구어 주는듯하여 산수가 모두 아름다운 고장이란 생각이 든다. 이처럼 산수가 아름다운 고장에서 산해진미 맛보니 더 바랄것이 무엇이랴! 아마 저 동해의 룡왕님도 칠보산의 산신령도 우리처럼 여흥을 즐기며 행복에 젖어보지는 못했으리라
산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아름다움의 십분의 일이라도 나의 글재주로 표현할수 있는 말들을 곁들일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저 마음으로 외칠보의 아름다움을 새겨두고 음미하려다 서투른 글이나마 적어 표현하는 바이다.
아래 총망히 떠오른 생각으로 외칠보에서의 소감을 마무리하려 한다.


산마다 절경이요 절경마다 사연일세
닳고 닳은 천만년의 이야기 되새겨 보는데
아름다운 저산이 내 눈길 잡아끌면
기이한 이산이 내발길 멈추라네
칠보산의 황홀경에 넋잃은 인간들을
바위틈에 서있는 천년송이 가엾게  살펴보네
천년의 세월도  네 앞에선 무색하리니
못다한 이야기 꽃으로 피여나
긴 세월의 연주를 들려주네.

5월4일:
오늘은 칠보산의 노란자위로 일컫는 내칠보를 관광할 차례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해돋이를 보려고 하였지만 무심한 하늘은 나의 이런 간절한 마음은 아랑곳없이 흐린 하늘은 좀처럼 열릴줄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자는 남편을 깨워 일으켜 함께 바다구경에 나섰다. 이번까지 세번째로 되는 바다 구경이지만 동해바다는 너무나 맑고 아름다워 바다라기보다는 내라고 부르는것이 더 알맞을것 같았다. 마을과 오십여메터 상거한 바다는 표효소리보다는 잔잔한 음악을 선사하는 정겨운 바다였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맨발로 모래사장을 밟으며 해변가를 거니노라니 가슴은 탁 트이는듯 하였고 이곳에 영원히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참으로 산좋고 물맑은 아름다운 바다가 마을이였다.


 늦은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행장을 차에 싣고 내칠보를 향하여 차머리를 돌렸다. 우리를 전송하는 아가씨들의 모습을 보며 칠보산도 아름답지만 섬마을을 꾸려가는 아가씨들의 모습과 마음이 더 이쁜것 같아 떠나는 발길이 마냥 아쉬웠다. 《잘 있거라, 보촌리 민속마을이여!》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내칠보로 향했다.


내칠보는 외칠보보다 확연히 더많은 만물상들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차는 아찔한 바위들을 이리저리 감돌아 톱으며 내칠보의 이곳저곳의 모습을 피끗피끗 보여주었다. 말타고 꽃구경이라고 하더니 오늘은 차타고 내칠보를 구경하는 셈이다. 운전사의 옆좌석에 앉았기에 다행히도 다른 관광객들보다 더 자세히 볼수 있었으며 수시로 차밖으로 내다보며 기사에게 물어볼수도 있었다. 내칠보는 이름 그대로 없는 이름이 없을 정도로 특이하고 기괴한 각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관광객들의 정신을 쏙 빼놓고 있었다. 그대가 아무 이름이나 대보시라. 아마 그대가 말한 그런 이름을 가진 바위들도 긍정코 있을것이니… 전선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반갑게 마중하며 달려가 남편의 품에 안긴 젊은 안해의 왼손은 남편의 바지앞섶으로 향하고 그러한 안해를 정겹게 안아주다가 돌로 굳어졌다하여 붙여진 부부바위, 그옛날 천하를 호령하던 지주가 떵떵거리는 기와집을 지어놓고 그아래 올망졸망한 초가집들에 숱한 머슴들을 두고 부리는듯한 모양이라하여 붙여진 기와집바위,초가집바위, 당금이라도 산에서 뛰여내릴듯이 두귀를 쫑긋세우고 뒤다리를 높이든 토끼바위, 사자바위, 범바위, 가마처럼 생겼다하여 가마바위, 평양의 개선문을 그대로 옮겨놓고 그문으로 지나가면 금슬이 좋아진다고 하여 결혼을 앞둔 부부들이 찾는다고하는 례문암, 이루다 셀수없는 모양의 만물상이니 그형태가 각이하고 다양함은 말하지 않아도 가히 짐작할수가 있으리라.   부부동반으로 이곳을 찾은 려행객들은 원래 좋은 금슬은 이곳을 지나면 깨지지는 않냐고 우스개를 하면서 손잡고 그곳을 지나갔다. 우리부부도 동행한 사람들의 권고로 례문암에서 손에 손잡은 모습의 기념사진을 한장 남겼다. 그리고 세멘으로 잘 닦여진 만장봉과 월락봉에 올라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보기도 하였다. 차로 돌았으니 망정이지 걸어서 내칠보만 구경하려고 해도 아마 이틀해가 짧았을것이라 생각된다.


내칠보에서도 가장 인상적인것들을 꼽는다면 승선대인것 같다. 승선대에 서니 주위의 만물상들이 한눈에 안겨오는것이 천상의 옥황상제가 지상의 인간들의 희노애락을 한눈에 굽어보는 느낌이 들어 자못 흥미로왔다. 승선대에 서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판금대가 있는데 판금대란 말그대로 천상의 선녀가 피아노앞에 앉아 우아한 자세로 연주를 하고 그앞에서는 총각가수가 지상의 행복을 노래하는것 같은 모양이 나의 귀에도 그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리는듯 하여 음악회에 초대된 기분이 다분히 들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유람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즐길수 없는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1300여년전에 지어진 사찰인 개심사에 들어가 불공도 드리고 덕수스님의 절에 대한 소개도 들었다. 참으로 년륜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집이였다. 절에는 스님이 몇분 계시지 않았지만 아담하고 정기가 느껴졌다. 전에는 불임여성들이 사찰을 찾아 불공을 드리면 임신안되는 사람이 없을만큼 령험하였다고 하니 가히 당시의 흥성함을 상상할수 있으리라. 또한 북의 체제하에도 이런 절이 있다는것이 마냥 신기할뿐이였다. 스님들의 생활도 절을 둘러보면서 느낄수 있었는데 다른 점이라면 불문률도 여기서는 지켜지지 않을만큼 독특한 생활방식으로서  가정도 꾸려가고 머리도 삭발이 아닌 우리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바없는 세인의 생활상 그대로인것이 전혀 속세를  벗어난 불교인의 모습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붉은 가사를 걸치고 재빛옷만 아니였다면 려행객으로 착각하였을수도 있었으리라.


개심사를 둘러보는것으로  내칠보에서의 관광을 마친 우리는 개심사아래에 있는 내칠보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달래고 귀로에 올랐다. 갈때엔 차창옆으로 아찔하게 보이던 그처럼 가파롭기만 하던 절벽도 올때엔 그다지 험해보이지 않았다. 같은 길이건만 한번이 다르고 두번이 또 다른 느낌인것 같았다.
 세시간이란 긴 로정을 달려 차는 경성온천에 우리 일행을 부리워 놓았다. 따가운 온천물에 여행에 찌든 몸을 씻고 나니 한층 피곤이 풀리는것 같아 기분이 상쾌하였다.  목욕을 하고 나온 사람들의 얼굴마다에는 한결 생기가 돌아보였다.


    경성온천호텔에서 사람들은 즐거웠던 3일간의 아름다운 추억을 안고 건배의 잔을 들었고 축배의 노래를 불렀다. 우리들이 부르는 김일성장군이란 노래와 월미도의 주제가가 도자기도시 경성의 밤하늘에 오래오래 메아리쳤다. 비록 짧은 3박4일간의 여행이였지만 많은 추억들을 안고 갈수 있어서 참으로 즐겁다. 래일의 평범한 일상속에서 칠보산에서의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인생을 즐겁고 뜻깊게 살련다. 래일이면 고국 땅을 떠나게 될것이다. 총망한 유람이였으면서도 많은 소득을 안고 가게 되여 행복하다. 이글을 쓰는 이시각까지도 남편은 아쉬운 마음을 술로 달래는것 같다. 휴식의 한때를 자기를 풀어놓고 망가지고 싶은가 보다. 지친 일상에서의 피로가 그렇게라도 해소될수 있다면 그렇게 자신을 관대하게 대하라. 그대여 자유를 누리라. 래일의 태양은 또 뜰것이다. 그럼 그대는 다시 바쁜 그대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터이니… 오늘을 축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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