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도 예언자

그녀가 인간들의 세계로 놀러온 것은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 이것은 공부. 인간 공부라는 이름의 체험 학습이다. 설사 그녀가 다니던 ‘도깨비 학교’가 인정을 안 해준들, 부모님이 결사반대를 한들 이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뒤통수의 조그마한 뿔 하나가 귀여운 그녀의 이름은 동제. 코리아라는 이름의 나라 중에서도 남쪽 나라에 숨어 사는 꼬마 도깨비 족이다. 명칭이 ‘꼬마 도깨비’라고는 하나 사실 인간과 별 체격의 차이는 없다. 그럼에도 동제는 그 이름이 매우 어울리는 조그만 몸집. 15살임에도 보통 5살 정도는 어리게 보는 아이였다.
동제는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조용하고 사람이 적은 마을이었다. 그녀가 사람들로부터 숨어 살던 동지산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이다. 시골 치고는 최근 들어 아파트도 많이 들어섰고 먹거리 상가와 전자제품 상가 등 문명의 이기도 어느 정도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밟고 있는 아스팔트가 신기했다. 검은 바닥. 길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왜 이렇게 검은색인지 궁금해 동제는 쭈그려 앉아 그것을 만져보았다.
“밤이 되면 말이야.”
가까운 곳에서 어른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고 길가의 건물 쪽을 바라보았다. 마을에는 흔히 있는 문방구 앞에, 꼬마 남자 아이들 서넛이 모여 있고 여행자 차림의 청년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중이었다.
“도깨비가 산에서 내려와 못된 놈들을 잡아간단다.”
도깨비라는 단어를 들었다. 궁금해진 동제는 슬금슬금 그들에게 다가갔다. 소년들의 비웃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보여주실래요?”
“아저씨 그거 5살 먹은 애도 안 믿어요. 도깨비 전설은 재미없다고요.”
와중에는 조금 머리 좋은 녀석도 있어서,
“음. 도깨비 전설을 이야기로 쓴다면, 역시 그 한국 특유의 느낌을 ‘모엷하게 살려 캐릭터 화 시켜야 하는 거야.”
동제로선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결국 소년들은 웃으며 떠나갔다. 청년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그들 뒤에다 대고 한 마디 외쳤다.
“아저씨 아냐 임마.”
그 순간, 그가 혼자 남아 있는 동제를 발견했다. 귀여운 여자 아이. 실은 15살이지만 10살 정도로 꼬마 같으니, 금세 그의 얼굴에 희소가 떠올랐다.
“안녕 꼬마야. 이름이 뭐니?”
“아저씨는 뭐에요?”
“으윽. 난 조부진. 넌 이름이 뭐니?”
“아저씨는 뭐에요?”
반복되는 질문,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동제의 모습에, 그것이 장난임을 깨닫고 부진은 피식 웃으며 동제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기 시작했다.
“으악, 으악.”
신음을 흘리며 도망치려는 동제. 그때, 부진의 손에 무언가 잡혔다. 뒤통수 부근의, 작은 굴곡. 조금 딱딱한 혹, 그런 느낌이었다.
“너, 머리에 뭐가 났니?”
당황해서 머리를 가리려는 동제를, 힘으로 끌어 당겨 그는 뒷머리를 보았다. 놀랄 만큼 귀엽게 붙어 있는 뾰족한 뿔 하나. 순간 부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도…깨비?”
“우아아앙―”
충격 받은 듯 뒤로 물러나는 동제.
“큰일났다― 킁일, 드, 들키면 안대는데― 아으우―”
아직 구경도 하기 전인데 들키다니. 부모님의 말대로라면 인간들은 도깨비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들키면 분명 적대적으로 대할 것이라고 들었다. 아니 잠깐, 그런데 무서워한다는 것은, 겁을 주면 도망친다는 의미는 아닐까?
“어, 어흥. 어흐흐흥.”
호랑이 흉내를 내는 소녀. 부진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귀엽잖아!”
남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충격 받은 표정. 동제는 혹시 겁먹은 걸까 조심스레 다가가 보았지만 불시에 부진의 ‘와락’ 습격을 받고 말았다.
“우와아아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하지 마! 그르릉, 그르릉, 그르르르르르― 하지마!”
엎치락뒤치락 하며, 결국 진정된 건 동제가 울어버린 후였다.
“너 진짜 도깨비야?”
다시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진이 물었다. 불만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던 동제는, 그가 뿔을 만질 때마다 움찔 움찔 몸을 떨었다.
“잡아가지 마세요… 잡아가면 술법으로 공격할 거에요…”
“어려서 배운 술법도 없지?”
“흐앙… 아녜요, 손으로 이렇게 하고 주문을 외우면…”
“어차피 아빠가 하던 거 흉내 내는 거겠지.”
부진의 말대로였다. 울먹거리는 동제는 술법 시늉만을 냈을 뿐 아무 것도 일으키지 못했다. 우우우 소리를 내며 우는 동제. 그러나 ‘우는 모습’마저 귀엽기에 괜히 필요 없는 남성의 동정심을 자꾸만 일으키고 있었다.
“난 말이야.”
그때 부진이 입을 열었다. 동제는 울음을 그치고 그를 쳐다봤다.
“도깨비가 사람을 납치해 간다고 생각했어. 도깨비는 무서운 녀석들이라고. 실제로 본 적도 없으면서, 이렇게 귀여운데 말이야. 하지만 그래서 방금 떠오른 건데, 오히려, 사람이 도깨비를 납치해갈 것 같아. 나 같은 정상인조차 그렇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니까.”
“이, 인간은 무서워…”
인간은 도깨비를 무서워한다더니 지금 동제의 꼴은 도깨비가 인간을 무서워 할 뿐이다. 부들부들 떨던 그녀는, 결국 비틀거리며 저 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잠깐만!”
“무서워서 집에 갈래요…”
“기다려.”
심하게 떨고 있는 동제를 그가 잡았다.
“무서워하지 마. 내가 이곳을 구경시켜줄게. 어때?”
“납치하려는 건가요…”
“아냐아냐. 믿지 못하겠으면 네 맘대로 해.”
훌쩍. 동제는 그의 눈을 쳐다봤다. 키가 커서 고개가 아팠다. 그러나 착한 사람 같았다. 웃고 있는 모습도, 목소리도, 부드럽게 잡고 있는 손도.
“그럼, 안내해주세요…”
“진짜? 아자! 나이스! 우오오오!”
동제가 심히 걱정할 만큼 그는 오버하며 외쳤다.
“그, 그리고, 잇디 마세요, 저는 무무무 무서운 도깨비에요.”
“알았어. 우후후후, 사람들 앞에서 뿔은 숨겨. 자, 그럼 어디로 가볼까?”
그때, 동제가 그의 손을 잡았다. 마치 오빠와 동생처럼, 두 사람은 사이 좋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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