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숙

1.
얼마 전에 <올인>을 노름꾼이 노름하듯 밤새 보았다. 중국에서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DVD로 본다. 한국에서는 한 회분이 끝나는 그 순간을 아쉬워하며, 일주일을 애써 참으며 기다려가며 보지만 중국에서는 DVD로 한 큐에 끝내버린다. 물론 그 한 큐가 적어도 만 이틀은 되지만.

그러나 DVD를 사두고서 나도 한 달 동안은 쳐다만 보았다. 내가 노름꾼처럼 그렇게 밤새 볼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짬짬이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덩어리로 시간이 나기를 기다리면서. 바쁜 때는 한번씩 눈길만 주며 그것이 나에게 줄 희열을 애써 유보하며 지냈다. 그것을 바라보는 때의 심정은 한국 시청자가 일주일을 기다리는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얼마 전에 시간을 내어 정말로 밤을 새워가며 보았다. 화투로 시작한 주인공의 도박 인생이 트럼프로 마피아로까지 진행되며 그 사이에 안타까운 사랑을 하는 과정이 시종 긴장과 재미를 더해나가 계속 다음 편만 다음 편만 하다보니 밤을 꼴딱 새우고 만 것이다. 드라마는 서사적 전개의 확인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일으켜 시청자를 정해진 시간마다 TV앞에 앉혀 놓게 되는데, DVD로 보면 그 호기심이 바로 해소되기 때문에 끝없이 TV앞에 앉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 호기심은 중독성을 갖게 되어 도대체 주인공이 애인과 사랑을 성취하는지 도박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지 결말이 대한 궁금증에서 놓여날 길이 없게 된다. 회를 더할수록 더해지는 궁금증은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깝게 하며 48시간 가까이를 TV 앞에 앉혀 놓았다. 새벽녘까지 벌개진 눈으로 TV 앞에 앉아있는 내 꼴이 마치 노름꾼, 도박사 같았다.


2.
방영웅의 <분례기>에서 분례를 정신병자로 몰고 간 그 남편의 노름벽과 도박사를 보면서 도박사의 꼴이 되어가는 내 모습이 견주어졌다. 이제 음력 설이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분례 남편이 나올 것인가. 분례 남편은 도박사, 아니 노름꾼의 극단적인 양상이지만 가족끼리 오락으로 치는 화투도 지나치면 부작용을 낳게 되니 신문에는 화투 치면서 조심해야 할 것 특히 목과 허리 골병을 경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화투병이 생기지만 중국도 마작으로 밤을 새워 어깨 관절 디스크가 튀어나오는 마작병 환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화투는 이렇게 문제가 많은 데다가 그 근원을 따져보면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고 도박성이 강하여 패가망신하기 쉬우니 하지 말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한국 민속학자 임재해가 쓴 논문에 의하면 화투는 일본에서 들어왔지만,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의 골패가 서양에 건너가 트럼프가 되었고, 그 트럼프가 일본으로 건너가 화투가 되었고, 그것이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화투가 일본에서 왔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인 셈이다.

물론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일제가 의도적으로 화투를 보급했던 그 저의는 아직도 경계해야 할 걸로 안다. 화투로 국민을 무기력하게 만들려 했던 그 악의 말이다. 그렇지만 극단에 빠지지 말고 적당히 하면 재미있는 오락임은 말할 것도 없다. 도박성이 강하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어느 것도 극단은 있는 셈이니 극단을 가지고 표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으므로 그것 또한 설득력 없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마작이 한국에 화투에 대응되는 온 국민의 유희이다. 집에 가면 설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질문에 다들 '마작도 하고, .......' 하는 답변을 한다. 명절의 가장 대중적인 놀이가 중국에서는 마작이다. 중국인들은 마작을 한다는 것을 "탁자를 세운다"라고 한다. 우리가 "자리 깔자"라고 하면 고스톱을 치기 위한 자리를 편다는 말인 것과 동일하다. 지금쯤 귀향한 중국 사람들 집집마다 탁자를 세우고 '화라라' 마작하는 소리로 시끄러울 것이다. 내일이면 한국의 3900만이 이동한다는 설날이다. 중국도 10억 가까이 이동을 한단다. 중국 전인구의 절반 이상이 설을 맞기 위해 이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동하여 한국에서는 화투를 치면서 설을 보내고 중국에서는 마작을 하면서 설을 보낸다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애정 마라탕(사천 음식의 하나로 매운 양념으로 국물을 만들어 그 속에 고기나 야채 등을 데쳐서 먹는 음식)>이라는 중국영화에서는 노인들이 마작을 하며 사교를 한다. 예쁘고 젊은(?) 할머니가 구혼광고를 냈는데 이를 보고 찾아온 할아버지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서로 머쓱해진 사람들이 마작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일순간 어색했던 노인들의 분위기는 확 바뀌고 유쾌하게 한 바탕 놀면서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서로 친구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화양년화>나 기타 많은 중국영화, 특히 홍콩영화에서는 마작을 하는 장면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영화인도 실제로 마작을 많이 즐기는 모양이다. 생전에 마작을 즐겼다는 장국영의 관에도 마작을 넣어줬다 한다.

한국에서 조선족들의 불법 체류에 대한 단속이 시작되자 오랫동안 숨어 있기 위해 마작을 사가는 조선족이 많았다 한다. 이미 중국인의 풍속에 젖은 그들에게도 마작은 친숙한 놀이인 것이다. 화투가 아닌 마작을 즐기는 모습에서 그들의 문화적 배경을 본다.

몇 년 전 재미로 마작을 사러 홍교 시장에 갔었다. 사람들이 마작을 사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만산 마작이 비교적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었다. 보기에도 품질이 좋아 보여 나도 대만산으로 하나 마련해 두었다. 대만인들도 가족모임에서는 예외 없이 1~2일 연이어 마작을 즐긴다 한다. 중국과의 친근한 관계 때문에 중국 귀빈을 대접하기 위해서인지 혹은 김정일 자신이 즐기기 위해서인지 김정일의 별장에도 마작 전용관이 있다고 한다. 중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관련 민족과 사람들이 대부분 마작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3.
마작을 우리는 마작(麻雀)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마장(麻將)이라고도 하고 마작(麻雀)이라고도 하나 대부분 '마장'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그래서 중국어로 하려면 '마장', 한국어로 하려면 '마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중국어 '마작(麻雀, 마췌)'이라는 말은 '참새'라는 뜻인데 마작패를 뒤섞을 때 참새떼가 지저귀는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청나라 초기에 지금의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하고, 우리나라에는 갑오개혁 즈음에 들어왔다 한다. 마작은 네 명이 136개의 패를 가지고 짝짓기를 하는 놀이이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스포츠로 지정했고, 2008년 북경올림픽의 시범종목으로 채택할 것이라 공언하기도 했다. 99년 창립된 세계마작협회가 통일된 마작규칙을 제정하여 공표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마작에 대한 생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내가 마작을 배워보고 싶다고 하자 아니 순진한 선생님이 무슨 마작이냐는 식이다. 그러나 학생들도 대부분 마작을 할 줄 안다.

특히 중국 노인들은 체력이 다할 때까지는 이웃 노인들과 마작을 즐긴다. 요즘의 현대식 아파트가 아닌 구형의 저층 아파트 앞에 가면 동네 노인들이 날씨가 좋을 때 태극권과 노앙가와 마작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마작을 하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문화혁명이 끝난 후에는 다시 노인들의 소중한 놀이가 되었다. 북경 노인들은 10원(1500원 정도) 정도를 가지고 시작하여 다 잃는 사람이 생기면 판을 그친다. 그만큼도 돈이 없는 가난한 외지인들은 판에 2마오(30원)를 걸고 하여 5시간 정도 하면 많이 따는 사람이 6원(9백원) 정도 따게 된다. 물론 돈이 있는 사람들이나 젊은이들은 이보다 많은 판돈을 가지고 놀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도 판돈의 크기만 조절하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놀이이다.

우리 화투 고스톱도 100원 짜리를 하면 밤새 해봐야 따는 사람이 2,3만원에 불과하여 패가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100원 짜리가 시시한 사람들은 500원이나 1000원 짜리를 하면 된다. 동네 아주머니들, 할머니들은 10원짜리 화투를 치는 것을 종종 본다. 형편에 따라 즐거운 정도의 판돈을 조절하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인 것이다.

동북 사람들은 북경의 마작 방식이 더 간단하여 재미없고 자신들의 게임방식이 더 어렵고 긴장미가 있어 재미있다 한다. 우리 고스톱이 지역마다 다른 것처럼 중국의 마작도 지역마다 그 규칙이 조금씩 다른 것이다.

우리 화투, 고스톱의 압권은 놀이를 하면서 주고받는 유머에 있다. 서먹서먹한 관계도 오고가는 고스톱 패 속에 섞여든 우스개소리에 녹아든다. 그러나 마작은 규율이 복잡하여 패를 읽느라고 우리처럼 오고가는 농담을 즐길 여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들은 긴장하여 마작을 하지만 트럼프를 할 때는 온갖 농을 다 즐긴다. 이모저모로 트럼프와 마작은 상보적인 관계에 있어 중국인에게는 이 둘이 다 필요한 것같다.


4.
내가 처음 중국에 와서 놀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트럼프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중국인들이 트럼프를 이처럼 널리 즐기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자신의 전통놀이도 아닌 서양의 놀이를 거의 전국민이 즐기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거기다 사람들이 몇 명만 모이고 공간만 허락되면 시도 때도 없이 트럼프를 즐긴다. 긴 여행의 여행객들이 기차간에서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민공들이라 불리는 외지인 노동자들도 점심 시간 여유를 틈타 공사 현장 바닥 아무 데서나 트럼프를 한다. 심지어 새로 생긴 찻집에서도 몇 명씩 둘러앉아 큰 소리로 떠들며 트럼프 놀이를 한다.

마작은 무겁고 많은 패가 필요하고 네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마작은 좀 더 정식으로 놀이를 하고자 할 때, 아니 놀이 도구를 제대로 마련해서 놀 수 있을 때 하는 것 같고, 트럼프는 휴대하기 쉬워 아무 데서나 쉽게 펼칠 수 있기 때문에 둘 사이는 나름대로 때와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역시 중국인에게 마작과 트럼프는 상보적인 놀이이다.

그러나 우리의 화투는 휴대가 용이하기 때문에 트럼프라는 대용물이 필요치 않다. 마작도 우리에게는 이름 외에는 낯선 놀이다. 오히려 트럼프보다 마작이 더 낯설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마작이 제법 익숙한 놀이라 한다. 일본에서는 마작을 소재로 한 만화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나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은 국내에는 마작의 규칙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 한다.

마작은 인터넷으로 옷을 갈아 입기도 한다. 한국 이동통신들이 서비스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 중에는 KTF '벗겨봐 알럽키스' 등은 마작을 응용한 성인게임이라는데 지금도 이런 서비스가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6인용 대전 모바일 게임 '배틀 상하이'도 마작을 소재로 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은 마작인구가 3억명, 일본은 3000만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두 시장을 겨냥하여 컴퓨터 마작게임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고 한다. 마작을 이용한 게임은 보급되는데 정작 한국 사람들은 마작을 잘 알지 못한다. 컴퓨터 게임을 개발한 한국소프트게임 회사 사장은 마작에 관한 책을 내기로 했다고 한다. 이것은 인터넷 게임을 보급하기 위한 차원이 아닌가 한다.

우리에게 마작이 낯설고, 트럼프가 대중화되지 못한 원인은 화투가 이처럼 우리에게 충분한 놀이여서가 아닐까. 세 사람만 있으면 고스톱을 칠 수 있고, 그게 안되면 둘이 민화투나 육백을 치면 되고, 둘이서 정 고스톱이 하고 싶으면 맞고를 치면 된다. 그나마 상대가 없으면 재수 패를 띄면 된다. 혼자라도 영화 <선생 김봉두>의 김봉두 선생처럼 혼자서 자리를 바꿔가면서라도 고스톱을 치겠다구요? 너무 청승맞지 않나요?

돈을 걸고 치지 않는 화투가 재미없으면 형편에 따라 적당하게 걸고 치면 된다. 돈 적당히 걸고서 목숨 걸고 치지 말고 사이사이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띄우면서 치면 즐길만한 오락이 될 수 있다. 가지고 다니기도 쉬워서 어디서나 쉽게 판을 벌릴 수 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우리 것이 다된 화투의 일본 근원론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얼마 전에 한국의 성형수술이 일본을 제치고 평가받아 대만 의사들이 과외공부를 하러 온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국의 성형수술은 일찍이 우리보다 앞선 일본에게서 많이 배워온 것으로 안다. 일본의 화투를 배워 일본보다 더 재미있게 더 의미 있게 즐기면 그뿐이 아닌가. 더구나 더 근원적인 원조를 다지면 우리의 골패라는데 말이다. 근원론으로 따지면 중국에서도 우리의 한류를 즐겨서는 안된다. 외국에서 들어왔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은 문화적 국수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다.

그러나 우리것을 쉽게 폄하하는 버릇이 화투에서도 나타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 화투로 도박을 즐겨 하는 사람은 노름꾼이라 하고 트럼프를 하는 사람은 점잖게 '士'를 붙여 도박사라고 하고, 더 높이려면 갬블러라고 한다. 실제 우리 풍속에서는 트럼프가 설 자리가 없는데 인위적인 관념 속에서는 트럼프가 상전이다.

일본 원조론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화투에 지나치게 탐닉하면서 건강을 상하고, 설 연휴를 자신에게는 휴가철로 아내에게는 노동절로 만들면서 화투판의 간식을 대기 위해 밤새 잠 못 자고 서성이는 부인들을 모르쇠 하는 않는지나 살필 일이다. 자신의 몸까지 상해가면서 혼자서만 고스톱 치고 계시는 남편 분들, 부인들은 할 줄 모른다고요? 가르쳐 주면 다 해요. 그렇게 즐거운 거라면 혼자만 즐기는 것은 더 불공평하잖아요? 이번 판에는 패가 좋아도 죽어서 사모님께 화투짝 쥐어드리고 시원한 식혜 한잔 떠다 드리면서 옆에 앉아 훈수해주면 어떨까요?

중국에서 마작 하면서 여자들에게 뒷수발 시킨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늘 탔던 택시의 기사도 여자라고 해서 남자들 위해 마작 서비스할 일은 절대 없다고 강경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기도 설에는 마작을 할 거라고 하면서. 그는 서너 시간에 삼사백원(5,6만원 정도)이 오갈 수 있는 판돈을 놓고 하겠다고 한다. 부자 기사인가?

판돈이 너무 크지 않아 잃어도 서운하지 않을 정도, 딴 돈 모두 개평으로 나누어줘도 기분 좋을 정도가 좋을 것 같은데, 판돈이 너무 높아 설에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하고 의 상하는 일이 있다면 안 하느니만 못할 것 같아서다.
이렇게 말하는 나야말로 새로 사둔 DVD 드라마를 보면서 중간에 적절하게 조절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이번에 볼 DVD는 <옥탑방 고양이>다. 설마 이번에도 새벽까지 노름꾼 모양을 재현하지는 않겠지? 도박사 이야기가 아니니 좀 나으려나?

아니 이참에 몇 년 전에 사둔 마작을 배워볼까?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미있기에 밤새 관절염이 생기도록 친단 말인가? 중국문화를 알기 위해 배워보고도 싶지만 '두뇌스포츠'라는 마작을 내가 제대로 배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36개나 되는 패나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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