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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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행적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살피고있었다. 가로수로 심은 단풍나무들이 연두색 잎새를 내밀기 시작했고 라일락의 향기가 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정향의 풋풋한 내음을 선물하고있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가에는 성급한 소풍객들의 모습이 보이고 자동차와 자전거로 혼잡한 거리는 하이란이라는 이 도시에 시름스러우나, 어딘가 활력을 가지고 움직이고있다는 감을 주고있었다.

창호의 노래방과 식당은 그런대로 운영이 잘되여가고있었다. 정사장이 투자를 하면서 하이란시에서는 최고의 인테리어를 주장했고 설계도까지 한국에서 가져왔기에 현대의 멋과 최고의 입맛을 따르는 고객들이 와주어 경영은 첫달부터 적자가 없이 운영이 되고있었다. 개업 수개월, 창호의 모든 정력과 심혈은 경영에 쏠려있었고 그 보답으로 계획보다는 많은 리윤이 나왔다. 창호는 달마다의 경영상황보고서를 정준태사장에게 보냈고 정사장은 보고서를 받을 때마다 기분이 들떠서 전화를 걸어왔다.

<<렴선생 수고를 많이 했어요. 저 렴선생 잡으려고 했을 때 렴선생에게 경영인의 기질이 있는걸 보아냈다니까요... 이제 미국 출장을 가게 되는데요, 미국에 오다상 만나야 해요. 미국서 일 끝나면 곧바로 렴선생 보러 갈게요..>>

그리고는 창호가 듣기에는 오리무중인 말을 덧붙였다.

<<이제요, 저가 가게 되면 렴선생 아주 좋은 일 있을거예요...>>

창호는 정준태의 말을 귀등으로 흘러버렸다.

창호는 시간을 맞추어 공항으로 나갔다. 오후의 게으른 태양이 공항광장을 비추고 공항출구앞에는 호객을 하는 택시기사들과 마중을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있었다. 시계를 보니 비행기의 착륙시간은 아직 시간이 있었다. 창호는 밖에서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공항건물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배행기의 폭음소리가 들렸고 안내방송이 울렸다.

<<북경에서 하이란시로 날아오는 0000비행기는 이미 착륙을 시작했습니다. 손님을 마중하시는 분들은 국내출구앞에서 기다려주십시오...>>

창호는 정준태사장이 여행할 때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일찍 나올거라 짐작하고 다른 마중객들보다 서둘러 출구앞에 다가가갔다. 십여분 지나자 려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패로 나오는 려객들속에 정사장은 없었다. 좀 늑장을 부리려니 하고 기다렸으나 여전히 정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오늘 도착하는 시간을 전화로 확인한 경과를 돌이켜보았으나 오늘이 틀림이 없었다. 창호는 거의 마지막으로 나오는 려객을 붙들고 아직 려객이 더 있는가 물었다.

<<네, 아직 더 있습니다. 단체려행단인 것 같습디다.>>

<<단체려행단?...>>

창호는 발끝을 쳐들고 출구안을 들여다보았다. 단단한 체구의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창호는 정준태에게 손을 저어보였다. 그러나 정사장은 창호를 보지 못했는지 반응이 없었다.

출구를 나오는 정사장은 짐이 가득 싣긴 카트를 밀고있었다. 먼길에는 바늘도 짐이라고 덜고 또 덜고하던 정사장이 크고작은 짐이 가득 실린 카트를 밀고오는 것이 어딘가 우습고 격에 맞지 않았다.

<<아니, 정사장,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요? 보따리장사라도 하고싶었어요?...>>

정사장은 창호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고는 장난기섞인 어조로 말했다.

<<보따리 장사가 아니라 보따리를 가지고 왔어요...>>

<<보따리를 가지고 와요?... 암튼 수고 많았어요. 이 많은 짐 가지고 오시느라...>>

정준태는 카트를 받아서 밀려고 나서는 창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잠간요, 짐은 내가 밀테니까 다른 사람 좀 보아요.>>

<<동행이 있어요? 왜 함께 안나오시고...>>

정준태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창호는 출구쪽으로 돌아섰다. 이쁜 빽을 멘 녀자가 출구를 나서고있었다. 미소를 짓고있는 녀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창호는 목에 무엇인가가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어!...>>

녀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나래?!...>>

분명 그것은 나래였다. 정나래, 한국체류중 만났던 녀자, 깊은 정을 나눈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모두다 잊고있은건 아니였다. 중국으로 돌아와 때때로 나래를 생각한적은 있었다. 그러나 가슴아프게 그립고 저린 그런 추억은 아니였다.

나래의 동그스럼한 얼굴이 흥분으로 하여 홍조가 피고있었다. 화장기 보이지 않는 얼굴, 단아한 회색 정장투피스, 정숙한 화이트칼라 직장녀성이 창호를 향해 다가오고있었다.

<<네가?! 나래 너 어떻게 이렇게 온거야?... 전화도 없이.... 너 정말 나래 맞아?...>>

창호는 처음 만나는 인사가 완전히 망가지고있음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나래가 창호의 손을 잡았다.

<<오빠, 잘 계섰어요? 중국에서 이렇게 오빠 보니까 이제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정사장님께서 말씀 안하셨어요? 저가 온다고?...>>

<<아니, 정사장 아무 말도 없었어. 혼자 오는줄 알고있었는데...>>

너무나 깜짝스러운 만남에 어쩔줄을 몰라하는 두사람을 바라보며 웃고있는 정준태를 나래가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가 중국 온다고 오빠에게 이야기 안드렸어요?>>

정준태는 장난기어린 눈을 올리떴다.

<<왜 안해? 이야기했지.>>

창호가 항의했다.

<<전화 수십통 하면서도 언제 나래가 온다는 이야기했어요? 그냥 혼자 오는거로만 이야기했잖아요?...>>

정준태가 모르쇠를 댔다.

<<제가 도착하면 좋은 일 있을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창호는 정준태가 그런 이야기를 하던 기억이 있었다.

<<좋은 일이 있을거라고만 했지 나래가 온다는 말은 안했지 않아요?>>

정준태는 온갖 장난기를 다 동원하고있었다.

<<그러면 되였지. 그래 그 좋은 일이 나래가 함께 온다는걸 생각지 못했어요?... 그럼 나래 섭섭하게 되였네?>>

정준태가 익살스레 나래를 보며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창호는 억이 막히는 기분이였다. 나래가 온것이 반갑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깜짝스러운 만남이라 무엇이 어떻게 된것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나래도 역시 그런 모양, 서먹한 기분이였다.

정준태가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창호에게 말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사실 난 창호씨에게 경희로운 선물을 하려고 했는데...>>

창호는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아니요, 그렇게 신경 써주어서 고맙구요, 나래가 이렇게 올수 있다는게 너무 실감이 없어서요...>>

그리고는 나래의 어깨를 가볍게 감았다.

<<네가 중국으로 오다니? 중국에서 만났다는게 정말 꿈만 같아...>>

창호의 말은 진실이였다. 그때 한국에서 만나 공항에서 헤여질 때까지 창호는 나래가 중국으로 오겠다던 말이 리행이 되리라 믿지 않았다. 다만 서로의 만남에, 그리고 리별에 어떤 화제를 만들기 위한것으로만 생각하고있었다. 지금 나래가 도착했고 나래가 옆에서 걷고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 창호는 가슴에 벅차오르는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끼고있었고 자기가 한국에서 나래에게 한, 중국에 오면 공주처럼 잘해주겠다고 한 락언을 상기하고있었다.

<<저두요, 아직 실감이 없어요. 이곳이 중국이고 오빠가 사는 고장이 맞는가싶어요.>>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오는 승용차에서 부기사석에 앉은 정준태가 머리를 돌리고 들떠있는 창호와 나래를 돌아다보았다.

<<근심했더니 제가 좋은 일한거 맞지요?... 나래가 중국으로 떠나련다고 전화를 했을 때 전 깜짝 놀랐어요. 우리 창호씨 매력 만점이더라구요. 나 두손들었어요...>>

나래가 앞에 앉은 정준태를 가볍게 흘겼다.

<<전 정사장님 이렇게 짓꿎은줄 몰랐어요. 롱담도 유분수지 아무리 깜짝쇼라도 너무하잖아요?...>>

<<그야 받아주는 사람 나름이지. 봐, 창호씨 오히려 더 감동하고있잖아? 창호씨한테는 너 나래가 제일 좋은 선물이야....>>

창호는 웃으며 정준태의 말에 가담하지 않았다. 옆에 앉은 나래의 무릎에 손을 가져가니 나래가 창호의 손을 꼭 잡았다. 얼굴이 이쁘게 타고있었다. 창호는 그런 나래의 모습을 옆으로 훔쳐보면서 순간의 자신감에 실없이 웃었다.

<<왜 그러세요?>>

나래의 물음에 창호는 나래의 귀가에 가까이 입을 가져갔다.

<<널 중국에서 만난다는게 너무 좋아, 정사장 아니면 뽀뽀라도 해주고싶어...>>

나래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저 보구싶었어요?...>>

창호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 창호는 오랬동안 나래를 생각하고있었다고 믿고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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