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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관의 정원으로 담황색의 승용차 한대가 미끌어져 들어왔다. 창호는 첫눈에 신형의 벤츠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나래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혀를 내밀었다.

<<중국사람들 오히려 더 좋은 차 끌고다니네?!...>>

창호는 그말이 귀에 거슬렸다.

<<중국사람이라고 호화판 없으라는 리유는 없지.>>

나래는 창호의 말속에 담긴 불쾌감을 읽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차에서 중년의 사나이가 내렸다. 단아한 체구가 민첩하게 움직였고 행동마다에 박력이 있었다. 소매 짜른 연회색 와이셔츠에 연미빛 정장바지를 입은 사나이는 탄력있는 걸음걸이로 부기사석쪽으로 걸어가 차문을 열었다. 부기사석에서 연한 분홍빛 상의에 황금빛 스커트를 입은 녀자가 내렸다. 피끗 보기에도 삼십대가 되여보이지 않았다. 사나이는 녀자가 내리자 차문을 닫으면 집안에 대고 소리쳤다.

<<허루이! 있어? 뭘하는거야?!...>>

창호는 걸상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사나이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그러나 사나이가 바로 찡관스님이라고 믿기에는 상상의 거리가 너무나 컸다.

집안에서 허루이가 달려나왔다.

<<오셨습니까?...>>

사나이가 허루이에게 물었다.

<<손님은?...>>

<<예, 저 지금 기다리고있는중입니다. 저기 있어요. 석류나무밑에 상을 준비했습니다...>>

허루이는 석류나무밑에 서서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길로 사나이를 바라보고있는 창호를 가리켰다.

찡관스님이 창호쪽으로 돌아섰다.

<<렴선생! 오래간만입니다! 이 먼길을 어떻게 오셨습니까?>>

창호는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년전 승복을 입은 찡관스님과 지금의 찡관스님을 한사람으로 보기에는 천당과 지옥의 차이였다. 지금의 찡관스님은 흠잡을데 없는 현대보스의 스타일이였다. 어쩜 한 사람이 이토록 갑작스레 변할수 있는것일가?

찡관스님이 창호의 손을 잡았다. 손에 힘이 있었고 손마디마다가 철근처럼 딱딱했다. 창호는 가볍게 허리를 굽히며 찡관스님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정말 꿈같습니다. 여기서 찡관스님을 만나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군요...>>

<<저가 이야기한적이 있지요? 인연이 끝나지 않으면 언제나 만날 날이 있다구요...>>

찡관스님은 말하면서 옆에 녀자를 끌어다 창호의 앞에 세웠다.

<<저의 집사람입니다. 리리라고 합니다.>>

리리는 구속이 없이 손을 내밀어 창호와 악수를 했다.

<<반가와요. 남편이 조선족친구가 있다고 하기에 많이 상상을 했는데 이렇게 멋지신 분이군요. 아마도 소림사의 불상도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할거예요.>>

강남녀인의 단아함과 대도시 유한계층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아온 사람의 귀족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나트막하게 깍은 생머리, 화장기 알리지 않는 백옥같은 얼굴, 날씬한 허리, 강남의 실버들을 련상하게 하는 체형, 말 그대로 강남의 고전적인 사녀(士女)였다. 눈을 내리 깔았을 때는 <<홍루몽>>에 나오는 림대옥이였고 대화를 하는 순간에는 설보채였다. 이런 강렬하게 상반되는 인상이 한사람에게 있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창호는 찡관스님이 자기의 안해라고 했을 때 저으기 놀랐다. 환속을 한것일가? 아무튼 소개를 받는 이자리에서 이런 의문은 부질없는 일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찡관...>>

창호는 찡관스님이라고 부르려다가 그 부인하고 인사를 하고있다는 생각을 하고 호칭을 바꾸었다.

<<찡관스프께서 이런 미인 부인을 두시다니요. 남재녀모(男材女貌)라 하늘이 베푼 연분이군요.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너무너무 반가와요. 전 처음 조선족사람과 만나거든요. 근데 렴선생의 한어를 듣고서는 조선족인이 아닌지 알수가 없어요. 오히려 광동지방사람인가 착각할 정도예요. 아니, 광동지방 사람들보다 더 표준어에 가까와요...>>

창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전 중국서 태여나서 중국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중국말은 필수로 배운거구요, 다만 동북지방의 언어라 남방처럼 우아하지 못하지요.>>

<<아니, 너무 표준적인데요 뭐, 오히려 발음이 우리 강남사람 뺨치겠는데요?...>>

<<미인의 미소는 천금주고 못산다고 했는데 저가 미인의 칭찬을 받았으니 만금을 얻은셈이군요. 너무 황송하군요...>>

창호는 적당하게 인사를 받고 찡관스님과 리리에게 나래를 소개했다.

<<한국에서 온 정...>>

창호는 갑자기 나래라는 이름을 중국어로 번역이 안된다는것을 느꼈다. 나래의 원뜻이라면 날개라고 번역해도 되겠지만 이름으로서는 뜻역이 이상했고 한어로서도 이름이라 하기에는 격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음역으로 그대로 하자니 어처구니 없게 가져온다는 뜻이 되기가 십상이였다. 창호는 순간의 난처함에 당황했다. 창호는 나래에게 얼굴을 돌렸다.

<<너 한국에서 한자 이름 어떻게 썼어?>>

나래가 놀라며 되물었다.

<<왜 그래? 갑자기 한자이름은 왜?>>

<<너 이름이 너무 한국적이야. 중국말로 번역이 안된단말이다.>>

나래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호적에 오른 이름?>>

<<그래.>>

<<호적에도 한글로 올라있는걸...>>

<<이런!...>>

창호는 잠간 생각을 했다.

<<정아가씨는요, 한국이름으로는 난다는 뜻인데 중국어 음역으로는 나리가 되지요.>>

리리가 먼저 인사를 했다.

<<반가와요. 나리 아씨, 중국에서 려행이 언제나 유쾌하고 즐겁기를 바래요.>>

창호는 속으로 웃음이 터지는것을 참았다. 창호는 중국어로 부르기 쉽고 알아들을수 있게 비슷한 음을 가져다 붙였는데 그만 나래의 뜻은 사라지고 이쁘고 아름답다는 뜻인 나려(娜麗)가 되여버렸다.

나래가 리리의 인사를 받았다.

<<고마와요. 천리 이역땅에서 반가운분들 만난다는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더구나 이런 중국 미인을 만나니 이제야 이쁘다는것이 무언가를 알거 같아요...>>

창호가 나래의 말을 번역해주자 리리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나리아씬 더 동양적인데요? 저가 오히려 주눅이 드는데요?>>

녀자란 이쁘다는 칭찬에는 언제나 약하기 마련인 모양이였다.

<<미인의 평가를 들으니 정말 그런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나래가 서먹서먹한 기분에서 헤여나오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찡관스님이 옆에서 한마디 했다.

<<저도 인사를 합시다. 녀사들끼리만 알고지내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찡관스님이 나래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중국 처음이세요?>>

나래가 곱게 허리를 굽히며 찡관스님의 손을 잡았다.

<<반가와요... 네, 처음이거든요.>>

인사가 끝나자 찡관스님이 말했다.

<<자, 이제 그리웠던 이야기, 미인들의 이야기는 밥상에서 하도록 합시다. 료리가 들어주십사 기다리고있는데요?...>>

찡관스님은 말하고나서 집안에 대고 소리를 쳤다.

<<허루이! 료리를 올려!>>

여럿이 상이 준비되여있는 석류나무밑으로 가자 허루이가 안내를 하여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주인석에는 찡관스님이, 오른 쪽에는 외국인이라고 대접을 하여 나래가, 왼쪽에는 창호가 앉고 다음에는 리리, 말석에는 허루이가 앉았다.

허루이가 나래로부터 시작하여 술을 부었다. 나래가 사양하려는것을 창호가 괜찮다고 머리를 끄덕여주어 나래는 말없이 술잔을 받았다. 술을 다 붓자 찡관스님이 건배를 했다.

<<공산사에서 렴선생을 만나 다시 소림사에서 상봉한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부처님께서 우리의 인연을 귀중하게 생각하신가봅니다. 사람이 태여나 만나고 헤여지는것을 수없이 반복하겠지만 오늘의 이 만남은 예상스러운 만남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외국에서 이쁜 나리아가씨까지 와서 그 끈질긴 인연을 이어준다는것이 더더욱 반갑고 경하할만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자, 오늘의 이 만남을 위하여 건배를 합시다... 건배!>>

찡관스님은 불심과 인연에 대해 말하고있었지만 이미 세상물정을 많이 겪어온 보스의 어투였다. 창호는 찡관스님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변화를 느끼고있었다.

여럿은 찡관스님의 제의에 따라 술 한잔을 다 마셨다. 나래가 억지로 한잔을 마시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것을 보고 창호가 물었다.

<<왜 마시지 못하겠니?>>

<<이 술 무슨 술인데 이렇게 매워요?>>

<<오량액이라는 술인데 중국의 명주야. 마시기 힘들어도 마신뒤는 깨끗해...>>

리리가 나래를 보고 창호에게 물었다.

<<주량이 없나보죠? 그럼 맥주라도 드시던지. 마시지 못하면 강권하지 마세요.>>

창호가 리리의 말을 번역해주었다. 그러자 나래가 리리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술은 좀 마시는데 중국술이라 습관이 안되여서요.>>

<<그럼 천천히 조금씩 마셔요...>>

리리는 말하면서 료리를 집어 나래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나래는 어쩔줄 몰라 창호를 바라보았다.

<<중국 사람들은 귀한 손님에게 료리를 집어주는 습관이 있어. 될수 있으면 다 먹으면 좋지만 다 먹지 않아도 괜찮아.>>

나래는 리리에게 살짝 머리를 숙였다.

<<감사해요.>>

술이 몇순배 돌았다. 술이 들어감에 따라 술상의 분위기도 무르익어갔다. 나래가 있어 창호가 번역을 하여주어야 했기에 가담가담 대화가 끊어졌지만 찡관스님이나 리리는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더 극적인 모양이였다. 그들은 나래에게 수많은 질문을 했고 그것을 번역하는라고 창호는 땀이 다 났다.

갑자기 찡관스님이 창호를 바라보며 물어왔다.

<<저한테 궁금한게 없으십니까? 언젠가는 물을거라 생각하고있었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찡관스님이 소리를 내여 웃었다.

<<스님이 왜 부인을 두었는가 하는 등등 말입니다.>>

창호가 빙그레 웃으며 리리쪽에 눈길을 스쳤다.

<<궁금하기야 했지요. 그러나 계획은 변화보다 빠르지 못하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시대적상황이다. 또는 시세를 따르는자가 영웅이다. 뭐 그렇게 생각했지요. 저도 기자생활집어치우고 지금은 서비스업을 하고있는중이니까요.>>

찡관스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매일마다, 아니, 매순간마다 변화를 느끼는 시대지요. 사실 저는 환속을 한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반만 절에 몸을 두고있었으니까요.>>

찡관스님은 물 한모금을 마시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때 렴선생과 헤여질 때 소림사로 온다고 말한 기억이 있습니까? 그때 전 소림사로 왔는데 마침 등봉에 무술학교를 꾸리는 사람이 무술선생으로 초빙하겠다고 하여서 초빙에 응하였습니다. 년봉 이십만원을 주겠다는데 유혹을 물리칠수가 없었지요. 아마 불심과는 거리가 있었는 모양입니다. 하향세대잖아요. 실은 시장경제시대에 불심이 밥먹여주는것도 아니고... 그리고...>>

찡관스님은 리리쪽에 눈길을 주고나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집사람을 만난게 계기였습니다. 남경에서 무술대회가 있었는데 리리는 사회를 맡고있었습니다. 첫눈에 정든다는 말 있지요? 아마 그랬을겁니다. 보는 순간에 지나온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생에는 버려야 할것이 있지만 버리리 못할것도 있구나 하는것을 느꼈어요. 불심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갑자기 깨달았다고 할가요? 아마 그런것 같았습니다. 우리 세대를 누구도 구제하지 못하듯이 누구도 나를 구제하지 못할거라는 회의를 느꼈지요. 그렇다면 어쩔수 없이 세속의 인간으로 살아가는수밖에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실은 사찰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사찰도 인제는 시장경제시대에 따라가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속에서 불심을 닦은들 어찌하겠습니다. 이런말 있지요? 고기는 창자를 지나고 불심은 마음에 남는다는 말말입니다. 그 오묘한 리치를 리리를 만나면서 깨달은것 같아요...>>

창호는 찡관스님의 말을 리해할것 같았다. 무신론의 교육으로 굳어있던 세대에게 이런 결과는 오히려 더 합리할것이였다.

리리가 옆에서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버리는것이 참뜻이라면 불심도 버릴수 있는것 아니예요? 뱀이 껍질을 벗듯이 기존의 껍질을 버리면 새롭게 태여나고 크는거라구요...>>

찡관스님이 웃으면서 리리의 말을 꺾었다.

<<불교의 말을 빌어 불교를 부정하면 안되지. 그건 배신에다 한보 더 나가는것이라구...>>

리리가 말을 받았다.

<<저야 배신이고 뭐고 없잖아요. 원래 저는 불심을 가지고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배신이라는건 리유가 없어요.>>

그 말에 모두가 웃었지만 중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래는 여럿의 눈치를 살피다가 창호에게 얼굴을 돌렸다.

<<왜 웃어요?>>

창호가 리리의 말을 번역해주었으나 나래는 오히려 웃지 않았다.

<<그건 맞는 말이지 않아?>>

창호는 찡관스님의 말부터 이야기를 했으나 마디마디를 다 기억해서 번역한다는것은 불가능했다.

<<실은 찡관스님은 불심을 버리게 된 과정을 이야기한거야...>>

나래는 그런가 하는 식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리리는 녀성의 민감성으로 나래가 한동안 찬밥이 되여있음을 알아채고 술잔을 들었다.

<<우리 이야기만 하다보니 나리아씨가 빠졌군요. 술 마셔요. 오늘은 우리 취하도록 마셔요...>>

찡관스님이 따라서 술잔을 들었다.

<<공자 가라사대 친구가 먼곳에서 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리오... 자, 건배!>>

술을 마시고 료리를 집고 화제가 다른쪽으로 넘어가 분위기는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창 이야기를 하고 술을 권하는데 대여섯살을 되여보이는 계집아이가 그들에게로 걸어왔다. 그러나 누구도 그 계집아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관심이 없었다. 계집아이는 한동안 상옆에 서서 어른들을 바라보고있었다. 피끗 그 계집아이에게로 눈길이 스치는 순간 창호는 감각적으로 느낌이 이상했다. 갸름한 얼굴에 눈빛이 초롱초롱 했다. 하얀 피부에 얼굴의 선들이 부드러웠다. 계집아이와 창호의 눈길이 부디쳤다. 계집아이는 대담하게 창호를 바라보다가 채랑채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씬 조선족이지요?>>

계집아이는 중국말로 말하고있었다. 창호는 잠간 할말을 잃었다.

<<너, 어떻게 알지?>>

계집아이는 얼굴에 활짝 웃음을 피웠다.

<<알고있어요. 말을 들으면 알거든요.>>

어린애의 순진함과 천진성이 가득이 묻어있는 계집아이의 대답을 들으며 창호는 어떤 느낌으로 몸을 떨었다.

<<넌 누구지?>>

<<우린 관광을 왔어요. 엄마랑 아빠랑...>>

이때였다. 어떤 녀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화! 너 뭘하는거야? 손님들 식사하는데 거기서 뭘해?...>>

창호는 목소리를 따라 머리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들을 향해 서있었다.

<<!...>>

창호는 심장이 멋는것 같았다. 머리를 돌린 그 순간이 그자리에서 정지화면으로 굳어졌다.

<<경희!?...>>

그 녀자는 분명히 경희가 맞았다. 경희도 창호를 알아보고 그자리에 굳어져버렸다.

<<창호씨!?...>>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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