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 나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시골학교 교원으로 가게 되였다.  

 20대 꽃나이에  시골에서 교편을 잡게 되자 부모님들은 나의 혼사에 대하여 근심하게 되였다. 그러던중 어느날 나는 고모의 소개로 지금 남편을 만나게 되였다. 비록 소개로 만났지만 인연인지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였으며 앞날을 기약하게 되였다. 처녀 총각이 만나면 데이트도 하고 영화도 보아야 앴것만 우리는 그럴 여가가 없었다. 시간이 없어가 아니라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자주 만날수가 없었다. 장백산아래 첫동네로 불리우는 시골학교에 있기에 일년에 두번씩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만 만날수가 있었다.

  방학이되여 집에 오면 시어머니는 집에 딸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첫며느리여서인지 자주 놀러와주기를 바랐다.그러나 나는 나로서 보수적이라 할가 아니면 시집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여서인지 방학이 되여도 얼른 시집으로 가지 안았다. 남편이 휴식일을 택하여 데리러 오면 하는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나서군 하였다.

  시집이라고 가면 23평방도 안되는 두칸자리 방에서 시아버지와 시동생 셋까지 그것도 어머니를 내놓고는 모두 남자식구여서 저녁 잠자리가 아주 불편하였다. 아들의 마음을 몰라서일가 아니면 결혼전이라 남의집 귀한딸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생각에서인지 어머니는 항상 나의 잠자리를 당신의 곁에 펴놓군 하셨다. 작은 시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내가 아래방 눕고 시아버지와 두 시동생 남편까지 웃방에 누웠다. 웃방이래야 미닫이도 없는 문턱하나를 사이둔것이다.

12시가 되면 야근을 한 남편이 돌아온다. 밤이 점점 깊어가고 밤하늘의 둥근달은 달콤하게 자고 있는 시동생들을 조용히 비추고 있다. 하루일에 지친 남편은 인차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더니 슬그머니 손을 나의 머리우에 놓았다. 나는 처음으로 시집에서 밤을 지내서인지 잠이 오지 않아서 밝은 둥근달을 쳐다보면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남편의  따뜻한 손은 나의 머리를 쓰다듬던것이 다시 나의 얼굴로 옮겨졌다.환한 달빛아래 남편의 손이 얼굴에 닿자 나는 곁에 있는 시집식구들이 깨여날가봐 가슴이 콩닥콩닥 뛰였다. 그래도 남편은 손을 치우려 하지않고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겁에 질린 나는 대뜸 남편의 손을 꼬집었다.(동생들이나 부모님들이 깨시면 어쩔려구)그래도 남편은 손을 치우려 하지 않았다. 내가 연속 꼬집으니 남편은 손을 슬그머니 치우더니 다시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것이였다. 남편의 그 따뜻한 애무가 싫지는 않았지만 시아버지의 코고는소리, 시동생들의 고르로운 숨소리,대낮처럼 환히 비추는 달빛 모두가 나를 지켜보는것같아 나는 남편의 사랑스러운 애무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몇번이나 문턱을 넘어오는 손을 밀쳐버렸더니 남편은 앵돌아져 그대로 잠을 청하는것이였다.

자정이 넘어서야 쪽잠이든  나는 잠결에 누군가가  웃는 소리에 눈을 떴다. 막내동생이 키득거리면서 어머니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소곤 하는것이였다. 그러자 어머니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실눈을 지으시며 웃으시던것이 내가 잠을 깬 기척을 아시고 막내동생을 탁 쳐놓으시면서 살짝  눈을 흘기는것이였다.웬 영문인지 몰라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나는 엉결에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머리채가 어디에 걸렸는지 너무도 아파서 일어날수가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의 머리채 끝이 남편의 손에 꼭 쥐여져 있는것이였다. 나는 그제야 막내동생이 웃는 영문을 깨달았다.다른 시동생들과 시아버지도 모두 일어나 있었다. 나는 너무도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부랴부랴 자리를 차고 일어난 나는 화장실로 가는척 하면서 밖으로 도망치다싶이 달려나갔다. 밖에서 한창 서성거린 나는 다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대로 들어가지 말고 집으로 가자니 례의가 아닌것 같고 들어가자니 너무도 창피하고 정말로 속수무책이였다. 이때 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어머니께서 구정물바게쯔를 들고 나오시는것이였다.밖에 나오신 어머니는 밤 잘잤는가고 물으시더니 어서 들어가 아침을 먹자는것이였다.그제야 손목시계룰 보니 7시가 넘었던것이다. 야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과 온밤 문턱3.8선을 넘나들다 보니 새벽녘에야 잠이 든 우리는 늦잠을 자다보니 동생들의 웃음거리로 되였던것이다.

  문턱 3.8선은 이듵날에도 계속되였다. 익숙하지 못한 시집에 있자니 불편하여 집으로 가려고 하니 시부모님과 시동생들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또 하루를 묵게 되였다. 저녁이 되자 우리들의 문턱 3.8선 나들이는 계속되였다. 하늘도 우리의 마음을 알았는지 그날 저녁에는 둥근달도 친구찾아 데이트하러 갔는지 집안은 어두컴컴하였다. 남편은 차라리 잘 되였다고 생각하였는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손이 3.8선을 넘어왔다. 어둠의 장막은 소리없이 문턱3.8선이 낮아지게 하였다. 나는 슬그머니 문턱 3.8선을 넘어오는 남편이 손이 싫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밀치게 되였다. 곁에있는 식구들이 깰가봐 남편의 손이 3.8선만 넘어오면 경고의 신호를 보냈다.그러나 어둠의 장막이 자기를 도와준다고 생각한 남편에게 있어어 그 어떤 붉은 신호등도 가로막지 못하였다. 남편은 무작정 침입하려고 몸을 일으키는것이였다.너무도 놀란 나는 심장이 마구 튀여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 어떤 경고도 남편의 홍수같은 힘을 막을수가 없었다.그렇다고 소리칠수도 없었다.이때 어머님이 몸을 뒤척이시더니 조용히 일어나시는것이였다. 몸절반이 문턱3.8선을 넘어온 남편과 그런는 남편을 밀치던 나는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모든것을 하늘에 맡기고 어머님의 거동만 살폈다. 머리만 돌리시는 날에 모두가 끝장이다.그런데 어머니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시는것이였다.휴 살았다 남편은 인차 잠자리로 돌아가고 나는그제야 호 하고 한숨을 내 쉬였다. 어머님이 자리에 누우셔서 얼마 안되니 남편의 3.8선 침임은 또 시작되였으나 손밖에 넘어오지 못하였다. 이렇게 자정까지 3.8선을 넘나들다가 잠이들어 늦잠을 자게되면 또 웃음거리를 만들가봐 나는 그날저녁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있다가 어머님께서 아침밥을 지으려고 일어나시니 인차 일어나서 어머니를 도았다.

  시집에서의 2박3일  남편은 끝내 문턱3.8선을 넘지 못하였다.높지도 넓지도 않은 문턱 3.8선은 처녀 총각의 마음을 애끓게 하는 철조망으로 되였으며 서로가 넘을수 없는 성벽으로 되였다 사실 문턱3.8선이 높아서가 아니라 마음의 성벽을 깨뜨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사랑의 힘이 무었을 깨뜨리지 못할가 하는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사람나름에 따라 다르다.성문화가 개방되지 않고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무형의 올가미가 청춘남녀들의 손목을 잡고있기에 그 성벽을 무너뜨린다는것은 그리쉬운 일이아니다. 더군다나 결혼전까지는 쳐녀의 결백을 지켜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항상 나의 머리에 맴돌았고 그 무서운 힘이 나를 꽁꽁 묶어놓았기에 사랑의 최후의 방선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하였으며 처녀의 신비로움을 깨뜨려 보려는 총각의 념원을 산산히 흩어지게 하였으며 애간장이 끓게 하였다.

 잊지못할 문턱3.8선 ,  그 누구도 믿지도 리해하기도 어려운 문턱3.8선은 나에게 있어서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아있고 또한 그 3.8선이 나로 하여금 여직껏 마음가짐을 바로하고 인생을 참답게 살아가게끔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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