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1

시도 때도 없이 비바람이 몰아치고있었다. 계절은 이미 가을을 머금기 시작하고있는데 장마를 기약하듯 비바람은 자지 않고있었다. 테레비죤의 기상캐스터는 태풍주의보를 보도하면서도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을 하고있었다.

창호는 사무실의 창가에 서서 비속의 거리를 내다보고있었다. 달리는 차들이 길우의 물을 휘뿌리며 물보라를 일으키고있었다. 마음이 울적했다. 이번 태풍의 영향때문에 노래방이나 식당에는 손님이 적었다. 그러나 그때문에 마음이 울적해진것은 아니였다. 그러면 이 며칠간 끊을줄 모르는 비때문에? 꼭 그렇다고 생각되도 않았다. 아무튼 불안하고 안절부절하고 울적하고 우울했다.

전화가 울렸다. 창호는 왜서인지 불안한 예감에 떨면서 수화기를 들었다.

<<와이...>>

안해 금화의 목소리였다. 창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래, 나야. 무슨 일 있어?>>

전화에서 안해의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녁 집에 돌아오실거예요?...>>

<<왜? 잘 모르겠어. 아직까지 다른 약속은 없어.>>

<<그럼 전화로 이야기 할가요?>>

<<무슨 일인데? 이야기 할 일이라면 해봐.>>

동안이 지나 금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고저가 없는 평온한 목소리였다.

<<나 한국 갈래요...>>

창호는 한동안 머리가 비는것 같았다. 갑자기 한국은 왜?

<<한국? 놀러가고파?...>>

<<아니, 돈벌러요.>>

집에 돈이 모자라는것은 아니였다. 많지는 않았지만 창호가 한국에 갔다가 가져온 돈이 있었고 정준태사장이 달마다 월급처럼 얼마간을 주었기에 생활이 쫄리거나 돈때문에 걱정이 있은것은 아니였다.

<<한국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것 아니야. 힘들게 일해야 벌어져.>>

<<그건 저도 알아요. 이제 애가 당금 고중을 들어가야는데 돈 없이 공부시킬수 있어요? 당신 직장도 다 때려치웠는데 갑자기 일이 생기면...>>

창호는 금화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리라는것을 예측하고있었다. 불쾌해지며 창호는 금화의 말을 꺾었다.

<<알았어. 집에 돌아가 이야기 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지 않아.>>

창호는 수화기를 놓고 오래동안 그대로 서있었다. 금화가 한국으로 돈벌려 가려 한다.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를 일이였다.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 지금은 너나없이 한국으로 돈번다고 떠나는것이 하나의 풍조요 류행이였다. 그러나 그 바람이 자기에게도 다가오고있음을 창호는 생각지 못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 돌아가 안해의 그 생각을 묵살내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창호는 사무상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비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경적소리가 울렸다. 마치 무언가를 쫓고있는 느낌이였다. 불안은 먹장처럼 가슴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물러서려하지 않았다. 창호는 담배를 붙여물고 밖으로 나갔다. 후둑후둑 후려치는 비방울이 얼굴을 적셨다. 이대로 무작정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창호는 노래방과 식당이 있는쪽으로 걸어갔다.

아직은 오후이고 비까지 오고있었기에 식당에는 손님이 없었다. 복무원들은 청소를 끝내고 잡담을 하고있었고 주방의 보조아줌마는 다 씻은 그릇을 정리하고있었다. 창호는 우층의 노래방으로 올라갔다. 분위기가 큼큼했다. 카운터를 서는 영애가 창호가 들어오는것을 보고 눈길을 피하며 머리를 숙이고 다른 일을 하는척 했다. 창호는 이마를 찡그렸다.

<<일이 있었니?>>

영애가 당황한 눈으로 창호를 힐끗 했다.

<<아-니-요...>>

이때였다. 노래방룸쪽에서 인순이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아예 노래방아가씨하겠다고 하던지 할거지 월급받고 팁받고 좋은 일 다 네건줄 알았어?... 하기 싫으면 나가도 돼. 여긴 공주님을 키우는 곳이 아니란말이야 알았어?...>>

창호는 룸쪽으로 걸어갔다. 룸에서는 레이훙이 눈물을 이리씻고 저리씻으며 서있고 인순이는 코를 벌름거리며 욕을 하고있었다.

<<무슨 일이지요? 왜 그래요?>>

인순이는 레이훙을 흘기며 손가락질을 했다.

<<애하고 물으세요. 렴선생의 특수생이지 않아요.>>

인순이의 마지막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처음부터 창호는 레이훙에 대한 관대함이 있었다. 인순이는 이점을 꼬집고있는것이였다. 창호는 발작하려는 자신을 참으며 레이훙에게 돌아섰다.

<<무슨 일이야? 말해봐.>>

창호의 생각으로는 대단한 일은 아니였다. 점심에 한국손님들이 와서 식사를 했다. 손님들이 중국애라는데서, 그런 호기심이 동원이 되였는지 레이훙을 노래방으로 가자고 끌었고 레이훙은 그걸 이기지 못해 노래방에 올라와 노래를 불러주었고 손님들은 돌아가면서 생각보다는 많은 팁을 남기고 갔던것이였다.

창호는 인순이에게로 돌아섰다.

<<그럴수도 있잖아요? 왜 그렇게 야단을 해요? 그리구 애가 팁 좀 받았는데 당연하지 않아요? 어쩌면 좋은 일이지 않아요?>>

인순이는 창호에게 어이가 없다는 눈길을 쏘았다.

<<왜요? 또 감싸기예요?! 애들 교육 저를 시키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제가 뭐 여기가 좋아서 이렇게 우왕좌왕하는것 아니예요. 창호씨, 이상해요. 왜 저애라면 감싸기만 해요. 그렇게 관대한 사람같지 않던데 뭐 살붙이나 되는 애예요? 떼놈애들...>>

인순이의 입에서 마지막 말이 튕겨나온 순간이였다.

<<인순씨! 무슨 말이야?...>>

창호의 얼굴을 스치던 인순이의 눈길이 당황하게 처져내려갔다. 창호의 얼굴이 너무나 험상굳어졌다.

<<인순씨, 아무리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앞이라고 해도 그런 말은 삼가해요! 떼놈이 뭐애요? 교육받은 사람치고는 너무하지 않아요?>>

인순이는 한순간 말문이 막히는지 멍해 서있다가 레이훙의 앞이라는걸 의식했는지 얼굴에 당당한 기색을 떠올렸다.

<<그래요. 저의 말이 잘못되였다고 해요. 그러나 창호씨, 좀더 공정하세요. 다른 애들하고는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다가 왜 저애라면 그렇게 관대해져요? 같은 직원이지 않아요? 전번에도 영애하고 저애가 지각했을 때 창호씨는 영희만 싸잡아 혼냈어요. 영애가 뭐라 했는지 알아요? 친딸이라도 그렇게까지 너그럽지는 않았을거라 했어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직원들에게는 꼭 같이 해주어야 해요. 그게 관리인다운거래요...>>

인순이는 한바탕 따지고 들 잡도리로 들쉼조차 없이 련주포를 쏘았다. 그러나 창호는 영희가 레이훙을 친딸인가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더는 인순이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친딸?!...

인순이의 말이 맞는것인지 몰랐다. 창호는 레이훙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레이훙이 자기의 성씨를 말하던 그 순간, 창호는 이미 마음이 부드러워지고있었다. 이상했다. 레이훙에게 창호는 미묘한 부성을 느끼고있었다. 승인하기는 싫었지만 그것은 사실이였다. 같은 녀자이고 민감한 인순이는 그점을 처음부터 느끼고있었는지 몰랐다. 그래서였을가? 인순이는 처음부터 레이훙을 자르라고 창호를 권했었다.

<<창호씨, 지금 잡치지 않으면 우리 복무원들이 다 노래방아가씨가 되여버릴거얘요. 팁에 맛을 들이면 돌려세우기 힘들다는걸 알아두세요. 뭔지 알아요? 중이 고기맛을 들이면 개미도 잡아먹는대요!>>

인순이는 창호에게 파랗게 날이 선 눈길을 던지고 돌아서서는 또박또박 걸어서 룸을 나갔다. 어깨가 들썩거리는걸 보아 여간 성나지 않은것이 아니였다.

나가는 인순이의 등이 보이지 않자 창호는 레이훙에게로 돌아섰다. 인순이와 창호가 다투는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레이훙이였지만 얼마간 눈치로 내용을 짐작하고있는 레이훙은 창호에게 감격의 눈길을 주고있었다.

<<잘못했어요. 사실 손님들이 막 잡아끌기에 따라왔어요. 무가내였어요. 말도 알아듣지 못하지, 외국손님이지, 어쩔수 없었어요. 저땜에 아저씨와 김경리가...>>

창호는 아직도 눈물자국이 남아있는 레이훙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였다.

<<알았어. 이담부터는 무조건 거절부터 하고봐. 그런 손님 말 다 들어주다가는 식당영업을 못해. 김인순경리가 화내는것도 그것때문이야. 어서 가봐.>>

<<렴아저씨 고마와요.>>

레이훙이 룸을 나가려고 돌아섰다. 창호도 룸의 불을 끄고 따라섰다. 앞서서 복도로 걸어가는 레이훙의 뒤모습이 어딘가 처량해보였다. 가냘픈 어깨가 처져있었다. 갑자기 창호는 자신이 레이훙에 대하여 아는것이 없다는것을 느꼈다. 인순이가 레이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한다고 긁고있지만 사실 창호는 레이훙에 대해 무관심하고있었다. 관대하고 너그러운것은 사실이였지만 그것은 보는 순간일뿐이였다. 왜서인지 레이훙을 대하면 마음이 푸근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였다. 레이훙에 대해 창호가 아는것이란 면접을 볼 때 물었던만큼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점을 느끼자 창호는 자신도 이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순이는 특별생이라고 뿌르퉁해있지 않은가...

<<레이훙, 잠간 서.>>

레이훙이 돌아섰다.

<<왜요?>>

창호는 레이훙의 옆으로 다가갔다.

<<너 몇살이지?>>

묻고나서 창호는 사실 레이훙의 나이를 알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묻고싶은것은 나이가 아니였다.

<<스물 둘이얘요.>>

창호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고향이 흑룡강이랬지? 그곳에서 태여났어?>>

레이훙은 무슨 이상한 질문하느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이죠.>>

<<부모들은 무얼 하시는 분들이지?>>

<<림장의 직원들이였어요.>>

<<아버지는?>>

레이훙은 창호의 얼굴을 일별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없어요.>>

창호는 한순간 말이 막혔다. 알고싶어서 물은것이 아니라 다만 관심을 보이고싶다는 생각에 물은 말이 이렇게 대답이 나오자 창호는 더 무엇을 물을 흥미를 잃었다.

<<그렇구나. 미안하다.>>

레이훙은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머리를 저었다.

<<미안하긴요. 사실 전 아버지를 기억하고있지 못해요. 아주 어렸을 때 산판에서 벌목하다가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래?... 어머니가 고생하셨겠구나.>>

<<어머닌 림장 소학교의 교원이였어요. 저때문에 고생 많았죠. 저 많이 애먹였어요...>>

레이훙은 어머니 말이 나오자 활기를 띠며 말이 많아졌다. 창호는 가볍게 레이훙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열심히 일해서 효도를 해.>>

레이훙은 창호의 옆에 붙어서며 빤히 창호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당돌하게 한마디 했다.

<<아저씬 아빠같아요.>>

<<!...>>

창호는 가슴이 뭉클했다. 한가닥의 따스함이 가슴 깊이에서 솟구쳐올랐다.

미소를 지으며 창호가 물었다.

<<그렇게 보이니?>>

레이훙이 팔을 벌려보이며 대답했다.

<<아저씬 마음이 이렇게 큰 아빠같아요.>>

창호는 레이훙의 코를 살짝 비틀며 웃었다.

<<그럼 이제부터 아빠 할가?>>

레이훙은 머리를 갸웃이 하고 창호를 바라보더니 힘차게 머리를 저었다.

<<아니요. 싫어요!>>

<<엉?!... 아빠같다고 했잖아?>>

레이훙은 웃으면서 저만치 앞으로 걸어갔다. 층계를 내리면서 레이훙은 돌아서서 창호쪽에 대고 코를 찡긋해 보였다.

<<맛있는것 사주면 아빠라고 부를게요.>>

<<저런 계집애...>>

창호는 아직도 밥이 오면 입을 벌리고 옷이 오면 팔을 벌리는 딸 미라를 생각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창호는 우울하던 기분이 많이 깨여있었다. 레이훙의 아빠같다는 말 한마디에 창호는 자신에게 감동하고있었다. 그러면서 누구인가와 이 기분을 나누고싶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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