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삼 - 중국문화풍경

중국 사자성어에는 호거용판虎踞龙盘 - 호랑이가 숨어 있고 용이 도사리고 있다-이라는 말이 있다.

난징(南京-남경)의 서쪽에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석두성石头城이 있고 동쪽에는 용이 누워있는 듯 같은 종산钟山이 있다. 삼국시기 유비의 명을 받고 난징에 온 제갈량은 ‘종산엔 용이 진을 치고 석두에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어 실로 제왕이 자리 잡을 곳이다’고 감탄하였다.

난징은 6000 여년의 문명사와 2400년의 성시역사가 있다. 229년 4월, 손권은 우창(武昌-무청)에서 황제에 등극하였으나 ‘쟨예이의 물을 마실지언정 우창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조야의 울부짖음 속에 건업으로 천도하여 난징건도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손권은 장사 환왕부를 황궁으로 정하고 길이 약 11킬로미터 되는 성시를 건설하였다. 이것을 발단으로 역사상 10개 조대가 난징을 서울로 하여 ‘십조도회’ 十朝都会라고 불리워졌다. 난징은 특히 중국의 근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진, 송, 제, 량, 진이 연속 도읍으로 정하여 육조고도로 불리웠으며 1368년 주왠짱(朱元璋-주원장)은 난징에 서울을 정함으로서 처음으로 통일된 중국의 수도로 되었다. 당시 난징 도시발전의 고봉기를 맞아 당시 세계의 제1 대도시로 되었다. 1853년 태평전국은 이곳에 수도를 세우며 탠징(天京-천경)이라 개칭했고 1912년 중화민국의 성립되면서 쑨중싼 (孫中山-손중산)은 난징에서 중화민국임시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1927년 국민정부는 난징을 수도로 정하였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1366년 8월부터 1386년까지 성벽을 쌓았는데 둘레는 약 33676미터, 옹성과 합치면 성벽 길이가 37140미터, 성문이 13개, 총안 13000여 개, 가건물 200여 개로서 둘레 29500미터인 프랑스 파리성벽을 초과하는 세계 제일로 꼽힌다. 이후 600여 년의 비바람 속에서도 아직 현존하는 성벽이 21351미터로서 중국내 제일 긴 성벽이다.

난징에는 허다한 문화유적들이 있다. 중산릉, 부자묘, 중화문, 영곡사灵谷寺, 석상로石象路, 삼국 동오가 건축한 석두성 유적, 명나라 주왠짱 명효릉明孝陵, 위화타이(雨花台-우화대) 등은 무한한 사색을 자아내는 경물이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난징은 치욕의 기억으로 남는다. 1937년 12월 13일, 당시 수도 난징을 침점한 일본군은 6주일 시간에 평민과 무기를 놓은 군인들에 대한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30만 명이 피살되었다. 난징이 점령된 1개월 내에 2만 여 차례 강간사건이 빚어졌으며 3분의 1이상에 달하는 가옥이 불탔다. ‘난징대도살’이다.
‘술집 어디 있는가 물었더니 목동은 멀리 행화촌을 가리키네’借问酒家何处有 牧童遥指杏花村

남녀노소가 다 아는 당나라 대시인 두무우(杜牧-두목)의 명시 《청명》清明 중 ‘행화촌’이 바로 현 난징에 있다는 신문보도가 눈길을 끈다.

난징은 역사문화 도시로, 오늘은 현대경제도시로 유객의 발목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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