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문학 특집

어떤 남자 풀어보기

여의치 않은 사정때문에 녀자가 어떤 남자와 합숙을 하게 되였다. 천원짜리 아빠트를 하나 세맡고 살던 녀자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집세때문에 합숙자를 찾았던것인데 본래 희망사항은 이성이 아닌 동성을 찾은것이였다. 헌데 동성인 합숙자가 도무지 나타나지 않았기에 녀자는 울며 겨자먹기로 희망사항을 이성에까지 확대했고 녀자가 동성이라도 합숙자로 찾겠다는 20원짜리 광고가 벼룩시장에 게재된 그날로 이성 하나가 급급히 합숙자로 나섰다. 잉어를 낚으려다 미꾸라지를 낚은것처럼 재수없었지만 사정이 하도나 딱한 녀자는“친척, 친구나 아는 사람 데려오지 말기”란 조건부로 어떤 남자의 합숙을 받아들이고말았다.

합숙하려는 어떤 남자의 전화를 받고 아빠트의 번지를 알려준 녀자는 조금 안절부절못했다. 이왕에 원하던 동성이 아닌 이성과 합숙을 할 경우 녀자가 거는 기대감이 무너질가봐 두려운것이였다.

―어떤 남자일가? 나이는 불혹의 아저씨이면 좋겠지. 그다음 좀 깔끔하고 무식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미남자가 아니면 더 좋겠지…

녀자가 어떤 남자의 나이를 불혹의 40대로 원하는건 녀자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재를 뒤집어쓰고 안으로만 타는 담배 같은 남자를 원했기때문이고 깔끔하고 무식하지 않은 남자를 원하는건 위생문제나 분위기문제때문이였다. 그렇다면 녀자가 추남을 원하는 가장 관건적인 리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녀자가 미남자들을 보면 눈에 콩깍지가 끼고 설레는 증세가 심각하기때문이였다. 전에 그런 증세로 녀자가 상처를 많이 입었었다.

다행히 녀자의 아빠트로 찾아온 어떤 남자는 녀자가 두려워하는 그 세가지를 가지고있지 않았다. 얼핏 보아도 40대는 많이 넘을것 같은 나이, 깔끔한 양복차림과 첫인사에서도 느껴지는 유식함, 그리고 너무 추하지도 너무 잘나지도 않은 얼굴을 가지고있었다.

녀자는 만족이였다. 해서 녀자는 기분좋게 합숙의 조건을 어떤 남자에게 내놓았는데 모든것이 반이였다.

“우리 량반을 하지 그래요. 그쪽은 무, 나는 문식으로 집주인에게 모든 걸 반으로 갈라 상납하면 뭐 다툴것도 없으니…”

어떤 남자는 로련한 합숙 경력이 있는것 같았다. 동성 같았으면 이것저것 캐묻고 따지련만 이성은 통쾌했다.

아빠트의 반을 철저히 가르고 합숙을 시작했을 때 녀자는 어떤 남자를 풀어보기 시작했다. 필요했다. 한집에서 살아갈 남자이니까…

어떤 남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골머리를 앓고있지 않다는 증거였다. 어떤 남자의 눈은 먼지가 앉은것처럼 부옇게 보였다. 정열적인 남자는 아닌 듯했다. 어떤 남자는 체구가 작았다. 세상에 나서도 별로 주목받지 못할것 같았다. 어떤 남자의 단출한 행리를 보아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보였다. 좋은 직업을 갖고있지 않거나 무직업으로 세파를 겪는것 같았다. 아빠트의 반을 가르고 방안에 들어간 어떤 남자는 꾹 박혀서 전혀 나오지 않았다. 외로움에 적응된것 같았다.

녀자는 어떤 남자를 더 풀어볼수 없었다. 그냥 나름대로 풀어보아 합숙이 가능한 상대라고 확인했을뿐이다. 간단한 보꾸러미처럼 풀면 다 보이는 남자보다 풀고 풀어도 다 보이지 않는 남자가 더 믿을만하다고 녀자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이제 합숙을 하게 되면 본의아니게 어떤 남자를 풀어보게 될 것이였고 또 어떤 남자를 모두 풀어보면 그런 남자로 될것이기에 합숙을 하는 그날까지 어떤 남자를 다 알지 말기를 녀자는 소원했다.

어떤 남자의 나이

녀자와 어떤 남자의 합숙생활은 협의서 한장도 없이 조용히 시작되였다. 어떤 남자가 아주 통쾌하게 나오는지라 녀자도 시끌벅적하게 나오기 싫어 남자가 쓸 방의 문을 열어주고만것이다.

―20원짜리 벼룩시장광고가 인연이 되여 합숙자로 뛰여든 저 남자를 믿어도 될가? 트렁크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온 저 남자는 어쩜 있을 곳이 없어 잠간 여기 머물려는것인지도 몰라? 어느날, 문득 달아나버려 내 꼴만 우습게 되는것이 아닐가? 본래 옴니암니 따지고 계약서를 밝히는것들이 더 무서운 세상이지만?…

그냥 놀러온 손님 같은 어떤 남자에게 방까지 내여주었을 때 녀자는 슬그머니 걱정이 들었지만 한번 어떤 남자를 믿어보기로 했다. 전에 녀자와 합숙을 했던 동성들은 계산서를 옴니암니 따지고 계약서를 두세번 고쳐쓰다가도 집세나 전기세 따위들을 계산하지 않고 줄행랑을 놓는 일이 많았었다.

그들의 령역은 각자의 방이였다. 거실과 화장실 그리고 주방은 함께 사용하게 되였기에 늘 마주쳤지만 서로의 안방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거실은 겨우 정원에 불과했기때문이였다. 어떤 남자는 어쩌는지 몰라도 녀자는 남자가 궁금했다. 녀자여서 그런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 남자의 방안을 들여다볼수 없었기에 어떤 남자에 대한 궁금증을 풀수 없었다.

어떤 남자의 방문앞에는 휴지통이 있었다. 어떤 남자가 아침나절에 슈퍼에서 사다놓은 휴지통이였다. 녀자는 아직 쓰레기가 버려지지 않은 어떤 남자의 휴지통을 주시했다. 혹여 그 휴지통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뒤져보면 어떤 남자의 생활편린들을 알것 같았기때문이였다.

우선 녀자가 어떤 남자에게 궁금한것은 나이였다. 해서 녀자는 어떤 남자에게 나이만 물었다. 어떤 남자가 자기 나이를 휴지통에 던져줄리 없었기엡

“아저씨, 년세가 어떻게 되죠?”

“누님, 아저씨라니요? 저 이제 서른여섯인데요.”

어떤 남자가 자기보다 두살이나 어리다고 했을 때 녀자는 어마지두 놀랐다. 얼굴에 묻어있는 나이와 판이했기때문이였다.

―얼굴에 분명 40대로 쓰여있는데 30대라니? 내 동생벌되는놈이 나이티가 저렇게 나서 어쩌려고? 쯧쯧!… 남자니 그렇지 우리 녀자들은 삼십대 중반에서 40십대 중반으로 겉늙으면 살고픈 마음도 없어질걸.

녀자는 외려 10년이나 겉늙어버린 어떤 남자가 가련하기까지 했다. 녀자는 이성 합숙자가 원하던 40대가 아니여서 서운했지만 그래도 어떤 남자가 누님이라 깍듯이 부르니 기분이 좋았다. 이미 들여놓은 사람을 헌 물건짝처럼 내던질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그렇게 녀자와 어떤 남자는 사이좋게 합숙을 해나갔다. 어떤 남자는 동생 노릇한다고 례의를 갖췄고 녀자는 누님노릇한다고 거실이나 화장실 그리고 주방청소까지 도맡아했다.

그러던 어느날, 녀자는 어떤 남자의 휴지통에 처음으로 버려진 일기장 하나를 뒤져내게 되였는데 그 찢겨진 일기장을 읽는 녀자의 마음은 애틋했다.

―마흔여섯을 먹고 연해에 진출한건 어리석은 짓이야. 합숙하는 삼십대 녀자에게 누님이라 부르면서까지 나이를 10년으로 줄여도 취직시켜주는 곳은 없어. 얼굴에 씌여있는것을 어떻게 속인단 말인가? 왜 삼십대 녀자를 누님으로 불렀던가? 나이 많아 취직못하면 합숙비도 내지 못한다고 여러 합숙 집에서 쫓겨났던 일때문이 아닌가?

―아저씨, 전 그런 녀자가 아닌데? 어려워서 합숙비를 못내는 사람이 두려운것이 아니라 합숙비를 등쳐먹으려는 그런 인간들이 두려운건데…

어떤 남자의 찢겨진 일기장을 다 읽은 녀자는 이제 믿을만한 합숙자를 만난 기분이 들어 시름이 놓였다. 녀자 또한 얼마나 속을 졸였던가? 벼룩의 간을 뽑아먹을 그런 남자가 합숙자로 나타날가봐…

어떤 남자의 학벌

어떤 남자는 한번 방안으로 들어가면 조개처럼 꾹 박혀 전혀 나올줄을 몰랐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해우를 하고 나온 어떤 남자는 배달된 우유 두봉지와 빵 두개를 들고 도로 방으로 들어가면 저녁이 되여서야 나오는데 그것도 주방에서 간단히 저녁을 지어먹고 밖에 나가 소풍이나 운동을 잠간 하고 들어가면 또 다음날 아침이 되곤 했다.

―저 아저씨 방안으로 들어가면 혹 쥐로 변하는건 아니야. 아니 쥐라도 저렇게 온종일 굴에만 들어박혀있지는 않을걸. 한집안 이웃방사이인데 너무하는거 아니야? 하긴 제 굴에 꾹 박혀있는 이성이 좋기도 해. 시도때도없이 거실에 붙어있으면 내가 더 불편할거야.

녀자는 늘 자기방에만 들어박혀있는 어떤 남자가 야속했다. 아무리 이성간이라도 이웃방에 사는 사이라면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어야 하는것이라고 녀자는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래동안 동성과 합숙생활을 해온 녀자의 체념이기도 했다.

녀자는 이성인 어떤 남자가 자기방에만 들어박혀있는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여겼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함께 합숙을 하는 이성하고 가족처럼 지내다가는 자칫 사랑이라는 그런 덫에 치워서 몸부림이나 칠것이 분명했다. 해서 녀자는 어떤 남자가 대화친구도 못되여 적적하긴 했지만 외려 더 편하게 받아들이고말았다.

그러던 어느날, 녀자와 어떤 남자의 합숙생활이 깊어가고있을 무렵 뜻밖에도 어떤 남자가 거실에서 드라마를 시청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아저씨, 오늘은 웬일이세요? 거실에서 드라마도 다 보시고요.”

그날따라 한나절이나 되여서야 깨여나 거실로 나온 녀자는 어쩌다 거실에 나와앉아 드라마에 푹 빠져있는 어떤 남자에게 의문을 던졌다.

“내가 그냥 방에만 들어박혀있는 괴물은 아닌데… 론문을 좀 쓰느라고… 어제까지 다 썼으니 오늘부터 가족처럼 드라마도 같이 보고 그래야지요.”

어떤 남자는 하루아침에 자상한 아버지나 다정한 남편으로 변한것 같았다.

―뭐, 론문을 쓰셔? 얼마나 대단한 학벌이시기에 책 한권 소지하지 않고 또 읽지도 않으면서 론문을 쓸가? 교수일가? 박사일가? 겉보기엔 그런 흔적이 안보이는데? 뭐, 수박은 겉이 파래도 속은 붉지 않던가?

녀자는 어떤 남자가 그동안 론문을 쓰느라 굴속에 들어박혀있었다고 했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의혹이 아니라 반가움이였다. 본래 녀자는 믿음에 약한편이였지만 어떤 남자가 론문을 썼다고 하는 그 리유 하나때문에 어떤 남자가 교수나 박사쯤은 될것이라 스스로 믿음과 존중을 던졌다.

교수인지 박사인지 정확한 학벌을 알수 없는 어떤 남자를 어버이만큼이나 존경하면서 합숙생활을 해가던 녀자에게 어떤 남자의 학벌이 체크된것은 그로서 한주일후였다.

―학벌: 초졸. 희망사항: 회사 총무직. 경력: 모 전자회사 창고관리 3개월.

녀자가 어떤 남자의 휴지통에 버려진 어떤 남자의 리력서 한장을 주어들었는데 그것은 이름이나 나이 따위는 쓰지 않고 학벌과 희망사항 및 경력만 쓰고는 구겨던진것이였다. 녀자가 리력서외에 덤으로 하나 더 주은것은 어떤 남자의 짤막한 일기였다.

―하늘아래 불행한 일이다. 내가 쓴“초졸 회사에 취직하려면”이라는 개소리가 론문이라고“취직가이드”에 발표되다니? 개가 웃을 일이니 일기로도 남기지 말자.

―이 아저씨 대단하시네? 겨우 초졸의 학벌로 론문을 다 발표하시고? 돌아오시면 꼬치라도 사라 해야겠네. 그런데 이 소식은 내가 아저씨의 휴지통에서 건진것이니…

녀자는 어떤 남자의 리력서와 일기장을 도로 어떤 남자의 휴지통에 집어넣으며 맹랑한 소리를 했다.

어떤 남자와 주간지

이제 어떤 남자는 전처럼 방안에 꾹 들어박혀있는 일은 없었다. 외려 남자가 방안에 들어가는 시간이 적고 거실에 붙어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어떤 남자가 방안에 들어가있는 시간이란 밤에 잠을 자는 시간과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는 시간뿐이였다.

―아저씨, 제발 좀 방에 들어가시지. 드라마를 보시는것도 아니고 매일 신문을 들여다보고있으면서… 아무리 48면의 주간지라도 벌써 며칠째 읽는 거야.

녀자는 어떤 남자에게 슬그머니 짜증을 냈다. 어떤 남자가 거실에 처음 퍼더버리고 앉은 날은 드라마에 빠져서 도무지 일어날줄 모르던 까닭으로 녀자는 슬그머니 걱정을 많이 하기도 했다. 어떤 남자가 그날 푹 빠져 보던 드라마는 녀자의 취미에 맞지 않는 사극으로 정극(情劇)을 즐겨보는 녀자와 다툼이 클것이기때문이였다.

하지만 녀자의 그런 걱정은 부질없는것이였다. 그날이후로 어떤 남자는 드라마에 관심을 껐다. 아마 합숙집 주인인 녀자의 비위를 건드렸다간 득 볼일이 없다고 생각한 어떤 남자의 약삭빠름 같았다. 그대신 어떤 남자는 48면의 주간지를 한주일채 읽고있었다. 아마 주간지이니 한주동안 읽어야 한다는 고집인것 같았다.

남이야 주간지를 한주동안 읽든 무슨 상관이냐싶었지만 녀자가 드라마를 보는 곁에서 신문을 부스럭거리는지라 녀자의 신경이 몹시 날카로워지고있었다. 실은 녀자가 드라마를 보느라 떠들썩한 거실에서 주간지를 읽는 일이 어떤 남자에게 더 고통스런 일일것인데 기어코 거실에서 또 녀자의 곁에서 주간지를 읽는 어떤 남자의 취미는 참으로 고약했다.

“아저씬 일간지는 하루에 보고 주간지는 한주동안 보나보네요? 그럼 월간지는 한달을 채워야 다 읽겠네요?”

도무지 리해할수 없는 어떤 남자에게 녀자는 슬그머니 빈정거렸다.

“어, 내가 벌써 이 주간지를 한주동안 손에 넣고있었는가? 난 신문을 절대 읽지 않아요. 하도 인생이 트이지 않아서 요즘 주간지에 제 인생을 걸고 올인하고있었어요.”

느닷없이 녀자에게 침을 얻어맞은 어떤 남자는 화닥닥 놀란 기분이였다. 어지간히 쑥스런 기분으로 어떤 남자는 들고있던 주간지를 탁자앞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뭐, 주간지에 인생을 거신다고? 어떻게? 별 희한한 소리를 다 하네?

녀자는 어떤 남자가 정신이 좀 아프지 않은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남자가 주간지에 자기 인생을 점치고있었다니 호기심이 부쩍 들었다. 해서 녀자는 어떤 남자가 탁자에 내려놓고 간 주간지를 펼쳐들었다. 일간지와 달리 한창 지난 뉴스와 애매한 사건들을 담은 주간지는 별 볼거리가 없었다.

녀자는 48면의 주간지를 아예 확 털어버렸다. 그러자 24장의 신문지가 거실에 쏟아져내렸다. 그중에서 녀자는 어떤 남자가 형편없는 글체로 댓글을 달아놓은 신문 두장을 골라내였다.

첫장은 혼인면이였다. 혼인등록번호 46번의 녀자에게 줄을 그어놓고 달아놓은 댓글은 가관이였다.

―46번, 내 나이와 같은 수이니 궁합이 맞을것 같다. 련락해볼가? 재수없는 소리 하지 마. 56세 할머니잖아.

두번째장은 증시면이였다. 증시번호 46번 동방A의 주식에 줄을 그어놓고 달아놓은 댓글은 가히 폭발적인것이였다.

―100만주만 지금 사들이면 한달내에 천만원은 건질것이다. 그런데 지랄같이 머니 론(money loan)이 없잖아?

주간지에 달아놓은 어떤 남자의 댓글을 읽은 녀자는 착잡한 감정으로 어떤 남자에게 위안을 슬쩍 던졌다.

―이 아저씨, 주간지에 인생 한번 단단히 걸고있었네. 일주일동안 자신을 올인하고 꿈마저 잃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가?

어떤 남자의 여우

어떤 남자는 며칠째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 나가면 한밤중이 되여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늦은 귀가에 남자들이 달고 들어오는 술냄새는 없었다.

―이 아저씨 이번엔 무얼 하시자는걸가? 방안에 들어박혀있으면 론문을 쓰고 거실에 나와있으면 주간지에 인생을 걸고 올인하잖아. 그럼 며칠째 밖에 나가 맴도는 지금 또 무엇을 하는것일가? 아무튼 매번 딴짓을 하실 때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기곤 하지.

녀자는 며칠째 밖에서 맴돌기만 하는 어떤 남자가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것이라 넘겨짚었다. 하지만 밖에서 벌리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녀자가 전처럼 휴지통에서라도 뒤져낼수 없어 유감이였다. 그래도 녀자는 어떤 남자의 휴지통에 대한 경계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행여 밖에서 흐트러져 들어온 남자가 자신의 휴지통에 이야기의 단서를 던져줄지 모르기때문이였다.

―이 아저씨 취직을 한것이 분명해. 어제밤 늦게 귀가를 한 아저씨의 몸에서 페인트냄새가 났어.

녀자는 드디여 어떤 남자가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있는지 갈피를 잡기 시작했다. 어떤 남자가 몸에 달고 들어온 페인트냄새가 그 단서로 되여주었다. 녀자로서도 반가운 일이였다. 거의 한달째 집에만 박혀있는 어떤 남자가 제시간에 반으로 가른 집세와 전기세 따위들을 물지 못하면 어쩌랴 은근히 걱정을 하고있던참이였다.

―흠흠, 이건 어느 여우의 냄새인데 왜 이 아저씨의 몸에서 날가? 나하고 한집에 살아도 나의 냄새가 묻지 않은 아저씨에게서 여우의 냄새가 날 땐 이야기가 다른거잖아?

거의 한주동안 페인트냄새만 묻히고 밤늦게 귀가를 하던 어떤 남자의 몸에서 어떤 녀자의 향내가 넘치고있을 때 녀자는 잔뜩 멀미를 느꼈다. 저희들끼리 몸에서 향내가 날 때는 몰라도 저들 동성의 향내가 이성의 몸에서 나면 멀미를 느끼는게 녀자들이였다. 질투때문엡

―푸푸, 이 지독한 술냄새는 또 뭐야? 이 아저씨 여우한테 물려 상처를 입었나?

문득 어느날 밤, 어떤 남자가 술에 절어서 밤늦은 귀가를 했는데 녀자는 술냄새에 약간 구역질을 느끼며 추측을 했다. 십중팔구는 그러할것이라고…

“아저씨, 엊저녁 많이 취하셨던데요. 혹시 여우사냥을 하시다가 놓쳤어요.”

이튿날 아침, 밖에 나가지 않고 거실에서 주간지를 뒤적거리는 어떤 남자에게 녀자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여우사냥? 그런셈인데 놓친게 아니라 내가 멍텅구리사냥군이 되여서 도로 물렸어요. 그런데 임자는 그걸 육감으로 알았어요?”

녀자가 정곡을 찌르자 어떤 남자는 의아스런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크크, 육감이 아니라 아저씨에게서 냄새를 맡은거지요. 처음엔 페인트 냄새가 났고 그 다음은 어떤 여우의 냄새가 났어요. 그리고 엊저녁은 술냄새를 맡았죠. 페인트냄새는 상관없겠지만 여우의 냄새와 술냄새로 짐작한 거예요.”

냄새로 어떤 남자의 상황을 파악했노라고 킥킥거리던 녀자는 자신이 사냥개가 된것이나 아닌지 다시한번 코를 벌름거려보았다. 그러는 녀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떤 남자는 여우한테 물리게 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취직자리 얻으러 갔다가 예쁜 여우를 만났어요. 그 여우네 집 페인트칠을 해주고 일당을 받기로 했는데 페인트칠이 끝났을 때 여우가 날 사랑한다고 해서 일당도 안받고 사랑에 푹 빠졌어요. 내가 여우에게 미쳐있을 때 여우가 집세를 물고 함께 살자고 해서 만원을 주었는데 여우가 그걸 챙겨가지고 사라졌어요. 참 내 꼴이 우스워졌어요. 뉘 집 페인트칠이나 해주고 돈도 떼였으니…”

어떤 남자의 취직

어떤 남자는 또다시 거실에 들어앉아 신문을 뒤적거렸다. 전에는 주간지 하나를 일주일동안 뒤적거리더니 이번은 숱한 일간지들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빠른 속도로 뒤적거렸다.

“아저씨, 오늘은 왜 일간지만 뒤적거려요. 읽지도 않고 펼쳤다 접으면서… 일간지는 본래 하루의 품을 팔아서 읽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던 녀자는 또 신경이 거슬려 짜증을 냈다. 언제는 주간지 하나를 일주일간 뒤적거려서 불편하더니 오늘은 반대로 일간지들만 태산처럼 쌓아놓고 바스락거리는것이 아닌가?

“주간지의 취직정보는 한물 지난것이예요. 련락을 하면 이미 취직되였다는 답뿐이니… 일간지의 취직정보는 따끈따끈하거든요. 뭐 그냥 2면의 취업정보란만 훑어보는것이니 도깨비 기와장을 번질수밖엡”

녀자가 짜증을 내자 어떤 남자도 자신의 짓거리에 어이없어했다. 사실 어떤 남자도 짜증이 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취업정보란에는 대개 녀자들을 찾는 직업만 게재되였고 간혹 남자들을 찾는 직업이 있다면 대졸이상의 학력과 30대미만에 력점을 두었다.

―넨장, 학벌은 문턱이 높고 나이는 아래 종아리네.

녀자의 짜증이 서리발처럼 느껴진 어떤 남자는 속으로 툴툴거렸다.

“아저씨, 죄송해요. 제가 좀 도울가요?”

녀자는 어떤 남자의 안타까움을 무시하고 공연한 트집을 잡은 자신이 미안해서 일간지 하나를 집어들었다.

“마음이라도 고마워요. 이제 몇장 안남았으니 곧 끝날겁니다.”

어떤 남자는 녀자의 도움을 거부했다. 녀자까지 일간지를 뒤적거리면 멍청해서 취직자리 하나 못찾는 자신의 꼴만 더 우습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일간지를 집어든 녀자도 본심이 아니고 또 어떤 남자의 거부의식이 심했던지라 녀자는 녀자대로 드라마에 심취해갔고 어떤 남자는 어떤 남자대로 일간지를 계속 뒤졌다.

곧 5분도 지나지 않아 어떤 남자는 일간지 뒤적이기를 멈추었다. 집어든 것이 마지막 일간지였다. 어떤 남자는 일간지에서 무엇인가 적었고 또 일간지에 무언가 신나게 댓글을 달아놓는것 같았다.

어떤 남자는 기분이 즐거운 표정이였다. 무슨 일자리기에 련락도 하기전부터 행복한 표정인지 녀자는 궁금했다. 그렇다고 물어보기는 좀 그렇고해서 어떤 남자가 일간지를 두고 나가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근사한 취직자리 하나가 나졌으니 저 나갔다 올게요. 그동안 방해가 많이 되여 죄송해요.”

녀자의 마음을 알기나 한듯 어떤 남자는 자기방에 들어가 양복을 갈아입고 나가며 살갑게 굴었다.

어떤 남자가 밖으로 나가기 바쁘게 녀자는 금방 어떤 남자가 내려놓고 나간 일간지를 펼쳐들었다. 취직정보란의 13번째 취직정보에 어떤 남자가 줄을 그어놓았는데 거기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게재되여있었다.

―《사나이룸살롱》에서 남자웨이터 모집. 무릇 50세이하의 건강한 남자. 기본월급 인민페 3000원. 월보너스 인민페 7천원이상. 전화상담 절대 거부. 비취로 50호 황제빌딩 28층 박마담과 직접 상담.

13번째 취직정보를 읽은 녀자의 눈에는 벌써 돈벼락을 맞은 어떤 남자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젠장, 한번 섹스의 기계가 되여보는것이다. 녀인들을 신물이 나게 껴안아보고 돈도 엄청 버는 일이거늘.

어떤 남자가 일간지에 적어놓은 댓글을 읽었을 때 녀자는 연신 새된소리를 지르고말았다.

“어머, 어머! 이 아저씨 순진한것만 아니네?”

어떤 남자의 페니스

취직상담을 나갔던 어떤 남자는 저녁이 되여서야 즐거운 기분으로 들어왔는데 손에는 삼페인 한병과 약간의 마른안주가 들려있었다.

“나 황제빌딩에 취직하기로 했어요. 제가 좋은 취직자리를 구했으니 우리 삼페인을 터뜨려요. 뭐 수십원밖에 안하는 싸구려 삼페인이지만 술맛만 달다고 하네요.”

난생처음 어떤 남자가 술과 안주를 사들고 들어와 함께 즐기자고 하는지라 녀자도 기분이 좋았다. 더구나 드라마에서처럼 삼페인까지 터뜨린다고 하지 않는가? 어떤 남자의 취직을 본의아니게 축하하는 일이였지만 녀자는 이상하게 행복했다.

“아저씨가 래일부터 황제로 취직했으니 당연히 저도 축하를 드려야죠. 자 어서 삼페인을 터뜨려요.”

언제부터이던가 녀자는 누구와 삼페인을 터뜨려보는것이 소원이였다. 가능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터뜨리고싶었지만 그런 행운은 도무지 녀자앞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퍼엉!”

녀자는 귀청을 째듯 요란한 삼페인 터지는 소리를 기대했고 흠뻑 삼페인 비를 맞으며 환성을 지르고싶었다.

하지만 녀자의 기대는 깨졌다. 어떤 남자도 삼페인을 처음 터뜨리는 모양이였다. 어떤 남자는 삼페인을 터뜨리는 일이 무슨 지뢰를 터뜨리는 일로 여기는지 잔뜩 겁에 질려서 삼페인마개를 감고있는 철사를 벗기기 시작했는데 철사를 조금씩 벗기고는 칼끝을 지레대로 삼아 삼페인마개를 약간 들어올렸다.

“치직!…”

결과 어떤 남자가 삼페인마개를 단단히 묶어주던 철사를 완전히 벗겼을 때 삼페인마개사이로 거품이 맥없이 샘솟더니 어떤 남자가 삼페인병을 들고 아무리 흔들어도 종시 삼페인마개는 치솟을줄 몰랐다.

―이 아저씨 황제가 되긴 다 틀렸네. 이리도 폼잡을줄 모르니? 미국서는 파티때 펑 튀는 삼페인마개에 얻어맞고 죽는 사람이 진짜 행복하다는데…

녀자는 여간만 맹랑한것이 아니였다. 푸푸, 입김을 가득 채웠던 고무풍선 아가리를 열어 입김을 빼듯 녀자도 자기의 기분을 빼고있었다.

“자, 건배해요.”

그래도 어떤 남자는 멋대가리없이 삼페인마개를 흔들어 빼던지고 삼페인을 잔에 가득 부어주며 녀자에게 건배를 했다.

“아저씨, 파이팅!”

녀자는 랭소를 하며 삼페인을 조금 들었다. 혀끝이 달았다. 위안을 주듯…

그 이튿날부터 어떤 남자는 황제빌딩에 황제로 출근을 했다. 어제저녁, 삼페인축제는 싸가지없이 망치고도 양복에 폼을 잡고 집을 나서는 어떤 남자는 아예 당나발이 되여있었다. 되게 웃기는 사람이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떤 남자는 출근을 사흘만 하고 집에 들어박혔다. 녀자는 그 영문을 무척이나 알고싶었다.

―잘렸을가? 무슨 연고로?…

녀자는 하루종일 드라마를 보면서도 어떤 남자에게 의문만 던졌다. 녀자가 어떤 남자에게 이토록 궁금하기는 처음이였다.

결국 녀자의 궁금증을 풀어준것은 역시 어떤 남자의 휴지통이였다. 어떤 남자는 아주 위험한 습성이 있었는데 늘 휴지통에 자신의 은사를 던지는것이였다.

어떤 남자의 휴지통에는 신문에서 오린 약광고조각이 버려져있었는데 그것은 남자들의 양물을 크게 하는 약이였다. 뭐 작은 양물을 최대로 길이 21센치메터, 굵기 14센티메터로 만들어준다는 무서운 약이였다.

―세상에 그렇게 큰 양물을 어떤 녀자가 받아낸다고…

녀자는 저도 모르게 질겁하고말았다. 어떤 남자가 더이상 황제빌딩으로 나가지 않은 리유를 녀자는 약광고와 함께 버려진 어떤 남자의 일기장을 보고서야 알았다.

―제길, 늙은 녀자와의 섹스 한판에 남자의 자존심을 모두 잃다니? 더러운년, 충분히 무섭도록 크다는 내것이 작아서 못쓴다면 네년에게 말의것이나 선물할테다. 내것도 말의것처럼 크게 해주는 6000원짜리 약이 있으니 내 그걸 사서라도 네년이 혀를 빼물고 죽도록 해줄것이다.

어떤 남자 묻어버리기

어떤 남자는 며칠간을 집에서 휴식하더니 또다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출근을 하던 날 어떤 남자가 미소를 짓는것을 보니 그동안 남자의 자존심을 많이 키운듯했다.

“언제 황제빌딩에 초대를 할게요. 기막힌 서비스도 공짜로 해드리고요.”

어떤 남자는 녀자에게 롱조로 넌지시 한마디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난 싫어. 내가 뭐 혀를 빼물고 죽을 일이 있나?”

어떤 남자의 롱에 녀자는 질겁했다. 자꾸 어떤 남자가 휴지통에 던졌던 일기장내용이 떠오르며 두려워났던것이다.

남자가 출근한지 이슥해서 녀자는 거실을 청소하는척하며 남자의 방앞에 놓인 휴지통을 털었다. 휴지통에는 약통 하나와 구겨진 메모장 하나가 있었다.

녀자는 먼저 약통을 주어들고 뒤번져보았다.

“으악, 망측스런 약!”

녀자는 약통을 금방 던져버렸다. 약통의 모서리에 무섭게 발기된 남자의 페니스가 능글맞은 힘을 과시하고있었기때문이다. 녀자는 신경이 경직되였지만 이상하리만치 자신도 젖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 거대한 유혹을 이겨낼수 없어서 다시 그 약통을 주어들고 세심히 들여다보았다.

“피땀으로 번 돈 6천을 던졌지만 대성공이다. 남자의 자존심을 찾았다. 래일은 그 늙은 녀자 죽여줄것이다.”

나중에 녀자가 구겨진 메모장을 펼쳐들자 이런 글귀가 씌여져있었다.

―으음!

녀자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났고 몸이 뜨거워졌다.

요즘들어 남자의 생리시계는 박살이 나있었다. 부엉이 같은 삶을 살기 시작한것이다. 밤이 되여 출근을 하고 아침에 퇴근을 해서 저녁때까지 잠을 자는것이였다.

온종일 남자의 코고는 소리만 들어야 하는 녀자는 몹시 언짢았다.

“언제 황제빌딩에 초대한다고 해놓고 약속을 안지키네. 기막힌 서비스도 공짜로 해준다더니 다 잠꼬대 같은 소리였네? 늙은 녀자들만 서비스하다가는 탄저균이 옮지 않나봐!…”

녀자는 아예 어떤 남자를 위해 액을 빌었다.

녀자가 어떤 남자의 액을 빌어서인가? 어떤 남자는 방을 내겠다고 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였습니다. 그동안 덕분에 편하게 지냈어요. 잘 있으세요.”

어느날 아침, 어떤 남자는 역시 간편한 행리를 들고 나오면서 고향으로 간다면서 방을 비웠다.

―남 기분은 상관없이 가면 간다는거야. 그간 든 정이라도 있을텐데 밥 한끼도 정중히 안사주고 간다고… 무정한 사람 같으니라고…

녀자는 무작정 방을 비운다고 하는 남자에게 따귀라도 후려쳐주고싶을 정도로 버림받는 심정이였지만 그나마 석달간의 방값을 푼푼히 받아 고맙기도 했다.

아무튼 결혼할 상대도 아니요 또 살을 섞었던 상대도 아닌 까닭으로 정에 운운할 리유도 없었다. 단지 방값을 두말없이 푼푼히 내던 합숙자를 잃게 되는 아쉬움이라 할가? 아주 섭섭한것은 사실이였다.

남자가 비우고간 방을 녀자는 치우고있었다. 새 합숙할 이성이 나졌기때문이였다. 본시 깔끔한 남자의 방에는 먼지라 할것도 없었다. 대수 물걸레를 해놓았더니 어떤 남자가 들었던 방은 금세 윤기가 반짝반짝했다.

녀자가 어떤 남자의 방에서 얻은 수확이라면 어떤 남자가 무엇때문에 합숙방을 빼였나 하는것이였다. 창턱에 메모수첩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다만것이 있었다.

―6000원을 투자해 겨우 남자의 자존심을 찾고 늙은 녀자의 오르가즘이나 일궈주고 얻은것은 무엇이냐? 매독이란 성병일뿐… 겨우 근치가 되였으니 이 도시를 떠나자 촌놈은 촌에서 과부장가라도 들어서 사는게 행복이거늘… 늙은년에게서 번 돈을 고스란히 매독치료에 탕진하고 노가다에서 번 돈까지 모두 밀어놓고 이 도시에 남을 리유는 아무것도 없다. 어서 가자! 래일은 고향으로…

어떤 남자의 쓰다만 메모를 읽고 녀자는 오싹했다. 이 방에 어떤 남자가 탄저균을 떨어뜨리고 가지 않았나 하는 경계심보다는 한 남자가 지지리도 살기 힘든 도시가 온통 탄저균으로 몸살을 앓지 않나 하는 두려움이 더 컸다. 녀자는 또다른 합숙자를 찾아야 하는 립장이 아니였던가? 녀자는 어떤 남자를 묻어버리기로 했다. 두번 다시 기억도 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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