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문학특집

몸에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녀자의 시체가 바다가에 있었다.

한 남자가 지나다가 녀자의 시체를 보더니 웃옷을 벗어 녀자의 몸을 가려주었다. 그리고는 가던 길을 갔다.

또 한 남자가 지나가게 되였는데 그는 녀자를 바다가의 모래톱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가던 길을 갔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 옷을 벗어 녀체를 가려준 남자는 녀자의 첫사랑으로 남났고 모래톱에 녀체를 묻어준 남자는 녀자의 남편이 되였다.

그리고 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녀가 라체일때 그녀의 앞에 잠간 머물면서 그녀를 감상하고 떠가난 남자, 그 남자는 예술가였고 세월이 흐른 뒤에 그녀의 애인이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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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운 카텐, 질서없이 누운 술병들, 돼지간을 썰어 담았던듯한 피가 흥건한 빈 접시에 짝을 잃은 저가락 한가치가 일그러진 주인의 일상처럼 삐뚤게 놓여있는 차탁, 매캐하고 퀴퀴한 냄새가 골똑 찬 방안, 쏘파우에 늘어진 쏘파보다 긴 남자의 몸체 …

질식할것 같았다. 카텐을 열어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당장 내려앉을듯 낮게 드리운 하늘이 잔뜩 얼굴을 찌프리고있다. 구질구질한 날씨, 봄이라는데 철답지 않게 싸늘한 기온이다. 그렇지 않아도 답답해 견딜수 없는 가슴을 한결 더 침침하게 내리누르는 낮은 기압, 숨이라도 끊겨야 이 숨막힘을 모면할수 있을가싶다.

순간, 세상이야 어찌 돌아가든 술에 취해 단잠에 빠진 동생의 모습이 부럽다. 그 태평스런 모습이 부럽다. 저렇게 한번 시름놓고 단 십분이라도 잤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남자.

이틀전,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한후로 지금껏 눈을 붙이지 못했다. 집에 가 자려다가 근심스러워 동생집에 달려왔더니 이 꼬락서니다.

형님 왔소? 동생이 찬공기에 잠을 깼는지 부시시 일어나 앉는다. 잔뜩 꼬부라진 혀. 그리고 저 망가진 상통이란… 벌컥 화가 치민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버지가 죽는다 산다 야단인데 넌 술이나 처먹고 자빠졌어?

나두 속타 술마셔…

속타? 그래 니가 속타 술마셔? 너나 다른 사람 속태우지 말아! 아님 뒈지든가…

그 주제에도 뒈지란 말은 그렇게 노여운가? 침실에 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버린다. 그리고 쿨쩍거린다. 그런 병신 동생을 보니 가슴이 쓸쓸해난다.

십여년전의 시내를 들썽하게 한 그 권총사건, 그때 총알이 관통하며 운동신경을 다쳐서 반신불수가 된 동생, 하루이틀도 아니고 남은 전생을 보험최저보장금으로 지탱해야 하는 사내에게 남은것은 무엇일가?

동생의 녀자는 자기만 살겠다고 애를 남자에게 팽개치고 떠나갔고 동생은 자기힘으로 해낼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할수 있는 일이 술 마시는 일뿐이다.

일메터 팔십의 체격이 본의아니게 망가지고있다. 절망이란 이렇게 한순간에 오는것임을 당해보지 않구야 누가 상상이나 할가?

잘살겠다고 출국을 한 안해라도 곁에 있으면 남자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으리라. 초중생인 아들애를 돌보는 일, 출근을 하는 일, 양로원에 계신 아버지를 드문히 보살피는 일, 그리고 병신 동생을 보살피는 일 이 모든것이 지금 하나같이 남자의 가슴을 천근무게로 내리눌러서 남자는 숨 막힐듯한것이다.

문득 어머니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빈자리는 가슴에 구멍이 펑 뚫린만큼, 모습을 보이지 않는 태양의 빈자리만큼이나 컸다.

두달전 어머니가 그렇게 훌쩍 지나가는 이야기 같이 떠나버리고나서 어머니가 가녀린 몸으로 감내했을 그 산악 같은 삶의 무게를 조금씩 느끼고있다고 할가.

아버지가 술을 돈이나 녀자보다 더 즐기는것에 겪는 어머니의 아픔을 보면서 남자가 술을 한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 반면에 형과 동생은 누가 자기들을 아버지의 피줄이 아니랄가봐 술을 지독하게 좋아했고 형보다 동생이 더 술쪽에 기울어졌다.

드살이 센 형수님덕분에 형은 술을 량껏 마시지 못하고 형수님과 함께 출국한지도 두해나 흘렀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특색이랄가, 형의 언약은 실속이 없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형은 목소리마저도 들려주지 않는다. 들려주지 않는지 못하는건지 그건 알수가 없는 일, 이쪽 상황에선 형수님 대하기 조금 어렵기도 하다. 그걸 너무 깜찍하게 활용하고있는 형의 내외간.

삼촌이 아버님과 동생을 돌봐주오, 우리가 인제 돌아가면 다 알아 처리할게. 형수님은 이렇게 애매한 언약을 할뿐이다. 그 인제가 언제나 될가, 알아 처리한다는 말은 돈을 쓴만큼 준단 말인가 아니면 아버지와 동생중 한사람을 책임진다는 말인가, 대중이 잡히지 않는다.

아버지의 약간한 퇴직비와 동생의 사회보험생활보조금으로는 생활 지탱할 정도밖에 안되는데, 아버지는 술주정에 앓음자랑까지 하시고 병신 동생에겐 영양제품을 들이대고있는 상황이다. 어머니가 생전에 모아놓은 약간한 돈으로는 얼마 지탱할것 같지가 않은데 앞길이 묘연하기만하다.

맏아바이…

어디선가 미미한 부름소리가 들려온다. 침실이다.

아홉살의 조카가 때자국이 꾀죄죄하고 눈만이 올롱해서 침대모서리에 앉아 남자를 쳐다보고있다.

너 왜 학교가지 않았니?

나 배고픔다.

아이가 쿨쩍거리기 시작한다. 남자의 가슴에 가슴시리게 파고든다.

잠간만 기다려, 맏아바이 밥해줄게.

아이가 입을 다신다. 얼마나 배고팠을가…

저런걸 떼두고 떠나간 녀자가 리해안된다. 하지만 동생을 돌아보니 생각이 바뀐다. 어느 녀자가 병신에 주정뱅이인 남자를 견딜수 있을가 싶다.

갑자기 진동하는 탄내음. 장을 끓인다는것이 넘쳐흘러 가스불이 꺼지고 장 탄 냄새가 집안에 넘친다. 제정신이 아니다. 식은땀이 흐른다. 그래도 취사칸에 뜬금이 서리니 집 같은 분위기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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