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우의 수필 120>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독일인 남편과 살고 있는 한 교포 여인이 이런 말을 하였다.

남편은 독일인이고 자기는 한국인이다. 지금 자신의 국적은 독일이다.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는 독일인이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아들은 한국어도 잘 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에는 이런 교포 가정이 제법 많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가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너는 독일인이냐, 한국인이냐?”

이러한 질문을 받은 아이들은 우선 당황부터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대답은 대략 다음과 같다고 한다.

① 나는 독일인도 한국인도 아니다.

② 나는 반(半)독일인, 반한국인이다.

③ 나는 독일인이며, 또한 한국인이다.

④ 나는 독일인도, 한국인도 다 된다. 그래서 말도 두 국어를 한다.

독일에서 사는 교포 자녀들 가운데에는 ③이나 ④와 같이 대답하는 아이는 적다. 많은 수가 ①과 같이 대답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부인은 ①과 같이 생각하고 사는 교포 자녀들이 큰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이 자신의 신분을 얼치기로 인식하는 데에서 자기는 출신부터 원래 잘못되었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늘 자포자기적 심리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삶의 태도도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어머니로서도 어떠한 위안이나 충고를 주기도 어려운 처지여서 참으로 난감하다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그래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인들이 독일에도 많이 오가기 때문에 좀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②와 같은 인식을 하고 사는 아이만 되어도 좋겠다는 것이 한국인 어머니로서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교포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독일인까지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진정한 애국자는 한국에서 사는 우리들이 아니라 외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과 같은 분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뒤 토론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하여 주었다.

한독 부부의 교포 자녀들은 좋은 기회를 만난 것이다.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면서 한국어까지도 쉽게 잘 배울 수 있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이 못하는 두 개의 언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의 세계는 이중 언어 사용의 시대가 될 것이며, 따라서 한국어와 독일어 둘 다 잘 아는 이중 언어의 능력자가 된 것은 참으로 쓸모가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의 교포 자녀들은 ④의 대답처럼 당당히 자랑스럽게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독일인도 되고 한국인도 된다. 그래서, 독일어도 잘 하고 한국말도 잘 한다.”

도리어 이러한 자부심을 자녀들에게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나의 말에 여러 교포들이 동감을 표시하였다.

다른 교포는 또 이런 사실도 일러 주었다. 독일 주재의 한국 기업체들이 직원 채용의 경우, 그 동안에는 독일어를 아는 한국인을 채용하던 것에서 최근에는 한국어를 아는 독일 교포나 독일인을 보다 선호하는 것으로 전환이 되었다. 앞으로 한국어를 잘 아는 교포 자녀들의 취업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라고 설명하였다. 한국어를 아는 독일인이나 교포들이 여러 가지로 현지 사정에 밝아서 업무 수행을 훨씬 더 잘 해낸다는 것이 이유라는 것이다. 이중 언어 능력자가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부터 국내의 3,4개 취업정보 전문 기관들이 외국어에 능통한 인재를 뽑기 위한 해외채용박람회를 열고 있다. 리쿠르트사가 미국 로스앤젤리스에서, 인턴사가 뉴욕과 시카고에서 각기 석․박사 취득예정 취업 희망자 2천여 명을 상대로 채용박람회를 열었다. 일본 도쿄에서 상반기에 열었던 아리오사는 그 반응이 좋아 내년에는 중국 북경에서 채용박람회를 열겠다고 한다. 이는 모두 현지 외국어에 능통한 우수 인력의 선발과 해외 홍보를 겸한 이중 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어와 함께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을 선호하는 기업체들의 채용 방식의 전환이 교포 사회에도 알려졌고 그들 또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언어시대! 이제는 모국어 하나만 가지고서는 살 수가 없는 이중 언어의 사용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확실히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우리에게 열리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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