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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아저씨는 새벽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정신이 맑갛게 개여있었다. 캉아저씨가 찾고있으니 왔다가 갔으면 좋겠다는 리후이의 전화를 받고 캉아저씨네 집으로 달려갔을 때 캉아저씨는 훨씬 좋아보였다. 창호는 며칠은 더 참으려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이 최후를 맞는, 초불이 꺼지는 순간에 반짝 빛을 내는 회광반조(回光反照)현상일뿐이였다. 생명은 강하면서도 취약했다. 진리의 빛은 생과 사의 사이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리후이의 전화를 받고 올것이 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캉아저씨의 맑은 모습을 보았을 때 창호는 리후이가 녀자여서 호들갑을 떤다는 생각을 피끗 했었다. 캉아저씨는 급급히 달려온 창호를 보더니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낮았으나 목소리도 똑똑했다.

<<내가 너를 부르라고 했다.>>

<<좋아보여요. 이제 회복이 될거예요.>>

캉아저씨는 여전히 그 희미한 미소를 띄우고 머리를 알릴듯말듯 머리를 저었다.

<<나 알고있어. 때가 된거야. 너하고 할 말이 있어 오라고 했다. 정신이 똑똑할 때 말이다.>>

<<할말요? 무슨 말인데요?>>

캉저씨는 힘들게 머리를 창호쪽으로 돌렸다. 창호는 캉아저씨의 입가로 귀를 가져갔다.

<<너 카이란 소식 없어?>>

창호는 언제인가 캉아저씨가 카이란을 묻던 일이 생각났다. 심상치 않은 무엇을 캉아저씨가 알고있으리라는 예감이 들며 창호는 전률했다.

<<소식은 없어요. 캉아저씨 카이란에 대해 뭔가 알고있는거 맞지요? 왜 그러세요?>>

캉아저씨의 눈길이 창호의 얼굴에 와 한참이나 멎어있었다. 눈길속에 무언가를 주저하는 빛이 스며있었다.

<<말씀하세요. 아저씨 이만큼 시간이 지났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저 다 견딜만 해요. 말씀해주세요!>>

캉아저씨는 이불밑에서 손을 빼려고 애썼다. 창호는 그 손을 꼭 잡아쥐고 캉아씨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캉아저씨가 길게 숨을 다듬었다.

<<이말을 할지 말지 나도 오래동안 고민을 했었다... 네가 따구쟈을 떠나서 반년후 카이란이 왔댔어. 임신이더라. 카이란이 날 찾아와 네 아이라고 하더라. 널 찾고있는데 나도 모르고있었잖니?...>>

창호는 온몸이 서서히 굳어져 하나의 돌조각이 되는듯싶었다. 머리속이 하얗게 바래워졌다. 카이란이 창호의 아이를 임신했었다. 그런데 창호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어쩜?!...>>

캉아저씨는 숨을 돌리고 말을 이었다.

<<네가 실종되였다는 말을 듣고 카이란은 아무 말도 않고 울기만 했어. 그리고 돌아갔는데 소문에 돌아가서 얼마 안되여서 가출을 했다더라... 카이란네 집에서 찾는다고 산동이고 흑룡강이고 돌아다녔지만 끝내는 찾지 못했어. 내가 따구쟈를 떠날 때에도 애는 소식이 없었어...>>

창호는 자기의 혈육이, 사랑의 결실이 이 세상 어디에서 살고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근데 왜 이제야 이 말을 하십니까? 네 왜서요?!...>>

캉아저씨의 눈가가 젖어올라왔다. 그러나 방울을 이루지는 않았다.

<<말한들 어쩌겠니? 찾을수도 없고 찾을 길도 없는데... 인생에 부담만 되는거잖니?...>>

캉아저씨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자기위안을 위해서라도 노력이라도 해보아야는것이 아닌가!

창호는 밖으로 나왔다. 서리가 내리려는지 날씨가 쌀쌀했다. 우중충한 밤하늘에 별들이 점점이 박혀있었다. 카이란, 지금은 어디에 있는것일가? 그 애는? 남자애? 아님 녀자애? 창호는 알길이 없었다.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애를 낳았다면 그 애를 어떻게 키웠을가? 창호가 아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을 밖에 서있는데 리후이가 나왔다.

<<오빠, 아저씨가 들어오래.>>

창호가 들어가자 캉아저씨는 측은한 눈으로 창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다. 일찍 알려주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난 네가 평생 부담을 가지고 살아가는걸 바라지 않았어. 지금 생각하면 인성을 떠났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캉아저씨는 힘든지 말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한동안 숨을 돌렸다.

<<후이야, 너 여기 와...>>

창호가 리후이를 불렀다.

<<리후이, 아저씨가 널 불러.>>

리후이가 캉아저씨의 침대옆으로 다가가자 캉아저씨는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쓰는듯 입을 벌리고 긴 숨을 들이 쉬였다. 그러자 리후이가 물컵의 물을 술로 떠서 캉아저씨의 입가에 가져갔다. 몇모금 마시고난 캉아저씨가 밖으로 내놓은 손을 저었다.

<<됐어... 후이, 그리고 창호 잘 들어. 저 옷장속에 작은 궤가 있어. 그속에 내 유언이 있어. 공증도 이미 받아놓았다... 후이, 난 네가 내 뜻을 존경하기 바란다. 넌 나를 지켜봐준 유일한 친척이고 증인이야. 알겠니?...>>

리후이가 울먹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있어요. 아저씨, 그만해요. 아직 그럴 때가 된건 아니예요....>>

캉아저씨는 안심이 되는듯 살풋이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아까보다는 가늘었다. 얼마마한 시간이 지났는지 캉아저씨가 다시 눈을 떴다.

<<후이야, 창호는 처음으로 날 사람대접해준 사람이야. 중국 사람은 물방울같은 은혜에 솟는 샘으로 보답한다는 말이 있어. 그걸 알아야 해... 너를 믿는다... 후이야... 너 그 노래를 틀어주겠니?...>>

리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카세트록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테이프를 바꾸지 않는것을 보아 그냥 듣던 음악인 모양이였다. 테이프의 빈 공간이 돌아가는 소리가 잠간동안 울리고 이어서 얼후(호금)의 선률이 잔잔히 흘러나왔다. 창호는 그 곡이 <<이천영월(二泉映月)>>이라는것을 알아들었다. 흐느끼는듯한, 애수와 슬픔과 감상으로 가득한 선률이 허름한 방안을 가득 메웠다. 중국의 류랑맹인음악가가 지었다는, 그리고 손수 연주를 했다는 이 노래의 참뜻을 창호로서는 리해할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음악의 선률이 담고있는, 인간의 숙명과 그 항쟁의 가느다란, 바다의 암류처럼 깔려있는 싸움의 흔적을 창호는 가려들었다. 그 순간 창호는 캉아저씨의 인생이 이 음악이 담고있는 감성과 운률의 어느 하나라고 느껴졌다.

새벽이 다가오고있었다. 음악소리는 몇번이고 반복이 되였고 캉아저씨는 잠든듯 가느다랗게 숨을 쉬고있었다. 갑자기 캉아저씨가 눈을 뜨고 밖으로 나온 손을 흔들었다. 흔들었대야 손가락이 조금 움직이는 정도였다. 그러나 창호는 캉아저씨가 자기를 부르고있다는 의미를 알아차렸고 차디찬 느낌이 등허리를 지나 머리속으로 파고들었다. 창호는 캉아저씨의 손을 잡고 다급하게 리후이를 불렀다.

<<후이! 와봐!...>>

리후이가 와서 캉아저씨의 다른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도 무엇을 느꼈는지 온몸을 떨면서 중얼거렸다.

<<쑤쑤! 아저씨, 아저씨... 안돼요. 아저씨, 안돼요...>>

카세트에서 나오는 얼후의 흐느낌은 멈추지 않고있었다. 캉아저씨가 눈이 창호에게로, 그리고 리후이에게로 느낄수 없을만큼 오갔다. 그러더니 공중 어디엔가 초점을 멈추고 입술을 실룩거렸다. 무언가를 말하려는가싶었다. 창호가 귀를 입가에 가져갔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뿜는 가느다란 숨결만이 느껴질뿐이였다. 똑바로 뜬 캉아저씨의 눈에 물기가 고이기 시작했다. 그 물기가 방울이 되여 흐르기전에 캉아저씨는 온몸에 크게 경련을 일으키더니 마른 나무가 꺽이듯 불시에 맥이 툭 빠져나갔다.

한 생명의 존재는 이것으로 끝난것이였다.

리후이가 왕- 하고 소리를 냈다. 창호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렀다.

<<안돼! 울지마!...>>

리후이는 깜짝 놀라며 가슴을 붙잡고 참새처럼 뛰여 물러섰다. 턱에까지 치밀어오른 울음을 참느라고 흑흑 했다.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고있었다. 창호도 자기의 목소가 높은데 놀랐다. 솟구치는 흐느낌을 참으며 창호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리후이, 참아. 참아야 돼. 아저씬 눈물로 보내선 안돼... 기억나? 말한적 있지?... 울면 안돼...>>

그러나 창호의 눈에서는 끝내는 눈물이 치솟아 올랐고 아무런 의지의 구속이 없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창호는 눈물을 훔치고 캉아저씨의 눈을 감기고 떨어진 턱을 올려놓고 리후이에게로 머리를 들었다.

<<찬찬히 봐. 마지막이니까...>>

리후이는 창호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말았는지 의미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캉아저씨의 모습은 오히려 깊은 잠에 빠진듯 평온했다. 창백한 얼굴에는 고통의 흔적이 없었고 생명을 다한, 길다란 려로의 피로같은것이 실려있을뿐이였다.

창호는 리후이더러 깨끗한 물과 가위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캉아저씨에게 갈아입힐 옷과 시체를 감을 천을 꺼내놓으라고 시켰다. 모든것이 준비되자 창호는 리후이에게 말했다.

<<렴습을 할동안 넌 방에서 나가있어.>>

<<오빠 혼자서 되겠어?>>

<<도움이 필요하면 부를게.>>

<<사람들을 부를가?>>

<<그러지 마. 내 손으로 보내드리고싶어.>>

리후이는 주저주저하며 방에서 나갔다. 창호는 젖은 수건으로 캉아저씨의 얼굴을 닦고 머리를 빗어주고 손과 발을 닦으려고 그때까지 오른손에 끼여있던 하얀 면장갑을 벗겼다. 순간 가슴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는듯 차디차게 식어왔다. 캉아저씨의 오른손은 왼손보다 작았고 어린애들손처럼 부풀어있었다. 오래동안 장갑을 끼고있고 쓰지 않았기에 이렇게 변형이 된것이였다. 일종의 지체장애였던 셈이였다. 창호는 먼저 오른손을 닦아주고 손톱을 깍은 다음에야 다른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히고나서 리후이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봐.>>

창호는 한동안 리후이를 기다리고나서 말했다.

<<잘 기억해둬. 아저씨의 친척으로는 너 유일한 사람이야... 다봤어? 돼?...>>

리후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호는 캉아저씨의 얼굴에 누른 종이를 덮고 얼굴을 쌋다. 그리고 캉아저씨의 발치에 콩기름 등잔을 놓고 불을 붙였다. 이로서 다른 세상으로 가는 캉아저씨의 행장은 준비가 끝난것이였다. 음악은 아직도 울리고있었다. 이제 그 음악은 조곡으로, 마지막으로 인생을 떠나는 사람에게 울리는 구슬픈 노래로 되고있었다.

모든것을 끝내고나자 창호의 마음은 오히려 평온해졌다. 침대가에 걸상을 놓고 창호는 캉아저씨의 유체를 지켰다. 어느 순간에인가 리후이도 그 옆에 와 앉았다. 캉아저씨의 발치에 놓인 콩기름등잔이 검은 연기를 실처럼 내뿜으며 타고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관습이였다. 저승은 어두우무로 저승길을 밝히는 불이 필요하단다. 옛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죽은자의 발치를 밝혀주는것이였다. 그러나 캉아저씨는 살았을 때 희망도 밝혀주는 불도 없이 그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헤쳐왔다.

인생은 이로서 하나의 과정을 완성한것이였다. 창호는 다시금 그 터널을 생각했다. 그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아저씨는 빠져나온것일가. 그 어둠속의 일들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자신만이 알것이다. 어쩌면 자신도 어렴풋해질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터널은 끝이 났다. 광명이 있을것인가? 이것으로 그 터널에서의 려행은 끝이 났다. 존재라는 의미가 이런것이였을가? 찡관스님이 생각났다. 해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준것 같았다. 그러나 이순간에 아무런 단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해탈에 관해서, 내용에 관해서는 기억에서 사라져버렸고 그 이야기하던 정경만 살아있을뿐이였다. 인간은 해탈에서 마지막으로 얻는것입니다. 열반에 드신 석가께서는 무엇을 생각하고계셨을가? 캉아저씨는 죽는 순간에 울었었다. 죽어도 울지 않는다던 분이 끝내는 눈물을 머금고 가신것이다. 세상은, 적어도 캉아저씨에게 세상은 공정한것이 아니였다.

창호는 쓰레기통을 생각했다. 한 인간의 죽음을 앞에 두고 쓰레기통이 생각나는것은 격에 맞지 않는것이였다. 그러나 창호는 쓰레기통을 생각했다. 오물을 던지는 곳, 고급소재로 만든, 황금으로 만든 쓰레기통을 생각했다. 그러나 황금으로 만들어졌어도 쓰레기통에는 쓰레기를 담게 마련이다. 쓰레기통이라면 아무런 쓰레기나 던지고 침을 받게 된다. 아무리 고귀한 소재라고 하더라도 누구인가가 쓰레기통로 만들어버리면 사람들은 쓰레통으로 사용하게 되고 천대하게 되는것이다. 누군가가 황금을 변기로 만들어버렸다면 누군가는 그우에서 변을 볼것이였다. 캉아저씨는 어떤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쓰레기통이였다. 그리하여 그런 인간으로부터 천시를 받고 괴롭힘을 당했었다. 그것은 그 시대존재의 숙명이였다.

날이 밝아왔다. 사늘하게 식은 아침노을의 서광이 창문으로 비쳐들왔다. 새날이 시작되는것이였다. 그러나 창호의 앞에 조용히 누워있는 한 육체에게는 새날이 다시는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였다. 인연이 다하다. 이승과의 기구한 인연이 이로서 마지막 막을 내려준것이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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