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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리고 단호하게 보험궤의 수자판을 돌리고 열쇠를 뽑았다. 그리고 좀은 허우적거리며 은행을 나섰다. 겨울의 하늘은 우울했다. 창호는 이로서 모든 기억이 이 머리속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방 세맡은 은행의 보험궤에 캉아저씨가 유산으로 남긴 제백석의 그림을 넣어두고 나오는 길이였다. 집에다 두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값도 너무나 엄청난것이였다. 그러나 그 그림이 부(富)의 의미지를 품고있기에 은행에 보관하려고 최종 결심을 내린것은 아니였다.

금화가 한국으로 떠난후 창호는 퇴근한후 오히려 꼬박꼬박 집으로 돌아갔다. 비여있는 집은 창호가 나갈 때 그모양 그대로 돌아오는 그를 맞이하군 하였다. 싱크대의 커피잔과 그릇들은 씻지 않은 그대로였고 침대가에 벗어놓은 양말도 고스란히 그를 쳐다보고있었다. 차츰 방에서 곰팡이같은 냄새가 나는것 같았다. 그리고 외로움이 집안의 구석구석까지 메아리치고있는것 같았다. 언제나 외면되여있던 금화의 자리, 그 자리를 지금은 고독과 기억이라는 커다란 허상이 자리를 잡고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불안이, 바람부는 호수처럼 일렁이는, 그런 완결한 불안이 가슴에서 일렁이고있었다. 금화는 갔다. 가면서 저주와 용서를, 그리고 길다란 한을 이 집에 남기고간것이였다. 아니, 창호의 가슴에 심어주고간것이였다. 그것은 서서히 하나의 나무가 되여 뿌리를 내리고 과거를 중심으로 하여 현실의 모든것에 뿌리를 박고있었다. 밤이면 창호는 술을 마시고야 이불밑으로 기여들었다. 도저히 잠들수 없었다.

어느날 창호는 집안청소를 했다. 곰팡이냄새, 정확히는 낡은 종이냄새였다. 집안청소를 끝내고나서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낡은 책들을 정리해서 팔아버렸다. 그래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 냄새는 도리여 어떤 은은함을 품고있었다. 갑자기 창호는 그 냄새가 캉아저씨가 남긴 유물인 그림에서 온다고 느껴졌다. 창호는 그 그림을 책장의 깊숙한 곳에 넣었다. 그러나 책장 가까이에 가는 순간마다 책장의 틈에서마다 담배연기가 피여오르듯 그 냄새는 새여나고있었다. 창호는 그 그림을 꺼내 큭큭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러나 그림에서는 오래인 옛날의 먹냄새같은, 약간은 불쾌한 그런 냄새가 났다. 그것은 시간의 냄새이기도 했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창호는 그림을 은행의 보험궤에 보관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보험궤의 열쇠는 창호의 호주머니속에 있었고 비밀번호는 머리속에 있었다. 은행을 나서자 찬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선뜩하게 시원한 느낌이였다.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손등에 흥건히 땀이 묻어있었다. 그제야 창호는 자기가 땀을 흘리고있었다는것을 느꼈다. 창호는 휴대용 티슈를 꺼내 땀을 닦았다. 그러면서 이제 어느날 갑자기 죽어버리면 그 그림은 십년이 지난후에야 누군가에 의해 찾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십년의 보험궤사용료를 지불했으니 십년간은 누구도 다칠수 없을것이리라.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십년이면 나는 어떻게 변할가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창호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만일 과거라는 기억을 잠가두는 궤가 있으면 무엇이든 꽝꽝 쑤셔넣을텐데 하고 창호는 생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기가 참말로 우스운 사람이라는 느낌과 그런것이 있다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것이라는 현혹을 느꼈다.

창호는 사무실로 갈가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집안에 들어서자 썰렁한 공기가 그를 맞았다. 난방이 잘되는 집이여서 내의바람이라도 추운줄 모르는 집이였다. 창호는 부랴부랴 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창호는 나가면서 창문을 열어놓은채 잊고 나갔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서늘한것이 오히려 좋았다. 창호는 옷을 벗고 쇼파에 앉은채 맥주를 마셨다. 저녁에 마시다가 만 발렌타인 반병이 차탁우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창호는 맥주에 양주를 조금 부었다. 양주가 들어가면서 맥주의 거품이 가신듯 사라졌다. 그것을 지켜보다가 창호는 잔을 들어 단숨에 마셔버렸다. 칼칼하던 목이 시원하게 적셔졌고 입속에 발렌타인의 향기가 가득히 남았다.

맥주와 양주를 섞어가며 몇잔을 마셨다. 그러자 술기운이 서서히 머리를 쳐왔다. 부담감같은 정서는 사라져갔지만 동시에 외로움이 겹쳐들었다. 외롭다는 생각을 하자 점점 더 외로워져셔 견딜수가 없었다. 창호는 전화를 들었다.

<<나래니?... 나 외로워. 미칠것 같아. 아무도 없단말이야... 너 와. 오란말이야... 견딜수 없어. 외로워서 견딜수가 없어. 무인고도에 버려진거 같아... 아니야. 사막이야. 고비사막이야. 나 혼자만이 있단말이야... 알았어?...>>

전화의 저쪽에서 나래의 울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왜 그래? 술마신거 맞지?... 그러지 마... 나 지금 갈 처지가 아니야. 고향이라고 했잖아. 어머니가 아프셔... 돌아갈지도 몰라... 어머니 돌아가시면 나 중국 이민갈게... 오빠, 오빠 그때 받아주겠어?... 나 갈게...>>

나래가 울고있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창호의 귀를 무겁게 때렸다. 그러다가 멀리 멀리로 안개처럼 사라져갔다.

창호는 전화를 놓았다. 눈물이 흘렀다. 캉아저씨는 갔고 금화도 갔다. 그리고 아득히도 멀어진, 청춘시절의 카이란도 갔다. 임신한 몸으로, 창호의 아이를 가지고 어디론가 갔다. 남은것은 한장의 그림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갔다. 은행의 보험궤속으로 갔다. 강산이 변할만큼한, 과거는 십년의 사용료를 물고 콩크리트와 철근과 강철의 포위속에 묻혀버렸다. 남은것은 외로움과 허무와 그리고 생동한 생명이였다.

<<망할! 나쁜것!...>>

창호는 금화를 욕하고있었다. 금화는 가면서 창호의 허울을 하나하나 찟어서 발가벗겨놓고 가버렸다. 창호의 합리성에, 정당성에 돌을 던지고 침을 뱉고 가버렸다. 무엇을 얻고저 했던가? 이제 살아가야 할 리유는 무엇인가?...

창호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참으로 볼품이 없는 인생이였다. 죽음조차도 장렬한데가 없이 시시했었다. 어느날 갑자기 쓰러졌고 식물인으로 삼년간 가족들만 고생시키다 그대로 화장터에서 회색의 연기로 사라져버렸다. 끊임없이 사회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자아비판서를 쓰고 투쟁을 맞고, 창호는 아버지가 큰 소리로 웃는것조차 본적이 없었다. 억울하게 우파가 되였다고 개정이 선포되던 날 아버지는 울었다. 펑펑 눈물을 쏟으며 울었다. 그것으로 이십여년의 억울함과 설음은 계산이 되였다. 그리고 늙었다. 그래서 죽음이 찾아온것이였다.

창호는 캉아저씨를 생각했다. 살았을 때 캉아저씨는 재산가라고 할만도 했다. 수십만의 저금과 백만이상의 재부가 있었다. 아껴먹고 아껴 쓰면서 한푼 한푼 저금을 했다. 그 많은 돈을 펑펑 쓰면서 산다고 해도 누가 뭐랄것은 없을것이였다. 그 재부로 늙으막에 늦장가라도 갈수 있었다. 그러나 캉아저씨는 끝내는 홀몸으로 갔다. 무엇을 얻고싶었을가? 어떤 보상을 바랐을가? 자기의 동생이 장례에 참가해주는 대가로 5만원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것마저 줄 길이 없었다. 다만 장례에 와서 눈물 한방울 흘려주는 대가가 5만원이였다. 그러나 동생은 오지 않았다. 혈육의 정은 과거의 현실속에서 굴절되고 비틀어져 무정(無情)으로 남았다. 아니, 정이라는 그 개념조차 남지 않은것이였다.

창호는 캉아저씨가 남긴 유산을 자기의것이라는 소유감이 없었다. 내것이라는, 그런 생각조차 없었다. 다만 그것은 하나의 과거일뿐이였다. 찾을수 없는, 돌이킬수 없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현실에 남긴, 그리고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는 생명에게 남긴, 오래인 과거의 정에 남긴 유산일뿐이였다.

나래의 울음섞인 목소리를 듣고서도 창호는 격동하지 않았다. 심연같은 고독도 풀리지 않았다. 아마도 처음부터 외로움을 달래려고 나래에게 전화를 한것이 아닌 모양이였다. 다만 누구에게인가 호소하고싶었는지도 몰랐다. 나래는 지금 집에 있다. 종종 전화가 왔기에 그런것은 알고있었다. 한국으로 귀국한후 나래는 서울을 떠나 주욱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어머니가 암 투병중이였는데 오라지 않아 다시 땅으로 돌아갈것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생명이 가는것이다. 매일마다 태여나고 매일마다 가는 생명, 이것이 섭리이라라. 그럼에도 그 섭리앞에서 나약해지고 발버둥치고있는 인간은 또 얼마나 취약한 동물인가?

누구인가가 문을 노크하고있었다. 올 사람도 약속된 사람도 없었다. 창호는 전기세나 물세를 받으러 온 사람이려니 하고 문을 따주었다. 그러나 밖에 서있는 사람은 낯익은 얼굴이였다.

<<인순씨?!...>>

인순이는 집안에 들어와서는 서둘러 앉지 않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이마쌀을 찌프렸다.

<<아무리 혼자 산다고 이게 뭐예요? 창호씨 깔끔한줄 알고있었는데 그런거 아니였어요? 오후부터 술, 겨울날 문까지 열고 뭐하는거예요?...>>

창호는 이런 자기의 모습을 보인것이 불쾌했다. 자연히 그 불쾌감은 아무런 기별도 없이 들이닥친 인순이에게로 향해졌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두개의 얼굴이 있다구요. 인순씨는 그렇지 않아요? 어쩌면 세개, 또는 네개의 얼굴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머어머, 술하고 철학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어요? 술마시고도 구태연하군요. 그런 얄팍한 낯가리개는 휴지통에 던지시던지...>>

인순이는 총명한 녀자였다. 아니라면 그 세련된 감각일지도 몰랐다. 창호는 할말이 없었다. 그래서 웃고 말았다.

<<일단은 술부터 마셔요. 그렇지 않아도 혼자서 마시는게 외로웠는데...>>

<<잠간만요, 제가 집안 좀 치울게요.>>

<<그만 두어요. 저가 해도 되는거라구요...>>

그러거나 말거나 인순이는 옷을 벗어놓고 집안정리를 했고 정리가 끝나자 주방으로 들어가 묵은 그릇들을 가셨다. 물소리,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호가 앉은 자리에서 앞치마를 두른 인순이는 옆으로 보였다. 몸매의 륜곽이 선명했다. 동그런 히프, 좀은 오만스럽게 내민 젖가슴, 늘씬한 허리, 무엇이든 맞히면 톡톡 튕겨날듯한 탄력이 엿보였다.

인순이가 오자 집안은 생기를 띠우는것 같았다. 인순이는 자기의 존재를 어디서나 알리고있는, 그런 발랄함을 가지고있었다. 이것은 창호의 안해 금화와는 정반대였다. 금화는 자기의 존재가 남에게 확인이 될가 두려운듯 언제나 조용했다. 창호와의 이야기도 단어 스무개를 이어서 하지 않았다. 발걸음소리도 없었다. 마치 투명인간인듯싶었다. 그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지만 언제나 집안은 깨끗이 정리가 되여있었고 옷가지들은 잘 빨려지고 다려져 옷장에 걸리군 하였다. 금화의 존재는 그가 남긴 흔적으로 확인이 되는듯싶었다.

묵은 설거지를 다 했는지 인순이가 손에 묻은 물을 닦으며 주방에서 나왔다. 한손에 유리컵을 들고있었다. 창호의 옆에 앉으며 인순이는 손에 든 컵을 창호앞에 내밀었다.

<<자, 저도 한잔 부어줘요. 수고한 값이라도 받아야지요?>>

창호의 손이 맥주병으로 가자 인순이가 컵을 도로 가져갔다.

<<싫어요. 저도 양주를 줘요. 녀자는 독한 술 마시지 말라는 법 없잖아요. 아까워요?...>>

창호는 웃으면서 인순이의 컵에 양주를 부었다.

<<고마워요. 역시 녀자가 있어야 집이 분위기가 돌거든. 마셔요. 건배.>>

인순이는 술 한모금을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아이, 독해. 얼음이 없어요?>>

<<랭장고에 있을거얘요. 그것만은 준비해두니까.>>

인순이는 랭장고에서 얼음을 가져와서는 먼저 창호의 잔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자 창호가 손으로 컵을 덮으며 말했다.

<<전 맥주에 섞어서 마셔요.>>

인순이가 놀라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취하고싶었어요? 요사이 어찌된 일이세요? 회사에 붙어있지도 않고. 무슨 일이 있었어요?>>

창호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아니, 일이야 뭐. 다만 기분이 좀 별로네요.>>

인순이의 묻는 눈길이 창호쪽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기분이 별로요? 그렇게 가벼운것 같지는 않은데요? 집에 분이 가신후부터 좀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말수도 적어졌고 눈길도 정기가 없어졌어요. 무거운 짐에 눌려있는 사람같아요. 앵꼬부부였어요? 리별이 그렇게 충격적이라니?... 부럽네...>>

인순이는 과장된 한숨을 호 내쉬였다.

<<찰떡궁합이였지요. 미치는 궁합이였다니까요...>>

인순이는 창호의 말속에 담긴 자조를 읽고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피여올랐다.

<<가정이 유지되고있다는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지 모르죠. 별나게 살거 같아 설치다가도 헤여지는 부부가 얼만데...>>

창호는 인순이의 컵에 술을 따르고 자기에게도 한잔을 부었다.

<<이런 이야기 하지 맙시다. 피곤한데... 저 이야기 하나 할가요?>>

인순이가 옆으로 얼굴을 돌렸다.

<<무슨 이야기요? 재미있는거로 해야 돼요?>>

창호는 술 한모금을 마셨다.

<<가난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부자들을 증오했어요. 부자들의 린색함을, 부자들의 무정함을 등등 그런걸 증오했지요. 그런데 어느날 그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였어요. 그러자 그도 자기가 증오하던 부자처럼 되여버렸어요. 오히려 더 잔인한 부자가 되였지요. 그러면서 언제나 자기는 가난했었다라는거로 자기의 정당성을 변명을 하는거얘요. 어때요? 재미있어요?>>

인순이는 피 했다.

<<재미라니요? 이건 뭐 중학교강의같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 주위에 쌔구버렸어요. 이빠진 소리군요. 전 뭐 생신한 이야기인줄 알았잖아요? 근데 왜 이런 쉬여빠진 이야기를 하고싶어졌어요?>>

창호는 인순이의 손을 잡으며 피로해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같아서요.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왜 그러세요? 창호씨는 그런 사람이 아닐뿐 아니라 그럴 조건도 없잖아요. 왜 자기를 괴롭혀요? 자학증이 있는건 아니죠?>>

자학증이라. 그런것은 아니였다.

<<전 가끔은 제가 그런 인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잃은자의 보상심리같은것, 그런것때문에 내 마음이 삐뚤어져있지 않나 하는 그런 근심같은거 말이얘요.>>

인순이는 알아듣는 눈치가 아니였다.

<<그것이 자학인거래요. 쓸데없는 생각 아니예요? 왜 그런 생각에 빠져있어요? 살기가 편해서요? 안정된 가정이 있겠다, 쓸만한 돈이 있겠다, 그리구...>>

인순이는 까불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구 부담없이 바람도 펑펑 피우고 너무 좋지 않아요? 뭐가 모자라죠? 보상심리면 어떻고 아니면 또 뭐라나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살아있는 인생, 가질것만큼 가지며 사는거래요. 그게 편하고 좋지 않아요? 고상한체도 지적인체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건 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않아요.>>

인순이의 말이 맞는지도 몰랐다. 차례지는만큼의 인생을 살아라.

창호는 긴 숨을 내쉬고 술을 마셨다.

<<알았어요. 그럼 인순씨도 내 인생에 차례진 선물이군요. 어쩔가? 그럼 나 인순씨하고 결혼이라도 할가?>>

인순이는 픽 하고 소리를 내여 웃었다.

<<결혼? 웃기시는 말씀 삼가하세요. 저 자그만치 리혼녀라구요. 해방받은 자에게 다시 족쇄를 채우시려고? 어림도 없죠. 사랑따윈 저 믿지 않아요. 있을수도 있겠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게 다 담담해져요. 죽느니 사느니 하다가도 헤여지고나면 안녕이라는 말조차 하기 싫어지는거잖아요? 창호씬 경험이 없지도 않을텐데요? 만일 사랑에 목매죽을 생각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이제 박물관에 가시거나 기네스북에 오를지도 몰라요. 사랑때문에 최후로 남은 인간 박제품이 될는지도.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있지요. 이 사람은 인류사상 마지막으로 사랑을 하고 사랑이 있음을 확고히 믿으며 죽은 사람이다. 아미타불...>>

인순이는 말하고나서 자기도 우스운지 깔깔 웃댔다.

창호도 따라 웃고말았다. 확실히 인순이와 창호는 세대적인 차이가 있는것 같았다.

창호의 뇌리에서 경희의 모습이 피끗 지나갔다. 어쩌면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녀에 대한 사랑은 기억조차 희미해지고있었다. 피에 젖은 유방이 보였다. 빨갛게 물들어가는 젖가슴...

창호는 자기의 다리사이에 힘이 오는것을 느꼈다. 창호는 깔깔 대는 인순이를 가슴에 품었다.

<<인순씨하고 이제 박제품이 될거야...>>

창호는 인순이의 입술을 빨았다. 그러면서 손으로 인순이의 옷을 벗겼다. 인순이가 잠간 반항을 했다.

<<창호씨 집에서는 싫어요. 부담스럽단말이예요...>>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였다. 조금이 지나자 그들 둘은 불덩이가 되여있었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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