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가득 싣고 쏜살같이 달리는 마차라던가. 그것은 이 계절

이 한 해의 결실이라는 특유의 분주함으로 너무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올 가을은 유난히도 짧을 거라는 기상예보다. 들 어디를 둘러봐도 풍성함이 넘

치는, 햇살 고운 가을날이 아쉽기만 하다. 가을볕의 눈부심을 어느 보석의 청아함에 비할

수 있으랴. 하늘은 말 그대로 비취빛이다.


지난여름 내내 탄저병에 몸살하던 고추밭에 뒤늦게 매달린 어린 고추 꽃, 이제는

열매를 기약할 수 없는 애잔함이 겹쳐서일까. 유난히 앙증스럽다.

제법 스산해진 바람결에 나도 모르게 들길을 서성인다. 수확을 기다리는 누런 벼이

삭의 행렬, 그 정겨움이 가슴에 스미기가 무섭게 내 눈시울은 금세 뜨거워졌다. 이 가을

불현듯 아쉽고 그리워지는 얼굴들이 한둘이랴. 잘 여문 알곡들이 물결치는 들길에 서면

가장 간절히 만나뵈옵고 싶은 이가 있다. 여덟이나 되는 자식들을 위해 당신의 삶의 온

날들을 농사일에 몰두하신 내 아버지다.


저 멀리 보이는 등성의 소나무 숲에도 아버지와 나의 추억이 서려 있다. 어느 해였을

까 집에서 먼 거리에 있는 산밭의 쟁기질을 위해 소를 몰고 가시던 아버지, 그 뒤꽁무니

를 나는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끙끙거리며 따라나섰다.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는

데 마침 여름장마가 할퀴고 간 뒤끝이어서 산의 황톳길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무거운

쟁기를 추스르시랴, 억센 소를 끄시랴 힘이 드셨던 아버지가 잠깐 소 끈을 놓치셨던가.

발은 헛디딘 소가 산기슭에 난 좁은 도랑에 거꾸로 박혀버렸다. 졸지에 소는 눈을 까

가을은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가득 싣고 쏜살같이 달리는 마차라던가. 그것은 이 계절

이 한 해의 결실이라는 특유의 분주함으로 너무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올 가을은 유난히도 짧을 거라는 기상예보다. 들 어디를 둘러봐도 풍성함이 넘

치는, 햇살 고운 가을날이 아쉽기만 하다.


가을볕의 눈부심을 어느 보석의 청아함에 비할 수 있으랴. 하늘은 말 그대로 비취빛이다.

지난여름 내내 탄저병에 몸살하던 고추밭에 뒤늦게 매달린 어린 고추 꽃, 이제는

열매를 기약할 수 없는 애잔함이 겹쳐서일까. 유난히 앙증스럽다.

제법 스산해진 바람결에 나도 모르게 들길을 서성인다. 수확을 기다리는 누런 벼이

삭의 행렬, 그 정겨움이 가슴에 스미기가 무섭게 내 눈시울은 금세 뜨거워졌다. 이 가을

불현듯 아쉽고 그리워지는 얼굴들이 한둘이랴. 잘 여문 알곡들이 물결치는 들길에 서면

가장 간절히 만나뵈옵고 싶은 이가 있다. 여덟이나 되는 자식들을 위해 당신의 삶의 온

날들을 농사일에 몰두하신 내 아버지다.


저 멀리 보이는 등성의 소나무 숲에도 아버지와 나의 추억이 서려 있다. 어느 해였을

까 집에서 먼 거리에 있는 산밭의 쟁기질을 위해 소를 몰고 가시던 아버지, 그 뒤꽁무니

를 나는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끙끙거리며 따라나섰다.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는

데 마침 여름장마가 할퀴고 간 뒤끝이어서 산의 황톳길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무거운

쟁기를 추스르시랴, 억센 소를 끄시랴 힘이 드셨던 아버지가 잠깐 소 끈을 놓치셨던가.

발은 헛디딘 소가 산기슭에 난 좁은 도랑에 거꾸로 박혀버렸다. 졸지에 소는 눈을 까

뒤집고 다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 육중한 쟁기 짐을 등에 지신 채 도랑으로 뛰어드신 아버지의 소를 구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니! 나는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겁에 질렸을까. 그보다는 어린 속내에도 이렇게 힘

든 일에 매달려야 하는 아버지의 처지가 안타까워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도와줄 힘이

라고는 없던 내가 할 일이라고는 엉엉 우는 일 뿐이었다. 교회문턱도 디뎌보지 않은 주

제에 나는 정신없이 기도를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소는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아버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밭둑에 걸터

앉으신 아버지와 그 곁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 그 정경이 어제인 듯 선명하다.

외지에 나가 터를 잡은 형제들과는 달리 당신의 평생 농사 외에는 다른 일을 꿈꾸어

보신 적도 없었던 분, 땀방울이 당신의 등허리를 도랑처럼 흐르고 굵은 손마디가 끊어

지도록 매달린, 그런 수고로 거둔 것 외엔 단 한 번이라도 욕심내신 적이 없고, 남의

것은 먼지라도 묻으면 안 된다고 이르시던 아버지. 언젠가 꿈속에서 다시 뵌 아버지는

생전과 변함없이 허름한 옷을 입으셨다.


아버지 앞에만 서면 떼쟁이 딸이 되고 마는 내 버릇도 여전하였던가. 나는 아버지께

마구 화를 냈다. 제발 헌옷은 좀 벗으시라고. “아따 이놈아, 나는 이 옷이 편하다. 이따

들에 갈 때 다시 걸칠 것잉께 잘 걸어둬라. 논에 들어가면, 나락 한 포기라도 잘못 심어

진 것이 있으면 헌옷을 입고 가야 부담 없이 물에 들어가 손볼 수 있자, 새 옷 입고 들에

가봐라,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어야.” 그리곤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트리시던

아버지. 당신이 아니면 이 들녘 해충들을 남김없이 소탕치 못할 것 같으셨을까. 걸핏하

면 들판에 불을 놓으시다 실수를 하시는 통에 ‘불꾼’이란 별명을 얻기도 하셨다. 밭둑에

엉클어진 넝쿨을 태우다 불똥이 옮겨 붙는 바람에 큰 화상을 입기도 하셨지만 당신의

근면한 성품은 단 하루도 일을 외면하지 못했다. 어느 봄날엔 이웃의 보리논을 깡그리

태워 그 해 수확량을 환산해주기도 하셨다.


이런 당신의 성실함이 일군 제법 넉넉해진 살림이었다. 게다가 우리 집 농사일을 거

드는 두 일꾼들의 입성마저 당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깔끔한 차림새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내가 웬 변덕일까. 어린 시절 그렇게 싫어하던 헌옷차림이어도 좋다. 소를 몰고

쟁기질 나서는 그 분의 듬직한 발자국을 골라 디디며 산 밭길을 다시 따라나서고 싶다.

이 가을볕 내리쬐는 산기슭 양지 뜸에서 아버지께 정성스런 술 한 잔 올리고 싶은 마

음 간절하다. 미주알고주알 자랑도 하고 싶다. 인생 구비구비에 어찌 좋은 날만 있었을

까만 나는 내 좋은 날이면 따뜻하고 정 많으셨던 내 아버지가 절로 떠올려졌다.

하늘에서 쓸 농군이 필요하다는 갑작스런 기별을 받으셨을까. 한마디 말씀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어언 몇 해가 흘렀다.


하지만 당신이 이 딸에게 아낌없이 물려주신 근면성실함을 바탕으로 사업실적 전국 1

위를 했을 때도, 번듯한 새 건물을 지어 입주식을 했을 때도 나는 자꾸 두리번거리며

아버지를 아쉬워해야 했다. 세상 누구보다도 이 딸을 인정해주셨던 아버지. 그 누구의

축하보다도 가장 치하의 손뼉을 받고 싶은이가 내 아버지였기 때문이리라.

 

교정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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