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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만 입었는데도 땀이 흘렀다. 어데라 없이 이상한 사투리를 탁탁 쓰는 사람들이 붐벼댔다. 그때에야 창호는 이곳이 북회귀선과 가까운 지방이라는것을 실감했다. 하이란에서 북경을 거치는 다이렉트 항공기로 중경까지 날아와 이곳 부용진까지 들이닥기 전까지 창호에게는 먼길을 떠나왔다는 실감이 없었었다. 그러나 부용진이라 부르는, 중경에서 뻐스로 일곱시간을 달려 오강가의 작은 진에서 뻐스를 내렸을 때 중국이라는 대륙의 광대함에 혀를 내밀지 않을수 없었다.

부용진은 오강가의 산을 의지하고 들어서있었다. 공로는 산의 중턱을 타고 지나가고있었고 진은 바로 그 도로를 사이에 두고 산비탈의 아래우로 자리잡고있었다. 창호가 내린 도로는 부용진과 다른 곳을 잇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였고 부용진의 중심거리이기도 하였다. 계단식으로 산을 타고 집들이 들어서있었고 오르고 내리는 길은 가파로운 곳은 층계였고 아니면 포석을 깔아놓고있었다. 오강에는 아치형 철교가 놓여있었으나 다니는 자동차는 적고 걸어다니는 사람이 더 많았다. 자전거는 거의 볼수가 없었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거리의 중심가에는 십여층 되는 건물이 있었으나 대부분이 이삼층 되는 낡은 건물이였다. 산성(山城)답게 자기집 마당에 서서 오줌이라도 갈기면 앞집의 지붕에 떨어질듯 했다. 이곳이 캉아저씨가 태여나고 소년시절과 그 추억을 담고있는 고향이였다.

일단 잠자리부터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창호는 길가의 작은 가게로 들어가 호텔을 물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의 말을 절반도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몇번을 더 물어서야 창호는 길다란 주차장이 있는 6층건물에 호텔이라고 쓴 간판을 볼수 있었다.

작은 진의 호텔이라고 우습게 알고 들어갔더니 밖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인테리어도 화려했고 로비도 깨끗했다. 다만 호텔의 공기속에 사천사람들이 즐겨먹는, 마랄탕(麻辣燙)이라는 음식의 조리료냄새가 슴배여있었다. 그렇다고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제야 창호는 거리에 내렸을 때 거리의 대기속에 숨어있는듯한 그 냄새가 바로 이 냄새라는것을 알아차렸다.

방은 그런대로 깨끗했고 생각보다는 많이 싼편이였다. 샤워를 하고 침대우에 몸을 던졌다. 네시간반의 비행기, 여섯시간 넘게 뻐스에서 시달린 피로가 몰려왔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크게 흥분해서는 아니였다. 캉아저씨의 동생을 찾아온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이였지만 시간을 다잡아 해야 할 일은 아니였다. 다만 와야 한다는, 그래야 마음의 평온을 찾을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을뿐이였고 숨막힐듯한 우울함을 풀려는 려행이기도 하였다.

따구쟈에서 카이란의 소식을 알지 못하고 돌아온후부터 이런 우울한 나날은 계속되였었다. 카이란의 임신, 가출, 남편의 미침, 그리고 오늘까지의 무소식. 모든 정보는 토막토막 끈어져있었다. 련결의 고리를 찾을길이 없었다. 창호는 레이밍후이에게서 카이란이 있을만한 곳을 물었고 그곳에 사람찾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후한 사례를 주겠다는 약속에 현혹한 사람들의 전화 몇번이 있었을뿐이였다. 카이란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것이라는 감이 짙어만갔고 따라서 어떤 불안과, 죄의식같은 우울함이 창호의 주위를 감돌고있었다. 어느날 캉아저씨의 조카 리후이가 와서 캉아저씨의 유산을 받은것이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창호는 캉아저씨의 고향에 한번 다녀와야겠는 결심을 했다. 그 결심의 뒤에는 가족들이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면 골회라도 고향에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무튼 여러가지로 겹쳐진 출타였다.

창호는 호텔의 창가에 섰다. 산자락을 물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검푸른 오강이 내려다보였다. 오월이 되지도 않았는데 이곳은 이미 신록이 짙은 여름이였다. 가파로운 층계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것이 보였고 드믄히 대나무광주리를 멘 사람의 모습이 힘들게 비쳤다. 오강을 오가는 짐배들이 작은 놀음감처럼 보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들의 뒤전에 하얀 물갈기가 일고있었다. 동북지방에서 살아온 창호에게 이곳의 풍경은 낯설은 이국처럼 느껴졌다.

먼저 캉아저씨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리후이가 전화번호를 알려주어 떠날 때 전화를 하려다가 무작정 떠나려고 한 걸음이고 통지를 해보았대야 크게 도움이 있을것 같지도 않아 전화를 하지 않았다. 꼭 캉아저씨의 동생을 만나야겠다는것보다 캉아저씨의 고향에 한번 다녀오고싶다는 생각이 더 컸었다는것으로 전화를 하지 않은 자기를 정당화하고있었다.

련결이 되였는지 전화에서 련결음이 뚜뚜 울려왔다. 그러나 받는 사람이 없었다. 잘못걸렸는가 하고 다시 한번 전화번호를 확인하는데 저쪽에서 <<와이?>>하는 녀자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무어라고 하기는 하는데 창호는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저쪽에서 몇번인가 말해서야 창호는 누구를 찾는가 묻고있다는것을 짐작하고 캉아저씨의 이름을 대고 찾을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자 십분후에 다시 하라고 했다. 아마 사람을 찾으러 가는 모양이였다. 십여분이 지나 다시 전화를 하자 늙은이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쉰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소리가 많은, 중국어라고 하기에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지방사투리였다.

<<바로 전데요, 누구십니까?...>>

창호는 오래동안 캉아저씨와는 어떻게 지낸 사이고 어떻게 되여서 이곳 부용진으로 오게 되였다는것을 설명했다. 그리고나서 만나고싶다는 의도를 이야기했다. 그동안 저쪽에서는 한마디의 응대도 없었다. 그래서 전화가 끊어진줄로 알고 <<와이>> 해보면 저쪽에서 한마디로 응대를 했다.

<<될수 있다면 만나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찾아가는지를 알려주시면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동안이 지나서 그러라고 하는것 같았으나 상세한 뜻은 도저히 알아들을수 없었다. 창호는 표준어를 쓰는 사람을 바꿔줄수 있겠는가 물었다.

잠간후 전화가 바뀌였다. 젊은 사람같았다. 지방억양이 섞인 표준어였지만 그런대로 알아들을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떻게 찾아오면 된다고 알려주었을 때 창호는 이런 제기 했다. 부용진에서도 삼십리나 떨어진 곳이고 자동차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택시를 잡으면 되는가 하니 택시는 안되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라고 한다. 아무튼 이미 늦은 오후였으므로 오늘 간다는것은 틀린 일이였다. 창호는 래일 찾아가마 하고 전화를 놓았다.

전화를 놓고보니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수천키로를 비행기로, 뻐스로 왔는데 마중을 나오겠다는 말은 없고 오토바이라도 타고 오라는 소리라니... 억이 막혔다.

전화를 놓고 창호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찾아가는것이 옳은지 잘못된것인지 회의가 느껴지기도 했다. 전화옆에 호텔 서비스안내서가 있었다. 피끗 안내서안에 관광안내서가 있는것을 보고 무료한 시간을 보낼데가 있겠는지 해서 펼쳐들었다. 명승지가 아니니 무슨 희한한 고적(古迹)들이 있으랴만 수당이 어떻고, 삼국시대에 어떻고 하는 설명과 옛날 집을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디의 석굴이 어떻게 유명하다는것이 있었고 은혜사라는 절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절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으나 부용진에서 백리가 거의 되는 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볼데는 아니였다.

해가 뉘였뉘였 지려고 서둘고있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때라도 늦은 저녁이였다. 그런데 아직 해가 훤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시계를 보아도 집이라면 저녁을 먹은지도 한창일것이였다. 왜서일가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뇌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사천성은 창호의 고향에 비해 많이 서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시차를 계산하지 않았던것이였다. 창호는 혼자서 웃었다. 이제 슬슬 저녁을 먹을 준비를 해야 했다.

이튿날 아침 창호는 아침부터 서둘렀다. 호텔의 카운터와 오늘 서릉채로 가려는데 어떤 교통편이 있는가 물으니 오토바이를 타고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곳은 도로가 통하는 마을이 많지 않다며 오토바이가 택시구실을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오토바이를 불러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전화를 하고 잠간이 지나자 작달막한 키에 야윈데다 머리만 큰 젊은이가 헬멧 두개를 가슴에 안고 들어섰다. 호텔의 카운터가 지방말로 그 젊은이와 무어라고 했다. 그러자 젊은이는 창호를 향에 미소를 지어보이고 헬멧 하나를 내밀었다.

<<손님은 이것을 쓰십시오.>>

지방억양이 섞인 표준어였고 태도가 공손했다. 호텔을 나오면서 젊은이가 물었다.

<<서릉채는 왜 가십니까? 관광를 가시는건 아니겠는데...>>

<<네, 아는 사람을 만나려고...>>

젊은이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였다.

<<말씨를 들으니 북방사람같은데... 서릉채에 친척이라고 계십니까?>>

<<아니구요. 남의 부탁이라...>>

창호는 한담을 할 기분이 아니였다.

젊은이의 오토바이 뒤에 앉아 몇분을 달리자 부용진을 벗어났다. 도로는 오강을 따라 산중턱을 찢고있었다. 세멘트로 포장은 되였으나 자동차와 자동차가 마주치면 어떻게 지날가 근심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오강의 수면과는 오륙십메터는 떠있었다. 그래서 오강을 내려다보면 아찔해서 등곬이 서늘했다.

<<왜 도로를 이렇게 높은 곳에 닦았습니까? 굴러 떨어지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창호는 묻고나서 자기가 참으로 미련한 질문을 했다는것을 느꼈다. 사품치며 흐르는 검푸른 오강의 물결을 보고 차가 미끌어져들어가건 굴러떨어지건 위험은 꼭 같을것이였다.

젊은이가 오토바이의 소리를 누르려고 목소리를 높혀 대답했다.

<<지금은 건조기여서 강물이 많이 말랐습니다. 장마철이 되면 물이 많이 붓습니다. 재작년 홍수때는 이 길까지 잠겼더랬습니다....>>

창호는 상상이 안되였다. 홍수가 지면 강물이 오륙십메터씩 붓는다는것, 그것도 상상이 안되였지만 이 강을 채우고 흐를 홍수의 규모를 머리속으로 그려낸다는것마저 불가능했다. 그럼 창세기전의 홍수가 같을가?...

산세가 점점 가파로와지더니 아예 벼랑이 되여버렸다. 도로는 벼랑을 파고 닦아져 반은 터널이였고 터널처럼 어둑했다. 오강을 내려다보니 눈앞이 아찔했다. 그런데도 오토바이는 기분좋게 잘도 달렸다. 창호는 순간순간 속력을 줄여달라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터지는것을 달래고 달랬다.

한참을 지나자 벼랑을 뚫고 나왔고 산세는 서서히 숨을 죽이고있었다. 젊은이는 산의 웃쪽으로 돌층계가 있는 곳에서 오토바이를 세웠다.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돌을 깐 길이 보일겁니다. 그 길을 따라 작은 령을 넘으면 서릉채입니다. 손님 걸음이라면 사오십분 푼히 걸으셔야 할것입니다...>>

젊은이는 략도까지 그려주었다. 창호는 오십원짜리 한장을 꺼내 료금으로 주었다. 그러자 젊은이가 이십원만 받고 나머지를 창호에게 돌려주었다. 창호가 다 받으라고 하자 젊은이는 원래의 료금이 그러니 그만큼만 받겠다고 했다. 창호는 시골의 인심에 감탄을 하면서 그럼 시간을 정하고 그때 다시 이곳에 와 기다릴수 있는가 물었다. 그러면서 왕복차비로 다 받으라고 하자 젊은이는 굽석굽석 인사를 하며 그러마 하고는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창호는 돌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아침 이슬을 머금어서 돌계단이 축축히 젖어있었고 습도 높은 공기가 신선했다. 숲사이로 뻗은 돌계단을 다 오르자 젊은이가 그려준, 두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좁을것 같은 포석길이 나졌다. 한동안을 걸으니 작은 령을 넘어섰고 령을 넘어서니 울창한 대나숲이 나졌다. 포석길은 대나숲의 터널속을 따라 산아래로 뻗어있었다. 대나무숲에 얇게 안개가 서리여있었다. 그 눅눅한 대기속에 대나무의 향이 슴배여있었다. 사람조차 들어서기 힘들게 빽빽한 대나숲에 가리여 하늘은 보이지 않았고 미궁처럼 포석길은 어디론가 뻗어져가고있었다.

대나무숲을 나서자 산의 비탈이 미연해지더니 튀여오르듯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이 산세를 타고 듬성듬성 대나무다락집이 보였고 돌로 지은 집들도 보였다. 동네라고 하자니 집들이 너무 널려있었다. 그러나 필경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였다. 창호는 가까이에 보이는 집으로 찾아가 성이 캉씨인 사람을 찾는다고 하자 주인은 산중턱 아래쯤으로 있는, 덩실하게 높은 대나무 다락집과 돌로 지은 집이 나란히 서있는 곳을 가리켰다. 창호는 둬자 넓이로 된 돌을 깐 계단을 따라 그 집으로 다가갔다. 사람의 기척을 들었는지 개가 짖는 소리는 들렸으나 숲에 가리여 집은 오히려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개짖는 소리를 듣고 오십대쯤 되여보이는 사람이 나오더니 창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저 동북에서 오신 손님?...>>

<<네, 그렀습니다. 캉?...>>

창호를 마중나온 사나이는 우는지 웃는지를 모를 표정을 지은채 두손을 맞부볐다.

<<네, 오시느라고... 부친께서는 집에서 기다리고계십니다...>>

창호는 그 사내의 안내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는다. 커다란 판자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집안은 어둑컴컴해졌다.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들어와 그런지 방향감각이 없었다. 사내가 이끌어서 작은 층계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가니 방은 바로 이층에 있었다.

창호가 들어서는것을 보고 나무의자에 앉아있던 로인이 일어섰다. 이층에는 창문이 있어 얼굴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창호는 이 로인이 캉아저씨의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캉아저씨의 동생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칠십이 넘어보였다. 창호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로인이 인사를 받았다.

<<먼길을 오느라고 수고를 했습니다. 앉으십시오...>>

지방사투리였지만 로인의 목소리는 정중했다. 례의를 차리려고 하는 노력이 확연히 들여다보여 창호를 불안스럽게 했다.

창호는 사내가 내주는 의자에 앉았다. 집안에 한가정이라고 하기에는 사람이 많았다. 아이들도 있었고 창호를 보는 눈들이 마치 동물원에 간 아이들의 눈같았다. 어른들 중에는 앉아있는 사람도 있었고 서있는 사람도 있었다. 창호가 온다고 친척들이 모여있는지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 멀리서 손이 왔다니까 구경을 왔는지 창호로서는 판단을 할수 없었다.

로인은 흰 적삼에 검정색 짜른 바지를 입고있었다. 얼굴은 야위여서 갸름했고 빡빡 깍은 머리가 희끗했다. 작은 체격에 많이 마른편이였으나 기력은 왕성해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뜯어보아도 캉아저씨를 닮은데는 없었다. 형제라도 이렇게 다를수가 있느냐고 생각하는데 캉로인이 말했다.

<<렴선생이 오신다니 일가 친척들하고 마을의 유지들이 모였습니다...>>

쉰듯한 목소리였지만 장중하기까지 하였다. 창호는 장면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마을 유지까지 모일 정도로 신경을 썼다는 이야기인가? 창호는 자연 그 장중함에 신경을 세웠다.

<<저는 캉아저씨와 오랜 인연을 가지고있었습니다. 조선족이구요.>>

로인은 귀를 창호쪽으로 기울였다.

<<조선족?...>>

<<조선민족입니다.>>

로인은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뭐 이상한것을 찾기라도 하듯 창호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조선족이라. 그런 민족도 있습니까? 처음 듣는 민족이라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창호는 남방에 사는 사람들이 북방의 작은 민족을 모르는것은 당연하다고 리해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북방사람들이 남방의 소수민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는지를 잘 알고있는 창호로서는 대륙의 거리감을 다시한번 실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창호는 로인의 장중함에 대한 례의로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가다듬어 캉아저씨와 관계를 설명하고 캉아저씨에 대해 알고있는만큼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가 좀은 길어졌지만 누구하나 기침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들었다. 창호가 캉아저씨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녀자들쪽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로인은 굳은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창호가 마지막으로 캉아저씨의 골회를 이곳에 옴겨오겠다는 뜻을 내비쳤을 때 캉로인은 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하더니 창호에게 물었다.

<<고인의 뜻이 그러했습니까?>>

창호는 머리를 저었다.

<<고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가족이 있는 선산에 묻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것입니다. 락엽귀근(落葉歸根)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로인의 입가가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고인에게 그런 뜻이 없었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저하고 형님은 관계가 끊어진지 오래되였고 그동안 래왕도 없었습니다. 형님의 골회를 이곳에 가져온다고 해도 남남이나 다름없이 된 지금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형님은 부모님 선산옆에 묻을수도 없습니다. 형님은 맏이로서 장가도 가시지 않았고 자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부모님 산소에 함께 모실수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만 렴선생께서 형의 생전에 보살펴주셨다니 계속하여 타당히 처리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창호는 그래도 캉아저씨의 골회를 가져오겠다고 하면 가족과 형제의 정때문이라도 쉽게 대답이 나올줄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리유가 있을줄은 몰랐다. 가슴에서 분노가 솟았다. 너무나 몰인정하다는, 증오심같은것과 복수심같은것이 치밀었다. 캉아저씨가 리후이에게 남기는 유서에 별도로 붙인 말이 생각났다.

<<...단 나의 장례에 동생 캉더라이가 온다면 나의 저축에서 5만원을 준다...>>

창호의 가방속에는 지금 돈 5만원이 있었다. 창호가 떠나기 전날 리후이가 가져온것이였다. 리후이는 그래도 혈육을 나눈 형제인데 정이라도 남아있었다는것을 알리는게 도리같다고 했다. 그날 저녁 창호와 리후이는 오래동안 토론을 했다. 결국 창호가 보아서 캉아저씨의 동생에게 혈육의 정이 남아서 비통해하거나 골회를 가져오라고 하면 이 돈을 넘기기로 토론이 되였었다.

리후이와의 토론대로라면 이 돈은 창호는 도로 가져가야 했다. 그러나 창호는 캉로인이 이토록 썩둑 깎아버리듯 거절을 해버릴줄을 몰랐다. 그래서 형제의 인연까지 끊고 살았는가? 창호는 캉로인의 장중함속에 있는 허위와 거짓을 보는것 같았다. 그 허위와 무정함에 발길질을 해주고싶었다.

창호는 가방에서 돈을 꺼내 상우에 놓았다. 서있는 사람들속에서 짤막한 탄성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지고있었다.

<<캉아저씨는 외롭게 사셨지만 대신 많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이 돈은 캉아저씨가 가족에게 전할수 있으면 전해주고싶었던것입니다. 받으십시오...>>

창호는 돈앞에서 비굴해질 그들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그 많은 유산이 혈육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갔다는것을 알고 격분하고 억울해 할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이 후회하면서 가슴을 치는것을 보고싶었다. 그것으로 창호는 캉아저씨를 버린 그 가족에게 비굴해지는것으로서 영원한 응징을 하고싶었다.

캉로인의 몸이 떨리고있었다. 창호는 로인의 참회나 눈물, 그리고 갑작스런 통곡같은 그런 발작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러나 캉로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앉은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다만 얼굴에 랭혹해보이는 근엄함이 서려있었다. 캉로인은 네모상우에 놓인 돈에 이윽토록 눈길을 박고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서 알릴듯 말듯 고개를 저었다.

<<수십년간 형님하고는 인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린 사실상 남남이 된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 돈은...>>

캉로인은 잠간 말을 끊었다가 깊은 숨을 들이쉬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 돈은 저는 받을수 없습니다. 하물며 저는 장례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받아야 할 정도 명분도 없습니다... 이렇게 먼길 가져오는라 수고하셨지만 렴선생께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 돈을 받는다면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것입니다...>>

창호는 가슴에 쌓아지고있던 무엇이 와그르르 무너지는것 같았다. 받지 않다니? 받지 않는다고? 못받는다고?...

창호는 만일 캉로인이 이 돈을 받는다면 캉아저씨가 남긴 유산이 얼마나 되는가를 말하려고 기다리고있었다. 그러나 창호는 빗나갔다. 창호로서는 리해할수 없는 깊은 무엇이 이들에게 있었다. 이 산비탈에 붙어사는 사람답게 그네들에게는 그네들로서의 자기표준이 있었다.

갑자기 림종시의 캉아저씨의 눈물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눈물을 리해할것 같았다. 이들에게서 버림을 받았지만 이들은 사랑할만하고 기억할만한 사람들이였다!

부끄러워지며 창호는 돈을 도로 가방에 넣었다.

<<죄송합니다. 로인님의 깊은 뜻을 리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은 사실 창호 자신에게 하는 말이였다. 가슴 깊이에서 참을수 없는 슬픔이 솟구쳐올랐다. 그러면서 깊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며 울고싶었다!

<<이젠 돌아가십시오. 멀리 배웅해도 리별은 한번이랍니다...>>

창호는 배웅을 나온 캉로인의 아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캉로인의 아들이 머리를 저었다.

<<멀리서 오신분인데 령까지는 배웅해야지요. 가부의 명이기도 하구요...>>

캉로인의 아들은 바로 처음 창호를 맞던 그 사내였다. 처음에 오십대 이상으로 보았는데 물어보니 사십대 중반밖에 안되는 중년이였다. 아마 렬악한 기후조건과 힘든 농사일에 겉늙어서일것이였다.

령까지 오르자 창호는 다시 한번 캉아저씨의 아들을 만류했다. 그러자 그도 멈춰서며 머뭇머뭇 하다가 말했다.

<<저의 가부를 고깝게 생각하지 말고 리해해 주십시오. 받고싶지가 않아서라 받을수가 없기때문입니다. 사실 그 돈이 저희들한테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아마 한 십년을 벌어야 될런지... 그렇지만 가부께서 받지 않으시려는건 리유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그런 큰아버지가 계시는지도 모르고 컸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야 저는 그런 큰아버지가 계시는줄 알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큰아버지를 공부시키느라 저의 아버지는 중학교도 못가게 하셨답니다. 가부께서 시골 소학교 민영교원을 하실수 있은것도 모두 자학의 덕분이였답니다. 큰아버지가 우파로 되자 저의 집은 지금의 서릉채로 쫓겨났지요. 그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모른답니다. 그렇게 되여서 관계가 끊어진겁니다. 그때는 정부에서 계선을 나누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끊고 살았는데 지금 와서 죽은 사람 인연을 이어보았대야 살아있는 사람들 아픔밖에 더 있겠습니까?... 사실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부께서는 떠나실 차비까지 다 하셨댔습니다. 그러나 정작 떠나는 날이 되자 가서 무슨 면목으로 형님을 대하겠는가, 지금껏 모른체 하고 살다가 죽었다고 하니까 가서 울어준대야 그 외롭던 령혼을 달랠수 있겠는가 하시며 포기하였습니다...>>

캉로인의 아들은 목이 메여 한동안 울먹거렸다.

<<아무리 관계를 끊고 살았지만 형제의 정은 정이 아니겠습니까. 피를 나눈 형제가 모르는체 하고 살았다고 그 피가 달라지겠습니까...>>

창호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캉로인이 돈을 안받는다고 깎듯하게 거절했을 때부터 발가벗고 거울앞에 서있는 기분이였다. 창호는 그들이 부자거나 잘살아서가 아니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집안에 가구조차 새것이 없었고 텔레비죤마저 칼라가 아닌, 80년대 중반의 흑백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로서는 엄청난 돈앞에서 먼저 따진것은 명분이였다. 창호는 처음 느낀 자신의 분노가 얼마나 얄팍한 심사였는가를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속에 담고있는, 일반의 도덕성 표준을 넘어선, 오래된 그네들만의 삶의 기준을 리해하려고 노력했다.

창호는 가방에서 돈을 꺼냈다. 신문지에 벽돌처럼 싼 돈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제가 로인님의 의도를 거역해서가 아닙니다. 이 돈은 캉아저씨가 남기고싶었던것입니다. 장례에 오시면 드리라고 한것은 형제의 정이 살아있다는것을 확인하고싶었을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형제의 정이 살아있을뿐 아니라 이런 형제의 정이 더 순수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꼭 받으셔야 합니다...>>

캉로인의 아들은 펄쩍 뛰였다.

<<안됩니다! 이 돈을 받으면 큰일이 납니다. 가부께서 아시면...>>

창호는 억지로 캉로인의 아들에게 돈을 떠맡겼다.

<<가부의 뜻은 저도 리해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이 돈을 받지 않으면 캉아저씨의 령혼을 달랠수 없을것입니다. 웃세대분이 어떻게 살았든 자식들에게는 그런 큰할아버지가 계셨다는것을 알려드려야 할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 돈을 지금 받지 않으신다고 하더라도 제가 다시 부쳐드릴것입니다... 만일 가부께서 야단을 하시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수건하는데라도 쓰십시오. 캉아저씨는 장가도 안가시고 자식도 남기 않았으니 불효라고 해서 부모님옆에 묻힐수 없더라도 이 돈으로 산소를 수건하게 되면 그로써도 효도를 한셈이 아니겠습니까?...>>

돌계단을 내려가다가 창호는 다시 한번 머리를 돌렸다. 캉로인의 아들이 령우에서 조각처럼 굳어진채 창호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창호는 캉아저씨의 림종을 생각했다.

<<아저씨, 저가 잘한것입니까?...>>

늘차게 긴 돌계단을 다 내려오니 계단옆에서 창호를 기다리고있던 오토바이운전수가 창호를 보고 벌쭉 웃으며 손을 저었다. 시간을 보니 약속시간보다 근 두시간이나 늦어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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