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월30일 화요일
연출: 김경희 작가: 김경순
진행: 이소연, 전춘화

▶ 편지사연 1. <아침풍경> (남, 30대) 1/30 화

박송천, 중국 길림성 연길시 삼꽃거리 68번 연변대신외국어학교

출근길은 오늘도 잰걸음으로 시작된다. 매일 무거운 눈을 집어 뜯으며 덜 깬 잠으로 돌아치는 아침도 이젠 나에게 낯설지 않다. 다행히 집 바로 밑에 위치한 커피숍은 일찍 영업을 시작했다. 빈 속을 한 모금의 차가운 커피로 자극하며 피곤을 물리쳐 보려는 몸부림은 벌써 10년도 넘게 이어져 왔다.

(사장님) 또 밤을 새셨나 봅니다.

쌓인 작업 때문에 새벽에야 눈을 붙였다고 푸념을 늘어놓고는 커피를 받아들고 다급히 가게 문을 나섰다. 거리 량켠에는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 모금의 커피를 쭉 빨아 마시고는 기사한테로 눈길이 옮겨졌다. 어쩌면 나보다도 대여섯 살은 더 어려보이는 택시기사였다. 슬쩍 말을 걸었는데 그의 얼굴이 순간 밝아지는 것이였다.

(택시기사) 5시 전에 나왔습니다.

짧은 한마디의 억양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지만 싫지 않다는 젊은 기사의 속대사가 얼굴표정과 억양에서 전해오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미소로 반겨주는 상사의 모습에도 희망은 비껴있었다. 사람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 희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엮어가고 있는 것인가 보다.

오늘보다 눈부신 내일을 소망하며 주어진 하루를 고맙게 마주하는 현대인들의 삶에는 고달픔도 달갑게 견뎌낼 수 있는 꿈이 반짝이고 있다. 나만 힘든 것이 절대 아니였다. 모두의 아침이 피곤으로 시작되겠지만 그것을 견뎌낼 희망이 있고 펼쳐진 하루에 더 높은 가치의 옷을 입혀 훗날의 값진 추억을 만들어보려는 야무진 생각이 있기에 도시의 아침풍경은 분주하면서도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는 것이다. 마주치는 얼굴마다 미소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응원해주는 오늘 아침이 황홀한 풍경으로 내 가슴을 채우고 있는 건 어찌 된 영문일까!

오늘따라 나의 아침을 장식해준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 눈앞을 맴돈다. 쌍둥이 딸을 둔 커피숍 사장님, 젊은 택시기사, 밝은 미소의 아침인사가 유난히 달콤한 직장 상사, 그리고… 모두 나보다 일찍 일터에 나온 그들 앞에서 피곤에 젖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며 혼자만 바쁜 척해온 나는 부질없는 모습으로 그들의 아침풍경을 흐려놓은 건 아닐까? 미안함과 함께 부끄러운 감정이 얼굴을 뜨겁게 달군다. 서른의 중반에서 난 아직도 어린 아이처럼 누군가의 동정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며 약간의 어려움이 닥쳐와도 미간이 찌푸러지는 것을 감추지 못하는 내가 오늘따라 정녕 얄미워진다. 내 삶에 유난히 자극을 준 오늘의 아침풍경과 마주하고 나도 누군가의 풍경 속을 장식하는 내일 아침을 기다려본다. 만나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따듯한 미소를 짓는 것부터 배우면서 말이다.


▶ 편지사연 2. <눈이 오던 날> (남, 10대)

한철욱, 중국 길림성 안도현조선족학교 5학년

지난해 어느 겨울 아침이었다. 늦잠에서 깨어나 밖을 내다보니 거위털 같은 눈이 흩날리면서 내리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이 너무 재미있어서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윗집에서 사는 할머니가 걷다가 눈에 미끄러워서 넘어지는 모습이 눈에 안겨왔다.

(한철욱 독백) 아침을 먹기 전에 먼저 눈부터 쓸면 좋겠구나. 눈도 맞고 동네에 좋은 일도 할 겸...

나는 빗자루를 쥐고 밖에 나갔다. 그리고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들이 난무하면서 마구 내리고 있었다. 아침 출근시간이라 동네의 사람들이 하나둘 출근하고 있었다. 모두들 미끄러워 넘어질까봐 조심조심 걷고 있었다. 나는 아파트 주위를 쓸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멘트길이 보이게 쓸었지만 곧 눈으로 메워졌다. 그래서 눈이 멎은 다음 쓸기로 하고 잠시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냥 밖을 내다보면서 어서 눈이 멎기를 기다렸다.

대략 반 시간 쯤 지나서야 눈이 멎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우리가 아파트 주위의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다 쓸었을 때 내 배에서 “끄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밥을 달라는 모양이다. 그제야 나는 아직 아침을 안 먹었다는 걸 의식했다. 나는 바로 주방에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그런 후 주방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여러 사람들이 내가 쓸어놓은 길로 지나가고 있었는데 누구나 시름 놓고 걷고 있었다.

(한철욱 독백) 그래 오늘 눈이 왔지만 그러나 내가 쓸어놓은 길로 사람들이 시름 놓고 다니겠지..

이런 생각을 하노라니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피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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