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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후원회 이상규 선생이 2010년 11월 17일(수요일) 오후 3시, KBS라디오·한민족방송국에 가서 취재를 받을 시 중국 연변의 조룡남 시인도 전화취재를 함께 받았었는데, 조룡남 시인이 그 일부를 정리하여 본지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 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후원회 이상규 시인이 KBS라디오한민족방송에서 취재를 받고 기념사진 남기다. 기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0.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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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일일 파출부, 둘째 날은 백운호수에 있는 묵집으로 파견되었다.9시 반부터 오후 2시 반까지 반나절, 3만 5천원 받으면 된다고 했다. 9시 반이라 하니 생각난다. 한국에는 보통 몇 시 반이라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9시 30분이라 한다나?그 껌 절반짜리 주세요 했더니, 이럴 때는 반짜리라고 한단다.인터넷 검색을 해보아도 헷갈린다. 이게 바로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0.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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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식당 일일 파출부, 나에게 생소한 체험이여서 불안하고 걱정스럽지만,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는 가슴 뿌듯한 즐거움이 따랐다.그 즐거움을 남편이란 남자와 공유하려 했더니 그렇게 화를 낼 줄 몰랐다.떠돌이처럼 떠돌아다니면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애초부터 계획한 한국취업 3년 생활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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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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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세요. 아버지. 제발 그만하세요. 어머니가 죽겠어요.”“비키지 못해. 오늘 죽여 버리고 말 거니까. 옜다, 한 대 더 맞구 죽어라 죽어!”어머니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머니~” 다행히 어머니는 쓰러지지 않으셨다. 설움에 터질듯 한 가슴을 붙잡고 어머니는 쾅 하는 문소리만 남기고 집을 나가셨다. 내 귀청에서 메아리치는 그 문소리를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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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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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또 벌고, 배움을 통한 지혜와 좀 더 넓은 안목으로 또 다른 변화를 창조해 볼 수 있는 것, 그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니겠는가! 돌이켜보면, 식당 입문 할때의 날들이 새삼스럽다. 현지의 정서와 문화를 피부로 경험할 수 있는 식당 서빙을 해보겠다는 것이 처음부터의 생각이었으나, 남편이 질색하고 반대했으므로, 식당 입문하기까지 1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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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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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역에서 내려, 박카스 한 병 사먹고 가게 문 들어서면, 항상 9시 42분에서 45분 사이, 나는 안녕하세요 크게 외치며 가게 문을 떼고 들어선다. 목소리가 너무 낮다고 해서 소리 지르는 것이다. 향미씨. 어깨 펴고 배에 힘을 딱 주고, 요렇게~ 씩씩하고 당당하게 외쳐봐요. 이렇게 연속 며칠 날 교육시켰다. 사모님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본점에서 두주일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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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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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목우리 연변에는 사과나무를 배나무에 접목하여 재배한 사과배나무가 있다. 연길에서 용정으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창밖을 내다보면 일망무제한 만무과원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하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 나무에 열리는 과일의 맛이다. 사과의 새콤달콤한 맛과 배의 시원한 맛을 융합시킨 그 맛, 그것은 실로 환상적인 맛이였다. 사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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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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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퇴근시간이 되어오는데 손님들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꾸준히 들어오신다. 나는 어서 오세요 고함치면서 우산을 정리해 드리고 주문을 받는다. 메인메뉴?〉?가지 밖?±愎쨉Ⅵ?서로 멀뚱거리며 주문을 늦게 하시는 손님이 있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행주 삶아 널고, 쓰레기 버리고, 테이블에 있는 소스 병을 걷어서 냉장고에 넣고, 이것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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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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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드디어, 우즈베키스탄에서 비행기 탄지 8시간 만에 인천에 도착했다. 인천 공항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심장이 뛰었다. 그때,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 그렇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우리는 같이 밖으로 나갔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배고프니? 뭐 먹고 싶어?”하지만 나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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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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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한국취업 생활 속 울고 웃었던 사소한 이야기... “무 주세요.”하는 손님에게 깍두기가 아닌 물을 갖다 드리고,“젓갈 더 주세요.”하는 손님에게는 젓가락을 갖다드려 손님들을 당황하게 했던 그 시절, 그 시절은, 2년 7개월 전으로 돌아가서, 2007년이 다 가는 12월 끝자락, 남편이라고 부르는 한 남자와 큰 꿈을 안고 무연고방취제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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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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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 년 전에 한국인 배우자인 중국 아주머니가 사무실에 오셨다.“우리 아들이 지금 21살이에요. 초청해줄 수 있죠?”그 당시 출입국사무소에서는 21살 초청에 대하여 영사관에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는 상황이었기에 영사관에 초청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것을 알려드렸다. 그러자 “영사관에서는 비자 받기가 어려워요 그냥 출입국에서 비자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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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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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 반 알람소리가 귀찮게 일어나라고 한다. 내 나이 54살 벌써 한국에 온지 5년이 되었다. 매일 무거운 가방을 메고 인력사무소로 향하는데 오늘은 또 일이 있을까?.5년 전 딸이 한국으로 시집오면서 나는 딸의 초청비자를 받고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그 때만 생각하면 막상 한국에 왔지만은 내가 설 자리는 아무데도 없었다. 잠시 딸 집에 머물러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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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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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그녀는 나에게 '그랜토리노'의 월트와 같은 존재다. 나는 그녀와의 추억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 '그랜토리노'을 보며 한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저처럼 멋진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두고 생각해본다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게 되었다.1998년, 초등학교 4학년, 우리가족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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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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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인생은 공부다. 가는 곳 마다 달라지는 공부요, 만나는 사람마다 달리 받게 되는 공부이다. 서울에 왔으니 서울공부는 더 어렵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공부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날, 나는 2호선 전철을 타고 학동역에서 내렸었다. 출구를 빠져나오니 사람을 당장이라도 구워버릴 듯한 한여름의 불볕이 온몸을 굽는 것 같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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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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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토요일 오후 실컷 늦잠을 잔 나는 무심코 창문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 놀랍도록 따뜻한 바람과 볕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노란 햇살을 따라 나비가 날아들 것 같은 포근한 날씨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그래, 춘분이 지난지도 한참이지.’ 창틀에 쏟아지는 봄햇살에 겨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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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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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변대학교 정문에서 나는 유서 깊은 옛 고구려의 수도였던 역사의 땅 - 집안성集安城(현재 中國吉林省集安市)에서 탯줄을 끊었다. 어려서부터 고구려인들의 피와 땀이 슴베인 집안의 땅을 밟고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곳에서 조선족학교를 다니며 자라다보니 어린 나로서도 자기도 모르게 우리민족에 대한 사랑과 긍지감에 젖어들 수 있었다. 또 내가 생활하는 곳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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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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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2월 22일)은 아들 입학식 참석차 포항 한동대학교에 갔다 왔다. 한동대는 포항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로 2만원이 나오는 거리에 있었다. 학교 앞을 지나가는 대중 교통이 별로 없으니 학교는 두메 산골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학생들 거의 전원을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하니 자유 분방한 낭만파 학생들은 결코 오고 싶어하지 않을 학교였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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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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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의 뇌는 마치도 기억하는 컴퓨터의 프로그램과 같다고 한다. 어린 시절 보고 들은 것 그리고 느낀 것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그의 어린 심령에 저장한다. 그것은 커가면서 잊혀 지거나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된 후에도 잠재의식으로 표현이 된다고 한다. 그들이 커서 대하는 사회에 이 사실적인 근거가 하나하나 무의식적인 표현으로 되여 커서도 그의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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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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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하셨다 . “아무 가정이나 그 가정에 꼭 어른이 계셔야 해. 불구자이든지 앉은뱅이든지 그 가정의 구들 목의 구석을 지키는 어른이 있어야 그 가정은 건강한 가정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성경의 원리에도 모든 가족적인 발생 후과의 최후 책임자는 영적인 지도자인 아비라고 분명히 말하였다.지금 생각하면 나의 아버지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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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지 기자
2010.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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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머니로부터 문뜩 전화가 왔었다.“너의 외사촌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어…”나는 당시 형용할 수 없는 당혹감을 느꼈었다. 어린 애명을 떠올리면서 그를 생각하니 순간 어린 시절 그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큰아들은 죽었지만 작은 외 삼촌은 그때까지도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있었다 .아들이 봄에 새 승용차를 사달라고 너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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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신문 기자
2010.01.3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