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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시작된다1993년 9월의 어느 날 저녁 무렵, 연변의 연길역. 북경에 소재한 대학에 입학한 나는 개학 마감일에 맞춰 북경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무려 34시간이나 소요, 그것도 침대석을 구하지 못하여 좌석에 앉아 꼬박 2박 3일을 가야만 하는 힘든 여정이었다. 연변에 와서 막일을 하던 남방 사람들의 귀향과 맞물려 나는 그들 속에 끼어 ‘비빔밥’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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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가 중동을 떠나다주 사우디 호주 대사관에서 1989년 3월 이민 비자를 받았다. 7월 27일까지 기술독립이민으로 입국하라는 조건이다. 아직까지 사우디 정부와 계약기간이 여전히 4개월 남짓 남았으므로 바쁘게 고국 서울에 돌아가 호주로 향하는 일정을 짜야 했다. 아직도 4개월이나 남아 마치 4년같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덥고 삭막한 사막의 생활을 살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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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민들레꽃이 지천으로 피어날 무렵은 벼농사를 하는 이곳 중국북방의 농촌이 제일 바쁜 철이었다. 망종전으로 종자를 밀어 넣어야 가을에 가서 쌀알이라도 건진다며 생산대장은 어뜩 새벽부터 마을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그러면 그것을 신호로 이집 저집의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좀 지나면 식사를 마친 일꾼들이 골목골목에서 빠져나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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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0일, 룡정시 지신진 룡남촌으로 비보가 전해졌다. 방취자로 한국에 간지 1년 4개월밖에 안된 이 촌 제4촌민소조의 한금옥(54세) 녀성이 세상을 떠났다는것이였다. 《그렇게 가지 말라는데 왜 갔느냐?》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남편은 땅을 치며 넉두리를 했다. 몇년전에 여러 가지 병으로 로동능력을 상실하고 눈병까지 들어 앞못보는 남편의 애절한 모습에 이웃들도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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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충청북도 회사에서 일하고있는 매형이 전화와서 귀국할때 한국돈보다는 영국파운드를 바꾸어가지고 가면 환전차익이 생길거라면서 중국쪽 파운드 시세를 알아오라고 했다. 매형말로는 파운드가 환률폭이 크지 않아 딸라나 한국돈보다 환전차익이 그리 크게 나지 않을거라고 했다. 중국시세를 중국현지에 있는 친구를 통해 알아봤더니 파운드가 1154.71원, 딸라가 86원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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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지 딱 반년이 지났다. 이제야 심리 안정을 찾고 이 나라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솔직히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는 한국생활에 적응이 필요하다는 말은 나한테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도 조선말에 찰떡, 된장찌개와 김치를 먹고 자랐기에 의식 가운데 한국은 어느덧 외국이 아닌, 내 나라와 별다름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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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마늘을 샀다.할머니께서는 중국산이 아니고 국산이라서 잘기 때문에 더 맛 있는 거라고 하셨다.은행에 갔다. 출근 전에 들렸기 때문에 빨리 업무를 봐야 했다.앞에 아주머님께서 카드를 어찌 긁어야하는지 모르셔서 이리저리 갖다 대셨다. 가르쳐 드렸다. 지로서를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망설이셨다. 가르쳐 드렸다.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셨다.화물차 타고 가시던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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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여름 MT를 떠났다. 올해도 수련회를 마치고 어디로 MT를 떠날까 고민했다. 올해는 여름 수련회를 충북 괴산으로 갔기에 수련회 장소 근처에 문경이 있어 잠시 들러 보니 레일 바이크 타는 곳이 있었다. 그 곳을 알아 보러 가서 올해가 경북 방문의 해 이고 팜플렛에는 경북의 여러 지역이 소개 되어 있었다. 마침 학생중 하나가 영덕 출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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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작년 이맘때였다. 우리집 작은 아이가 중3이었는데 전북 부안에 있는 변산공동체에서 1주 동안의 체험학교를 마치는 날이었다. 공동체를 일구신 윤구병선생님도 오랜만에 뵐 겸 아이를 데리러 갔었는데 나를 만난 아들은 다짜고짜 고등학교 진학문제에 대해 중요한 결심을 했다면서 농업고등학교를 가겠다는 것이었다.나는 껄껄 웃었다. 철없게만 보이던 아이가 가업을 잇겠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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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에서 로스쿨로 방향을 바꾸다로스쿨측에서 마련한 4주간의 예비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으니 새롭게 시작될 로스쿨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작년 이맘때 신림동 어느 고시원에서 마음 조리며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때의 소회가 밀려옵니다. 로스쿨로 방향을 전환하고, 준비에 매달릴 때도 그랬지만 한 때 온갖 것을 쏟아 부었던 사법시험에 대한 미련은 로스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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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시간은 친구 김걸이와 만나기로 약속이 잡혀있다. 일산병원에서 병원시스템관리일을 하고있는 친구 김걸이도 병원일때문에 오늘 하루만 시간낼수 있는 직장인이다보니 내가 그놈한테로 찾아가서 만날수밖에 없다. 영등포전철역에서 용산까지 1호선을 타고 가는데 용산이 종점이란다. 1호선도 도중에 종점역이 있다는걸 그날 알았다. 1호선으로 석계까지 가서 다시 3호선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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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의 인연나의 고향은 일본 교토후(京都府) 교토시(京都市), 그 옛날 동경(東京)이 수도가 되기 전에 무려 1,200년 동안이나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동경(東京)이라는 이름도 동쪽의 교토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경주 정도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이 많은 아름다운 도시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키요미즈 사원(淸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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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라. 나이 28, 조그만 사업장에서 연봉 2000이 조금 안되는 월급을 받고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혼자서 살 수 있겠지만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이런 푸념을 술자리에서 늘어 놓았을 땐 친구들은 고까워 한다. 단지 나는 친구들에게 나도 힘들다고, 그런 투정을 부리고 싶을 뿐이다.내 친구 녀석들은 성격들도 모나지 않고, 나보다 모든게 나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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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1일, 외사촌 동생인 동규와 동일이가 내가 왔다고 휴일을 타서 보러 왔다. 지난해 12월, 방취제로 입국한 동규와 친척방문으로 입국한 동일이 모두 일자리를 가지고있어 기뻤다. 처음에는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으나 지금은 회사와 사람들과도 잘 적응해가고있다는것, 그런 동생들을 보니 한시름 놓였다.동규가 출국한 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그는 부친의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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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태여 났고, 중국국적이 있고, 중국주민등록증도 있다. 주민등록증에는 민족은 조선, 이름은 조선 글과 한어, 두 가지로 표기하였다. 당연히 중국조선족들은 중국에서 떳떳이 살 수 있었다.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좀 틀리다.조선 글과 한글이 다른가? 글자도, 말씨도, 조선말, 한국말 다르다.조선 글은 순수 우리말로 적은 것은 인데, 한국말은 거의 절반이 외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9.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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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조선족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은 조선족 사회 내 인구감소를 심각한 문제로 제기해왔다. 연변대 허명철 교수는 에서 조선족 사회가 당면한 핵심적인 문제점으로 조선족 집거구의 변천을 지적하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조선의 파산 농민들은 만주로 대량 이주하기 시작했고, 벼농사 중심의 조선족 집거구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1992년 중국정부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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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산에서의 두 번째 휴일이다. 주인 할머니께서 "자갈치역"에 가면 볼거리가 많다고 하셔서 나는 전철에 몸을 실고 "자갈치역"으로 향했다. "자갈치"란 말 듣는 순간부터 나는 어류중의 한 종류의 이름 일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자세히 묻지도 않고 "자갈치"가 얼마나 대단한 놈이길 애 시장의 이름으로 지명 됐는지 궁금하여 무작정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자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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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류기간동안 동북아공동체연구회 국제리사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수료과정에 있는 중국조선족 김범송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적 있다. 김범송씨는 현재 인터넷 조글로미디어에도 중국조선족한국생활관련 칼럼들을 올려 활발한 인기를 얻고있는 조선족지성인인데 다년간의 한국생활로 한국실정은 물론, 재한 조선족들의 생활실태에 대해서도 식견이 넓었다.김범송씨는 현재 한국에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9.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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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연변, 용정. 나는 40대 초반의 조선족 농민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 남성은 용정의 한 시골에서 병든 노부모를 모시고, 학교에 막 들어간 어린 딸과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성실한 청년이라고 동네사람들은 칭찬했다. 하지만, 이 남성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고, 동네 사람들도 이 남성의 사정을 딱하게만 여기고 있었다. 사연은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08.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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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제가 중국을 떠나 한국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인사 잘해야 된데이. 한국에서는 인사만 잘해도 반은 묵고들어 간데이" 이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제가 한국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들었던 소리랍니다. 제가 비록 조선족이기는 하지만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정말 부담스러웠습니다. 낯선 땅에서 공부를 해야하는 부담을 유학생활을 해보지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기자
2008.12.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