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1월28일 화요일
연출: 김경희 작가: 김경순
진행: 이소연, 전춘화


▶ 편지사연 1. <꽃삼지> (남, 70대) 11/28 화

최준봉, 중국 요녕성 대련시

단풍이 빨갛게 물들인 화창한 가을 어느 날,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소꿉시절의 친구 운룡이와 만났다. 운룡이는 마치 반세기 세월을 비껴가기로도 한 것처럼 여전히 젊은 시절 사랑하는 처녀에게서 선물로 받은 꽃삼지를 가지고 다녔다.

(운룡이) 내가 50여 년간 간직하여 두었던 이 꽃삼지를 가지고 왔어. 세월이 흐르면 많은 것이 같이 변한다. 50여 년의 세월 속에서 꽃삼지도 이미 색깔이 낡아 오색실로 수놓은 꽃문이 어슴프레 보였다.

(운룡이) 허허, 꽃삼지 담배 맛이 정말로 꿀맛이야. 지난 60년대 꽃삼지는 연변의 조선족 시골 처녀들이 맘에 드는 총각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상징이었다.

나는 꽃삼지의 엽초담배를 말아 연기를 훨훨 공중에 날려 보내느라니 옛 추억이 떠올랐다. 1970년 내가 해방군에 입대 하기 전 어느날 동네 량태머리 한 처녀가 나를 찾아 왔다.

(처녀) 참군하게 되어 축하해요.

나와 처녀는 마을 뒷동산 오솔길을 따라 올랐다. 나는 우뚝 솟은 소나무 밑에서 망망하게 펼쳐진 고향 마을을 뚫어지게 내려 보았다. 처녀는 오색실로 수놓은 꽃삼지를 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처녀) 오빠가 돌아올 그날까지 난 손꼽아 기다리겠어요.

쭈르륵... 처녀의 뜨거운 눈물이 앵두 같은 두 볼을 타고 나의 가슴팍을 흠뻑 적셨다...처녀애는 예쁘게도 생겼지만 성격도 활달하고 마음씨가 고운 여자애였다. 부대로 떠나는 날 처녀는 나의 앞가슴에 붉은 꽃을 달아 주었다.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서서히 기차역을 떠났다.

(처녀) 승리 기쁨 안고 돌아 와요. ~ ~

떠나가는 열차 뒤를 쫓아 손을 저으며 처녀는 목이 쇠도록 외치고 또 외쳤다. 나도 창문 밖으로 꽃삼지를 휘젓었다. 간고한 부대 생활의 나날에도 나는 '꽃삼지'를 몸에다 간직하고 다녔다.

매냥 내가 그 '꽃삼지'를 꺼내어 볼 때마다 나의 몸에서는 무궁무진한 힘이 솟구쳐 올라 부대 생활을 원만하게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쉬운 건 귀중히 간직해 오던 '꽃삼지'를 1975년 료녕성 해성지진에서 잊어버린 것이다. 그보다 더 아쉬웠던 일은 내가 퇴오하여 고향에 돌아 오니 '로 처녀'가 된 처녀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유언을 지키지 못하고 시집을 갔었던 것이다...


▶ 편지사연 2. <나의 아버지> (남, 10대) /

김민찬, 중국 길림성 룡정시 북안소학교3학년

나에게는 밖에서 엄청 고생하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지금 아버지께서는 일본에서 매일 오후 네 시부터 이튿날 새벽 세 시 반까지 밤일을 하고 계십니다. 어느 날 내가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나는 땅이 꺼지는 것처럼 슬펐습니다.

우리 모두가 슬퍼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다리뼈에 금이 살짝 나고 팔과 다리가 조금씩 상한 것 외에 괜찮다는 소식이 또 들려 왔습니다. 나는 그래도 많이 근심이 되었습니다. 며칠 후 아버지가 집으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형님이 개학을 맞이해서 어쩔 수 없이 상한 다리로 형님을 데리고 중국으로 오셨습니다.

방학 간 아빠를 보러 형님이 일본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우리 연변으로 직접 오는 비행기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아빠가 형님을 데리고 와야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오시자마자 차 사고가 난 자리가 아픈지 안 아픈지 걱정스레 물어보았습니다. 조금 상했다던 다리가 많이 다쳐서 지팡이를 짚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너무 힘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며칠 쉬는 줄 알았던 아버지께서 웬일로 오신 이튿날로 일을 해야 된다면서 다시 일본으로 되돌아가셨습니다. 공항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빠의 상한 다리가 하루 빨리 낫게 해달라고 다시는 교통사고가 나지 않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아빠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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