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동북아신문] 빈(彬)이 죽었다. 눈을 감은 듯 뜬 듯, 피를 흘리다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도 펴지 못한 채, 자정을 못 넘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날 저녁으로 병원과 가까운 장례식장으로 이송이 됐다. 장의자동차에 운구와 마주 앉아 헤라는 참 모질게도 빠르구나! 생각했다. 인생이란 너무 짧은데, 빈의 생은 더욱 짧았고,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다. 영(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7.04.08 09:48
-
[서울=동북아신문]시간이 흐를수록 후회감만 더해 갔다. 서울에 사는 고향친구 회갑 잔치에서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친구들이 말리는데도 듣지 않고 차를 운전하여 지방에 있는 집으로 달리고 있었다. 점차 졸음과 술기운이 자욱한 안개처럼 밀려왔다.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산길로 들어가게 되었다. 차를 되돌려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검은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7.03.11 09:53
-
[서울=동북아신문]겨울과 봄 사이 날씨 치고 포근한 오후부터 하늘 가득 눈송이들이 흩날리더니 기차역 광장에 도착한 저녁무렵에는 제법 큰 눈이 되어 쏟아져 내린다.S시에 출장을 나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차에 오르니 스물두어살 쯤 되어보이는 젊은이가 창가에 앉아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차가 떠나서야 젊은이는 얼굴을 돌려 나를 보더니 웃으며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7.02.26 11:25
-
[서울=동북아신문]비수기의 관광지처럼 한적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한국강원도의 어느 작은 도시 D. 사방 몇 키로 미터 내에 거리는 끝나고 남북으로 계곡을 이루며 뻗어 오른 산발을 따라 보라 빛 엉겅퀴와 자주색 자운영 같은 야생화가 피어 눈길을 끌고 동서로는 푸른 바다 가 에메랄드빛의 거대한 공처럼 날아올랐다. 요즘 들어 거리의 여름은 풀이 죽어 저녁이 되면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7.01.29 14:44
-
[서울=동북아신문]아래 평론은 한국 예술가협회 제36회(2016)최우수 예술가상을 받은 김재황 선생이 류재순 작 단편소설 ‘하얀 무지개’를 읽고 보내온 평론입니다. 많은 참고바랍니다. 류재순 선생의 소설도 아래에 실었으니 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소설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읽고 싶다’라는 내면적 호기심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7.01.04 23:27
-
[서울=동북아신문] 1. 서울역 시계 탑, 6시 시계 침염천교를 지나, 얼음에 팅팅 얼어터진 서울역 입구 지저분한 눈 위에 몇 번 나동그라졌다. ‘미군장병여행안내소’ 앞의 한국인 보초가 징그러운 웃음을 노랗게 던져왔다. 그 옛날, 식민지시대의 표상적 ‘서울역 건물’ 앞에서, 쓰러져 허리를 움켜쥐고 있는 나에게, 일본 헌병의 앞잡이 같이 생긴 보초는, 더욱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6.07.16 19:54
-
[서울=동북아신문]진눈개비가 어지럽게 흩날린다.가뜩이나 축 처져 있는 내 마음에 우수를 난무한다.한집의 가정부로 집에도 가지 못하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소진하고 있는 나는 주인집의 저녁 준비를 하려고 쌀바가지를 들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급작스레 귀청을 두드려 덴다."여보세요" “큰일 났어요, 성남 씨가 출입국에 잡혀 갔어요!”다급히 소식을 전하는 상대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6.04.23 22:00
-
[서울=동북아신문]무너진 몸을 애써 가누며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허벅지 사이로부터 뭔가 새 나오는 느낌이다. 정액인가? 숨이 자꾸만 차오른다. 아까부터 누가 동아줄로 가슴팍을 바짝 졸라매는 것 같다. 아무리 큰 숨을 내쉬어도 속이 터질 듯 답답하다. 닫힌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서로가 밀착된 채 빽빽이 앉아 있다. 다리를 뻗을 수도 없고 운신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6.02.04 10:25
-
[서울=동북아신문]“가만 있어봐, 아직 안됐어” 남편이 다소 미안한 말투로 그녀에게 나직이 말한다. 그녀는 마냥 누워 있기가 불편해 남편을 밀치며 윗몸을 일으킨다. 차갑다고 말하려다가 그녀는 그만 둔다. 골판지로 깐 시멘트 바닥은 냉기로 싸늘하다. 벗은 엉덩이가 점점 시려온다. 한낮은 여름처럼 더웠는데 밤공기가 제법 차다. 백로가 지났으니까 계절로는 가을이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6.02.04 10:15
-
[서울=동북아신문]빈(彬)이 죽었다. 눈을 감은 듯 뜬 듯, 피를 흘리다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도 펴지 못한 채, 자정을 못 넘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날 저녁으로 병원과 가까운 장례식장으로 이송이 됐다. 장의자동차에 운구와 마주 앉아 헤라는 참 모질게도 빠르구나! 생각했다. 인생이란 너무 짧은데, 빈의 생은 더욱 짧았고,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다. 영(英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5.12.02 16:03
-
평화로운 숲 속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숲을 다스리던 독수리가 늙고 병들자 느닷없이 목소리가 큰 거위가 뻐꾸기를 새 지도자로 추대하고 나섰다.“자고로 ‘인지장사 기언은 선하고, 조지장사 기명은 애하다(人之將死 其言 善, 鳥之將死 其鳴 哀)’ 했거늘, 우리 새들이란 본시 슬프게 태어난 짐승인지라, 슬프게 울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오. 그런데 작금의 새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4.09.29 10:46
-
[서울=동북아신문] 1내가 태여나던 해 삼촌은 군부대에서 복원해 고향에 돌아왔다. 그해는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전해였다. 삼촌은 이름이 영규였고 우리 파평 윤씨가문의 셋째이자 막내였다. 아버지형제는 모두 셋이였는데 아버지는 항렬로 둘째였고 큰 아버지는 광복후 마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4.02.23 08:35
-
[서울=동북아신문]그녀는 전생에 꽃이였을것이다.세상은 참 알고도 모를것이여서 그것이 끝을 헤아릴수 없으리만치 아득하고 복잡한것 같다가도 종이우에 씌여진 글씨처럼 펼치면 한꺼번에 다 드러나는 듯 허무하고 맹랑하기도 했다.어떤 사람은 고양이였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얼굴로 태여나긴 했는데 눈이며 입이며 하는 짓거리마저 신통히도 고양이를 닮아있다. 그리고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2.06.09 00:00
-
토요일에 나는 안해와 함께 강아지 여덟마리를 박스에 담고 개시장에 나왔다. 막상 강아지를 팔려고 하니 어쩐지 민망하고 부자연스러워지면서 위치가 좋은 중간을 썩 지나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인테리로서 오구작작인 개시장에서 먼지와 잡냄새를 마주하고 평생 처음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아는 사람을 만날가 무척 신경이 예민해져 두리번두리번 살피는걸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2.02.23 00:00
-
[서울=동북아신문]그녀의 외모는 냉동실과 바비인형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바비인형과 같은 비율의 몸매를 가졌고, 냉동실처럼 차갑다는 인상을 풍겼다. 인상도 차가웠지만 피부도 창백해 보였다. 정맥이나 모세혈관이 퍼져 있을 것 같지 않은 얼굴, 그러고보니 그날은 질리도록 하얗고 추운 겨울이었다.12월 초순에 내린 첫 눈은 군데군데 둔턱으로 남았다가 새로 내려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2.01.04 00:00
-
김 형이 오던 날은 유독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뒷문이 흔들리며 벌어진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 왔다. 가을인지 겨울인지 애매한 때였지만, 찬바람을 앞세우고 서둘러 찾아온 겨울이 문을두들기고 있었다. 올해도 겨울은 춥고 길거라고 주방식구들은 말했다.이민자에겐 항상 눈앞에 닥친 이번 겨울이 가장 춥고 길었다. 어떤 사람은 이민생활 자체가 겨울이라고 했다. 얼어붙어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06.24 00:00
-
“제 애비 밀어내고 나온 녀석…….”이제 막 1살이 된 훈이가 거실 바닥을 기어와 살며시 무릎에 기대자 외할머니는 훈이를 바라보시며 한숨을 내쉬셨다. 영문도 모른 채 웃기만하는 훈이를 바라보시던 외할머니는 주름진 손을 내밀어 훈이의 얼굴을 안쓰러운 듯 쓰다듬으셨다. 어머니의 산후 조리 때문에 오신 외할머니께서 서울의 용하다는 점집에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1.06.24 00:00
-
(1) 하얀 누에꼬치에서 가늘고 고운 명주실이 뽑혀 나오듯이 거창한 멜로디 속에서 완만하면서도 정서적인 멜로디가 뽑혀 나온다. 온 마루방에 엷고 투명한 기운이 고요 속에 즐거움을 안고 흐른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마단조 "신세계로부터”의 선율이 신비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 속에 네 살짜리 아이가 앉아 쬐고만 손에 색색의 크레용을 바꿔가면서 열심히 그
문화·문학
송은영 특약기자
2011.03.26 00:00
-
1.교실이 모자라 두 반이 합반된 교실은 매우 후덥지근했다. 뒷산 뻐꾸기 소리는 쉴 사이 없이 창을 넘어왔다. 명숙이가 울었다. 명숙이 울음은 좀체 그치지 않았다. 묘하게도 그 울음은 그칠 만하다가 뻐꾸기가 울면 다시 따라 울곤 했다. 새로 산 연필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부잣집 딸이었던 명숙이는 더러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하던 좋은 학용품들을 가지고 있었다
문화·문학
[편집]본지 기자
2010.12.29 00:00
-
1길옆 닭장이 무너졌다.닭장 앞으론 맑은 내가 흐르고있었다.닭들이 사처로 몰켜가고 몰켜오고 닭모이와 닭똥이 구름처럼 흩어지고있었다.청소한적 없는 닭장…어디가 비자루를 빌려야지, 하면서도 가지 않고 길가에서 종이 상자 조각 주어서 접어 가지고 길을 쓸기 시작하는데, 물은 어디가고 없다.남편이 술취해 오가다 옆에 와 쓰러진다여보, 나 맛있는거 가져
문화·문학
송은영 특약기자
2010.11.0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