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와 아버지 소의 눈에는아버지의 타다 남은 담뱃불이타고 있었다 아버지와 소는 마주서서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시면소는 그 담배연기를 새김질해 주고이렇게 수년을 엉켜 다닌 친구였다 소는 아버지의 담뱃불만 봐도아버지의 속을 알게 되고아버지는 고삐를 소머리에 얹으실 때마다소의 지친 눈길을 미리 알아 내셨다 아버지는 소가 되려고소의 성질을 익혀 두셨고소는 아버지를 닮으려고아버지 손등을 핥기도 하였다 아버지께서 소수레 위에 쓰러졌을 때집앞까지 모셔 온 소담배를 피우지 않아도아버지 담뱃불만은 익히고 있어그대로 껌뻑이고 살아 온 것이다 소는 울지도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2023.05.29 12:24
-
시루속처럼 무더워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밤잠을 잘 수 없는 날씨가 며칠 계속되더니 간밤에 큰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 보니 큰비는 멈추고 간혹 잔잔한 비방울이 날리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웬지 저도 모르게 우울해지고 슬퍼지고 쉽게 감성에 빠져버린다. 비의 감촉을 느끼며 아침 산책을 하느라면 커피 한잔의 향기로 달랠 수 없었던 마음 한구석 어둠을 달랠 수 있을것 같아 폐 깊숙이 스며드는 시원한 바람을 안고 공원으로 향했다. 큰비가 온 뒤라 어둑시그레한 하늘에서 구름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지만 공기는
동포문단
장문영
2023.05.29 14:57
-
중국도자기 주문을 받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요구사항에 부딪힐 때가 있다. 우리가 취급하는 도자기는 모두 옛날 도자기를 본떠서 만드는 것이기에 난감할 때가 많다. 한번은 '여의주'를 문 용그림이 있는 도자기를 주문하였는데 옛날 도자기 그림에서 그런 그림이 있는 도자기를 많이 보아온 것 같았는데 정작 찾으려니 그리 흔치 않았다. '여의주'에 집착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용은 '여의주'를 얻어야 비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여의주'를 물어야 비속의 껍질을 벗고 신령스러운 영물로 부활해 마음껏 조화를 부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2023.05.27 10:41
-
중국에서는 살기 좋은 작은 지역을 일컬어 ‘소강남(小江南)’이라고 부른다. 역사 이래 “강남”에 포괄되는 지역은 그 범위가 부단히 확장과 축소를 거듭해 왔다. 오늘에 와서는 통념상 장강(長江) 이남, 태호 유역을 중심으로 한 남경, 진강, 상주, 우시, 소주, 항주, 호주, 가흥, 소흥, 영파, 상해 등 지역을 ‘강남’이라고 일컫는다. 장강 하류, 타이후(太湖)의 북쪽에 위치해 있어 ‘북강남(北江南)’이라고 불리는 우시(無錫)는 내가 오래전부터 한번 다녀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관광단체를 따라 말 타고 꽃구경식이 아닌 제대로 된 강남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2023.05.26 16:30
-
첫차에 목숨을 걸다 이른 새벽 무언가 등에 업은 그림자이 골목 저 골목에서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수탉이 첫 홰를 치듯 지하철 벨소리가 어둠을 벗기자1호선 열차는 쌩하고 차가운 공기를 가른다굴러가던 그림자들등에 업은 무언가가 출렁인다쿵쿵 발 울림소리지하철 역사가 흔들린다.지하철 무인 검표구는천천히 지나가라고 빽빽 소리친다청렴한 법관처럼 기관사는인정사정 안 보고 떠나버린다아직 술이 덜 깬 사내는떠나는 열차를 쳐다보며 혀를 찬다다리 절룩거리던 아줌마는입에 거품을 문다지하철 전광판에는다음 열차는 15분 후에 있다고, 뜬다지하철 승강장 여기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2023.05.21 13:01
-
제10회 2023년중국조선족호미문학대전 공모2014년부터 중국조선족시인(문인)들을 상대로 하여 펼쳐 온 을 올해에도 제10회로 공모하게 된다. 지구촌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민족 동포들에게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자를 이어가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재인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 믿어마지 않으면서 중국조선족시인(문인)들의 열정적인 참여와 지지를 기대한다.1. 부문 :시(3수-5수 간단한 략력 및 주소, 전화번호 필수.)2. 참가자격 :중국조선족시(문)인3. 응모기간 :2023년 7월 15일까지4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2023.05.21 12:38
-
시부문 6수 타버린 넋 이 땅에 내려서 고요히 묻혀 살고 싶었다불의 세례를 받을 운명은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낯선 이름표를 가슴에 달았다정처 없이 발길 내려 이 한 몸 불사르며 허기에 여념 없었다빨갛게 익어 터지는 몸으로불타는 뜨거움을 해산할 때야비한 좀비들은 흥청망청 영혼 없는 춤을 질탕 추었다불꽃을 안고 살아온 한 세월 찌그러진 체구에 주름만 살아입마저 다물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쓸쓸히 버려진 처량한 신세담장 한 구석 찢어진 김치독에 기대어웅크리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타버린 심장 하나 울고 있다 본연 날 때부터 벙어리인 나무들춘하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2023.05.19 22:03
-
1. 철길 마주 누워 바라볼 뿐 말이 없다눈빛으로 쓰다듬는 거리에서구름을 바라보며가슴을 새긴 아찔한 두 직선같은 사이당장이라도 끌어안고불태우고 싶지만 당금이라도 벌떡 일어나 쌓인 먼지 털어버리고 싶지만레루우의 아지랑이는 눈을 부시게 해줄 뿐이다살을 섞는 것만이 사랑이 아님을긴긴 세월을 베고 누워서 알았나가슴에는 가깝다는 걸 다소나마 느껴진다침묵으로 홀로란 말 뱉으며무덤덤한 세월을 착각해도넉넉한 자태로 버티는 모습 흔들리는 소리에 잠드는 게 천성이라 비스듬히 누워서 뒤로 가는 느티나무는언제나 거리감을 모르기에차타고 가면 휙 지나칠 뿐
문화·문학
이동렬 기자
2023.05.18 22:30
-
길 위의 식사 사발에 담긴 둥글고 따뜻한 밥 아니라비닐 속에 든 각 진 찬밥이다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 아니라가축이 사료를 삼키듯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고수레도 아닌데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며 먹는 밥이다반찬 없이 국물 없이 목메게 먹는 밥이다울컥 몸 안쪽에서 비릿한 설움 치밀어 올라오는 밥이다피가 도는 밥이 아니라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밥이다 계간시안』2011. 겨울)(2012년 제27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작) 무화과 술안주로 무화과를 먹다가까닭 없이 울컥, 눈에물이 고였다꽃 없이 열매 맺는 무화과이 세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2023.05.17 22:48
-
1. 나는 왜 시인이 되었나나도 가끔 나에 대해 스스로 궁금할 때가 있다. 그 중 하나, 왜 내가 시인이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시인 작가들이 거쳐 오게 마련인 문학 청년기를 나는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내가 등단 시기를 즈음하여 어떤 뚜렷한 목적이나 목표 의식을 가지고 문학에 전념해 오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거짓말처럼 우연하게 문학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그 우연은 이제 내게 필연의 운명이 되어버렸으니 우연치고는 너무 고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일방적
문화·문학
이다연 기자
2023.05.15 22:59
-
小篆 갑골문의 손자뻘이고五體의 우두머리요좀 이상하게 생긴 놈이다먼 진시황 때의 일이니그럴만도 하겠지얼굴은 말상이고팔다리는 두루뭉수리섰는지앉았는지외계인 같아라인기 좋은 편이어서궁중에 본적을 두고선비들 서재도 들락인다네문서에 오르내리면유식과 유식이 통하는 길스스로 왕따 되기 십상이지와당 처마아래 빛나는 날들세상이 알아 먹으니저 태산 석벽에도 서슴치 않아라높이 오를 수록 좋은가 봐대를 이어 또 이어汉唐을 거쳐 宋元明清에 이르러죽지 아니하고 전승되니꼰대같이 모시는 오늘부디 장수하이소물새 뭍에는 가지 않는다물에만 살기에물과 뭍은 한 뼘의 차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2023.05.14 07:36
-
청춘이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을 뜻하지만 청춘에 대한 절대적 정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꿈이 있는 한 삶은 영원한 청춘이 아닐까.여러해동안 아침 달리기를 견지해오다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후유증으로 한동안 달리기를 끊었다. 혹시나 땀에 온몸이 흠뻑 젖으면 잦은 기침으로 다시 폐에 해가 될까 저어되어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후유증이 사라지고 완전한 건강을 찾을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 5.4청년절 마라톤 달리기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제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야
동포문단
장문영
2023.05.13 20:36
-
지난 10일 구로구 구로문화원(원장 이계명)은 봄맞이 ‘문화탐방’을 구민과 수강생 등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화도 일대 문화유적지를 둘러 보았다.먼저 구로문화원 앞을 출발하여 고려 때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강화해협을 지킨 사적 제306호인 갑곶돈대와 전쟁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은 해안가 접경지역에 돌과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시설로 망해돈대를 비롯해 제승돈대 염주돈대와 함께 재물진의 관할하에 있었고, 이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진품이라고 한다. 이어 푸른바다와 녹색의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2023.05.12 10:22
-
필자가 시골에 있을 때 마을에 한족이 한 가구 살고 있었다. 그 세대주는 말을 먹어 유창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말을 할라 치면 기가 막히게 유머가 넘치고 말재주가 아주 재치가 있어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한바탕 호탕하게 웃곤 하였다. 그때 그 시절 언변이 좋은 사람을 ‘쟤는 오늘 정치가 잘 되네.’라고 놀리곤 하였다. 그는 진짜 매일 ‘정치가 잘 되는 사람’이었다.때는 문혁의 종말을 알리는 ‘4인방’이 타도된 지 1년이 지날 즈음이었다. 어느 날 그는 또 정치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왈, “요즘 참 이상한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2023.05.12 10:19
-
수필1. 아버지의 하늘 내 아버지는 내세울게 없는 분이셨다. 아버지는 학교를 다닌적 없었고, 잘생김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수토로 인해 무릎관절이 튀여나와 걸음걸이가 평지에서 걸어도 언덕길을 오르듯 두 무릎에 바짝 힘을 주고 힘겹게 걸어야 했다. 아버지의 별명은 자린고비였다.얼마나 깍쟁이였냐면, 가령 밥이 쉰 것 같으면 기어이 찬물에 헹궈서 꾸역꾸역 잡수셨고, 전날저녁에 삶은 옥수수국수가 이튿날이 되어 면발이 토막토막 끊어지면 숟가락으로 국수를 미음처럼 떠서 잡숫는 분이셨다. 아버지는 하나에 십전씩 하던 담배종이가 아까워 평생을 우리가
문화·문학
이동렬 기자
2023.05.10 13:23
-
단편소설1. 낙타에게 묻지 마라 여자가 세면대에 서서 거울을 들여다본다. 여자의 두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다. 한참 토악질을 하고 난 뒤라 위가 쓰리고 목구멍이 얼얼하다. 손가락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걷어내고 여자는 다시 거울을 들여다본다. 눈이 깔깔해 깜빡거려본다. 오른쪽 눈은 이제 아무리 깜빡거려봐도 물체가 부잇하게 보인다. 가슴을 부여잡고있는 여자의 오른손은 파랗게 피줄이 서있다. 손에 물만 묻혔다가 털고 여자는 거울속의 자신을 그렇게 한참 바라보다가 과도한 약복용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겨놓는다.여자가 일을 시작한다.
문화·문학
이동렬 기자
2023.05.10 08:38
-
—인터뷰—복합상징시 그 정체를 묻다시간: 2023년 4월 26일 오후. 장소: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실.이동렬: 재한동포작가협회 대표(이하 으로 약칭).김현순: 중국조선족시몽문학회장/대표(이하 으로 약칭)* * *동: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현: 네, 수고 많습니다. 동: 시인님은 복합상징시라는 시영역의 새로운 유파를 창시함으로써 조선족시단은 물로 한국을 비롯한 국제시단에서도 쟁점 화제가 되고있는지라 찾아뵙고 말씀 나누고 싶었습니다.현: 네, 영광으로 간주합니다. 동: 오늘 조련찮은 만남인데 복합상
동포문단
이동렬 기자
2023.05.06 20:07
-
오늘로 우리 부부의 삶은 끝났다. 법적 이혼으로 끝낸 것이다. 장장 몇 달간을 나 혼자 미련스레 버텼으나 더는 무리였다. 안간힘을 다했지만, 나의 육중한 몸이 곧 쓰러지려고 했다. 진작부터 주제 파악을 못 한 건 아니지만…. 나는 이별이 싫었다. 솔직히 이별이 두렵고 무서웠다. 이제 나는 종전의 사별이 아닌 현재 남편과는 이별로서 아내의 자리에서 물러나 곧 이 집을 떠나야만 한다. 당장 어디로 갈 것인지 나는 알지도 못하고 마땅한 곳도 아직은 내겐 없다. 서울 하늘 아래 고립된 섬처럼 나는 지금부터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지지리도
문화·문학
동북아신문
2023.05.06 12:40
-
홍어회(외 5수)/ 김현순-----------------------프로필: 중국 조선족시몽문학회 회장.순수문학지 편집주간, 발행인---------------------------------- 바다를 삼키며살아온 한생이 그렇게폭싹... 삭아있음을 몰랐을게다눈 뜬 살점들이썰려나간 세월에고스란히 슴배어있다콕 쏘는 암모니아 냄새갈매기 되어 가슴에서깃 치며 운다꺼으 꺼으...바닷새 닮은 목소리가또 한점 아픔 집어입가로 가져가면곁에서폭 삭은 기다림 하나홍합의 사막에 걸리어있다 투, 투(吐,吐)...밑굽 젖은 바위의 언사가어둠 각색
동포문단
김현순 기자
2023.05.06 19:28
-
◈ 재한동포문인협회 迪卡詩 분과 [제45호] 본능에 충실하는 것콘크리트 바닥이든 틈서리든어디나를 막론하고내가 할 수 있는 것은단 하나 소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질병으로 두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 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촌에 내려간 18살 되는 해에는 오빠가 군 입대를 하였다. 나는 엄마와 함께 세대주 역할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물려준 강인함과 근면의 본능으로 나는 세상살이에 용맹하게 뛰어 들었다…콘크리트 바닥 틈을 뚫고 나온 괭이밥을 보는 순간, 나의 전반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눈앞의 연약한 생명체에게 응원을
동포문단
최춘란
2023.04.28 19:02